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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대남 창구를 노동당 통전부(통일전선부)로 일원화시켰다. 모든 대남 사업은 통전부의 지시를 받아 우선 순위가 정해진다. (통일부를 해체해) 남쪽이 각 부처별로 따로 북한을 상대하면 부처간에 경합이 붙고 이기주의까지 발호해 결국 '통전부의 밥'이 될 것이다. 만약 우리 각 부처가 직접 대북 사업과 협상에 나선다면 아마 거의 통일이 다 된 상태일 것이다."

 

2일 기자와 만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현 민화협 상임의장)은 이명박 당선인 주변에서 나오고 있는 통일부 폐지론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통일부 통폐합하면 대북압박 신호로 받아들일 것"

 

그는 "한반도 문제는 국제적 성격과 민족 내부적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다"며 "국제적 개입이 보편적이 되면 힘의 역학관계상 우리의 입지는 축소되고 국가의 주권 행사도 제약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공직 생활 거의 전부를 '통일부 맨'으로 살았다. 지난 1977년 통일부에 특채로 들어간 뒤 1998~1999년 통일부 차관을 맡았고 2002년 1월부터 2004년 6월까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2대에 걸쳐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이런 그에게 통일부 폐지론은 누구보다 속이 타는 문제다. 단지 부처 이기주의 차원이 아니라 분단이라는 민족문제의 특수성 때문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정 전 장관은 "통일부가 외교부에 통폐합되면 북한은 이를 남한 정부가 한미 동맹 강화차원에서 대북 압박을 하려는 신호로 받아들일 것"이라며 "새 정부는 곧 후회할 것이고 국민적 저항에 부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부시 행정부도 지금 협상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 쪽으로 돌아섰는데 아직도 남한 내에서 미국의 대북 정책이 바뀌기 전 방식으로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은 시차가 너무 난다"고 비판했다.

 

정 전 장관은 "이명박 당선인이 경제를 중시하는데 우리 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아주 높다"며 "이 당선인도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 이명박 당선인의 대북 정책이 벌써부터 종잡기 힘들다는 말이 나온다.
"극우적으로 갈 수 있지만 이 당선자가 편향된 이념 성향을 가진 것도 아니고 실용주의를 내걸고 있다. 효율성이나 정세상황에 따라서 득이 많은 쪽으로 입장을 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 당선인은 경제를 중시한다고 했다. 우리 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아주 높다.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밖에 없다. 우리 경제는 경제 자체의 구조 뿐 아니라 남북 관계가 중요한 변수다."

 

- 김영삼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그 어떤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수 없다고 했는데 나중에는 강경하게 나갔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대북 정책에서 냉온탕을 왔다갔다 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어떤 때는 공식 라인 말을 듣고 어떤 때는 비공식 라인 말을 들어서 그렇다. 내가 김영삼 대통령 시절 4년 가깝게 청와대 통일 비서관을 지냈지만 공식라인은 그렇게 강한 건의를 하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이 나중에 강경기조로 간 것은 자신의 이념적 성향이 작용했겠지만 한편으로는 공식 라인 말고 비선 쪽의 얘기를 많이 들어서일 것이다."

 

"지난 10년간 정책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

 

- 이명박 당선인 주변에서 강경 목소리가 많이 나온다.
"막상 안에 들어와 보면 남북 관계가 밖에서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뜻대로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국가 책임을 맡아 대북정책을 추진하면 지난 10년간의 정책으로부터 벗어나는 조치를 취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미국에 태도와 비교해 볼 수도 있다. 노 대통령도 처음에는 '사진 찍으러 미국 안가겠다' '따질 것은 따지겠다' 등 자극적인 표현을 많이 썼다. 그러나 막상 해보니 미국과 따지고 들어가서 국가 이익에 도움이 될 것이 없다고 보고 미국과의 관계를 현실적으로 조절했다."

 

- 요즘 통일부와 외교부를 통합하겠다는 말이 많이 나돈다. 일단 통일부가 독립된 정부 부

처로 존재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분단 국가에 통일 문제를 전담하는 정부 부처가 없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우리 국민들의 통일 의지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구성하는 중요 요소다. 우리 헌법에는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는 내용이 들어있는 등 통일 노력을 국가와 대통령의 중요한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과거 안보지상주의를 천명하던 군사정권도 통일 문제를 대통령의 핵심 의제로 다뤘는데 지금 통일부를 없애겠다는 게 말이 되나?"

 

- 외교부와 통합을 주장하는 쪽은 통일부를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기능을 통합한다는 것을 강조하기도 하는데….
"통일부와 외교부의 역할과 업무 성격은 전혀 달라서 한 부처로 묶을 경우 혼선이 일어난다. 외교부는 한미 관계를 다루고 기본적으로 미국 중심으로 사고한다. 이런 외교부 산하조직으로 통일부가 들어가면 통일은 사실상 물 건너 갈 수 있다.

 

한반도 문제는 국제적 성격과 민족내부적 성격의 두 가지가 있다. 북핵 문제 등 때와 사안에 따라서 국제적 개입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러나 국제적 개입은 예외적이어야 한다. 이게 보편적인 현상이 되면 힘의 역학관계상 우리의 입지는 축소되고 국가의 주권 행사도 제약받게 된다. 

 

통일부가 얘기하면 그나마 북쪽이 경청한다. 너무 외교부가 나서면 미국 심부름한다고 듣지도 않는다. 내가 통일부 장관 있을 때도 미국 관련 얘기를 강하게 하면 북쪽은 아침에 미국 대사관 갔다왔습니까 이런 반응 보인다. 미국 문제는 자기들이 하겠다는 사람들이다. "

 

- 통일부가 외교부에 통폐합되면 북한은 이를 어떻게 볼까?
"남한 정부가 한미 동맹 강화 차원에서 대북 압박을 하려는 신호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곧 후회할 것이고 국민적 저항에 부닥칠 것이다.

 

북한은 우리보다 훨씬 법적 마인드가 강하다. 남북문제에 있어 절대 북한 외무성이 나서지 않는다. 북쪽은 남북 관계는 절대 국제 문제가 아니다라고 본다. 그동안 남북 외무장관이 국제 회의 등에서 조우하기는 했지만 한번도 미팅(meeting) 또는 회담(talks) 등으로 부를 만한 격식을 갖춘 만남이 없었다."

 

- 북한 내각에는 통일 전담 부서가 없는데 남쪽에만 통일부를 둘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북한은 통일전선부가 대남 관계를 담당한다. 우리는 내각이 집권당보다 최소한 밑은 아니다. 그러나 북한은 조선노동당이 국가를 이끄는 최상위 기관이다. 그 조선노동당 산하에 통전부가 있다."

 

- 통폐합론자들은 경제·사회·문화 등 각 분야의 남북 교류협력은 관계 부처에 넘기고 협상기능은 외교부에 통합하자는 것인데….
"북한은 대남 창구를 통전부로 일원화시켰다. 모든 대남 사업은 통전부의 지시를 받아 우선 순위가 정해진다. 남쪽이 각 부처별로 따로 북한을 상대하면 부처간에 경합이 붙고 이기주의까지 발호해 결국 '통전부의 밥'이 될 것이다. 만약 우리 각 부처가 직접 대북 사업과 협상에 나선다면 아마 거의 통일이 다 된 상태일 것이다."

 

"독일도 내독관계성 너무 일찍 해체해 후회"

 

- 독일도 외무성과 동독을 상대하는 내독관계성의 역할이 따로 있었다고 한다.
"독일의 외무성은 동방정책 가운데 동독 이외의 소련과 폴란드 등을 다뤘다. 내독관계성은 동독을 상대했고…1990년 10월 3일 독일이 통일을 선언하고 내독관계성을 3등분해서 내무성 등에 나눠 보냈다.

 

이렇게 각 부서로 흩어진 내독관계성 직원들은 동독 전문가가 아니라 단순한 행정가에 불과하게됐다. 독일 통일 10년이 지나도록 동서독 간의 갈등이 조정 안되고 각종 문제가 발생하니까 내독관계성을 너무 일찍 해체했다는 반성이 나왔다."

 

- 북한 통전부는 국정원이 상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북한도 통전부와 정치보위부가 분리되어 있다. 국정원은 정보 기관이다. 국정원은 해외 담당 차장이 있고 아무리 작은 해외 공관에도 직원을 파견한다. 샘물교회 신도들 피랍사건 때 국정원이 큰 역할을 했다. 그렇다고 외교부를 국정원에 통폐합해야 하는가? "

 

- 외교부와 통일부의 북핵 문제에 대한 시각차가 컸고 보수적 입장에서 통일부가 괘씸하게 보인 것 아닌가?
"2006년 11월 미 중간선거 뒤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확 바뀌어 핵문제 해결과 북미 관계 개선을 병행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미국이 이미 협상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 쪽으로 돌아섰는데 남한 내에서는 미국의 대북 정책이 바뀌기 전의 방식으로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는 소리는 나오는 것은 시차가 너무 난다."

 

- 북한의 이명박 당선자에 대한 태도가 어떤 것으로 보나?
"취임사에서 어떤 얘기를 하는지 볼 것이다. 첫 통일부 장관이 어떤 대북 조치를 하는지도 주목할 것이다. 만약 이회창씨 같은 이념 성향이 아주 뚜렷한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됐다면 아마 북한은 벌써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 차기 통일부 장관은 누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나?
"통일부 장관은 정치인을 임명하면 안된다. 정치인은 다음 선거를 의식해서 뉴스거리를 만들려고 애를 쓴다."


태그:#통일부, #정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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