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보면 꼭 이런 사람들이 있다. 주인공의 친구들. 그녀 혹은 그들은 주인공들의 파란만장한 삶에 함께 기꺼이 동승하며 그들에게 충고와 위로를 해준다. 어쩌면 드라마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이들 중의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게 드라마 속 주인공들의 삶이 순탄치 않은 상황을 생각해 본다면, 그녀 혹은 그들이 갖는 의미는 상당하다. 외롭고 힘든 그들에게 힘이 되어준 존재들이기 때문이며, 착하기만 주인공들을 대신해 일침을 가해주는 활력소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주인공 친구로 살아가야 하는 그들의 운명 그래서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누구누구의 친구로 기억하며 때론 그들을 향한 적잖은 응원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주인공의 주변인은 감초 역할을 할 뿐 그 이상의 것을 얻어가는 일이 극히 드물다.
그 이유는 그녀 혹은 그들은 주인공들의 삶에 너무나도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때문이다. 마치 자신의 일인 양 이 착한 친구들은 주인공들이 온갖 수모를 겪는 일들에 함께 아파하고 함께 대처해준다.
일례로 <그 여자는 무서워> 주인공 영림(유선)의 친구 노승미(윤지숙)가 대표적이다. 오히려 영림의 친구로 유명한 그녀. 영림이 하경표(강성민)에게 배신당하고 사고를 당하는 위험을 겪으며 이를 함께 지켜보며 아파하고 위로해준 든든한 친구로 등장한다.
물론 여기까지는 좋다. 그런데 그녀는 본인의 결혼생활보다도 영림의 일거수일투족을 꿰며 그녀의 삶에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자신의 문제도 아닌데, 저렇게 관여하고 함께 아파하며 힘을 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남편의 사업에도, 자식의 육아보다도 영림의 일이 먼저인 그녀. 그래서 노승미보다 영림의 친구가 어울린다. 더욱이 그녀의 생활은 드라마에서 크게 차지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간략하게만 묘사되어져 노승미라는 이름 석자를 시청자들에게 각인시키는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는 드라마 상에서 크게 활력소가 되지 못하고 있다. 워낙 <그 여자가 무서워> 드라마 자체가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캐릭터 자체도 그리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으며, 든든한 친구임에도 그녀의 행동이 도를 지나쳐 설레발을 치거나, 푼수데기 역할로 전락해 버렸다.
그렇다보니 오히려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에 그쳐버린 전형적인 주인공 친구의 캐릭터이다. 사실 우리 일상생활에서 보면 이 세상에 주인공은 나란 말도 있는 것처럼 내 인생이 가장 우선이며, 내 인생의 행복이 제일이다.
그래서 비록 걱정하고 위로의 말을 전하지만 그 일을 자신의 일처럼 곰곰이 생각하고 함께 고민하지는 않는다. 내 인생도 그리 순탄치 않고 만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기적이어서, 가식적이어서가 아니다.
그런데 주인공들의 친구는 하나같이 자신의 삶은 뒷전이다. 또 하나의 일례로 아침드라마 <그래도 좋아>에 주인공 이효은(김지호)의 친구 정혜정(홍수민)이 그러하다.
그녀도 효은이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오도 가도 못 하는 효은과 효은이 어머니를 한 집에 데리고 살면서 더욱더 효은이 삶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본인 스스로도 남자 하나 없는 솔로에 가장격으로 돈을 벌고 있는 처지임에도 본인의 삶보다 효은이의 일과 사랑에 조력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집안의 가장으로 생계를 책임지고 있으며, 함께 일하는 동료와 사랑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이다.
대부분의 그녀가 쏟아내는 말의 3분의 2는 효은이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그래서 역시나 그녀도 효은이 친구로 시청자들에게 각인되지 못하고 있으며, 여전히 혜정 자신의 인생보다 효은의 인생에 더불살이를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주인공 친구도 나름의 삶이 있다! 이렇게 불쌍한 운명을 지닌 그들. 꼭 드라마 속에서 이렇게밖에는 살 수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다만 작가들이 주인공 친구라는 이유로 괄시하거나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을 보란 듯 시청자들에게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은 주인공 주변인이 있다. 바로 <내 남자의 여자>의 국민 언니로 떠오른 은수(하유미)가 대표격이다. 물론 그녀는 주인공의 친구는 아니었지만 주인공의 언니로 분해 드라마 상에서 톡톡 튀는 연기로 활력소가 되었고 오히려 극 초반 인기몰이를 담당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대단했다.
또한 모든 시청자들은 이례적으로 그녀의 이름을 기억해 주었다. 극중에서 동생의 남편 외도 현장을 보고 동생 몰래 그들을 응징하는 과정에서 은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드라마에 재미를 더했다. 그래서 그 역할은 단순한 주인공의 누구누구로 끝나지 않았다.
그녀의 활약 덕분에 새삼 주인공의 주변인들이 드라마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며 어떠한 인기몰이를 해줄 수 있는 중요한 존재인지를 알게 되었다. 여기에 또 한 명의 주인공으로 <막돼먹은 영애씨>의 지원(도지원)과 나영(김나영)이 있다. 지원은 영애(김현숙) 친구로, 나영은 영채(정다혜) 친구로 등장한다.
그녀 모두 주인공 두 자매인 영애와 나영의 삶에 든든한 친구이다. 물론 나영은 영채와 때론 적이 되기도 하며 시기와 질투를 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주인공 두 자매의 순탄치 않은 일상에 주목하며 충고해주고 위로해주는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주인공 친구로 머물지 않고 시청자들에게 각인될 수 있는 이유는 그녀들의 이야기도 상당 부분 드라마에서 주요하게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원은 이혼했으며 허영이 많은 캐릭터로 극중에서 윤과장(윤서현)과 동거에 들어가 또 다른 사랑의 모습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었다.
또한 나영도 극중에서 돈 많은 남자를 만나기 위해 내숭을 떨기도 하고, 직장에서 성희롱을 참다가 문을 박차고 나오기도 하는 등 주변부의 이야기 한 축을 담당해왔다. 그래서 누구보다 주인공들의 친구 역할이지만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견줄 만한 위치에 올라서게 된 것이다.
즉 이들은 <그 여자가 무서워>와 승미와 <그래도 좋아>의 혜정과는 확연히 다르다. 자신의 인생의 주체는 자신이라 부르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주인공 친구로서 감초역할을 해내고 있으니, 다시 한 번 작가들은 이점을 고려해 주인공의 친구들의 캐릭터를 조금 더 세밀하게 그렸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