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남산과의 인연은 이번이 두 번째다
경주를 여러 번 방문했지만 남산을 제대로 본 것은 2005년 10월이 처음이다. 경주 남산연구소(
www.kjnamsan.org)의 김구석씨 안내로 배리삼존불에서 출발, 금오산 정상에 오른 다음 용장골로 하산하면서 남산의 문화유산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여러 가지 자료를 읽고 갔지만 생각보다 준비가 덜된 탓인지 남산의 문화유산들이 그렇게 내 마음을 사로잡지는 못했던 것 같다. 당시 뚜렷한 기록을 남기지 못한 것을 보면.
그러나 경주 남산은 늘 나의 머릿속에 남아 있었고, 한번 시간을 내서 제대로 답사해야 할 텐데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나홀로 테마여행’ 카페의 ‘남산 완전정복’이라는 자신만만한 공지에 끌려 답사 신청을 하게 되었다.
과연 완전정복이 가능할까? 아니 경주에 사는 분들은 1년이면 수십 번 남산을 오르내릴 텐데도 그런 말을 쓰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만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번 도전해볼 만한 가치는 있다는 생각에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경주 남산에 관한 단행본을 찾아 다시 읽고, 이번에 다시 입수한 자료를 토대로 코스를 따라가면서 도상연습도 해 보았다. 이번 답사는 크게 네 코스로 나누어 이루어진다. 1) 약수골에서 금오산 정상까지, 2) 삼릉에서 용장골까지, 3) 부처골에서 천룡사까지, 4) 포석정에서 금오정까지.
지도 상에서 남산을 보니 동서 폭(4㎞)이 좁고 남북 길이(10㎞)가 긴 타원형이다. 한가운데 468m의 금오봉(金鰲峰)이 있고, 남쪽 끝에 494m의 고위봉(高位峰)이 있다. 금오란 황금 자라를 말하고 고위란 가장 높은 봉우리를 말한다.
그렇다면 남산은 한마디로 자라 형상을 한 산이다. 이 자라가 현재 형산강으로 불리는 기린천을 타고 북쪽으로 기어가고 있다. 기린과 거북이라면 상서롭고 오래 살기로 유명한 동물이다. 그래서인지 신라는 1000년의 역사를 가졌고, 1000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남산을 통해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가당치도 않은 일을 가능한 일로 만들기 위한 준비남산을 좀 더 세부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먼저 지난 2005년에 보았던 책자를 다시 꺼내 들었다. 경주 남산을 발로 뛰며 탐사한 윤경렬씨가 낸 <경주 남산>이라는 책들이다. 특히 ‘겨레의 땅 부처님 땅’이라는 부제가 달린 책(불지사, 1993)이 내용적인 면에서 훨씬 더 자세할 뿐 아니라 유적분포도와 유물실측도까지 있어 훨씬 더 학술적이었다.
그리고 경주 남산연구소에서 사이버 상에 올려놓은 자료를 통해 <삼국유사>에 나온 경주와 경주 사람들에 대해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었다. 또 ‘경주 남산 연구논저 목록’을 통해 1920년대부터 일본사람들에 의해 남산이 연구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남산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1944년으로 고유섭의 <조선탑파의 연구>를 통해서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남산 연구는 석탑 몇 기에 관한 연구가 전부였다.
남산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1960년에나 가능해졌고, 그것은 진홍섭, 황수영, 정영호 같은 학자들을 통해서이다. 이들의 논문을 통해 남산의 불교유적들이 체계적으로 소개되었고, 1977년에는 한국 불교연구원에서 편찬한 <남산의 불적. 신라의 폐사 II>라는 책이 일지사에서 나왔다. 1980년에는 윤경렬이 <경주 남산 고적순례>(경주시)라는 책을 발간, 남산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증폭시켰다.
나는 앞에서 언급한 <경주 남산. 겨레의 땅 부처님 땅>을 보면서 우리가 갈 코스를 사전에 답사해 보았다. 계곡과 골짜기란 이름으로 26개 코스가 있고, 다른 이름으로 세 개 코스가 있다. 특이한 세 개 코스는 금오산 정상, 남산성과 장창지(長倉址), 찾지 못한 유적이다. 그리고 이 많은 골짜기에 왕릉이 13기, 성곽(산성지: 山城址) 4개소, 사지(寺址)가 147개소, 불상이 118체, 탑이 96기, 석등이 22기, 부도가 8점 산재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 이들을 지정된 유형별로 나누면 보물이 13점, 사적이 13개소, 중요민속자료 1개소, 지방 유형문화재 11점, 문화재 자료가 3점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남산에는 어째서 국보가 하나도 없는 거지?남산의 문화유산을 공부하면서 첫 번째 떠오른 생각이 어째 남산에는 국보가 한 점도 없느냐는 것이다. 경주에는 국보가 무려 31점이나 있지만 유독 남산 지구에는 보물과 지방 유형문화재밖에는 없다. 국보는 역사적 미학적 가치가 높은 작품으로 대개 좀 더 전문적인 제작자에 의해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남산의 문화유산들은 서민 예술가에 의해 자발적으로 만들어졌고 그 때문에 국보급이 아닌 보물급으로 지정된 것 같다.
이들 보물 13점을 하나하나 살펴보니 절반이 조금 못 되는 6점은 이미 본 것이고, 7점은 아직 보지 못한 것이다. 남산의 서쪽 배리에서 금오산 정상을 거쳐 용장골까지 가면서 분포되어 있는 5점은 2004년에 이미 보았고, 남산 동쪽 통일전 옆 남산리 3층석탑은 그 이전에 보았던 기억이 난다. 이번 답사에서는 이들 6점 외에도 아직 보지 못한 7점을 보는 것이 하나의 큰 과제다.
남산의 보물 7점 중 5점은 남산의 동쪽에 있고, 2점은 서쪽에 있다. 동쪽 면의 5점 중 3점은 문천 부근 부처골, 탑골, 미륵골에 각 1점씩 있다. 골짜기 이름도 이들 유물을 따라 붙여졌다. 감실여래좌상, 마애조상군, 석조여래좌상이 그것이다. 그리고 2점은 고위산 동쪽 사면 봉화대 능선 아래 위치한 칠불암에 있다. 칠불암 암자 옆에 마애조상군이 있고, 그 뒤 바위 절벽인 신선암에 마애보살좌상이 있다.
나머지 2점은 남산 서쪽에 있는데 이들이 천룡사 3층석탑과 남간사지 당간지주이다. 천룡사는 남산의 최고봉인 고위산 서쪽 천룡골에 있고, 남간사는 남산의 가장 북쪽 장창골에 있다. 천룡골은 남산의 서쪽 사면에서 용장골과 함께 가장 깊고 수량이 많은 계곡이다. 그리고 장창골은 옛날 이곳에 창고가 있어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남산의 보물 현황제63호: 경주 배리 석불입상(삼존불 입상)
제124호: 경주 남산리 삼층석탑
제136호: 경주 남산 미륵곡 석불좌상
제186호: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
제187호: 경주 남산 용장사곡 석불좌상
제198호: 경주 남산 불곡 석불좌상
제199호: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제200호: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석불
제201호: 경주 남산 탑곡 마애조상군
제666호: 경주 삼릉계 석불좌상
제909호: 남간사지 당간지주
제913호: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제1188호: 천룡사지 삼층석탑 덧붙이는 글 | 이번 연재에서는 문화유산과 그것을 남긴 사람들의 이야기, 이곳을 거쳐간 역사 속의 인물들, 현재 남산이 가지고 있는 의미 등을 종합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이를 위해 코스별로 문화유산을 답사하고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를 storytelling화할 것이다. 총15회 정도 연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