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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2일 오후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경제연구소장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2일 오후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경제연구소장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이경숙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은 2개월여 인수위 활동의 중점과제로 '경제 살리기'와 '교육개혁'을 들었다. 그는 지난 12월 25일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이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원하시는 방향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다음날 송년회에서 만난 한 원로 정치학자는 "당선인 측이 당면한 외교안보 과제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걱정했다. 주요국 대사를 지내기도 한 이 학자는 "지금 외교안보 과제를 잘 풀지 못하면 경제 살리기도 공허한 목표가 된다"면서 당선인과 인수위의 관심사항에서 대북정책 등 외교안보 문제가 뒷전에 밀려나 있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시했다.

 

물론 인수위의 중점과제를 국민적 관심이 높은 내정문제로 설정한 것을 꼭 나무랄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북한 핵문제와 남북 교류협력 등 외교안보 분야의 핵심 현안들에 대한 차기 정부의 정책방향이 명확히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외교안보 이슈 자체가 쟁점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도 있지만, 이명박 당선인이 실용을 앞세워 '의도적 모호성'을 유지한 측면이 없지 않다. 개성공단을 간판으로 내건 정동영 후보의 '평화공세'와, 반대로 보수의 정체성을 문제 삼은 이회창 후보의 '색깔공세' 사이에서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유리하다는 계산이었을지도 모른다.

 

'비핵·개방 3000' 구상의 결함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2일 오후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경제연구소장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2일 오후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경제연구소장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이명박 당선인의 대북정책은 이른바 '비핵·개방 3000' 구상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이 핵 포기의 결단을 내리고 개방의 길로 나오면 10년 안에 1인당 국민소득을 3000달러로 끌어 올려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구상에는 중대한 결함이 존재한다. '핵 포기'나 '개방'이라는 것이 칼로 무 자르듯이 어느 시점부터 '이제 됐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방향으로 다 합의하고, 합의서까지 교환해놓고도 생각지도 못한 돌출변수로 표류하는 것이 북핵 협상임을 지금까지의 과정은 잘 보여주고 있다.

 

합의 자체도 몇 단계를 설정하고, 단계 단계마다 각자의 책임과 의무에 대해 검증 절차를 거치게 된다. 검증 과정에서 어느 한쪽이라도 납득하지 못하면 합의사항을 재조정하거나, 새로운 합의를 만들어내는 일도 있을 수 있다. 합의 이행의 미세한 선후관계를 놓고 다투는 일은 다반사로 벌어질 것이다. 한마디로 상상 이상의 인내심과 지혜가 요구되는 과정인 것이다.

 

당선인의 구상에는 비핵화와 개방의 '완성'을 전제로 한 계획만 담겨 있지, 완성에 이르기까지 대북 관계를 어떻게 관리하겠다는 구체적 방향성이 없다. 비핵화와 개방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대북 교류와 경제협력을 전면 중단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라면 단계별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전혀 책임 있는 설명이 없었다.

 

새해 들어 북핵 문제는 '아무 합의도 없는 상태'가 됐다. 지난 연말까지가 시한이었던 비핵화 2단계 조치의 이행 완료가 북-미간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신고를 둘러싼 이견으로 끝내 무산됐기 때문이다. 앞으로 1~2개월 안에 이 문제의 돌파구를 찾지 못한다면 이 당선인은 취임과 동시에 커다란 시련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북핵 위기의 재연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킨다면 외국인 투자자의 이탈 등으로 이 당선인이 최우선 과제로 삼은 '경제 살리기' 계획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은 자명한 이치다. 대북정책의 분명한 방향정립이 다른 어떤 과제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보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당선인과 측근들의 서로 다른 대북정책 방향

 

다행히 새해 들어 당선인은 대북정책에 대한 방향성을 보다 명확히 밝혔다. 그는 <SBS>와의 신년인터뷰에서 자신이 대북정책이 "더 평화적으로, 더 협력적으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돼서 갑자기 북한에 대해서 냉전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KBS>와의 인터뷰에서도 "강력한 대북정책에 대한 생각은 없다"며 역시 ‘평화’와 ‘협력’을 키워드로 내세웠다.

 

인터뷰 가운데 당선인이 대북정책을 언급한 대목은 다른 경제·사회 이슈들에 묻혀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지금까지의 '모호성'을 어느 정도 정리해주는 중요한 발언이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당선인의 인식이 기존 한나라당의 대북 강경노선과는 상당히 멀어져 있음을 느끼게 된다.

 

당면한 최대 현안인 북한의 핵프로그램 신고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 늦어지더라도 성실한 신고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해 현 정부와 일치된 견해를 보였다. 그의 전체적인 발언 맥락을 보면 역대 정권의 대북 포용정책의 기조를 유지해나가려는 생각으로 해석된다.

 

오히려 "동족으로서 신뢰를 가지고 대화해야 한다"거나 '설득'을 통해 북한의 핵을 포기시킬 수 있다고 믿는 듯한 그의 발언에서는 진보정권 이상의 '낭만성'마저 엿보인다. 그런 낭만성은 실제 집권해서 현실과 부딪히는 과정에서 수정되어 갈 것으로 본다면, 협력적 대북 관계를 통해 평화적으로 상황을 관리하겠다는 그의 방향제시는 일단 정확한 현실인식에 기초한 실용적 접근법으로 평가할 수 있다.

 

 박진 의원
박진 의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런데 문제는 이 당선인의 생각이 이렇다면 그의 측근 '외교안보 브레인'들이 그 동한 해온 얘기는 도대체 뭐냐는 것이다. 이 당선인이 '모호성'을 유지해오는 동안 측근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차기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김영남 상임위원장 취임식 초청' 아이디어를 언론에 흘렸다고 해서 2일 인수위에서 공개경고를 받은 남성욱 고려대 교수(인수위 자문위원)는 대선 직후 여러 외신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10·4 남북정상회담의 합의사항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공공연히 밝혀왔다. 통일부 폐지론을 확산시키기도 했다.

 

2일자 <한국일보>에 따르면 인수위 외교통일안보분과 간사인 박진 의원은 "햇볕정책은 실패한 정책"이라고 규정하고 대북 인도적 지원에도 상호주의를 적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북측에 대한 지원은 비핵과 개방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며 '원리주의적 입장'을 되풀이했다.

 

"정권인수 과정이 현 정부에서 물먹은 학자들의 한풀이 장 돼선 곤란"

 

당선인과 측근들의 말이 이렇게 서로 다른 것이 고도의 전략에 따른 '역할분담'인지는 알 수 없으나, 지금 상황을 보건 데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고, 바람직해 보이지도 않는다. 차기 정부가 대북정책에서 냉·온탕을 오가며 혼선을 초래할 것이란 우려만 깊어지고 있다.

 

남북관계에 오랫동안 관여해온 전문가들은 대북정책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한결같이 '일관성'을 꼽는다. '강경'이든 '유화'든 분명한 원칙을 세우고 일관되게 밀고 나가야 목적한 성과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당선인 측이 지금 외교안보 분야의 정권인수 과정에서 보여주고 있는 행태는 '일관성'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는 지적이 많다.

 

당선인은 대북정책에 대한 원칙과 방향을 언론인터뷰보다 더 무게 있는 형식을 통해 명확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 더 이상 측근들의 중구난방식 논의를 방치해선 안 된다.

 

정부 중앙부처의 한 간부는 "정권인수 과정이 지금처럼 현 정부에서 물먹은 학자나 정치인들의 한풀이 장으로 흘러선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당선인이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다.


#이명박 대북정책#남성욱#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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