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참, 오늘 택배 하나 올 건데 당신 이름으로 와도 절대 뜯어보지 말어. 그거 내꺼니까…." "당신은 늘 그러더라. 부부사이에, 내가 좀 먼저 뜯어보면 안돼? 그런 사소한거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니까…. 알았으니 출근이나 해요." 그렇게 남편을 출근시키고, 뒤돌아서는데 갑자기 무언가 재빨리 뇌리를 스쳐간다. 이틀 후면 내 생일인 것이다. 후후. 입가에 웃음을 지으며 택배가 오기를 기다렸다. 남편은 늘 여우처럼 행동하려 하는데, 내 레이더망을 벗어나지 못한다. 딩동. 딩동. "택배 왔습니다." 작고 가벼운 상자를 받아든 순간, 내 생일 선물임을 확신하고선 이리저리 훑어보고, 흔들어봐도 도무지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발송처란에 적혀있는 업체 또한 생소했다. 내가 평소 갖고 싶다고 읊조렸던 것 중 하나일 텐데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무게가 가벼운 걸 보니 요즘 귀걸이 사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혹시 귀걸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이틀 후 받게 될 내 선물인데 먼저 뜯어보면 어때 하는 생각으로 상자를 열어본 순간, 그곳엔 내 예상을 빗나간 책 한권이 놓여 있었다.
내 사진이 장식된 베이지색 책표지엔 '내 영혼같은 이에게'란 책제목이 쓰여 있었다. 서로에게 호감을 갖기 시작했던 2000년 여름 무렵부터 결혼하기 전까지 그가 내게 보냈던 메일들을 모아 책으로 엮은 것이다. 한 장 한 장 책갈피를 넘기며 그 시간속으로 걸어 들어가보니 베시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서로에게 마음을 열 듯 말 듯 줄다리기하며 고민한 흔적하며, 연애가 시작되던 시기엔 서로를 알아가면서 오는 혼란스러움에 괴로워하던 모습까지. 오랜 시간동안 잊고 지내왔던 '운명'이라 믿어의심치 않았던 우리의 인연을 다시금 추억할 수 있었다. 순수와 열정이 넘쳤던 그 시절의 우리는 지리산을 좋아했고,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에 열광했으며, 그는 대금에 빠져 있었다. 그 시절을 함께 살아낸 지금, 우리는 오롯이 두딸의 육아와 대출금 이자에 허덕이며 현실의 삶에 열중하고 있고, 그는 대금보다는 자격증 취득과, 회사일, 자기계발에 빠져있다. 허나, 많은 것을 비워낸 뒤 새로운 것으로 가득 채워진 지금의 삶이 더 의미있는 것은, 6년전보다 더 성숙하고 한결같이 자상하고 너그러우며 사랑스러운 두딸의 아빠로서 잘 살아가는 그를 현실에서 조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책속의 한 구절에서 시선과 마음이 멈춘다. "내 작은 소망은 올해도 작년처럼 눈이 많이 오면은 당신의 따뜻한 손을 꼭잡고 어딘가를 걸어가는 것이고 당신의 감수성을 지켜주고 싶고 언제나 변함없는 친구이자 지지자 역할을 하는 것!" 서로를 향하는 마음이 일치하는 것을 확인한 뒤 그가 보내온 메일이다. 비록 6년 전 일이지만, 그날 아침 청량한 봄 공기와 따뜻한 햇살이 뒤엉켜 가슴 한켠이 울컥했던 그 감정들이 고스란히 되살아 난다. 바쁜 회사업무 틈틈히 50일에 걸쳐 만들었다는 이 책은,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생일선물임에 틀림없다. 너무 바쁜 나머지 수령지를 회사로 고치지 못해 내가 미리 보게 되었다며 남편은 내심 아쉬워 했다. 단조로운 일상속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이런 소소한 감동들로 내게 웃음을 주는 남편은 자신 생의 터닝포인트를 준비하고 있다. 남편의 인생 제2막에서는 내가 변함없는 친구이자 든든한 지지자 역할을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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