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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인물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얼마나 공정할까. 돈 많고 힘 있던 사람들도 아닌 역사의 막다른 골목에서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맞아야 했던 사람들에게 역사는 어떤 평가를 내렸을까.

 

논개의 경우를 살펴보자.

 

먼 지방의 천한 기생이라 해서 <조선왕조실록>에는 논개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다.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도 그녀의 이름은 없다. 충신, 효자, 열녀의 반열에 음탕한 창녀인 관기를 넣을 수 없다는 시비 때문이었다. 적장을 품에 안고 진주 남강에 투신해서 죽었지만 논개는 조선왕조에 의해 버림받았다.

 

요즘은 어떨까. 충절의 이름으로 기림의 대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몰이해와 편견은 존재한다. 몰락양반 주씨 가문의 딸이었고 진주성 전투에서 군사를 지휘했던 최경희의 소실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의로운 기생이나, 사대부도 아닌 아녀자로 충절을 지킨 여성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김별아는 역사 속에 실존했던 인물이면서도 전설처럼 떠돌았던 논개를 되살렸다. 어쩌다 적장을 끌어안고 죽어 이름을 남긴 천한 기생도 아니요, 유교적 충절에 얽매인 아녀자도 아닌, 갈가리 찢기고 죽어가던 전쟁의 참화 속에서 사랑하고 운명에 맞서 싸울 수밖에 없었던 논개로 부활시켰다. 피와 눈물과 숨결이 느껴지는 논개가 되살아난 것이다.

 

김별아가 <논개>를 집필한 곳은 캐나다였다. 아름다운 금수강산의 전설만 간직한 채 개발에 밀려 자본에 밀려 추한 모습으로 전락한 대한민국을 떠나 신의 축복으로 일컬어지는 눈부신 해변, 투명한 호수, 거대한 로키산맥이 살아 있는 캐나다로 갔다. 하지만 작가의 눈은 여전히 떠나온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어쩔 수 없다. 작가들은 대개 자기가 쓰고자 하는 것보다는 자기가 쓸 수 있고, 쓸 수밖에 없는 것을 쓴다. 역사는 유행도 퇴행도 흥행의 보증도 아닌, 각별한 재주도 없는 데다가 명민하게 현실을 따라 쫓는 일에 젬병인 내가 지금 쓸 수 있고 쓸 수밖에 없는 유일한 이야기다. 누군가의 말대로 그토록 애써 떠나와서도 ‘캐나다의 아름다운 해변’ 같은 이야기를 쓰지 못하고 임진왜란, 진주성 전투 따위의 이야기에 맴돌리는 나 자신을 내가 아니면 누가 이해하랴.(작가의 말 중에서)

 

김별아가 쓸 수밖에 없었던, 쓰지 않으면 안 되었던 논개 이야기는 단지 과거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제 아무리 지극한 마음으로 죽음을 무릅쓰고 살더라도 신분에 따라 지위에 따라 차별받고 곡해되고 왜곡되는 상황이 까마득한 과거의 일만은 아니라는 현실 인식에서 출발한다.

 

이제는 물이 되고 흙이 되고 바람이 된 논개를 통해 나라에 곧고 지극한 마음을 바치고, 사랑으로 돌이켜지는 삶의 의미를 곱씹어보고 되살려보려 애썼던 노력의 결실이 장편소설 두 권으로 되살아났다. 신분도 차별도 없는 사회라지만 여전히 성역은 있고 차별 또한 존재하는 상황을 역사소설의 형식을 통해 비판하고 있다.

 

힘 있고 돈 많은 사람들에 의해 역사가 창조되고 발전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우리에게 알려진 유명한 인물 중에는 힘 있고 돈 많은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힘도 돈도 없이 살다가 역사의 막다른 골목에 몰린 이들의 삶에 따듯한 눈길 보내는 이들도 그다지 많지는 않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누구보다 진실했고 한 사내를, 숫백성들을, 자기가 태어난 강토를 자기 자신보다 사랑했던 여인이 논개였다. 돈도 힘도 없어 남을 딛고 올라설 야망도 욕심도 없었던 논개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자신과 똑같이 사는 이웃을 사랑하고 자신이 태어난 강산을 사랑하는 것일 뿐이다.

 

김별아의 장편소설 <논개>는 그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사랑하고 눈물 흘리고 죽었던 논개의 삶을 눈부시게 되살린 수작이다. 더불어 수많은 역사적 사실을 풍부한 고증으로 되살려주어 소설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논개 1

김별아 지음, 문이당(2007)


태그:#논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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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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