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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23일 월요일, 날씨 구름 비 햇빛이 번갈아, 순례 31일째.
카카벨로스에서 베가 데 발카르세까지, 25km.
오전 7시 30분 출발, 오후 4시 도착.


밤새도록 벌레물린 곳들이 간질거려서 혼났다. 걸을 때엔 생각도 안 나는데, 밤만 되면 침낭 안에서 온 몸을 벅벅 긁어대는 탓에 침대 위에서 꿈틀거리는 '푸르딩딩'한 굼벵이 한 마리가 되어버린다. 오전 7시 반쯤, 숙소 뒤편을 몇 번 힐끔거리고는 걷기 시작했다. 스페인 친구들과 함께 걷자고 말로 약속을 해놓고 휙 떼어놓고 온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8시는 내게 너무나 늦은 시간이었다.

비는 밤새 그쳤다. 촉촉하게 젖은 땅바닥, 고인 웅덩이의 물거울이 낯설다. 버석버석 마르던 살갗이 엊그제 일이었는데, 하루에도 열두 번씩 비와 햇빛이 자리를 다툰다는 '갈리시아( Galicia)' 지역에 가까워지는 증거이리라. 살짝 경사진 오르막을 따라 걸으며, 두꺼운 비구름 사이로 서광이 비치는 새파란 하늘이 눈부셨다.

쏟아져 내리는 햇살은 마치 천사의 날갯짓마냥 아른거린다. 하늘 아래 칼같이 늘어선 초록 포도밭이 끝없이 이어졌다. 산길을 오르내리며 양봉장, 복숭아, 사과, 배나무를 쳐다보고 지팡이를 휘둘러 체리서리를 일삼았다. 한쪽에서는 딱따구리가 '다다다다' 하며 나무를 뚫고 있었다.

비에르조의 아침 열지은 포도밭과 찬란한 태양
▲ 비에르조의 아침 열지은 포도밭과 찬란한 태양
ⓒ 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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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쯤 걸어 도착한 곳은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조(Villafranca del Bierzo)', 건물과 길 하나하나에서 세월의 깊이가 묻어나는 마을길을 따라 걸으며 금세 이곳을 좋아하게 될 것 같았다. 거친 돌벽을 따라 걷다 문득 현판에서 이 건물이 수도원임을 발견하고 발길이 조심스러워진다. 이 작은 마을에 성당만 세 군데다. 금세 우체국을 발견하고 차곡차곡 모아두었던 엽서를 보냈다. 그리고 마을 상점에서 주전부리를 사서 가방에 넣어두었다. 자질구레한 일들을 해결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진다.

마을을 관통하는 큰 강의 흐름을 따라 걸었다. 졸졸졸 맑은 물이 흐르는 모습이 언젠가 어릴 적에 다슬기 잔뜩 잡았던 강가와 꼭 닮았다. 곧 눈앞에 거대한 다리가 보였다. 그리고 그 위로 가방을 짊어진 이들이 드문드문 걸어가고 있었다. 길은 다리를 따라 이어지고 있었다. 길을 빙그르르 돌아 다리 위에 섰다. 다리 너머 건물 테라스에서는 테이블을 몇 개 두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강이며 마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멋진 곳이었다. 저 곳에서 반드시 쉬어가리라 작정을 하고 다리를 건넜다. 바에서 크로와상과 콜라카오를 시켜 들고 바깥 테라스로 나왔다.

'우와!', 탄성밖에 나오지 않는 풍경이었다. 멀리 거대한 성당과 그 주위를 오밀조밀하게 에워싼 낮은 지붕의 집들이 보인다. 발치를 내려다보니 거센 물살에 등골이 서늘하다. 의자에 앉아 다리를 난간에 척 걸치고 한껏 여유를 부려본다. 한 입 베어 문 크로와상에서 하몬 향기가 풍겼다. 요상한 맛이었다.

따뜻한 우유 한 모금, 글 한 줄, 멍하게 하늘 한 번을 이어가다 고개를 드니 어제 저녁을 함께했던 리나였다. 오늘은 친구와 함께였다. 아침에 길 위에서 만났다고 한다. 같은 독일에서 온 이라 이야기가 잘 통해 오늘 함께 걷기로 했다고 한다.

"여기 봐, 대단하지 않아?"
"정말 믿어지지가 않아."


그리고 곧 침묵…. 경이로운 풍경에 둘러싸인 우리는 더 이상의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그저 고요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빙긋' 웃을 뿐이었다. 신발이며 양말까지 벗고 여유롭게 아침을 즐기는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바를 나서며, 좋은 길벗을 만난 그네들이 부러웠다.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조 옛 다리가 놓인 작은 마을
▲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조 옛 다리가 놓인 작은 마을
ⓒ 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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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랜 시간을 마을에서 보냈다. 그러나 후회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이 마을에 짐을 풀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하늘은 어느새 빗방울을 흩뿌리고, 미리 꺼내두었던 판초를 뒤집어썼다. 골짜기를 돌아나가며 상점에서 산 일본식 과자 '오츠마미'를 판초 앞주머니에 넣고 하나 둘 입안에 쏙 넣으며 걸었다. 오래간만의 익숙한 매운 맛에 '이 맛이야!'하며 혀로 과자를 굴리고 또 굴렸다.

깎아지른 절벽을 도로가 내달리고 왼편에는 '발카르세(Valcarce)' 강이 흐르고 있었다. 무성하게 자란 나무와 풀에 가려 강을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졸졸졸 흐르는 소리만으로도 청량해졌다. 간혹 새들의 지저귐도 들을 수 있었다. 잘 닦인 도로를 따라 걷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허리 높이로 콘크리트 벽을 만들어 놓은 인도를 걸었다. 차 없는 찻길, 사람 없는 도보 길이었다. 산골짝 길 하나를 온통 전세 낸 기분으로 걸었다.

한 시가 좀 넘어 '트라바델로(Trabadelo)'에 도착했다. 배가 고파서 더는 못 걷겠다! 판초를 펄럭거리며 길에서 약간 벗어난 도로변의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호텔을 겸하는 식당 앞에는 거대한 트럭이 주차되어 있었다. 기사들이 운전 가운데 쉬며 식사를 하는 곳인가 보다. 흰 식탁보 위로 빵 바구니와 비노 한 병이 도착하고 샐러드와 생선구이, 아로즈 콘 레체까지 남김없이 비웠다. 적당한 취기에 반쯤 풀린 눈으로 바라본 창 밖, 길 위에는 드문드문 순례자들이 걸어가고 있었다. 정신을 챙기고 값을 치렀다. 다시 발걸음에 생기가 돈다.

잠깐 길을 헷갈려 오래간만에 앞에 가는 순례자들에게 손짓해 "이 길이 맞나요?" 물었더니 우리도 가는 길이라며 걱정 말란다. 그리고 방금 지나친 주유소 한쪽의 간이 농산물상점에서 산 체리를 한 움큼을 쥐어 내게 건넨다.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먹었다. 찻길을 따라 걷는 길, 문득 비행기 날개를 닮은 엄청나게 거대한 짐이 트레일러에 실려 스쳐간다.

'베가 데 발카르세(Vega de Valcarce)'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 즈음, 길 양편에 드문드문 길게 이어진 마을을 한참 걸어 숙소에 도착했다. 입실 수속을 하던 중 오스피탈레로에게 달걀을 묻혀 기름에 튀긴 달콤한 빵조각을 받아 '오물오물' 넘겼다. 침대에 짐을 풀고 샤워와 빨래를 마쳤다. 여전히 비가 긋기에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빨랫감들을 론세스바예스에서 그랬듯이 침대 주변에 잔뜩 걸어두었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미사시간을 확인한 후 상점에서 저녁거리를 조금 사 왔다. 점심을 푸짐하게 먹었으니 저녁은 가볍게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어야겠다. 침대에 엎드려 일기며 엽서를 쓰고 남은 길을 손으로 짚어보았다. 앞으로 155㎞, 내일 산 하나를 넘으면 순례의 마지막 땅, 그리고 산티아고가 있는 땅인 갈리시아 지역에 닿는다.

숙소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문 앞의 벤치에 앉아 있는 검은 머리칼의 남자를 보았다. 첫눈에 아시아에서 온 순례자임을 직감했다. 그러나 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알 수 없었다. 쪼르르 달려가 '어느 나라에서 오셨어요?'하고 묻고 싶었다. 그러나 담배를 태우며 깊은 숨을 허공에 흩뿌리는 그의 옆모습이 '나를 내버려 둬'라고 말하는 느낌이 들었다. 망설이며 주위를 몇 번이고 맴돌다가 침대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리고 미사를 앞두고 숙소에서 방금 도착한 호르케를 마주쳤다. 어쩐지 오늘 여기 올 것 같더라만, 괜히 미안하고 또 반가웠다.

"우린 오늘 걷다가 보인 바에 전부 들어가서 한 잔씩 걸치고 오느라고 이제야 왔어. 진짜 재미있었어! 너도 같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저녁은 먹었니?"
"아니, 미리 상점에서 사둔 게 있어서 미사에 갔다 온 다음에 먹으려고."
"그럼 나도 우선 씻어야 하니까…, 너 다녀온 후에 같이 저녁먹자. 어때?"


나쁘지 않을 것 같아 흔쾌히 응하고 7시 미사에 향했다. 작은 성당을 가득 채운 동네 사람들의 인파 속에서 사제는 강론 가운데 감정이 북받쳐 올라 말을 잇지 못한 채 독서대를 붙들고 오열했다. 무슨 일일까? 술렁거리는 신자석 구석에서 멍한 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순례자 차림의 몇몇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한다. "혹시 무슨 일인지 아세요?", "나도 잘 모르겠지만 동네사람 누가 죽었나 봐요", 조금 무서운 미사였다.

베가 데 발카르세 성당 사제의 오열에 깜짝 놀란 작은 성당
▲ 베가 데 발카르세 성당 사제의 오열에 깜짝 놀란 작은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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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돌아와 호르케를 볼 수 있었다. 지금 막 상점에 가려는 참인데 같이 가지 않겠냐고 하기에 나는 이미 장을 봐서 살 건 없지만 따라가겠다고 했다. 샛길을 따라 걷던 그가 갑자기 소리를 빽 지른다. 무심코 만진 잎사귀가 날카로운 가시를 감추고 있었나보다. 붉게 달아오른 손가락을 내밀며 아프다고 칭얼대는 모습이 재미있다. 상점에서 그를 따라 '스페인 순례자들은 어떤 물건들을 고르나' 곰곰 살펴보았다. 간단한 캔 음식과 달달한 초콜릿 푸딩을 고르는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겨우 그런 걸로 저녁이 돼? 집에서도 이렇게 먹어?"
"집에선 나도 요리를 꽤 해. 그렇지만 여기선 공들여 요리할 여유가 없잖아. 그래서 이렇게 데우기만 하면 되는 것들을 먹게 되더라고."
"근데 그 푸딩은 진짜 달아 보인다."
"그래서 좋아하는 거지! 걸을 땐 단 것들이 도움이 되기도 해. 너는 단 것 좋아해?"
"너무 좋아해서 차마 먹질 못하겠다고 하면 맞을까? 그거, 나한텐 너무 달아 보여."
"하하하! 좋아, 두 개 살 테니까 하나는 너 줄게. 먹어봐."
"어휴, 괜찮은데."
"너도 좋아하게 될 거야. 그리고 비노 한 병 사 가자. 오늘 밤 비밀스러운 파티에 초대해 줄게."


비닐을 들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그는 발치의 돌을 가볍게 굴리며 내게 "남자친구 있니?" 라고 묻는다.

"친구? 친구야 많지. 그렇지만 서구 문화권에서 이성 친구는 특별한 의미를 얘기하는 거지? 그런 거라면…."

혼자 여행하는 여성이 이런 질문을 받았을 경우는 사실관계에 상관없이 무조건 있다고 하는 것이 정석이라지만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조금 고민을 하다 "아니" 하고 말았다. 나는 곧이어 물었다. "너는? 왠지 여자친구 많을 것 같은데?", 그는 뒤를 돌아보며 '씨익' 웃더니, "응, 있어. 아주 사랑스러운 여자친구" 하고는 성큼성큼 걸어간다.

갑자기 어색한 기류가 흐른다. 그를 뒤따라 조용히 샛길을 되돌아 올라갔다. "잎사귀 또 만지지 마!" 했더니 알았다며 웃는다. 2층 식당에서 만나기로 하고 침대로 돌아와 미리 사 두었던 것들을 들고 올라갔다. 저녁때가 되어 이미 순례자들로 만원중인 식당 가운데 호르케와 산티, 세바스가 있었다. 비좁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나는 빵을 썰었고, 호르케는 캔을 따 냄비에 데웠다.

산티와 세바스는 숙소 오스피탈레로와 친해져 오늘 밤 그들이 돌아간 대신 일일 관리인이 되었다고 했다. 그들은 빵을 가르고 치즈를 끼워 넣어 한입 베어 물고는 1층에 가서 순례자들을 맞아야 한다며 부산스럽게 움직인다.

저녁을 대충 넘기고 호르케와 함께 비노 병을 들고 1층으로 내려갔다. 산티와 세바스가 책상에 앉아 장부를 뒤적거리며 웃는다. "여기 발렌시아에서 온 사람 또 있다"며 이름을 짚어주니 반갑다는 듯 뛰어가 확인하며 웃는다. 그는 이미 해가 기울어 더 이상 들어올 사람들도 없다며 이제는 놀자고 그 애들을 꼬드겨 2층 식당으로 올라왔다. 전등 하나 없어 어둑한 식당, 주위에서 퍼져 나오는 불빛에 의지한 채 유리잔에 와인을 나눠 들고 건배를 외쳤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단 며칠간이지만 그에 대해 궁금해진 것을 물어보았다.

"넌 항상 주위에 사람들을 몰고 다니고 남 도와주는 걸 참 좋아하는 것 같아. 몰리나세카에서 같이 차를 마실 때 보았던 미국에서 온 가족들의 숙소를 네가 잡아준 거지? 나를 도와준 것도 그렇고…. 난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라 남들과 관계되는 일이 생기는 것을 꺼려서 그런지 네가 대단해 보여."

"그 사람들? 스페인어를 못해서 전화 통화에 애를 먹는 걸 보고 내가 영어랑 스페인어를 할 수 있으니까 그저 전화 한 통 해 준 것뿐이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일 뿐인 걸. 그리고 너만 그런 게 아니야.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이야. 나야말로 이기적이라 남들을 도와주면서 행복해지니까,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남들을 돕는 거지. 그들의 곤란함이나 문제 같은 것을 해결했을 때의 웃는 얼굴을 보면 나는 더 행복하니까."


이 녀석, 겉으로 보이는 것 같이 농담 따먹기만 할 줄 아는 뺀질이가 아니었네? 아니, 오히려 속이 꽉 찬,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여러 가지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 신기하고 무엇보다 듣기에 편한 영어를 구사하기에 물었더니 역시 다양한 여행경험이 있었다.

"교환학생으로 멕시코에서 1년 정도를 지냈어. 멕시코는 미국과 붙어 있어서 영어를 많이 쓰기도 하거니와 직접 미국사람들을 상대로 일을 했기 때문에 그 때 많이 늘었지. 그리고 남아메리카를 한 바퀴 돌고 스페인에 돌아왔어. 1년 3개월 간 아무도 모르는 땅에서 혼자 지내며 살아남는 법, 강해지는 법, 사람들을 만나고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배웠어. 아니, 배울 수밖에 없었지.

지금의 여자친구도 멕시코에서 만났어. 함께 정말 많은 곳을 여행했지. 그 후 스페인에 오자마자 여자친구가 사는 오스트리아에 가서 6개월을 지냈어. 독일어는 그 때 배운 거야. 물론 내 여자친구가 독일어를 쓰니까, 그리고 배워두면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그래서 스페인에 돌아온 지는 얼마 안 돼. 그러고도 또 바로 이 길 위에 선 거니까. 정말 정신없지!"

테라스의 난간에 기대 내일 오르게 될 '오 세브레이로(O Cebreiro)' 산을 쳐다보며 비노를 '홀짝홀짝' 기울인다. 그리고 마주앉아 이야기를 전하는 그의 목소리를 듣는다. 스물세 살 때 시작된 여행이 그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가본 곳보다 앞으로 가고 싶은 곳이 더 많은, 자신을 '유별난 스페인 사람' 이라고 소개하는 이 친구가 재미있다. 그리고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이다. 고개를 벽에 기대고 조용히 취기에 녹아들어가는 사이, 그가 뜬금없이 묻는다.

"너, 혹시 담배 피는 것 싫어하니?"
"아니. 괜찮아."
"근데… 이건 보통 담배는 아닌데, 괜찮겠어?"


그리고 처음 만났을 때 보였던 장난기어린 표정으로 눈을 찡긋한다. "우리는 Happy Cigarette 이라고 부르지" 하며 짓궂게 웃는 산티의 표정에 살짝 불안해졌다. 호르케는 자리에서 일어나 무엇인가를 가지러 갔고, 나는 '또 그거다!' 하는 직감적인 예감에 순간 얼어버렸다. 일주일 전 라바날 가는 길에 페드로가 손바닥 위에서 말던 것, 보자마자 '위험해!' 라고 온몸이 반응하던 그 물건을 여기에서 또 만날 줄이야! 들고 있던 유리잔의 비노가 반 이상 남았음에도 다 마시지를 못하고 테이블에 올려놓고 일어섰다.

"벌써 11시네, 늦은 것 같아. 난 피곤해서 먼저 잘게."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하고 도망치듯 식당을 빠져나왔다. 계단을 뛰어내려와 침낭에 몸을 쏙 파묻고 '오돌오돌' 떨었다. 그저 담배냄새를 풍기게 되어 양해를 구한 것일 뿐, 권하지도 않았는데 나는 무엇이 두려워 이렇게 떨고 있는 것일까? 갑자기 그가 이야기해 준 모든 것들이 한 숨 연기처럼 사라져버린 것만 같다. 분명 좋은 사람이야. 그렇지만, 문득 페드로의 모습 위로 그의 얼굴이 겹쳐졌다. 내일 아침은 새벽같이 일어나 밥을 먹고 산에 올라야겠다고 다짐했다.


#산티아고가는길#스페인#도보여행#성지순례#카미노데산티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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