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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1일 부천 원미동의 풍경
 1월 11일 부천 원미동의 풍경
ⓒ 맛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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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밖은 하얀 세상이다. 나로선 오랜만에 보는 설경이다. 약간의 흥분을 안고서 길을 나선다. 눈 내리는 날 먹는 냉면의 맛을 만끽해 볼 참이다. 오늘 찾는 냉면명가는 우래옥. 수많은 미식가와 냉면매니아들 사이에 명성이 자자한 집이다.

우래옥 외관
 우래옥 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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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4가역 4번출입구에서 바로 우회전했더니 보인다. 날리는 눈발 사이로 보이는 우래옥은 흐린 하늘보다 어두운 색상의 건물이다. 실향민의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고 있는 듯.

냉면 특수를 누리는 여름철이 아니어서인지 실내는 한산하고 여유가 흐른다. 몇몇 식탁의 손님은 어르신이 대부분이다. 그러고 보면 냉면은 어르신들에게 있어 기억을 더듬는 음식 이 아닌가 싶다. 특히 이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은 냉면이 아닌 그리움을 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창밖으로 눈발이 날린다
 창밖으로 눈발이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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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가 돋보이는 인테리어. 하지만 민속풍처럼 구닥다리로 보이지는 않는다. 눈 내리는 풍경과는 창문 하나를 경계에 두고 앉았다. 냉면집에서 눈발 날리는 풍경보다 더 좋은 인테리어가 또 있겠는가? 오늘 난 냉면이 나오기도 전부터 냉면의 정취를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냉면을 주문했다. 듣기로 식대는 선불이라는데 요구하지 않는 걸 보면 바쁠 때에 국한된 이야기인가 보다. 면수에서 느껴지는 메밀향이 예사롭지가 않다. 짙은 풍미와 구수함은 면에 메밀의 함량이 어느 정도인지 미뤄 짐작하고도 남는다.

흔히 냉면명가를 말할 때 ‘우래옥’과 더불어 장충동의 ‘평양면옥’, 을지로의 ‘을지면옥’, 염리동의 ‘을밀대’를 손가락에 꼽는다. 식성에 따라 선호하는 집이 갈리고 업소마다 각각 장단점이 있다.

예를 들어 을지면옥은 고춧가루가 뿌려지고 육수에서 간기가 느껴진다는 점을 지적하고, 을밀대는 살얼음 동동 뜰 정도로 너무 차갑다는 단점이 있다. 우래옥의 단점은 높은 가격대(8500)이다. 그만큼 면과 육수는 나무랄 데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소담하게 담겨있는 냉면
 소담하게 담겨있는 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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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그릇에 담겨져 있는 냉면이 참 소담하게 보인다. 고명을 풀어 헤치면 백김치와 무김치, 편육 배채 등이 들어가 생각보다 내용물이 알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냉면에 있어 맛을 좌우하는 건 메밀면일까? 육수일까? 물론 둘 다 궁극의 맛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 하지만 굳이 꼽으라면 육수라고 말하겠다. 육수는 그 집 냉면 맛의 첫인상일 뿐 아니라 손맛과 비법이 총 집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면의 맛이 떨어지는 집보다 육수의 질이 떨어지는 집이 더 용서가 안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우래옥의 육수는 어떨까? 첫맛에서는 고기의 풍미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진하다. 익숙치  않은 사람은 거부감이 들 정도다. 그나마 면에서 느껴지는 메밀향이 풍부해서 고기냄새가 중화되지 않았다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단점으로 지적 되었을 수도 있겠다. 

고기의 풍미가 도드라지는 육수

최근 일본의 과학자들이 감칠맛을 제5의 맛으로 인정했다. 감칠맛이란 혀에 맴도는 뒷맛이다. 그렇기에 4미(짠맛, 신맛, 쓴맛, 단맛)에 비해 쉽게 느껴지지 않는 맛이기도 하다. 미각의 차이는 이 감칠맛을 느끼는 수준에서 온다.

입에 들어가는 순간 느껴지는 순간적인 맛이나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사람은 감칠맛의 묘미에 대해 둔하다. 하지만 미식가는 감칠맛을 맛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자극적 음식보다 담백한 맛을 선호하는 것도 감칠맛을 즐기고자 함이다.

겨울은 냉면의 계절이다
 겨울은 냉면의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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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의 맛은 감칠맛이다. 면의 풍미나 끊김성도 얘기들을 많이 하지만 어디까지나 느낌이고 식감이지 5미는 아니다. 만약 그대가 평양냉면을 먹으면서 맛을 느끼지 못했다면 감칠맛에 대한 지각이 없거나 둔하기 때문일 수 있다. 평소의 식습관을 곱씹어 보라. 그동안 음식의 맛을 첫맛에 두지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감칠맛은 음미에 있다.

우래옥의 냉면은 나오는 폼새나 가격으로 봐서 가장 품위가 돋보이는 냉면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다고 가장 만족도가 큰 냉면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다. 6000원하는 을밀대 냉면을 먹으면서 우래옥의 냉면이 생각나 맛없어지는 일은 없을 테니까.

염리동에 있을 땐 을밀대를 장충동에 있을 땐 평양면옥을 을지로에 있을 땐 우래옥을 이용하면 된다. 각각 고유한 맛으로 오래도록 변치 않기만을 바랄뿐이다. 그나마 몇 곳 남지 않은 냉면명가이기에.

창 밖의 눈발이 풍성해진다. 이날 우래옥의 냉면에는 감칠맛에다 냉면의 정취까지 더해졌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과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업소 정보는 http://blog.daum.net/cartoonist/12007688 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태그:#냉면이 좋아, #겨울에 먹는 냉면의 맛이란.., #냉면은 감칠맛이지, #또 다시 먹고싶은 냉면, #우리 냉면먹으러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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