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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사람 애 낳으러 친정에 갔어요."
"아니, 왜 시댁으로 안 가고? 아니면 선생님이 산후조리를 해 주시던가?"

"하하, 그건 처가에서 해줘야 할 애프터서비스죠."
"아니, 그게 무슨 해괴한 논리죠? 애프터서비스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남자가 어떻게 산후조리를 해요?"
"아니, 선생님 아기 아니에요? 아빠가 되려면 당연히 그런 정도는 해야죠. 씨 뿌린 자, 거두는 것도 선생님 몫!"

"난, 못해요. 어떻게 남자가…."


몇 해 전, 한국에 있을 때 잘 아는 남자 동료와 나눈 이야기다. 그는 부인이 임신했을 때부터 희희낙락하여 이 사실을 알렸고 부인이 친정에 애 낳으러 갈 때는 출산 중계방송(?)을 하기도 했던 동료다.

그런데 그는 장모가 해 주는 산후조리를 당연히 여기는 듯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처가에서 해주는 산후조리는 말하자면 '애프터서비스'라는 것이다. 딸을 시집 보냈으면 그 딸의 산후조리나 딸의 아이를 양육해 주는 정도의 일은 마치 제품을 판 뒤에 그 제품에 대해 해 주는 애프터서비스 같은 거라는 궤변을 늘어놓곤 했다. 세상에.

물론 그 젊은 동료의 말에는 농담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부끄러운 줄 모르고 "장모 산후조리는 애프터서비스"라는 식의 논리를 펼치면서 나팔을 불고 다니는 것은 정말로 듣기 거북했다. 아니, 거북한 정도가 아니라 속이 뒤틀릴 만큼 심기가 불편했다. 

'아니, 친정엄마가 무슨 죄가 있다고 딸 산후조리를 애프터서비스 차원에서 해줘야 한다는 말인가.'

물론 출산한 딸이 사랑스럽고 안쓰러워 친정엄마가 산후조리를 자청할 수는 있을 것이다. 또 딸로서도 친정이 편하기 때문에 친정에 가서 산후조리를 받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산후조리는 친정엄마나 시어머니 몫이 아닌 남편의 몫이 되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딸만 둘을 둔 내가 '산후조리는 장모의 의무'라는 생각을 가진 파렴치한(?) 사위를 만나게 될까봐 미리 선수 치는 게 아니냐고?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남편더러 산후조리를 하라고?

 딸들아, 이다음에 산후조리할 때 늙은 엄마 부르지 말고 네 남편들에게 다 맡겨라.
딸들아, 이다음에 산후조리할 때 늙은 엄마 부르지 말고 네 남편들에게 다 맡겨라. ⓒ 한나영
요즘 남학생들은 학교 다닐 때부터 바느질도 배우고 요리도 배운다. 산업 사회, 지식정보화 사회에서는 당연한 현상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여자도 남자와 똑같이 밖에 나가서 일을 하기 때문에 남편의 가사 노동 분담을 위해 남학생들은 필요한 공부를 미리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산후조리에 대한 이러저러한 이야기는 바로 남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는 가정 과목을 확대해 보면 해답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이 문제를 남편이 해결해주는 것이다. 그게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왜냐하면 결혼을 한 부부는 이미 만인 앞에서 자신들이 성인임을, 부모로부터 독립한 '독립 개체'임을 선언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연로한 어머니에게 산후조리와 같은 힘든 일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건 안다. 우리나라에서 남편의 출산휴가가 아직 공식적으로 인정되고 있지 않고, 더구나 시행이 된다는 올 7월부터도 남편의 출산휴가는 고작 3일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병아리 눈물같은 남편의 출산휴가? 그런 ‘무늬만 출산휴가’로는 아내의 산후조리 문제를 전혀 해결할 수 없다.

그렇다면 너는 산후조리를 남편으로부터 받았느냐? 반은 그렇다. 시점이 잘 맞았다. 물론 첫 애를 출산했을 때는 나도 남편 대신 시어머니의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둘째를 출산한 1월에는 남편이 방학 중이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남편이 다 해줬다. 양가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았다.

[미역국] 미역국을 잘 끓일 줄 몰랐던 남편은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 쇠고기 미역국을 한솥 가득 끓여놓았다. 그리고 하루에 네 번씩 매번 미역국을 떠줬다. 시어머니가 끓여준 미역국을 먹을 때보다 마음이 훨씬 편했다.

[아기 목욕과 기저귀] 미역국만이 아니었다. 아기 목욕도 매일 시켜주고 하루에도 몇 십 장씩 나오는 오줌, 똥 기저귀를 남편이 다 손으로 빨았다. 나중에는 주부습진까지 생겨 고생을 했는데 남편은 추운 날 기저귀 빠느라 거칠어진 자신의 손을 내보이며 자랑을 하곤 했다.

"날마다 맨 손으로 기저귀 빠느라 그만 이렇게….”

당시 내가 보았던 남편의 쭈글거리고 허물 벗은 손은 로뎅이 빚은 '신의 손' 만큼이나 거룩하고 자랑스러운 손이었다.

 남편이 산후조리를 다 해줬던 둘째.
남편이 산후조리를 다 해줬던 둘째. ⓒ 한나영

이제 결론으로 들어가보자.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바로 이것이다. '아내의 산후조리에 남편을 참여시키라'는 것이다. 아기는 부부 공동의 합작품! 그런 만큼 산후조리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요즘은 산후조리원이라는 게 있어서 돈만 있으면 다 해결된다고 한다. 하지만 남편의 산후조리를 받아본 나로서는 그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었는지, 돈으로 살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이었는지를 잘 안다. 언제라도 회상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추억이다.  그러기에 다른 남편에게도 산후조리에 적극 참여할 것을 권유하고 싶다.

세종대왕도 출산휴가 장려, 남편에 30일씩 휴가 줬는데...

 큰딸 육아일기. 위에 보이는 영어사전 조각은 사전을 찢어서 입에 넣었다가 똥으로 나온 것. ^^
큰딸 육아일기. 위에 보이는 영어사전 조각은 사전을 찢어서 입에 넣었다가 똥으로 나온 것. ^^ ⓒ 한나영
하지만 아름다운 추억만을 되뇌기에는 현실은 너무나 냉엄하다. 바로 이 대목에서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 많은 나라들이 출산율 저하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런데 바로 그런 나라들의 벤치마킹이 되고 있는 스웨덴을 살펴보면 부럽기만 하다.

스웨덴에서는 아기를 낳으면 누구나 출산휴가를 쓸 수 있다고 한다. 사용 가능한 기간은 무려 16개월(480일)! 여자뿐 아니라 남자도 쓸 수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그만 눈이 휘둥그레지고 만다.

하지만 남의 나라로만 눈을 돌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미 조선시대 세종 때 남편의 육아휴직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최형국이 쓴 '푸른깨비의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에 나오는 <세종실록> 인용 구절이다. 

"경외의 여종(婢子)이 아이를 배어 산삭(産朔)에 임한 자와 산후 100일 안에 있는 자는 사역을 시키지 말라 함은 일찍이 법으로 세웠으나, 그 남편에게는 전연 휴가를 주지 아니하고 그전대로 구실을 하게 하여 산모를 구호할 수 없게 되니, 한갓 부부가 서로 구원(救援)하는 뜻에 어긋날 뿐 아니라, 이 때문에 혹 목숨을 잃는 일까지 있어 진실로 가엾다 할 것이다. 이제부터는 사역인의 아내가 아이를 낳으면 그 남편도 만 30일 뒤에 구실을 하게 하라."

우리나라에도 이미 오래 전에 이런 좋은 제도가 있었는데 언제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다시 복원하여 이 땅의 수많은 어머니들을 쉬게 할 수는 없을까.

덧붙이는 글 | <산후조리 제대로 하셨습니까?> 응모글



#산후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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