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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리는 나무만큼 가치 있는 책을 만들자

 

1인출판사를 시작하면서 결심한 것 중 하나가 ‘책을 만들기 위해 잘리는 나무만큼의 가치가 있는 책을 만들자’였습니다. 그래서 첫 책을 내기 전에 견학 갔던 제지 공장에서 펄프를 조금 얻어와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습니다. 결심이 무뎌질 때면 보면서 자극을 받기 위해서였죠.

 

특히 나무의 보존은 동물보호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동물전문 출판사로서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동물 관련 원서를 보는 일이 많은데 외서들은 대부분 재생지로 만들었더군요.

 

부러웠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죠.

 

‘왜 우리나라 출판사들은 재생지로 책을 내지 않을까? 뭔가 어려운 문제가 있나?’

 

음… 알고 보니 어려운 문제들이 많더군요.

 

재생지를 사용하기까지 수많은 난관에 부딪히다  

 

출판일을 시작하면서는 제작에 대해 하나도 모르기 때문에 ‘남들만 따라 하자’가 목표였습니다. 기자 시절엔 글만 마감해 놓으면 제작은 제작부에서 알아서 했으니까요. 하지만 <채식하는 사자 리틀타이크>가 3번째 책이니 이번부터는 최대한 재생지를 쓰기로 결심하고 일을 진행했습니다.

 

재생지를 사용하기로 마음먹고 종이와 제작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했죠. 그런데 들려온 대답은 그야말로 ‘막막함’이었습니다.

 

‘재생지 쓰면 독자들한테 욕먹는다, 국산 재생지는 없다, 가격이 오히려 더 비싸다, 3개월만 지나면 헌책 된다 등등.’

 

쏟아지는 부정적인 대답에 무릎이 꺾였지만 말만 듣고 포기할 순 없어서 최근 재생지와 관련한 특집 기사를 낸 잡지사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여러 번에 걸쳐 재생지와 관련한 기획 기사를 싣고 있는 좋은 잡지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고맙게도 재생지를 생산하는 몇 군데 제지사를 알려주셨습니다.

 

그런데 섭외를 했더니 대부분 단행본 내지로는 쓸 수 없는 재생지만을 생산하고 있었고, 수입재생지는 턱없이 비쌌으며, 우리가 흔히 재생지로 알고 있는 종이는 재생지가 아니었고, 그나마 가장 단행본 종이로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재생지는 고지율이 20%였습니다(이번에 해리포터 마지막 권에 쓰인 종이죠).

(* 고지율이란 폐지가 사용된 비율로 고지율이 높을수록 폐지가 많이 사용된 재생지입니다.)

 

이왕이면 고지가 100% 사용된 재생지를 쓰고 싶어 찾아 헤매다가 마침내 찾아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제지사 담당자 분을 만나 상의해 봤더니 단행본으로는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어서 불안하지만 출판사의 뜻을 충분히 알겠다며 공급해 주기로 약속을 해주셨습니다.

 

‘드디어 고지를 100% 사용한 종이로 책을 만드는구나.’

 

나무를 하나도 훼손하지 않고 책을 만든다는 생각에 정말 마음이 뿌듯했지요.(안타깝게도 표지는 재생지를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창고에 오래 쌓여 있어야 할텐데 재생지로는 견디기가 어려우니까요.)

  

종이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몇 가지 노력

 

그런데 좋아했던 것도 잠시, 이틀 후 담당자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회사에서 회의를 했는데 그 종이를 쓰지 않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죠.

 

단행본으로 쓰면 문제가 생길 거라는 우려가 많아서 영업부 차원에서 판매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결론이 났다는 군요.

 

종이를 사겠다는 데도 팔지 않겠다니 정말 힘들더군요. 결국 그걸 다 감수하고 진행하겠다고 박박 우겨 겨우 설득시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죠. 마침내 인쇄하기 이틀 전, 또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주문량이 너무 적은 것도 문제지만 종이가 단행본용이 아니기 때문에 종이결이 맞는 게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단행본 본문 용지는 넘김이 좋아야 해서 횡목을 쓰는데, 단행본용 종이가 아니라 횡목이 없다는 것이었죠.

 

여기서 포기해야 하나? 하지만 최선이 아니라면 차선이라도 선택을 해야겠고 계속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책을 넘기는 게 그리 부드럽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지난한 과정을 통해 <채식하는 사자 리틀타이크>는 재생지에 인쇄를 할 수 있었습니다. 대형 출판사가 아니고 소 출판사라 물량이 적어 제지사에 여러 불편함을 끼치면서 진행한 일이었고, 이런 과정 중에 훼손되지 않고 보존된 나무는 아주 적은 양이겠지만 그래도 살아남아 준 몇 그루 나무가 있다고 생각하니 뿌듯했습니다.

 

또한 나무 훼손을 줄이기 위해 재생지 사용 말고도 ▲  버려지는 종이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판형을 기본 판형인 사륙판으로 정하고 ▲  페이지가 늘어나면 그만큼 쓰이는 종이량이 많아지므로 독자들은 보는 재미가 줄어들겠지만 디자인 요소를 최소한으로 하여 전체 분량을 최소화하였습니다.

 

앞으로 쭉 재생지를 사용합니다

 

그러다 보니 책을 읽어본 독자들은 아시겠지만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있으실 겁니다. 일단 종이의 색이 눈이 덜 피로한 미색이 아니고 약간 어둡다는 것, 그래서 책이 좀 없어 보인다는 것, 책장이 부드럽게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 여백이 별로 없고 글이 빡빡하게 들어갔다는 것, 재생지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책 값은 싸지 않다는 것 등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출판사가 독자들에게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고 이 책을 사주십시오!”라고 말하는 건 뻔뻔한 것이겠죠?

 

무조건 이해해 달라고 할 수 없으니 좋은 책으로 보답하는 수밖에요. 언젠가 독자들이 이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열심히 책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나무를 보호한다는 의미 이외에 장점도 하나 있긴 있습니다. 책이 좀 가볍거든요. 하하.

 

이번 책의 판권에 밝혔듯이 나무가 보존되어야 동물들도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동물전문 출판사 책공장더불어는 앞으로도 쭉 고지율100%의 종이를 이용해 책을 만들 것입니다. 지켜봐 주세요. 풀 뜯어 먹는 사자 리틀타이크도 자기 이야기가 재생지에 인쇄된 걸 알면 좋아할까요?

 

 

덧붙이는 글 | 미디어다음에도 송고했습니다.


태그:#1인출판, #재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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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하고, 먹고, 입고, 즐기는 동물에 관한 책을 내는 1인출판사 책공장더불어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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