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의 해란다. 엄밀히 따지면 아직은 돼지 해일 것이나 음력과 양력이 혼용된 이 나라인지라 새해만 되면 간지가 앞서가는 해프닝이 늘 있다. 아무려나 쥐의 해는 오기도 하고 왔다고도 한다. 의미 만들기를 좋아하는 이들의 놀음에 장단이라도 쳐 주는 게 미덕인 세상이니 지금을 '쥐의 해'라고 하자. 어릴 땐 보약이었던 쥐, 지금은 패악질만 일삼는 적 쥐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나는 어린 시절 쥐고기를 먹어 본 일이 있다. 야맹증이 심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다. 호롱불 아래에서 저녁을 먹던 때니 요즘 사람들로 치면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쯤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밤눈이 유달리 어두운 자식을 위해 아버지는 쥐를 잡았고, 숯불 위에 석쇠를 놓고 잡은 쥐를 구워주었다. 쥐고기라고 해서 얼굴을 찌푸리던 시절은 아니었다. 1960년대 말, 먹을 것이 없던 시절이니 고기라고 하면 재료가 무엇이든 마다할 처지 또한 아니었다. 나물죽 한번 끓이면 그것을 며칠이나 먹던 숨가쁜 나날이었으니 구워지는 것이 쥐라고 한들 전혀 이상할 일이 없었다. 쥐고기는 생각보다 맛이 좋았다. 쫄깃쫄깃 한 게 어쩌면 소고기보다 맛이 좋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다른 형제들도 군침을 흘렸으나 아버지는 쥐고기가 막내의 야맹증을 낫게 할 약으로 쓰이는 것이니 '함께 먹으면 약 효과가 없다'라는 말로 접근조차 막았다. 그 시절 먹은 것은 쥐고기뿐이 아니다. 박쥐 고기도 먹었는데, 그 맛에 대한 기억은 불행히도 없다. 참새만한 박쥐 고기를 우적우적 뜯어 먹은 기억밖에 없으니 크게 맛있게 먹지는 않았던 듯 싶다. 나와 쥐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동안은 생긴 것과 평소 하는 패악질에 대한 미움이야 크지만 야맹증을 낫게 한 공로를 인정해 최소한의 도리나 예의는 차리고 싶었다. 지난해 겨울엔 파종할 씨를 먹어치운 쥐에게 서로의 경계만큼은 지키자고 부탁하기도 했다.
그러한 부탁도 별무소득이었던지, 올 겨울엔 쥐들의 공격이 더욱 심해졌다. 지난해 연말, 세상의 곳간을 야금야금 먹어치우는 쥐 같은 사람들과 한 판 붙기 위해 천막농성을 하며 집을 보름 넘게 비웠던 게 화근이었다. 주인이 집에 들어오지 않던 그 기간 동안 쥐들은 집안으로 들어와 어머니께서 아끼는 호박은 물론이고 장터에서 팔 나물과 쌀까지 도륙을 냈다. "이러다간 쥐가 사람까지 잡아 먹겠다. 무슨 수를 써야지 원…." 오랜만에 집에 들어갔더니 어머니께서 한숨을 내 쉬며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집안을 둘러보니 쥐똥이 집안 곳곳에 굴러 다니고 있었고, 쥐가 썰어놓은 종이와 장판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집 거실은 숫제 쥐 오줌 냄새로 진동했다. 세상의 쥐를 잡으려다 집 안의 쥐만 키운 꼴이 되고 말았다. 바깥 쥐 잡으려다 집 안의 쥐만 키워 아직 밖에서 해야 할이 많은데 집은 그야말로 난장판으로 변해 있었다. 언뜻 세어본 쥐구멍만 해도 열 개는 되어 보였다. 작업실로 쓰는 서재는 아예 쥐의 놀이터였다. 서재 방 바닥을 뚫고 들어온 쥐들은 어머니가 아끼는 호박꽂이를 끌어다 쥐구멍에 먹이 창고를 만들어 놓았다. 어이가 없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머리에 쥐가 내린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순간이었다. 집이 텅 빈 것도 아니었다. 일흔다섯인 어머니는 쥐들에게 무서운 존재가 아니었다. 어머니의 기침소리나 거실을 오가는 발 걸음은 쥐에겐 더 이상 사람의 소리가 아닌 모양이었다. 아무리 흙짚으로 만들어진 집이라지만 이럴 수가 있다니. 다른 방으로 가 보았다. 어머니가 지난해 농사 지은 것들이 들어있는 방이다. 처음엔 멀쩡하다 싶었다. 방을 돌아보고 나오려는 순간 나도 몰래 비명을 질렀다. 무서워서 나오는 비명은 아니었다. 쥐들의 집요한 공격이 가공했기 때문이었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쥐구멍. 이번엔 방 바닥이 아니라 천정이 뚫렸다. 기가 턱 막혔다.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쥐구멍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만으로 며칠을 보냈다. 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이러다간 집 전체가 쥐구멍으로 연결되어 쥐 소굴이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되었다. 쥐라는 놈들은 언제나 주인이 잠든 틈을 이용해 활동했다. 모두가 잠든 시간엔 집 안이 쥐판이었다. 아침이 되면 쥐똥 치우는 일로 하루를 시작했다. 어쩔까. 어찌해야 하나. 일단 쥐구멍을 대충이라도 막아야 했다. 급한대로 빈 음료수 병으로 쥐구멍을 틀어막았다. 아무리 용한 재주를 가졌다고 해도 유리병을 깨물어 뜯지는 못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서재의 방바닥에 뚫어놓은 쥐구멍을 막기 위해 책꽂이를 다 들어내야 했다. 작업을 시작했다. 책을 꺼내 한쪽으로 옮겼다. 벽돌과 합판으로 만든 책꽂이를 들어냈다. 장판을 걷어보니 작은 쥐구멍만이 아니었다. 쥐들은 그동안 방바닥 곳곳을 파 헤쳐놓고 있었다. 신발을 신고 걸어보니 방바닥이 푹푹 꺼졌다. 막아도 막아도 뚫리는 쥐구멍... 어찌해야 이쯤에선 꺼진 방바닥을 보며 화가 나기는커녕 웃음이 나왔다. 처음 빈집이었던 집을 수리하면서 보았던 풍경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사를 오기 위해 막았던 수 많은 쥐구멍들이 2년 사이 그대로 재연된 것이었다. 날이 추웠지만 시멘트로 마감을 해야만 했다. 쓰다남은 시멘트를 개어 방바닥에 발랐다. 구멍이 큰 곳은 개울에서 주워온 잔돌로 메우고 시멘트 마감을 했다. 그 일만도 꼬박 하루가 걸렸다. 시멘트가 마르기까지는 책과 걷어 놓은 장판을 그대로 둬야 했다. 방이 제 모습을 찾은 것은 이틀이 더 지난 후였다. 그 사이 음료수 병으로 막아 놓은 쥐구멍 옆으로 새로운 구멍들이 자고 나면 하나씩 생겨났다. 쥐들의 공격은 참으로 집요했다. "먹을 것도 없는 집에 웬 쥐가 이렇게 들어오누…." "그러게 말여, 들판에 먹을 것들이 꼭 찼는데 집엔 왜 오는 건지 원." 수확하지 않고 둔 콩 밭만 가지고도 한 겨울 배부르게 날 수 있을 법 한데 쥐들은 집으로만 들어왔다. 쥐구멍이 자꾸만 생기자 어머니는 쥐약이라도 놓으라고 했다. 지난 해부터 어머니께 듣던 말이나 아들은 차마 쥐약을 놓지는 않았다. 쥐에 대한 예의를 차리고 싶었던 탓이다.
그런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연말이었다. 막아도 막아도 생겨나는 쥐구멍을 보면서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방어만 하다간 언젠가 집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쥐의 해? 도저히 못 참겠다 그날로 읍내에 나가 쥐약을 샀다. 인체에도 무해하고 다른 동물이 먹는다 해도 전혀 해롭지 않다는 문구가 맘에 들었다. 쥐약 한 봉지 값이 5백원, 두어 숟가락밖에 안되는 양이지만 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쥐잡는 일이 절박했다. 열 봉지를 샀다. 쥐약을 사온 후로는 새로 생기는 쥐구멍을 막지 않았다. 쥐들이 편하게 들락거릴 수 있도록 길을 터주기도 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사온 쥐약이 다 떨어질 정도로 쥐들의 식욕은 대단했다. 쥐들은 쉼없이 들락거리며 쥐약을 먹었다. 쥐들은 덩치가 얼마나 큰 지 약통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먹었다. "그려, 쥐야. 어여 많이 많이 먹어라." 쥐의 해를 맞은 집주인의 특별한 배려는 그제도 어제도 이어졌다. 약국에서 사온 쥐약이 먹고 죽는 극약인지, 쥐에게 보약이 되는 약인지 모르겠지만 쥐는 오늘도 쥐약을 먹으러 왔다. 동네 쥐가 집으로 다 몰려 오는지 밤이면 쥐들의 경주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얼마나 많은 쥐약과 시간을 보내야 쥐의 방문이 끝날지 지금으로서는 예측도 하기 힘들다. 오늘밤엔 또 몇 마리의 쥐가 집을 방문할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오늘도 먹이를 챙겨주듯 쥐약을 챙겨준다. 촌사람의 하루가 이렇게 허접하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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