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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계산의 특이한 풍경들 1년 만에 찾은 청계산은 특이한 풍경들이 낯설게 다가왔다. 곤줄박이 대신 직박구리가 반겼고, 돌문을 도는 사람들과 새끼줄에 기원문을 적은 리본을 매달아 놓은 모습도 역시 낯설기만 했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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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비들이 오랜만에 왔는데 곤줄박이들이 모두 어디로 갔지?”
“그러게 말이야. 얘들이 모두 어디 갔을까? 산새들도 복 받으러 간 것 아냐?”


그 많던 이수봉의 산새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예쁜 모습으로 머리를 갸웃거리던 곤줄박이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지난 8일 무려 1년여 만에 다시 찾은 청계산이었다. 그런데 산의 모습은 그대로인데 달라진 것들이 너무 많았다. 1년의 시간이 바꿔놓은 모습은 조금은 실망스러운 것들이었다. 옛골에서 이수봉으로 오르는 길에서는 곤줄박이가 아닌 직박구리 두 마리가 우리를 반겼다.

 


곤줄박이 대신 사람들에게 다가온 직박구리

 

“저 새는 까치에게도 만만치 않은 용감한 새잖아?”


이수봉으로 오르는 능선길에서 잠깐 쉬며 간식을 먹을 때였다. 잿빛의 깃털을 가진 새 두 마리가 가까이 다가왔다. 직박구리들이었다. 나뭇가지 사이를 이리저리 날던 녀석들이 발밑에까지 다가와 머리를 갸웃거린다.

 

“아저씨 우리들에게도 먹을 것 좀 나눠 주세요?”


우리들에게 먹이를 달라고 졸라대는 듯한 몸짓이고 표정이었다. 마침 주머니에 있던 건빵 한 개를 으스러뜨려 던져주자 잽싸게 날아와 쪼아 먹는다. 녀석들은 그렇게 세 개의 건빵을 얻어먹은 후에야 근처의 나뭇가지에 앉아 우리들을 쳐다본다. 마치 “잘 먹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하는 표정이다.

 

직박구리는 서울의 주택가나 공원에서도 흔히 눈에 띄는 우리 텃새다. 크기도 참새나 박새, 곤줄박이보다는 훨씬 큰 편이다. 더구나 번식력이 강하고 적응력도 좋아서 근래 부쩍 그 개체수가 늘었다. 알을 품었을 때나 새끼를 기를 때는 덩치가 자신보다 훨씬 크고, 새들 중에서 깡패로 통하는 까치와도 당당히 맞서는 용감한 새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경계심이 강해서 여간해서는 사람들 곁에 얼씬거리지 않는 새인데 청계산에서 만난 녀석들은 너무나 달랐다. 그런데 이수봉에 올라 작년까지 자주 만났던 곤줄박이와 동고비를 기다렸지만 녀석들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조금 기다리면 나타나겠지 하는 마음으로 손바닥에 먹이를 펴들고 기다려도 녀석들이 나타나지 않자 일행들은 실망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겨우 동고비 한 마리가 나타나 땅콩 한 개를 물고 달아났지만 곤줄박이는 단 한 마리도 볼 수 없었다. 주변에서는 박새 몇 마리만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곤줄박이들에게 설마 나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겠지?”


벌써 몇 년째 해마다 이맘때면 이곳에서 만났던 일행은 곤줄박이가 염려 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곤줄박이들도 새해맞이 복 받으러 간 모양이라는 농담이 나온 것이다. 주봉인 만경대를 옆으로 돌아 매봉으로 향했다.


 


만경대를 우회하는 길가에는 특이한 모양의 ‘마왕굴’이라는 바위굴이 있었다. 그런데 전설에 의하면 이 굴은 고려조가 망하기 직전에 맥(貘)이라는 크고 이상하게 생긴 동물이 다른 많은 짐승들을 거느리고 들어갔다 하여 ‘오막난이 굴’이라고도 불린다는 것이었다.

 

“아니 산에 웬 계단을 그렇게 많이 만들어 놓은 거야? 돈 많은 지방자치단체라고 돈 자랑이라도 해 놓은 건지 원!”


정상에 오르자 등산객 아주머니 한 사람이 불만을 털어놓고 있었다. 날씨가 포근해서인지 평일인데도 등산객들이 많았다.

 

청계산은 서울 서초구와 경기도 성남시, 과천시, 의왕시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아주머니의 말이 생각나 이 지역이 어느 지방자치단체의 관할지역인가 살펴보니 서울 서초구 관할이다. 서초구라면 서울에서도 강남구에 이어 두 번째의 부자인 자치구다.

 

매봉에서 잠시 쉬었다가 원터골로 내려가는 길을 택했다. 산 능선길은 정비가 잘 되어 있고 쉼터도 말끔하게 만들어 놓았다. 성남시 관할 지역에서 보았던 모습과는 상당히 달랐다. 역시 부자 자치구다운 모습이라고나 할까.
 


능선길을 타고 조금 걷노라니 저 앞에서 한 사람이 바위를 열심히 돌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커다란 바위에 비스듬하게 기울어져 서 있는 모습이 문처럼 생겼대서 이름이 붙은 돌문 바위였다. 그 돌문 바위를 돌고 있는 것이었다.

 

돌문을 돌면 산의 정기를 받는답니다

 

“우리들도 몇 바퀴 돌아볼까. 무병장수 한다는데 하하하.”


일행 몇 명도 그 돌문을 돌기 시작했다. '돌문 바위. 청계산의 정기를 듬뿍 받아가세요.' 그 돌문 옆에 세워져 있는 안내판에 쓰여 있는 글이었다.

 

“한 달에 한 바퀴씩 계산해서 열두 바퀴는 돌아야 되겠지?”


일행 한 사람은 열두 바퀴를 돌고난 후에야 다른 일행들의 뒤를 따라 나섰다. 돌문을 도는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겠는가. 돌문을 돌면 산의 정기를 받는다는 것도 누군가 재미삼아 지어낸 말일 것이다. 그러나 돌문을 도는 사람들은 믿거나 말거나 작은 염원을 안고 돌문을 도는 것이리라.

 

이곳에서부터 내리막길은 그야말로 계단의 연속이었다. 능선의 경사가 그리 급하지 않아 계단이 없어도 별로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은 지형이었다. 그러나 그 능선길에 나무계단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한참을 내려오다가 뒤돌아보니 계단 앞쪽에 번호가 붙어 있었다. 886번, 자주 이 길을 오른다는 다른 사람에게 물으니 번호가 붙어 있는 계단만 1483계단이라고 한다.
 


능선길의 수많은 계단들, 꼭 필요한 시설물일까?

 

“아까 매봉에서 웬 계단을 그렇게 많이 만들어 놓았는지 모르겠다면 불만을 터뜨린 아주머니의 말이 실감나는구먼.”


계단길을 유난히 싫어하는 우리 일행 한 사람도 계단을 많이 만들어 놓은 것이 불만스럽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그렇게 수많은 계단길을 다 내려오자 저만큼 앞쪽에 정자 하나가 나타난다. 그런데 정자와 약수터가 있는 공터에는 나무와 나무, 그리고 돌탑을 연결하여 놓은 새끼줄에 수많은 하얀 리본들이 매여 있는 모습이 보인다.

 

“어! 이게 뭐야? 웬 리본들을 이렇게 매달아 놓았지?”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새끼줄에 끼워놓은 리본들은 하나 같이 복(福)과 바라는 것을 적어 놓은 기원문들이었다. 대입합격을 기원하는 글도 있었고, 올해 운수대통과 행복한 결혼을 기원하는 글도 적혀 있었다.

 

우리 민속에 이런 것도 있었나요?

 

어떤 리본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빼곡하게 적어 놓고 역시 만사형통하기를 기원하는 글이 적혀 있었다. 사업이 잘 되기를 기원하는 글도 보였고, 건강을 기원하는 글도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풍습이 있었나? 이런 건 일본여행을 할 때 몇 번 본 것 같은데.”


일행 한 사람이 머리를 갸우뚱거린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의 민속에서는 이런 모습을 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당산나무를 새끼줄로 칭칭 동여매어 놓는다거나 아기를 출산한 집 대문이나 사립문 앞에 금줄을 쳐놓는 풍습은 있었지만 말이다.


 


“그럼 이것도 혹시 일본의 풍습을 흉내 낸 것 아닐까?”
“그럴지도 모르겠는데. 그렇다면 이건 상당히 문제가 많은데. 풍습까지 일본을 흉내 낸다는 건.”
“정말 그러네, 일본 풍습을 흉내 내는 것은 민족적인 자존심 문제잖아?”


일행들의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새끼줄을 이용한 민속은 우리나라에 많으니까 혹시 저런 풍속이 있었는지도 모르잖아?”
“그렇긴 한데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저런 풍습을 본 기억이 전혀 없는 걸.”


모두들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우리나라의 다양하고 오랜 풍습을 모두 알고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아니야, 언젠가 일본여행을 할 때 저런 모습을 본 기억이 분명히 있어!”


일본을 여행할 때 그들의 비슷한 풍속을 몇 번 보았었다는 일행의 말이 일행들 모두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었다. 이것이 정말 일본의 풍습을 흉내 낸 것일까? 아니면 우리나라의 오랜 풍습 중에 저런 것도 있었을까?

 

내려오는 길에 몇 사람에게 물어보았지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년 만에 찾은 청계산은 1년이라는 세월의 길이보다 훨씬 멀어 보이는 낯선 풍경들이 우리들을 당황스럽게 하고 있었다.


태그:#이승철, #청계산 , #직박구리, #마왕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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