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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2일 정부부처 중 처음으로 교육인적자원부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교육부가 가지고 있던 대학입시 관련 업무와 권한을 모두 대학협의체로 이관키로 하고, 자율학교 설립과 특수목적고 지정 등의 사전 규제 기능을 시·도 교육청으로 이관하기로 했다고 한다.

 

또한 인수위 이주호 간사는 "지난해 첫 도입된 수능등급제에 대해 전문가들로부터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2월초 결론을 내려달라고 교육부 측에 주문했다"면서 바뀌는 안에 대한 구체적 입시 적용 시기는 2월 초 입장을 정리할 것이라며 수능등급제를 어떻게든 바꿀 것을 기정사실화했다.

 

교육 근간을 뒤흔들 인수위의 교육정책

 

물론 이런 교육정책의 변화는 대통령선거 때 이명박 후보의 공약에 대체로 들어있던 내용이다. 하지만 공약에 있었다는 이유로 정책을 인수위의 몇몇이 마음대로 만들고 바꾸는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니다. 흔히 말하듯이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정책의 경우는 특히 더욱 더 신중한 접근과 검토가 필요한 것이다. 더구나 현재 인수위의 방향대로라면 우리 교육의 근간이 뒤흔들릴 만한 사안이 될 수 있다.

 

대학 입시 관련 업무와 권한을 모두 대학협의체로 이관키로 한 것은 학생선발과 관련한 업무가 사실상 대학에 맡겨지는 것을 의미한다. 작년처럼 교육부가 대학들에게 입시 때 내신실질반영 비율을 올리라고 이야기할 필요도, 권한도 없어지는 셈이다. 마지못해 고교 내신 실질 반영 비율을 찔끔찔끔 올려왔던 기존 주요 대학들이 이제는 당당하게 수능 성적이나 대학별 고사만으로 학생을 선발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이다.

 

공교육 붕괴니 학교 붕괴니 하는 말을 심심찮게 들어왔지만, 이런 정책이 현실화된다면 내신 성적을 대학 입시에서 많이 반영할 거라는 교육부의 말을 믿고 그나마 학교 수업을 중시해왔던 학생들마저 이제 사교육시장으로 내모는 결과가 될 우려가 있다. 또한 대학들이 자신의 선발권을 최대화하기 위해 대학별 고사 비중을 점차 늘릴 경우, 결국 1980년대 이전 대학 본고사 시절로 돌아갈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또 자율학교 설립이나 특수목적고 지정 등 사전 규제 기능이 시·도 교육청으로 이양되는 방안도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현재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의 경우는 자립형 사립고나 특수목적고가 그리 많지 않고 내신성적 위주로 선발하기 때문에 얼마 전 김포외고 사태와 같은 불미스러운 사태와 과열 양상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자율학교 설립이나 특목고 지정 권한이 지방 교육청으로 이양될 경우, 각 지역간에 자율학교 설립이나 특목고 지정 과열 현상이 벌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다른 지방에 자율학교나 특목고로 학생들이 빠져나갈 것을 우려한 각 지방 교육청은 자율학교나 특목고 신설에 경쟁적으로 나설 것이다.

 

각 시·도별로 자율학교나 특목고가 몇 개씩 생기기 시작한다면, 그 학교들을 제외한 일반고등학교는 2류 학교로 인식될 것이고 자율학교나 특목고는 평준화 이전의 명문고 대접을 받게 될 것은 당연하다. 이는 곧 고교평준화의 해체를 의미한다. 이런 자율학교, 특목고 경쟁은 중학생, 아니 초등학생들까지 무한 입시경쟁의 장으로 몰아넣을 것이 뻔하다. 지금보다 더 가혹한 '교육 정글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

 

올해 처음 실시된 수등등급제를 바꾸는 것을 기정사실화하는 것도 문제다. 어떤 제도든지 새로 실시할 경우, 불만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이 당연하다. 3년 간의 예고기간을 거쳐 처음 실시한 제도를 제대로된 여론 수렴이나 본격적 논의도 없이 일부 부정적 여론을 이유로 바꾸겠다는 것은 학생과 학부모를 혼란에 빠뜨리는 너무 단편적이고 일방적인 자세다.

 

초등학생과 중학생까지 밟아야 할 '죽음의 3계단'

 

지금도 우리 고등학생들은 지나친 대학입시경쟁에 지쳐있다. 여기에다 이제 대학본고사가 도입되고 고교평준화마저 무너진다면, 고등학생에 더해 그나마 본격적 입시경쟁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어린 학생들까지 '죽음의 3계단'을 올라야 대학의 문턱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렇듯 우리 교육의 근간을 크게 흔들어 놓을 수 있는 교육 정책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몇몇 위원들이 모여 결정하고 밀어붙이는 모습은 다원화된 현재의 민주화시대에 바람직하지 않은 퇴행적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흡사 대통령직인수위가 아니라 1980년에 전격적으로 과외금지와 본고사 폐지를 단행했던 5공 시절의 국보위를 보는 것 같다.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라 해도 국민 전체의 의견을 수립하고 파급 효과를 면밀히 검토하는 과정을 밟아 부작용을 최소화하도록 해야 한다. 노무현 후보의 공약이었던 행정수도이전을 극렬하게 반대하여 행정수도 이전을 좌절시켰던 사람들이 한나라당과 이명박 당선자 아니었던가?

 

더구나 이건 대한민국 국민 누구에게나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학생들의 미래에 관한 문제다.


태그:#사교육, #인수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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