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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가난한 사람들의 식량이 돼버린 라면이 옛날에도 있었다면 겨울밤 분위기도 달라졌을 것이고 배고프게 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은 가난한 사람들의 식량이 돼버린 라면이 옛날에도 있었다면 겨울밤 분위기도 달라졌을 것이고 배고프게 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 조종안
 
오늘(6일)은 올해 들어 처음 맞는 절기인 소한(小寒)입니다. 24절기에서 23번째 절기인 소한이 작년에는 1월 5일이었는데, 서울의 아침 기온이 영하 11도까지 내려갈 정도로 매서운 추위가 전국을 강타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소한 추위는 꿔다가도 한다"라는 속담이 무색할 정도로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네요.
 
양력으로는 해가 바뀌었지만, 음력으로는 아직도 정해(丁亥)년 동짓달입니다. 그러고 보니 진짜 나이를 먹는 우리의 민속 명절 설날이 아직도 한 달 남짓 남았네요. ‘화살처럼 빠른 세월을 잡고 싶은 심정인가보다’라고 해도 좋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신문사에서 배달되는 한 장짜리 달력을 들여다보며 가족의 생일과 여름 방학 등 그 해에 있을 일들을 표시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지금도 고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져보면 이자와 세금 납부 등을 고민하는 날도 있지만 가족과 친구의 경사 등 축하하고 즐거워해야 할 날들이 더 많이 들어 있거든요.
 
지금처럼 태양력이 없던 옛날에는 24절기가 달력을 대신했습니다. 시계도, 달력도 없었으니 불편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지금도 농촌에서는 24절기에 맞춰 농사를 짓고 어부들도 조금과 사리, 물때를 맞춰 출어를 하는데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생각입니다. 
 
겨울방학과 함께 했던 소한(小寒)  
 
 철부지시절, 겨울철의 어묵과 풀빵은 우리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간식이었습니다
철부지시절, 겨울철의 어묵과 풀빵은 우리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간식이었습니다 ⓒ 조종안
1년 중 가장 춥다는 소한은 겨울 방학의 절정기에 들어 있어 친구들과 어울려 노느라 추운 줄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썰매 타기와 쥐불놀이 등 알싸한 추억들이 많이 남아 있지요. 특히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연말연시 겨울밤에는 당시의 추억들이 더욱 그립습니다.
 
가난했던 탓에 옷을 제대로 입지 못해서인지 제가 어렸을 때의 소한은 무지하게 추웠습니다.
 
얼마나 추웠던지 이때만큼은 삼한사온(三寒四溫)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세밑 분위기를 을씨년스럽게 했던 연말 한파에 이어 동장군이 기승을 부렸으니까요. 
 
대문 앞 골목에서 나무장수를 했던 길례네 소나무 더미에 눈이 소복이 쌓이는 날이면 하얀 도화지에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겨울 방학 숙제였지요. 눈사람을 만들 때는 부엌 아궁이의 숯으로 눈썹과 눈을 그리고 솔가지로는 수염을 붙였습니다.
 
방학 책은 10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꼭 돈을 주고 사야 했습니다. 안 사겠다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선생님과 설전을 벌이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 친구는 숙제를 하기 싫어 안 사겠다는 게 아니라 정말 돈이 없어 못 사는 것으로 보였거든요.
 
방학이 시작되기 전부터 대나무를 불에 구워 스키를 만들고, 판자를 잘라 가운데에 철사를 달고 옆으로 잔못을 박은 뒤 고무줄로 묶어 얼음 위에서 타는 스케이트를 만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공작 실력이 보통은 넘었던 것 같습니다.
 
골목에 눈이 쌓이면 눈싸움을 했는데 면장갑으로 들어간 눈과 대나무스키를 타면서 고무신으로 들어간 눈이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면서 걸리는 동상은 이듬해 봄까지 스토커처럼 따라다녔습니다. 밤마다 두붓물에 손발을 담그고 메주콩 주머니를 묶고 자야 했으니 가장 골치 아픈 불청객이었지요.
 
신작로 건너 운동장에서 불장난하다 ‘고리땡’ 바지의 엉덩이 부분을 태워 먹고 어머니에게 혼났던 당시를 뚜렷하게 기억합니다. 그 후로는 불 옆에 있으면 그을음 냄새가 옷에 배기때문에 추워도 불 가까이 가기를 꺼렸지요.
 
그래도 우리를 친절히 맞아주시는 풀빵장수 아저씨가 있어서 든든했습니다. 풀빵 굽는 기계 옆에 있으면 어묵이 끓는 냄새와 밀가루 반죽이 익는 냄새에 취해 얼었던 몸이 녹는 줄도 몰랐거든요. 얘기를 하는데 고소한 풀빵냄새가 코를 훔치고 달아나네요.        
 
겨울을 상징하는 소한과 대한 
 
절기 이름으로는 소한보다 대한이 더 춥다고 되어 있지만 속담이 말해주듯 소한 추위가 가장 매서웠습니다. 특히 소한과 대한 사이에 강추위가 몰려와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움츠러들게 했지요. 
 
가장 추운 소한과 마지막 절후인 대한이 들어가는 속담으로는 "소한 추위는 꿔다가도 한다" 외에도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 와서 얼어 죽었다”, “춥지 않은 소한 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 없다”, “소한의 얼음 대한에 녹는다” 등이 있습니다.
 
옛 선조들은, ‘눈은 보리 이불이다’, ‘사람이 보지 못하는 사이에 눈이 내리면 풍년이 든다’, ‘소한에 함박눈이 내리면 풍년 든다’는 등의 속담처럼 소한을 전후해서 눈이 많이 오면 풍년이 드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또 ‘첫눈 먹으면 감기에 안 걸린다’, ‘장사 지낼 때 눈 오면 좋다’, ‘첫눈에 넘어지면 재수 좋다’며 눈을 상서롭게 보기도 했습니다. 
 
교과서에서만 배웠지 실제는 태양력만 보고 성장해온 젊은이들에게는, 입춘(立春)에서 대한(大寒)까지의 24절기가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생소할지도 모릅니다. 하긴 중국의 계절현상을 기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기온에 약간의 차이가 있으니 아주 틀린 것도 아니네요.
 
태양과 달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차이 뿐인데도 일제강점기에 교육 받은 선생님에게 양력이 정확한 것으로 배웠던 저는 음력을 사용하는 어머니를 설득하려고 했던 경험이 있어 젊은이들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양력만 옳다는 주장도 지나친 편견이니 음력을 통해 선조들의 지혜를 배워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보이(http://www.newsboy.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소한#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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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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