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태안 3지구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
현재 화성 융건릉 앞의 화성 태안3지구는 거대한 철재 울타리로 둘러싸여 대규모 건축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 사업의 주체는 대한주택공사로, 택지개발을 목적으로 지난 10년에 걸쳐 막대한 공사비를 들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근래에 이 지역에서 정조시대를 재조명할 수 있는 유적지가 대규모로 발굴되어 '개발과 보존'이라는 명분을 두고 각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언제든지 공사를 재개할 수 있는 상황이어서 문화재 보존에 관심을 두고 있는 관련 단체와 시민들은 애타게 사적지 지정을 고대하고 있다.
특히 앞으로 문화재청이 태릉과 융건릉을 포함 조선시대 왕릉 40기를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할 계획이어서 주변 경관을 해치는 융건릉 앞 아파트 단지 건설은 그 자체로 많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되고 있다.
이는 정조시대 최고의 건축물인 수원 화성(華城)이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세계인의 관심을 받고 있으며, 수원 화성의 성곽 축조에 대한 기록을 모아 간행한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도 지난해 7월 세계기록유산으로 공식 등재되는 상황에서 그 문화의 뿌리를 훼손한다는 주장 때문이다.
화성태안 3지구에서 무엇이 발굴되었는가?
현재 아파트 및 택지 개발지역으로 묶인 화성태안 3지구 안에선 건릉(정조의 왕릉) 재실터와 번와소, 옛 수원부 관아지로 추정되는 고려시대 수혈건물지, 백제시대 무문토기 출토와 함께 수전농업(水田農業) 관련 유물들이 대량으로 발굴되어 관련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처음으로 왕릉 재실터가 발굴돼 주목된다. 그동안 왕실의 재실관련 연구가 부족한 상황이었는데, <정조 건릉 산릉도감의궤>에 그려진 대로 유적지가 발굴되어 많은 연구가 진행될 예정이다.
이와 관련 지난해 11월 '정조시대 문화예술과 효 문화재'를 주제로 학술발표회가 열렸는데, 이날 발표자를 한 정해득 한신대 외래교수는 "융건릉과 용주사 일원은 역사적·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 역사 고고학의 보물창고"라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현재 이 지역에 일고 있는 주택개발 열기 대신 후손들에게 길이 보전해 줄 대안을 찾아보자고 역설하였다.
그러나 주택개발공사는 새로 발굴된 택지개발 지역 내 문화재의 경우 그 가치가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학계와 관련 단체에서 내놓은 사적지 지정권고안 대신 단순 체육공원 내에서 재실터 만을 보존하겠다는 입장이어서 많은 반발이 예상된다.
청룡의 꼬리가 잘린 조선 최고의 명당
현재 택지개발 지역으로 묶인 화성태안 3지구 근처는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원침을 양주 배봉산에서 수원 화산으로 옮기면서 조선 최고의 명당으로 인정받은 곳이다. 특히 사도세자(훗날 장조로 추존)가 묻힌 융릉자리는 풍수학적으로 '반룡롱주혈'(용이 여의주를 물고 놀다가 승천하는 혈)이라고 정조 스스로 이름을 붙여 죽어서라도 용의 반열에 아버지를 세우고 싶었던 아들 정조의 한이 서린 공간이다.
이런 풍수학적인 관점에서 정조는 만년제(萬年堤)라는 인공저수지를 만들었고 여의주의 모습을 형상화한 인공 섬을 만듦으로써 자연적인 풍수에 효심을 보탠 완벽한 명당으로 융릉을 재탄생시켰다. 물론 만년제는 당시 선진 농법의 보급을 위하여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농업용수를 공급한다는 큰 뜻이 담긴 저수지이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주변지역의 벌목을 위하여 도로가 만들어져 융릉과 건릉을 보호하는 좌청룡 우백호의 최종 능선인 청룡의 꼬리가 잘려졌고, 현재는 택지개발이라는 명목으로 그나마 남은 꼬리의 흔적마저 불도저와 포크레인이 지우고 있어 조선 최고의 명당자리로 손색이 없었던 화산은 이제 옛 그림으로 밖에 볼 수 없을 지경이다.
정조의 효심, 효(孝) 역사문화 공원으로 승화시키자
이렇게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철저하게 파괴되는 시점에서 융건릉과 용주사 그리고 만년제를 잇는 공간에 효역사문화 공원 조성이라는 대안이 적극적으로 모색되고 있다. 이를 위하여 관련 시민단체와 학계에서는 '효 역사문화권역 지정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무분별한 주택개발이 아닌 세계적인 효 역사문화 공원으로 개발을 변경하자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특히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만든 원찰인 용주사에는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단원 김홍도가 부모님의 은혜에 대하여 그린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이 남아 있고, 이와 관련한 경전의 판본이 남아 있어 효 역사문화 공원의 핵심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이번에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명박 당선인이 늘상 말하는 '섬김의 정치'가 바로 한국적인 '효(孝)'정신의 연장선에서 생각된다면 보다 실질적인 정책입안도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부모가 자식을 위하고,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효 정신은 정치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영역 속에서도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며, 그 중심에 정조의 효 정신이 담긴 '역사문화 공원'이 만들어 진다면 세계에서 각광 받는 공간으로 거듭 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상 억울하게 죽은 아비를 위하여 이렇듯 효심을 쏟아 부은 왕은 세계에서 오직 정조뿐이다. 그곳에 과연 고층 아파트를 짓는 것이 옳은 일인지, 아니면 그 정신을 이어 받는 효역사문화 공원을 짓는 것이 옳은 것인지는 역사가 판단해 줄 것이다. 이렇듯 개발 지상주의로 인해 자칫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시멘트 속에 갇히는 절박한 현실 속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후손들에게 남겨 줘야할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덧붙이는 글 | 최형국 기자는 중앙대 대학원 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정조시대와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 http://muye24ki.com 를 운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