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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체험하며 글을 쓴다는 게 쉽지만은 않다. 사실 자판 두드릴 힘도 없다. 여기 저기 안 쑤신 곳이 없다. 언제까지, 무슨 얘기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써보자. '도전! 이기자 - 수상인명구조원(라이프가드)'(원래는 '도전! 라이프가드'로 제목을 잡았다가 바꿨다) 시리즈를.

훈련은 하루에 5~6시간, 총 10일. 매일 글을 쓴다면 모두 10편을 연재할 수 있다. 뭐, 그것도 얘깃거리가 있을 때 말이겠지. 일단 목표는 라이프가드 자격증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종의 입문서랄까. 결과가 어떻게 될는지 모르겠지만, 시작해보자. 그나마 힘이 남아 있을 때. 지금부터, "시작이다." <필자주>
대한적십자 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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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낮 12시 25분쯤.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 도착했다. 라이프가드 훈련 첫날, 오늘은 '테스트'가 있는 날이다. 훈련을 받을 수 있는지 기본 체력 등을 알아보는 시간이다. 영법은 '자유형'과 '평영'. 각각 100m씩 수영해 4분 30초 안에 들어와야 한다.

사실 수영 좀 오래 한 사람에게는 그다지 부담스러운 시간은 아니다. 하지만 잠실은 조건이 다르다. 자그마치 5m 풀. 물 속에 뛰어들면 5m 아래로 내려가야지 발이 땅에 닿는다는 얘기다. 후훗-. 직접 들어가 보기 전엔 "그래봤자, 같은 수영장이지"라며 무시할 수도 있다. 하지만 5m는 그리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라이프가드를 준비하는 이들을 위해 중간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2시30분까지 잠실 제1수영장 카운터 앞에 모여 있으면, 누군가 부른다. "라이프가드 신청하신 분, 이쪽으로 오세요~"라고. 보통 사람들이 없는 2층 등에 모여 앉아 이것저것 설명을 듣는다. 하지만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돈 걷는 일'이다. 출석을 부르며, 수영장 입장료 6천원을 걷는다. 간단한 강사 소개 등이 이어진 뒤, 결전의 장소로 향한다. 공포의 5m 풀(pool)로 말이다.

괜스레 멋있게 다이빙 할 생각은 하지 마라

막상 수영장에 들어가면 상당히 따분하다. 사람들이 다소 많은 탓에 인원수 세고, 오와 열 맞춰 줄 서는 것만 해도 30여분이 후딱 지난다. 실제로 테스트를 받은 시간도, 1시간 여 남짓 시간이 지난 뒤인 듯하다. 그땐 자기와의 싸움이다. 긴장감은 온데간데 없고,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게다가 잠실 수영장이 넓어선지, 외풍도 심하다. 어디선가 칼바람이 몰려와 옆구리로 파고든다. 감기 걸리지 않게, 얇은 겉옷을 챙겨가는 게 좋다.

어느덧, 테스트를 받을 차례가 가까워졌다. 그때부턴 살짝 긴장된다. 5m 풀이 눈앞에 떡하니 버티고 있다. 설렘, 긴장감, 추운 바람 등, 잡다한 것이 섞여 묘한 떨림을 만들어낸다. 이윽고, 입수.

여기서 주의 하나. 괜스레 멋있게 다이빙할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말 것. 분위기도 그렇거니와, 5m 풀이다. 깊은 물에서 수영 안 해본 사람들은 당황할 가능성이 크다.

"삑~"소리와 함께 테스트는 시작됐다. "첨벙~첨벙~" 옆 사람이 앞으로 뛰쳐나가는 것을 보고, 발로 벽을 힘껏 차며 앞으로 나갔다. '엇! 일반 수영장하고 별반 다를 바 없다. 해볼 만한데.' 떨리는 가슴도 조금씩 진정되는 듯했다. 그러나…오산이었다. 돌핀킥(두 발을 모아 몸을 위아래로 구부정거리며 나가는 영법) 몇 번 뒤 호흡을 하려 물 밖으로 얼굴을 꺼내려할 때였다.

이때쯤이면 당연히 보여야 할 천장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살짝 당황해, 발을 위아래로 힘껏 차 물 위로 떠오르려 했다. 한참을 올라갔다.(기분이 그랬을지도 모른다) "푸~하" 다시 만난 공기가 이렇게 상쾌할 수가. 이유는 이랬다. 보통 수영장은 깊이가 1.2m에서, 깊은 곳은 1.6m 정도. 물안경을 끼고 벽을 차고 스타트를 하면 대충 눈대중으로 물 깊이를 판단한 뒤, 안에서 발차기를 조금 한 뒤 밖으로 나간다. 몸에 닫는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5m 풀. 깊이를 가늠하기가 힘들어, 물 속으로 계속 들어갔던 것이다. 아무리 들어가도 바닥이 잘 보이지 않으니, 어쩌면 당연했다.

5m 깊이는 의외로 깊었다. 나름 깨끗한 물이지만(그랬을 걸로 믿는다), 수이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암흑만이 존재할 뿐이다. 25m 건너편에 가까이 가면 겨우 어슴푸레 벽이 보인다. 아무리 까치발을 디뎌봤자 닫지 않는다. 기럭지(길이나 키를 뜻하는 사투리)가 길다고 안심하지 마라. 5m가 아니라면. 이것이 잠실, 5m 풀이다.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 제 1수영장 5m 풀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 제 1수영장 5m 풀
ⓒ 이승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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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다행인 게, 우리 몸은 신기하게도 새로운 환경에 금방 적응한다는 것이다. 두려움을 없애면, 아무리 5m 풀이라 해도 보통 수영장과 다를 바 없어진다. 그때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4분 30초. 보통 때 같으면 별 것 아니겠지만, 이미 한번 놀란 터라 시간이 꽤 지나버린다. 페이스를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여기서 하나 또 주의! 그렇다고, 너무 끌어올리지는 마라. 특히 평영에 자신 없는 이들, 주의해야 한다. 의외로 속도가 안 난다. 모두 200m, 여긴 25m 풀이니 자유형, 평영 갔다 왔다 2번씩 하면 끝. 양쪽 끝 부분에서 선생님들이 벽에 닿았는지를 꼼꼼하게 보니, 어설프게 날림으로 할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않는 게 좋다.

기본 테스트가 끝나면, 다시 지루한 기다림이 이어진다. 점수를 모아 더하고, 결론을 내기까지 또 30~40여분이 걸린다(실제는 그보다 더 적을지 모르겠지만, 느낌은 더 되는 듯하다).

"떨어진 사람, 짐 싸들고 집으로 가시면 됩니다"

드디어, 발표시간. "떨어진 사람 이름 부를까요. 붙은 사람을 부를까요. 그래도 떨어진 사람들은 가슴 아프니까 붙은 사람 이름을 부를게요. 지금부터 호명한 사람은 오른쪽으로 와주세요. 나머지는 짐 싸들고 집으로 가시면 됩니다." 이어 한 사람씩 이름이 불린다. "○개똥, ○말똥, ○소똥, 솰라쏼라~"

그리고 호명되는 이름. "이 기자씨.(실제론 이름을 불렀다;)" 훗, 합격이다. 마음 한 편이 '짠'하다. 고개 푹 숙이고 "고향 앞으로~"하는 이들을 바라보는 것은 썩 기분이 좋지 않다. 하지만 남은 이들의 훈련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앞은 몸 풀기에 불과했다.

오늘의 첫 도전 영법은 '횡영'. 앞으로, 뒤로도 아닌, 옆으로 누워하는 수영이다. 사람을 구할 때 쓰는 가장 기본이자, 중요한 용법이라고 강사는 말했다. 영법은 대강 이렇다. 옆으로 누워 두 발을 붙이고 발끝을 쫙 편 다음(첫 번째), 이어 양 다리를 서로 반대 방향으로 최대한 크게 벌린 뒤, 잽싸게 모으면 된다. 모을 때는 발을 맞부딪치면서 "쫙"소리가 나게. 형태는 마치 가위질을 하는 것과 같다.

듣기엔 쉬워 보이지만, 요거 만만치 않다. 옆으로 다리를 뻗었다 모아야 하는데, 긴장을 조금만 풀면 평영으로 급(急)변한다. 여기에 팔 동작까지. 이쯤 되면, 내 몸이 내 몸이 아니다. 생각만큼 원하는 곳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 뒤, 끝없는 연습이 이어진다. "돌아~돌아~"

끝으론 인명구조의 꽃, '입영'이 시작됐다. 입영, 말 그대로, 설 '립'(立), 서서하는 수영이다. 형식은 평영과 같지만, 입영은 다리를 한발씩 엇박자로 찬다는 데 차이가 있다. 사실 영법 중에 입영이 제일 힘들다. 제 자리에서 다리만 휙휙 돌려서 십여 분을 버틴다는 건 매우 어렵다. 그 뒤로 입영은 30분이 넘게 계속됐다.

혼자 했으면 절대 못했겠지만, 옆 동기와 함께라 힘이 덜 든 것 같다. "으악~ 죽겠어요." 다들 볼멘소리 한마디씩 꺼내놓지만, 우직하게 하는 걸 보면 참 놀랍고 대견스럽다.

오후 6시가 훌쩍 넘은 시간. 첫 훈련은 끝났다. 내일도 낮 12시30분까지 수영장으로 모여야 한다. 몸은 천근만근, '지금도 이런데, 내일은 잘 버틸 수 있으려나.' 오늘은 여기까지만. 이런 벌써 새벽 2시가 넘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블로그(goster.egloo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수상인명구조원, #라이프가드, #대한적십자사,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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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는 내가 밉습니다. 화가 나도 속으로만 삭여야 하는 내가 너무나 바보 같습니다. 돈이, 백이, 직장이 뭔데, 사람을 이리 비참하게 만드는 지 정말 화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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