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ㄱ. 내 발과 내 손


바깥은 영도 아래로 떨어진 날씨. 방은 십 도가 채 되지 않는 온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으면 엉덩이와 등짝은 따뜻하지만 발끝은 시리고 누운 채로 호오 하고 불면 입김이 하얗게 서립니다. 어쩌면 방 온도는 십 도까지는커녕 오 도도, 삼 도도 안 되는지 모릅니다. 바닥에만 불이 좀 들어올 뿐. 방에서도 옷을 두 벌 세 벌 껴입으며 지냅니다.

 

도서관은 살림집 방보다 쌀쌀합니다. 두꺼운 겉옷을 걸치고 담요를 무릎에 덮고 앉아도 오들오들. 언손을 호호 불고 녹이고 가랑이 사이에 끼우며 녹이면서 글을 씁니다. 이렇게 쓰다가도 손이 많이 얼어서 견디기 힘들면 자리에서 일어나서 주머니에 손을 쑤셔박습니다. 그러고는 몇 분쯤 제자리 걸음을 하면서 손을 녹이고 몸을 풉니다.

 

 

엊그제 눈 사진을 찍는다며 아침 일찍 길을 나서서 머리에 눈이 소복히 앉도록 사진기를 들고 돌아다녔더니 두 손은 벌겋게 된 채 풀리지 않습니다. 이틀이 지나도록. 눈오는 날뿐 아니라 겨울날 저녁에 어둠 짙게 깔린 골목길을 거닐며 사진을 찍을 때에도 손가락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을 만큼 굳어서 아프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사진기 든 손을 놓을 수 없는 법. 더구나 불을 터뜨리지 않고 조용히 찍어야 하는 골목길 사진이니 셔터빠르기는 ‘1/몇 초’이기 일쑤라, 사진 한 장 안 흔들리고 담아내자고 몇 분 동안 손이며 몸이며 얼어붙곤 합니다.

 

집으로 돌아와 언 몸으로 사진을 셈틀로 옮기고, 물을 끓여 담은 잔을 언 손으로 잡고 녹이면서 글을 써야 합니다. 그나마 혼자 살 때에는 비빔질만 했는데, 옆지기가 옆에서 보다 못해 물을 끓여 줍니다.

 

글쓰고 사진 찍느라 바쁜 손은, 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가방이 터지도록 사들인 책을 이고 지고 나르는 데에도 쓰입니다. 부모님 집을 박차고 나온 1995년부터 이때까지 한 번도 허리 펴고 누운 적이 없는 살림이기에, 이삿짐도 자주 싸야 했습니다.

 

이삿짐은 모두 책과 책꽂이. 집을 옮길 때마다 책짐과 책꽂이 숫자는 늘기만 했고, 인천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인천으로, 다시 서울로, 또 서울에서 서울을 여러 차례 오간 뒤, 서울에서 충주로, 그러다가 충주에서 인천으로.

 

처음 인천에서 서울로 옮길 때에는 용달차 한 대에 반도 못 실었지만, 마지막 충주에서 인천으로 올 때에는 3.5톤 짐차로 석 대. 이 모든 책짐을 혼자서 끈으로 묶고 나르고 풀고 닦는 내내 손은 한 번도 쉴 겨를이 없습니다.

 

없는 살림이니 찻삯을 아끼자고 자전거를 타기도 합니다. 뭐, 자전거 타기는 1995년에 혼자서 살림을 꾸릴 때, 신문배달을 하느라 탔으니, 찻삯 아낌 때문만은 아니지요. 한겨울 눈 펑펑 내리는 새벽길을 실장갑 한 켤레만 끼고 자전거를 달릴 때면, 신문지국을 나선 지 1분도 되지 않아 벌써 손가락은 죄 얼어붙고 발가락도 얼어붙습니다.

 

이렇게 되면 브레이크도 제대로 잡을 수 없지만, 페달질 할 때마다 눈물이 핑. 두 시 반부터 네 시 반이나 오십 분까지 눈물을 흘리며 신문을 돌립니다. 손가락이 아프고 발가락이 아파서. 얼어붙은 손가락을 녹일 새 없이 빨리빨리 신문을 넣어야 하니, 꾹 참느라. 신문을 다 돌리고 지국으로 돌아오면 곧바로 이부자리로 파고들고, 이불 속에서 새우처럼 웅크린 채 또다시 눈물을 찔끔찔끔 하면서 손아 녹아 다오, 발아 녹아 다오, 하고 이십 분 남짓 비손을 드립니다.

 

 

1999년 여름, 어느 출판사 면보기에 붙어서 신문배달을 그만두고 새 일터로 나가면서 신문지국에서 먹고자던 일도 그치고, 자취방을 얻어서 나갑니다. 처음 한 해는 대학교 선배와 지냈는데, 지금 돌아보면 이때 한 해만큼은 겨울에도 그럭저럭 손발이 시리지 않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선배들이 모두 혼인해 떠나고 혼자 남게 되어 값싼 자취방 얻는다며, 서울 종로구 평동, 일제 적산가옥 낡은 나무집에 깃들이던 2000년 겨울엔, 보일러를 돌려도 바닥만 살짝 불기운이 있을 뿐, 방 온도는 0도를 오락가락 했고, 이불을 둘 뒤집어써도 찬기운이 가득했습니다.

 

씻는 일이 문제가 아니라 수도가 늘 얼어붙어서 아래집이나 옆집에서 뜨거운 물 얻어서 녹이느라 문제였습니다. 이 집에 놀러오는 사람마다 ‘아직도 이런 집이 서울 시내 종로에 있단 말이지?’ 하고 놀라면서, ‘이 집에서 살면 소설이 절로 나오겠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래요. 족제비와 이웃하고 참새가 창가에 기웃기웃하는 도시 골목집이니 소설이며 시며 절로 나오지요.

 

2003년 3월, 소설 같은 집을 떠나 다세대 3층 집을 얻습니다. 방도 셋이나 딸린 널찍한 집. 그러나 이 집도 바깥바람이 잘 스며들어서, 글쓰는 방에서는 발 시리고 손 시린 형편은 마찬가지.

 

이 해 9월부터 서울을 벗어나 충주로 옮겨서 일을 하는데, 충주에서도 발시림과 손시림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산골짜기 깊숙한 데에서 으으으 콧물 흘리고 눈물 흘리면서 묵은 원고를 차곡차곡 갈무리하고 곰팡이 핀 책을 텅텅 털고 햇볕에 말리면서, 돌아가신 어르신 발자취를 가만히 되짚습니다.

 

모든 대중교통도 멀리하며 오로지 자전거로만 온 나라를 누비며 살겠다던 2006년 한 해는, 뜨거운 냄비를 맨손으로 집어도 그다지 뜨거움을 느끼지 않을 만큼 손마디가 울퉁불퉁 굳은살도 깊게 박힙니다.

 

 

이러구러 2007년 4월에 인천으로 돌아오고 어느덧 2008년 1월. 그동안 맞이한 서른세 번 겨울과 견주면 하나도 안 추운 겨울이고, 참 포근한 겨울입니다. 몸은 이렇게 느낍니다. 그래도 손은 예나 이제나 쌀쌀하기는 비슷비슷입니다. 곰곰이 떠올리면, 신문지국에서 더운물 한 번 못 쓰며 한겨울에도 얼음 녹이며 빨래하던 때보다 지금은 얼마나 복스럽고 고마운지 몰라요.

 

한겨울에 얼음물로 청바지를 빨면 손은 새빨개지며 탱탱 얼어서 십오 분에서 이십 분쯤 아무것도 들지 못할 만큼 따갑고 쓰립니다. 돌이켜보면, 몸을 씻거나 빨래를 할 때 따뜻하게 덥혀진 물을 쓸 수 있는 요즈음이 얼마나 놀랍고 대단하며 사랑을 받고 있는가 모르겠습니다. 장작 한 번 패지 않고도 더운물을 받을 수 있고, 비싸기는 하지만 기름을 태우면서 방을 살짝살짝 덥힐 수 있으니 말입니다.

 

새근새근 잠든 옆지기 이마를 쓰다듬고 싶은데, 머리카락을 살며시 뒤로 넘기기만 할 뿐 좀처럼 쓰다듬지 못합니다. 지금 이 글을 끄적거리는 동안에도 두 손은 딱딱하고 차갑게 얼어붙기 때문입니다. 자는 사람 얼굴에 찬손이 닿으면 퍼뜩 놀라서 잠에서 깰 테니까요. 한 줄 쓰고 두 손을 비빔질하고, 두 줄 쓰고 겨드랑이에 끼고, 석 줄 쓰고 엉덩이 밑에 깔아 놓습니다. 속으로 하나 둘 셋 넷을 센 뒤 손을 꺼냅니다. 그러고 한 줄을 더 쓰고 다시 비빔질, 겨드랑이 낌질, 엉덩이 깜질.

 

발바닥이 웃습니다. 왜 손바닥만 그렇게 아끼느냐고. 왜 손바닥 이야기만 그렇게 늘어놓느냐고. 허구헌날 무거운 짐바리 가득가득 나르게 하면서도 제대로 주물러 준 적 몇 차례 있느냐고. 쉼없이 자전거 몰지, 책방에 서서 책 읽지, 또 사진 찍는다며 발바닥 굳은살 두꺼워지도록 돌아다니지.

 

할 말이 없습니다. 내 두 손한테, 내 두 발한테, 내 몸뚱이한테. 어느 몸뚱이한테도 안 미안한 적이 없고, 어느 마음구석한테도 안 미안한 적 없습니다. 어쩌면 앞으로도 그러할까요. 이 땅에서 이렇게 살아가는 동안에는 내 몸뚱이며 마음이며 끊임없이 굴리고 움직여야 할까요. 허리가 많이 아픕니다. 이제 참말 드러누워야겠습니다.

 

 

 ㄴ. 시민기자로 쓰는 1006번째 글

 

어느덧 1006번째 글을 띄웁니다. 사람들이 즐겨읽을 만하거나 눈길을 많이 둘 만한 글 하나 써 본 일은 없다고 느낍니다. 어쩌면 사람들이 즐겨읽지 않고 눈길도 안 두기 때문에, 이러한 데에만 눈길을 두면서 찾아보고 부대끼고 어울리면서 사진과 글을 담아내는구나 싶습니다.

 

정치 이야기든, 여행 이야기든, 스포츠 이야기든, 서울 문화판이나 연예판이든, 시민단체 이야기든, 저로서는 그다지 눈도 손도 몸도 마음도 가지 않습니다. 그저 제 깜냥대로 바라보고 느끼는 대로 살아가면서, 제가 살아가는 만큼만 글이나 사진에 담으면 넉넉하다고 느낍니다.

 

다만, 때때로 화도 나고 뿔도 나고 아쉬움과 한숨이 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말과 글’을 다루는 이야기를 썼을 때, <오마이뉴스> 편집부 기자부터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지 못하는구나 싶은 느낌이 들 때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몰라서 그러지 않겠느냐고 스스로를 달랩니다.

 

말과 삶이란 따로 떨어져 있지 않음을, 말이 삶에 영향을 끼치고 삶이 말에 영향을 끼치며 우리들 생각과 하는 일 놀이 모두 엮여지고 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니 그러지 않겠느냐고 속쓰림을 삭입니다. 이럴수록 더욱 조용히 한길을 걸어가면서 꾸준히 ‘함께 나누면 좋을 우리 말과 글’ 이야기이든 다른 이야기이든 적어내려가야 하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아쉬움과 한숨을 느끼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조금 더 다가가서 말을 건넬 수 있을는지, 막힌 귀를 뚫고 닫힌 눈을 뜨도록 이끌 수 있는가를 생각하거나 찾아보게 됩니다. 처음부터 속속들이 받아들이거나 남김없이 껴안아 주었더라면, 제 스스로 더 애쓰거나 더욱 힘쓰거나 좀 더 마음을 기울이면서 뼈를 깎지 못했으리라 느낍니다.

 

‘눈길 안 둠(무관심)’은 ‘눈길 둠(사랑)’과 맞선다고 하는데, 눈길을 못 받기 때문에 더더욱 가만히 몸을 웅크리면서 남들 눈에 안 뜨이는 자리에서 마음껏 제 밭고랑을 일구거나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골목길이 사람들 눈에 많이 뜨인다면 벌써 집이 헐리고 널찍한 찻길이 뚫리며 그 사람들 삶터가 망가지고 마는 우리 형편처럼, 우리 말 이야기든 헌책방 이야기든 자전거 이야기든 골목길 이야기든 한 번 더 제 스스로 추스르며 다독여야 할 대목이 있다고 느낍니다.

 

그러면서 한 걸음 두 걸음 꾹꾹 발걸음 내딛기를 잊지 말자고 다짐하게 됩니다. 골목집 이웃 아주머니와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아저씨가 누가 보건 말건 어여쁜 꽃을 키우고 싱싱한 푸성귀를 기르며 살아가듯이, 저도 제 글밭을 가꾸고 기르고 갈고닦으면서 차근차근 제 이야기길을 터야 한다고 느낍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헌책방 + 책 + 우리 말 이야기 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시민기자#책읽기#책이 있는 삶#글쟁이#손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