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 ! 저게 무엇이지?”

 

반짝이고 있었다.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시선이 그곳을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작은 골짜기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줄기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면서 흘러가고 있었다. 특징 없이 흘러가는 작은 개울에 반짝이는 것이 있으니, 마음이 그곳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확인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얼음이었다. 흘러가는 물이 모두 얼음이 된 것이 아니라 그 중의 일부분만이 얼음이 된 것이다. 그것은 어찌 보면 선택받은 존재였다. 햇살에 반짝이고 있는 얼음을 바라보면서 인생을 생각하게 된다. 얼음처럼 살아가는 사람마다 모두 다 다르지 않을까? 누구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흘러가고 누구는 얼음처럼 빛날 수 있다.

 

만남. 누구는 우뚝한 삶을 살아가기도 하고 누구는 고생만 하는 사람도 있다. 살아가는 방식이나 양태는 천차만별이다. 가지각색의 모양으로 다양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운명론자들은 팔자라고 말한다. 사람이 제아무리 발버둥을 쳐보아도 별수가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타고난 삶의 여정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젊었을 적에는 그런 말은 무시하였다. 정말로 그렇다면 살맛이 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누구는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호의호식하는 것이고 누구는 아무리 노력하여도 그 모양으로 살아갈 것이 아닌가? 이 어찌 불공평한 세상이란 말인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일이라고 아예 무시하였다.

 

인생의 주체로서 삶은 개척될 수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내 인생은 내가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남들이 걸어가지 않은 길을 일부러 찾아서 걸었고 남들이 싫어하는 일들은 과감하게 맞서면서 나갔다. 그러는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고통과 아픔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것이었다.

 

지천명의 나이를 넘어 이순의 나이를 바라보는 시점에 서 있으니,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삶이란 결국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닐까?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용트림을 해보아도 그것은 정해진 운명의 범위 내에서 한정적으로 허용되었던 것은 아닐까?

 

순리라 하였던가? 순리대로 살아간다면 큰 고통이나 아픔 없이 편안하게 살 수 있다고들 한다. 누구나 그렇게 살고 싶다. 살아가면서 고통을 피하고 싶은 것은 본능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당연 순리대로 살아가고 싶다. 그러나 문제는 순리대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물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는 한다. 삼강오륜이나 착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등 순리대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기는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절대적으로 충분하지 못하다. 세상 살아가는 것이 말처럼 그렇게 간단하고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절대로 같지 않은 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만남의 과정으로 이루어졌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삶의 길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만남을 회피하게 된다면 그 삶은 더욱더 고립무원으로 길로 추락하고 만다. 결국 좋은 만남을 만들고 그것을 신뢰로 구축해가는 것이 아름다운 삶을 완성하는 지름길인 것이다.

 

아름다운 인생

 

눈부신 만남이여
맴도는 소용돌이

 

팔자란 정해진 것
아니라고 달렸지만

 

무심한 질곡의 세월
돌아보니 바람뿐

 

흐르는 골짜기의 물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 얼음을 바라본다. 그가 물이 아닌 얼음으로 빛날 수 있는 것은 운명일까? 아니면 스스로 자신의 노력과 선택의 결과일까? 그것은 우연일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의지의 결과일 수도 있다. 인연으로 돌아가는 윤회 속에서 일어난 현상이든, 그렇지 않든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살아온 날이 살아갈 날마다 훨씬 더 많아진 시점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인가를 생각해본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총체적인 내 인생의 성패가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런 특징도 없이 흘러가는 물처럼 필부의 모습으로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수도 있고, 빛나는 얼음처럼 우뚝할 수도 있다.

 

빛나는 얼음이 우뚝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흘러가는 시냇물의 모습이 더 아름다운지, 그것 또한 모를 일이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보이고 느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을 살아가는 주인의 생각이 문제인 것이다. 운명이든, 의도한 삶이든 그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다른 사람에게 빛나는 삶으로 보이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나의 모습이 어떻게 보이든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 나를 어떻게 생각되어지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자괴감을 느끼지 않고 내 삶을 충실하게 채울 수 있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나 스스로 얼음처럼 빛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아름다운 인생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사진은 전북 김제시에서


태그:# 얼음, #만남, #인생, #아름다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