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효율적인 강소정부’를 지향한다고 그 기본 방향을 설명했다. 언론들의 평가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조·중·동>과 같은 신문들은 ‘작은 정부’의 효율성 취지를 제대로 살리자면 더 과감한 공무원 감축과 정부 규제의 대폭 완화와 기능의 조정, 중앙정부 권한의 대폭적인 이양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부조직개편안의 '권력적 성격' 주목해야

 

<경향신문>이나 <한겨레>는 ‘작은 정부’라는 ‘정치적 수사’의 함정을 경계했다. 정부 조직을 이러 저리 묶어내 대부처로 가져 간 것이 곧장 ‘효율적인 정부’, ‘일 잘하는 정부’의 보증수표는 아니라는 지적이다. 오히려 이런 대부처 정부 조직 개편이 정작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보살핌이 필요한 정부의 주요 정책 기능을 위축시키거나 왜곡시킬 수 있음을 경고했다. 통일부와 여성부를 없애기로 한 것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통일부를 외교부와 통합시키기로 한 데 대해서는 <중앙일보>나 <조선일보>까지도 그 부작용을 우려해 <경향신문>과 <한겨레>의 대열에 같이 했다. 남북관계의 특수성이나 중요성을 감안할 때도 그렇지만, 대북교섭과 대미교섭의 창구가 일원화되는 데 따른 부작용 등에 대해서는 진보·보수 언론을 가리지 않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인수위의 정부조직개편안 대로라면 거대 공룡 부처로 탄생하게 될 기획재정부의 권한 집중과 그 부작용 및 폐해에 대한 우려에서도 진보·보수 언론의 목소리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다수 신문은 인수위의 정부조직 개편안의 큰 그림에 대해 조직개편 그 자체보다 궁극적으로는 정부 조직의 ‘기능’과 ‘효율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정작 인수위의 정부조직 개편안의 ‘권력적 성격’에 대해 주목한 언론은 거의 없다. 작고 강한 ‘강소정부’라는 인수위의 정치적 수사의 함정을 <경향신문>이나 <한겨레>가 지적했지만, 그 권력적 성격에 대한 적극적 조명은 이뤄지지 않았다.

 

인수위 정부 조직 개편의 특징은 말할 나위 없이 정부 조직 기능의 ‘통합’과 ‘집중화’다. 기획·예산·경제정책 기능을 한 곳에 집중한 기획재정부는 말할 나위도 없고, 금융정책과 규제·감독 권한을 일원화 한 금융위원회가 그 대표적 사례다.

 

이명박 당선인과 인수위는 규제 완화를 강조해왔다. 그런 점에서 통합된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되는 기획재정부나 금융위원회는 ‘규제완화’를 추진하는 강력한 ‘엔진’이 될 수 있다. 금융위원회는 금융 감독 권한의 ‘강화’가 아니라, 금융 감독 및 규제 권한을 스스로 내놓음으로써 새 정부의 정책 추진을 뒷받침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책상위 시나리오일 뿐이다. 역대 정부의 사례에서 보듯이 집중된 권한은 필연적으로 집중화된 권력화로 나타난 경우가 많았다. 거대 부처화되는 기획재정부에 대한 대다수 언론들의 우려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금융위원회 역시 마찬가지다. 새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에 따라 규제나 감독 기능의 상당 부분을 스스로 무장 해제시킬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인사 개입 등을 통한 관치금융의 그림자를 거둬내는 것은 아니다. 반관반민으로 운영되던 기존의 금융감독위원회 시스템에서도 금융기관 최고 경영진 인사에 대한 권력(당국)의 영향력은 아주 컸다. 정책과 규제·감독 기능이 일사불란한 금융당국의 손에 들어갔을 때 인사권 개입의 영향력은 더 강화될 개연성이 적지 않다.

 

방통위, 권력 통제 강화 도구로 활용될 수도

 

방송과 통신 정책 및 방송·통신 규제 감독 기능을 함께 갖게 되는 방송통신위원회 역시 마찬가지다. 이명박 당선인과 한나라당은 방송 통신 분야에 대해서도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밝혀 왔다. 방송통신위원회 역시 방송 통신에 대한 규제 완화, 공영 방송의 민영화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방송통신위원회를 대통령 직속 기구화 하기로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새 정부의 이런 방송 통신 정책이 방송과 통신의 공공성과 공익성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후퇴시킬 것이라는 우려는 이미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쟁점은 대통령 직속의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과 통신에 대한 정부, 곧 권력의 재량권과 통제를 강화하는 ‘도구’로 활용될 개연성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조선일보>가 17일자 정부조직 개편 사설('진짜 정부 개편은 지금부터 시작이다')에서 “개편의 타당성 평가는 공무원의 민간 부문에 대한 불필요한 간섭이 얼마나 줄어드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며 “대통령 직속으로 신설되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인선 방향도 주목된다”고 말한 것도 이런 우려의 표현일 것이다. 새 정부 하에서 방송 진출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신문사로서는 권력의 재량권 확대가 꼭 바람직한 상황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권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한다거나 성격이 전혀 다른 국민고충처리위원회(국민고충처리)나 국가청렴위원회(공직부패 방지 및 감시)를 국민권익위원회로 통합한다거나 하는 구상 역시 위원회의 기능 조정이나 효율적인 시스템 구축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다수의 과거사 관련 위원회를 진실화해위원회로 통합하거나 미리부터 시한 종료 후 폐지라는 입장을 밝힌 것 역시 정권 운용에 부담스러운 부문을 털어내기 위한 편의적인 발상의 측면이 강하다.

 

반면 검찰이나 국세청 등 이른바 대표적인 권력기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되레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 완화 방침을 밝히는 등 이들 권력기관을 정책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정책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과 권력의 도구로 활용하는 것은 마치 동전의 앞뒷면과도 같다.

 

'집중화된 권력 행사' 위한 일사분란한 조직 재편

 

이명박 당선인이나 인수위원회는 시장의 자율을 중시한다는 입장이지만 이미 휴대전화 요금 인하를 강제하다시피 하는 등 인수위 활동 과정에서도 모순적인 태도를 나타낸 바 있다.

 

자립형 사립고 정책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수위는 교육부를 폐지하고, 인재과학부를 신설하면서 초중등 정책은 시도 단위의 지방정부에 위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초중등 정책에 대해서는 교육자치 제도를 전면적으로 도입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렇다면 자립형 사립고의 도입 여부도 시도 단위에서 결정할 일이지, 중앙정부 차원에서 전국적으로 100개를 만들겠다고 호언하고 나설 일이 아니다. 일의 수순이 바뀌었고, 앞뒤가 안맞는 이야기다. 새 정부의 ‘철학’과 ‘정책적 일관성’이 의문시 되는 사례들이다.

 

인수위는 정부조직개편안이 작지만 강한 정부를 지향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그것은 되레 ‘집중화된 권력 행사’를 위한 일사불란한 조직 재편의 성격도 함께 갖고 있다. 정부 조직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그 내용이 많이 달라지겠지만, 저돌적인 성과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새 정부의 특성에 비춰볼 때 더욱 그렇다.

 

새로 출범할 ‘이명박정부’는 규제 완화를 말하고 있지만, 권력의 전방위적 영향력 행사나 그 개입은 되레 강화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정부조직개편안에서 읽어볼 수 있는 이명박 정부의 ‘권력의지’다. 기업과 시장의 자율을 강조하면서 무모해 보이는 경제성장 목표치를 제시하고 있는 모순된 행보와도 닮은꼴이다. 언론이 놓치고 있는 대목일 수 있다.


태그:#조직개편, #인수위, #금융위원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