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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문화관광부를 통해 언론사 주요 간부들의 성향 파악을 지시하도록 한 사실이 드러났다. <경향신문>이 성향 파악 문건과 그 지시 내용을 1월 12일자 1면 기사로 보도했다. 노무현 정부의 브리핑 제도 확대와 기자실 통폐합 조치를 놓고 언론자유에 '대못'을 박았다던 사람들이 언론에 '족쇄'를 채우려 나선 꼴이다.


인수위원회 측은 즉각 이 일은 문화관광부에서 파견된 전문위원의 '개인적 돌출행위'라고 선을 긋고 나섰다. 문화부에서 파견된 박모 전문위원이 정상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저지른 일로 인수위는 이런 성향 파악 지시조차 몰랐다고 해명했다. 인수위는 즉각 이 전문위원을 면직시키고, 문화부에 박모 전문위원에 대한 징계를 요구했다고 한다.


그 해명을 곧이곧대로 믿기로 하자. 인수위에서 뭔가 실적을 내고자 했던 정부 부처 파견 공무원의 '오버'였다고 보자.


그렇더라도 이런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왜 그는 이런 무모한 짓을 저질렀는가. 한 공무원 빗나간 '오버'라고 넘어가기에는 그 '지시'가 너무 공식적이다. 정부 부처에 언론사 간부들의 성향 파악을 지시하는 짓은 결코 보통 일이 아니다.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박정희 독재 시절이나 전두환 군사정부 시절이나 할 수 있었던 언론인 성향파악 지시를 태연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박모라는 인수위 전문위원은 분명 그런 일이 가능하고,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했으니 그런 지시를 했을 것이다. 세상이 바뀌었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지시'였을 것이다. 또 그런 지시가 조금이라도 문제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지시였다. 그런 점에서 그는 오버한 것이 아니다. 너무도 당연하고, 또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했음직 하다.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은 박모 전문위원의 언론인 성향 파악 지시에 대해 '분과 담당 인수위원'에게도 보고하지 않은 '단독플레이'임을 강조했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럴 수 있었던 데에는 다 그럴만한 배경이 있기 마련이다. 인수위 분위기가 그럴 수 있었지 않았다면 어떻게 현직 공무원이 그런 '지시'를 할 수 있었을까.


인수위의 분위기가 어떤 지는 그동안의 언론 보도만 보더라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인수위는 대통령직 인수 업무를 위한 부처 업무보고에서 업무를 보고 받은 게 아니라, 노무현 정부에서 일한 '죄과'를 자인하라고 다그쳤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배신'을 선언하고, 새로 들어설 정부에 대한 '충성'을 서약토록 했다. 한마디로 영혼 세탁 과정이었다.


그것이 지향하는 바는 '철저한 충성'이다. 새 정부 입장에서 말하자면 철저한 공무원 길들이기다. 공무원 출신인 인수위 박모 전문위원이 노골적으로 언론사 간부의 성향 파악을 문화부에 지시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그는 이쯤 됐으면, 이제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고 판단했음직 하다.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은 이런 지시가 어디까지나 박모 전문위원의 개인적 행위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 지시 내용을 보면 과연 그런지도 의문이다.

 

이런 지시를 할 수 있는 인수위의 '분위기'


박모 전문위원이 문화부와 산하단체를 통해 성향 파악을 지시한 대상은 언론사 주요 간부뿐만이 아니다. 언론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주요 광고주는 물론 케이블방송과 종교방송 대표 등 언론계에서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인사를 모두 보고토록 하고 있다. 주요 단체장과 상임이사, 감사에 대해서도 그 경력과 성향을 파악토록 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신문 방송 간부, 그리고 언론사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주요 광고주를 모두 보고토록 한 것이다. 게다가 문화부 산하 단체 대표와 이사, 감사에 대한 학·경력과 성향도 파악토록 했다.


그 메시지는 분명하다. 언론을 다룰 수 있는 정보를 정리해 보고하라는 것이다. 문화부 산하단체 기관장이나 이사, 감사들을 통제하거나 물갈이 할 수 있는 정보를 내놓으라는 것이다.


그런 욕망은 어느 정권이든 가질 법 하다. 하지만 해서는 안 될 일이기 때문에 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과연 이런 지시가 박모 전문위원 한 사람만의 문제였을지도 의문이다. 언론 분야에서 박모 전문위원이 이런 발상을 할 수 있었다면, 다른 분야의 전문위원도 그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걱정스런 언론관계

 

인수위는 부인하고 있지만, 국가정보원이 인수위의 지시에 따라 재벌 대기업의 올해 투자 및 채용 계획 파악에 나서 논란을 빚고 있다는 사실이 <한겨레>의 보도를 통해 드러나기도 했다. 인수위 도처가 '오버 앤 오버(over & over)'다.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의 해명처럼 꼬리만 자르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어떤 언론 정책을 쓸지, 또 언론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행보를 보면 이명박 정부야 말로 언론과의 관계가 노무현 정부 이상으로 틀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언론을 대하는 태도가 거칠 뿐만 아니라, 여론을 무서워할 줄 모른다는 분석들이다. 언론과 여론을 대하는 '원칙'이나 '일관성'이 있는지 조차 의문시되고 있다.


인수위의 언론사 간부들에 대한 성향 파악 지시는 그 단적인 사례다. 인수위는 한 전문위원의 '오버'와 '실책'으로 치부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전문위원을 중용한 것이 누구인가. 초록은 동색이라는 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태그:#언론인 성향파악, #인수위,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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