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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지으며 시를 짓고 있는 유승도 시인의 손 때가 묻어 있는 농기구들. 설치미술이 따로 없다.
▲ 시인의 농기구. 농사를 지으며 시를 짓고 있는 유승도 시인의 손 때가 묻어 있는 농기구들. 설치미술이 따로 없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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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연말 시집 한 권을 우편으로 받았다. 시인은 책이 들어있는 봉투에다 자신의 주소와 책이 가야할 곳의 주소를 볼펜으로 꾹꾹 눌러 썼다. 라벨지가 주소를 대신하는 세상에서 볼펜 글씨를 만나는 것 자체로 반가웠다.

시집을 보내온 이는 유승도 시인이다. 강원도 영월에 사는 유승도 시인은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보기 드문 농사꾼 시인이다. 강추위가 몰아닥친 연말이라 길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할 때 나는 배를 깔고 시인이 보내온 시를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시집 한 권을 우편으로 받고 시인의 집으로 가다

밤 시간 누가 지나가지도 않는데 개 짖는 소리가 컸다. 개가 헛것을 보았나. 창문을 흔들며 지나가는 센 바람에 놀랐을 수도 있겠다. 바람소리에 펼치고 있던 시집을 접었다. 돌아 누우며 눈을 감았다. 그러자 시집에 들어있던 시인의 언어가 눈 앞에 삼삼하게 그려지기 시작했다.  

산도 지우며 눈이 내린다
개의 짖음도 흑염소의 울음소리도 지우며 눈이 내린다
돌담도 지우며 눈이 내린다
날아가는 까치도 까치가 앉았던 살구나무도 지우며 눈이 내린다
방 밖으로 나서는, 아이의 목소리도 지우며 눈이 내린다

하늘도 지우며 눈이 내린다
방금 내린 눈까지 지우며 눈이 내린다

- 유승도 시 '가득하다' 전문

내린 눈이 시인의 집까지 지워버린 것은 아닌지 갑자기 시인의 집이 그리워졌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시인의 집에 가서 시인의 노래를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큰 산을 지워내며 내리는 눈에 2007년의 내 모습도 지워내고 싶었다.

밤 시간 그리움을 견디지 못하고 시인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올해의 마지막인 31일 날 시인의 집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일방적인 통보에 가까운 전화였다. 그럼에도 시인은 언제나 그렇듯 느린 말투로 "그래요? 그럼 좋지요"라고 대답했다.

시인의 집에 가던 날 아침, 평창군 도암면에 사는 김도연 소설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인의 집에 함께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는 전날의 음주 때문인지 한 시간 후쯤 전화를 하겠다고 한다. 김도연은 정확하게 한 시간 후 전화를 걸어왔다. 자신도 시인의 집으로 가겠다며 거기서 만나자고 했다.

유승도 시인과 그의 아내, 초등학생 아들이 살고 있는 집.
▲ 시인의 집. 유승도 시인과 그의 아내, 초등학생 아들이 살고 있는 집.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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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도 시인은 벌꿀 농사도 짓는다. 벌통의 수는 20여개. 올 해는 꿀농사가 형편 없었다고. 유모차에 올려 놓은 벌통이 이채롭다.
▲ 시인의 벌통. 유승도 시인은 벌꿀 농사도 짓는다. 벌통의 수는 20여개. 올 해는 꿀농사가 형편 없었다고. 유모차에 올려 놓은 벌통이 이채롭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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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시인의 집으로 가기로 했다. 정선군과 영월군은 서로 얼굴을 맞대고 있는 지역이긴 했지만 교통 수단은 예전보다도 불편했다. 모든 노선이 서울로만 집중되는 탓에 옆 동네 가는 일이 더 힘들었다.

정선에서 영월터미널까지 가는 버스는 하루 아침과 저녁 단 두 편 뿐. 황당스러울 정도였다. 하는 수 없이 영월 인근을 지나가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결국 영월에 살고 있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시인의 집까지 태워 달라는 부탁을 했다.

더 황당스러운 것은 정선 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였다. 버스표를 끊기 위해 주머니를 뒤졌지만 지갑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옷을 갈아 입으면서 생긴 일이었다. 난감했다. 12월 31일 오후 1시. 지갑 때문인지 얼굴을 때리는 바람이 더욱 매섭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시인의 집으로 가는 길은 멀기만 하고

버스를 놓치면 얼마를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를 일. 집에 다녀올 시간도 없었다. 터미널에서 승차권을 외상으로 줄 리도 만무인 시간. 가까운 곳에 근무하는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후배는 종무식을 끝내고 식사를 하던 중이라고 했다.

"어딜 가려는데 지갑을 안가지고 왔네. 여비 좀 들고 나오시게나."

버스가 곧 출발하니 사정 얘길 할 시간도 없었다. 후배는 군말 않고 여비를 챙겨나왔다. 고마웠다.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서둘러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곡예를 하듯 좁은 골짜기를 빠져나와 영월로 갔다.

원주로 가는 버스는 영월 읍내로 향하지 않았다. 영월 삼거리에 승객을 부려 놓은 버스는 제천으로 빠르게 달아났다. 지인은 버스 도착 시간에 맞춰 삼거리에 나와 있었다. 그의 차를 타고 40분이나 걸려 시인의 집으로 갔다. 

시인의 집이 있는 영월군 하동면 예밀리. 예밀리는 포도 마을이라고 알려졌을 만큼 곳곳이 포도밭이었다. 시인의 집은 해발 600여미터에 자리잡고 있었다. 망경대산을 뒷산으로 하고 앞으로는 영월의 산천이 수려하게 펼쳐져 있었다. 안개가 끼는 계절엔 안개가 발 밑까지 밀려온단다.

유승도 시인의 집은 소박하지만 과연 '시인의 집' 답게 꾸며져 있었다. 돈 들인 흔적보다 사람의 손 때 묻은 흔적이 더 많았다. 나를 태워다 준 이는 시인이 만든 녹차 한 잔을 마시고 돌아갔다. 김도연 소설가에게 전화를 걸으니 곧 영월에 도착한다고 했다. 유승도 시인이 "모시러 갈까?"라고 물으니 아는 이의 차를 타고 오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촌사람으로 사는 즐거움을 시로 그리는 유승도 시인.
▲ 시인. 촌사람으로 사는 즐거움을 시로 그리는 유승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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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도 시인의 시집 <차가운 웃음>과 산문집<고향은 있다>, 김도연의 장편소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을 맨입으로 받았다. 고맙다.
▲ 큰 흔적들. 유승도 시인의 시집 <차가운 웃음>과 산문집<고향은 있다>, 김도연의 장편소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을 맨입으로 받았다. 고맙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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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연말 시인은 두 권의 책을 동시에 출간했다. 시집 <차가운 웃음>(랜덤하우스 펴냄)과 산문집 <고향은 있다>(랜덤하우스 펴냄)가 그것이다. 시집과 산문집에 언급한 내용과 출연진들이 마당가에 소품처럼 펼쳐져 있다.

3일 동안 생각해도
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할 말이 없다

- 유승도 시인의 시집 첫 장에 있는 '시인의 말' 전문

그랬을 것이다. 스스로 텅 비워낸 가슴을 안고 사는 시인으로서는 당분간 '쓸 말도 할 말도' 없을 것이었다. 시인의 집을 둘러보니 비로소 '할 말 없다'는 시인의 한 생애가 짐작되었다. 예밀리 생활 10년째를 맞은 시인의 삶이 곳곳에서 묻어났다.

구절리에서 만난 여자, 헤어진 여자

잠시 후 시인의 아내가 술상을 차려냈다. 시인은 직접 담근 오가피술을 꺼냈다. 시인과 이런 저런 얘길 나누면서 한 해의 일몰을 맞았다. 태양은 뭐가 그리 급했는지 휘황한 빛 한 줌 남긴 후 서둘러 앞 산 자락을 넘었다.

김도연 소설가는 어둠이 완전하게 내린 후에야 시인의 집으로 왔다. 그는 오자마자 자신의 소설을 건넸다. 그 역시 지난 해 연말 장편소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열림원 펴냄)을 출간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한 해의 마지막 날이기도 하지만 시인과 소설가의 '산중 출판기념회' 자리이기도 했다.

대관령 기슭인 도암에서 부모님과 살고 있는 김도연 소설가. 그의 소설엔 산촌 생활의 일상을 뛰어넘는 힘과 그 힘을 견뎌내지 못하는 외로움과 슬픔이 스며있다. 언제고 집을 떠나 정선 땅에서 살고 싶다는 김도연 소설가의 화두는 여전히 총각 딱지를 떼는 '결혼'이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일화 한 번 소개해도 될 듯 싶다. 김도연 소설가는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총각이다. 유승도 시인 역시 총각이던 시절, 두 사람은 묘하게도 정선군 북면 구절리와 인연이 깊다.

아라리 가락이 흐르는 정선의 구절리는 한 때 폐광촌이었다. 구절리는 인생 막장처럼 더 이상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었고, 정선선 기차의 종착지이기도 했다. 그런 구절리 마을에서 유승도 시인은 한 여자의 마음을 사로 잡았고 결혼을 했다.

반면에 김도연 소설가는 여자를 만나면 반드시 구절리로 데리고 갔다. 그는 인생의 끝과 같은 지점인 구절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일생을 '함께 할 수 없는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검은 탄가루가 흩날리는 구절리를 걸으면서 여자는 '물질의 가난'을 감당하지 못하고 떠났다.

유승도 시인의 사랑이 익은 혹은 김도연 소설가의 아픔이 남은 구절리. 구절리에서의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며.
▲ 구절리. 유승도 시인의 사랑이 익은 혹은 김도연 소설가의 아픔이 남은 구절리. 구절리에서의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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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않은 전화를 기다리는 김도연 소설가. 2007년이 그렇게 저문다. 이불을 기대어 놓은 곳은 이 집의 굴뚝. 방 안에 굴뚝이 있다.
▲ 김도연. 오지 않은 전화를 기다리는 김도연 소설가. 2007년이 그렇게 저문다. 이불을 기대어 놓은 곳은 이 집의 굴뚝. 방 안에 굴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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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구절리에서 결혼 해 살다 10년 전에 예밀리로 이사를 했다. 시인은 그럼에도 끊임없이 정신적 고향인 정선을 동경한다. 소설가는 지금도 여자가 생긴다면 구절리에 가고 싶단다. 예전과는 많이 변한 구절리. 탄광이 사라진 구절리엔 몇 해 전 레일바이크가 들어섰다.

마흔 넘긴 총각 소설가를 장가 보내는 일, 참으로 힘드네

구절리에서 아우라지까지 이어진 레일바이크를 탄다면 여자는 '검은 가난'을 떠올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도연 소설가는 "과연 그럴까요?" 하고 되물었다. 나는 그렇다, 라고 말했다. 발목까지 빠지는 탄가루를 견딜 수 있는 여자는 유승도 시인의 아내로 끝이었다. 2008년을 맞은 지금 그 누구도 가난을 스스로 선택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밤이 깊어졌다. 집의 뒤란에 있는 돌담을 벽으로 하여 만든 방으로 술자리를 옮겼다. 시인의 집에서 가장 인기있는 방이기도 했다. 시인이 직접 만든 방이라 운치도 깊었다. 방안엔 안채의 굴뚝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재미있는 방임엔 틀림없었다. 더구나 너른 창으로는 밤의 기운이 손님처럼 다가와 기웃거리는 방이기도 했다.

"작년 연말도 이 방에서 보냈는데, 올해도 이 방에서 보낼 줄을 몰랐네요."

김도연 소설가는 2006년 연말도 유승도 시인 집에서 보냈다고 한다. 유승도 시인의 무엇이 사람을 불러 들이는지 그 이유를 짐작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의 느린 말투와 세상을 꿰뚫어 보는 작은 눈, 그리고 짙게 난 콧수염은 그가 만든 자연이었다. 그러하니 유승도 시인의 집에 가면 시인과 마주앉아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술잔을 기울인다는 말이 더 적확하다.

간밤에 무슨 말을 했지? 모른 척 각자의 시치미를 떼다

2008년을 뜬 눈으로 맞았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오가피 술을 다 먹어치우고, 포도주병을 비우기 시작했다. 새벽을 맞이하기까지 우리는 어떻게 하면 김도연 소설가를 결혼 시킬 것인가에 대해 연구하고 고민했다. 그러는 중에서 김도연은 오지 않은 전화를 기다렸다. 그날 밤 김도연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문자를 보낸 이들은 죄다 '남자'였다.

결혼을 하기 위해선 여자에게 무조건 복종하면 된다고도 했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복종할 수 없는 조건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결혼이라는 것이 이론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 이들도 아닌데, 소설가 둘과 시인 하나는 새벽까지 그 일에 몰두했다.

아침 시간, 시인의 아내가 연탄불을 가는 소리에 눈을 떴다. 몇 시인지 창문으로 기어든 햇살이 허리춤까지 올라와 있었다. 김도연과 나는 간밤에 마신 술잔의 수와 무람없이 떠들어댄 말들을 주워담으며 지난 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각자의 입에 달려 있던 시치미를 뗐다.

누군가 아침을 사겠다고 하여 영월 읍내로 나갔다. 식사 후 쓰린 속을 달래기 위해 해장술을 한잔씩 마시고 김도연은 도암으로, 나는 정선 가리왕산 자락으로 유승도 시인과 그의 아내를 남겨두고 각자의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2008년 새해 첫날, 집에 도착하니 수도 물은 얼어 터졌고, 보일러는 가동도 하지 않았다. 주인이 자릴 비웠다고  다들 군기가 빠졌다. 혼자 밤을 보낸 어머니만 "얘야, 윗집의 할머니가 오늘 아침 돌아가셨다는구나"라며 먼 하늘을 올려다 보셨다. 2008년 1월 1일의 일이다.

시인의 가족이 함께 농사 지은 콩으로 메주를 빚었다. 시인표 메주.
▲ 시인의 메주. 시인의 가족이 함께 농사 지은 콩으로 메주를 빚었다. 시인표 메주.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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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유승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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