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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 잘 쓰는 남편을 둔 부인들은 어쩐지 몰라도, 억지가 통하는 집사람이 있는 나는 행복하다. 억지가 통하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재확인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한라산 정상에서 마실 조니OO 한 병 챙겨라”고 했더니, 집사람은 연말부터 지금까지 각종 모임에 4병이나 가져갔으니, 이번은 다른 사람이 가져온 술로 축배를 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슬며시 반항한다. 요즈음 집사람의 막강한 파워를 의식하고 있는 차라 레드카드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알았다! 더럽고 치사하다! 산에 안 가면 되지 않느냐?”

 

집에 있는 술병의 바닥을 보고 그것도 모자라 가출을 시도한다. 미루(4개월째 자란 진도개 강아지)가 따라나선다.

 

“고맙다. 미루야! 우리 둘이서 저년의 박해를 피해 집 없는 천사가 되자!”

 

계룡산 기슭이 집인 나는 유성까지 진출하였다. 새벽 2시가 넘어 집에 돌아와 “네년은 술 한 병 아끼려다, 술값 30만원, 한라산 여행비 30만원, 60만원을 잃었다. 이제 속이 시원하냐?” 악담을 퍼붓고 뻗어버렸다.

 

누가 잠을 깨워 눈을 떠보니 집사람이 홍삼차를 들고, 나를 내려다보면서 울고 있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다 내 탓이니,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으랴!

 

급히 서둘러 광주 공항에 도착하니 오전 10시이다. 제대로 꾸리지 못한 배낭을 다시 정리하고 공항에 들어서자 그리운 얼굴들이 우리를 반긴다. 제주행 비행기에 오르니 이제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은 것 같다.

 

날씨가 맑다. 얼마 만에 가는 한라산인가? 내 마음도 비행기와 같이 두둥실 하늘로 날아오른다.

 

저녁 자유시간에 등산장비점에서 미처 준비하지 못한 집사람의 모자와 부실한 나의 순모 양말을 구입하였다. 술과 안주, 그리고 몇 가지 간식을 구입하기 위해 할인매장에 들렸다. 조니OO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아 씨OOOO 한 병을 집어들었더니 “네놈이 그러면 그렇지” 하는 듯이 집사람의 표정이 굳어진다.

 

슬며시 놓고 플라스틱병에 든 아주 작은 소주병을 들었다. “여보 ! 이건 자존심의 문제다” 하면서 집사람의 얼굴이 밝아진다.

 

새벽 5시 모닝콜을 부탁했지만, 전화벨이 울리기 전에 눈을 떴다. 숙면 때문인지 몸이 가볍고 상쾌하다. 오늘은 30여 년 전 집사람과 둘이서 갖은 고생을 해가며 등반했던 한라산을 등반하는 날이다. 집사람도 가뿐한 몸놀림으로 일어난다. 산행 장비와 복장을 갖추고 식당으로 내려가니 우리가 첫 번째이다.

 

성판악 입구에 도착하니 많은 등산객들이 산행 준비에 부산하다. 이백 명은 족히 넘을 것 같다. “선택받은 자”의 기분으로 출발할 줄 알았던 나는 약간 실망스러웠지만 감상에 젖어 있을 수 없다. 집사람의 아이젠을 점검해주고 나의 아이젠도 단단히 맨다.

 

등반로 입구에서 힘찬 첫 걸음을 내딛으며 시간을 본다. 오전 7시 40분이다. 맑고 좋은 날씨다.

 

눈 덮인 넓은 산길을 간다. 많은 등산객들이 앞에도 가고 뒤에서도 따라온다. 무리 중의 하나로써 소속감을 느껴 안정되고 좋기도 하나 그동안 우리는 둘이서 대부분 한적한 산행을 즐긴 편이라 약간 혼란스럽다.

 

1시간이나 걸었을까? 주위의 풍경은 어느덧 삼나무 숲길로 바뀌어 있다. 한라산은 서서히 큰 산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한다. 낙엽수 사이로 어린 주목나무들이 촘촘히 자라고 있다. 등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주변의 경관도 변해간다. 낙엽 진 큰 나무 위에 핀 설화! 한라산은 어느덧 설화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한라산의 설화는 나뭇가지 위에 쌓인 부드러운 눈이 아니고 쌓인 눈이 녹고 다시 얼면서 생긴 나무의 하얀 잎이다.

 

등산로에서 비껴 앉아 송골송골 맺혀있는 집사람의 땀방울 맺힌 붉은 얼굴과 주변의 설화를 감상하며 물과 OOO산도 몇 조각을 집사람에게 권한다. 평소에 과자를 싫어하는 집사람이지만 산도 비스킷이 이렇게 맛있는 줄 몰랐다며 아주 맛있게 먹으며 즐거워한다. 지나가는 우리 팀원들에게도, 다른 등산객에게도 비스킷과 쵸콜릿 한 조각씩 권한다. 모든 것이 넉넉하고 좋다.

 

출발 후 1시간 30여 분만에 사라악 대피소에 도착하였다. 집사람은 정확히 기억할 수 없으나, 30여 년 전에 야영한 장소가 이곳 사라악 대피소 같다고 하면서 이곳에서 기념사진을 찍자고 한다.

 

많은 세월이 지났다. 그때는 대피소 건물도 하나였고, 출입문도 창문도 없는 집이라 귀신이 나올 것 같아 둘이서 꼭 붙들고 날밤을 지새웠다. 5월 말이었는데도 무슨 바람이 그렇게 불고, 날씨도 그렇게 추웠는지….

 

사라악 대피소를 뒤돌아보면서 등산객들의 대열에 끼어 걷는다. 주변은 어느덧 작은 키 나무들로 바꿨다, 잔디밭 쉼터 부근의 큰 나무 설화와는 다른 모습이다. 진달래밭 대피소까지는 2km이다. 지금까지 완만한 경사와 달리 약간씩 급하게 높이를 더해간다.

 

사라악 대피소를 떠나 40분이나 걸었을까? 등산로를 벗어나 물과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면서 휴식하는 우리에게 정옥이와 태영이 형이 지나가면서 다 왔다고 격려한다. 다시 10여 분 걷다 보니 진달래밭 대피소이다. 시야가 터지면서 산장의 모습이 나타난다. 갑자기 바람도 거세지고 눈보라가 주위에 휘날린다. 설화가 핀 주목나무로 가득하다. 동화에서나 나오는 설국의 모습이다. 한라산의 설경은 천하제일이라더니….

 

향식이 형이 이제부터는 지금까지와 다르니 단단히 무장하란다. 집사람과 나는 스톰파카를 꺼내 중무장을 하고 매점에서 커피를 주문하여 마셨다. 1400m 고지에서 마시는 한 잔의 커피 맛은 아주 색달랐다.

 

오전 10시 20분, 성판악을 떠난 지 2시간 40여 분이 지났다. 그제도 많이 마셨고, 어제도 많이 마셨건만 발걸음이 무겁지 않다. 이제 정상까지는 1.6km, 길게 잡아도 1시간 후면 한라산 정상에 서지 않을까 싶다. 스톰파카 덕분에 체온은 살랑거리는 봄바람이다. 방수등산화와 순모 양말 덕분에 발도 안녕하신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콧노래 부르며 걷다가, 조금 지친 것 같으면 등산로를 약간 비켜나 귤과 비스킷으로 간식을 즐긴다. 주위는 어느새 안개가 많이 끼어 조망이 좋지 않다. 나이 드신 매부의 보조를 맞추면서 후미에서 올라오는 백환이 형이 농담을 건넨다.

 

“느기는 맨날 뭣을 묵는다 잉”
“우리가 맨날 묵으니까 형도 드리고 좋 않아요?”

 

백환이 형의 나이도 무겁지만 더 무거운 나이를 드신 매부를 모시고 주거니 받거니 걷는 모습이 아름답다. 한라산 등반은 많은 시간이 소요되므로 천천히 걸으면서 오랫동안 쉬지 않은 것이 좋다. 다시 배낭을 꾸리고 싸목싸목 걷는다.

 

경사가 급해진다. 정상이 가깝다고 느끼는 순간 안개가 걷히면서 정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빨갛고, 노랗고, 파란 등산복을 입은 뭇 선남선녀들이 천상을 거니는 것 같다. 급히 카메라를 꺼내 한 컷 잡으려고 하면 다시 안갯속으로 사라진다. 안개가 바람에 쓸려지나가는 순간, 순간에 하늘과 바다가 맞닿는 지평선이 멀리 발아래로 보인다. 피곤이 한꺼번에 바람에 흩어진다.

 

오전 11시 45분, 성판악을 출발한 후 4시간이 지났다. 가뜩이나 끼어있던 안개가 걷히며 주변의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라산 여신의 환영을 받으며 정상에 올랐다. 지금은 갈 수 없는 백록담을 내려다본다. 감개무량하다. 먼저 올라오신 선배님들 사이에는 이미 축배의 잔이 서너 순배 돌았다. 집사람과 나도 한 잔씩 배급 받았다.

 

카~아!  오! 산을 아끼고 사랑하는 그대들에게 축복 있을진저! 

 

정상 등정의 기쁨을 접어 메모리에 저장하고 관음사로 향하는 하산 코스로 접어든다. 한라산 여신은 우리에게 작별 인사라도 하는 듯 관음사 쪽의 시원한 조망을 선물하신다. 신의 선물을 인간의 몇 자 안 되는 어귀로 표현한다는 자체가 어리석은 줄 알기에 지면을 절약하는 수밖에 없다.

 

하산 길은 경사가 심해 아예 앉아서 썰매를 타는 사람들이 보인다. 작년에는 한봉이 형이 비닐 비료봉지를 10여 장을 준비해와 이 코스에서 많은 사람들이 비료봉지 썰매를 즐기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하산하고 난 뒤 엉덩이들이 고장 나 심히 어려움을 겪었다나?

 

저 아래 용진각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스라이 보인다. 용우 형의 재담이 지친 발걸음에 힘을 싣는다.

 

“저 봐라, 태영이가 혼자서 라면을 다 먹고 있다.”

 

넘어지고 구르면서 속도를 더해 내려간다. 용진각의 라면 국물을 위해! 용진각에 도착하였다. 태영이 형도, 라면도 국물도 없다.

 

바람막이 장소를 택해 옹기종기 둘러앉아 도시락을 꺼내 든다. 라면 국물에 소주 한 잔 생각이 간절해 서로 눈치를 살피나, 성급한 우리는 이미 실탄을 소진해 버린 뒤라 누구의 배낭에서도 최후 실탄 한 발도 나오지 않는다.

 

오후 1시 20분이다. 성판악을 떠난 지 5시간 40분이 지나고 있다. 실탄…, 운운하고 있을 수 없다. 밥이 입으로 들어 간지 코로 들어 간지 모르게 도시락을 비워버렸다.

 

점심을 먹고 나자 서서히 산행이 지루해진다. 개미목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자니, 고등학교 산악부 중심으로 결성된 경북학생연맹 산악부 학생들이 동계산악 훈련을 위해 무거운 짐을 지고 줄줄이 대오를 정비한 채 올라온다. 등산로를 양보하기 위해 옆으로 비켜서서 지나가는 학생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참으로 아름다운 청춘의 힘이 느껴진다.

 

개미목에 이르러 왕관릉과 삼각봉의 위용을 감탄하며 바라보노라니 아스라한 절벽에서 암벽 등반을 하는 팀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재학생 시절 영암 월출산 천황봉 암장에서 암벽등반의 훈련을 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소중한 추억이요, 알찬 삶의 준비기간이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마지막 한라산 절경이다 싶어 관음사 하산 코스를 택한 팀원 모두가 삼각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개미능선 따라 하산을 계속한다.

 

오후 3시, 탐라계곡 대피소를 지나자 거의 평지에 가까운 산길은 지루하게 계속된다. 몸은 이미 지치고 산행도 싫증 난 상태라 말없이 걷는다. 눈앞에 불쑥 콘크리트 건물과 아스팔트 광장이 나타난다. 관음사 등반코스 입구인 공원관리소이다.

 

한 채의 건물이 전부였던 소박한 관음사, 집사람과 내가 막영 했던 관음사 앞 잔디밭, 관음사 뒤 밭두렁 따라 연결된 작은 등산로를 예상했던 나에게는 뜻밖의 등반 종점이다. 산천이 세 번 변하는 세월의 흐름이 절실하다. 오후 4시 30분이다. 성판악을 떠난 지 9시간이 지나고 있다.

 

성취감과 아쉬움이 동시에 밀려온다.

 

집에 두고 온 미루와 제우스, 헤라, 쥬피터, 비너스(금붕어 이름)들이 잘 있는지 궁금해진다.

덧붙이는 글 | 한라산 등반기


태그:#한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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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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