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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이명박 당선인의 정권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가 발표한 정부 부처의 명칭들에는 숱한 허점과 오류가 있어 보인다. 정부 부처의 명칭은 관장하는 업무 분야나 하는 일의 성격을 명확히 표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이전에 언어의 합성법이 타당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 정해진 부서 명칭 중에서 몇 개는 업무 표시 기능은 물론 합성법 등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어 보인다. 특히 '인재과학부'와 '지식경제부'는 명칭만으로는 무슨 일을 하는 부서인지 전혀 알 수 없으며, 단어의 합성법 또한 이치에 맞지 않아서 아주 치졸한 느낌을 준다.

 

먼저 인재과학부는 과거 교육부와 과학기술부의 교육업무 분야를 통합한 명칭이라고 한다. '교육'이라고 하면 동양에서는 ‘사람 되게 하고 건강하게 키우는 일’을 뜻하고, 서양에서는 ‘소양이나 능력을 계발시키는 일’을 의미한다. 그러니 아주 포괄적인 의미 영역을 가지는 말이다.

 

반면 '인재'라고 하면, 인재(人材)와 인재(人才)가 있는데, 전자는 학식이나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후자는 재능이 뛰어난 사람을 뜻한다. 둘 다 뛰어난 사람을 의미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므로 인재는 아주 특수한 소수의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유아와 학생은 물론 성인의 평생교육까지 관장하는 이 부서의 업무 분야를 제대로 표시하는 말이 전혀 아닐뿐더러 부서의 업무 성격을 규정하지도 않는다.

 

이치 안 맞는 단어의 합성법, 치졸한 느낌

 

게다가 인재는 뒤에 합성된 과학이라는 말과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과학이라는 단어는 좁은 뜻인 인재에 비해 훨씬 포괄적인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합성어는 두 단어의 뜻이 대등하든지, 아니면 하나가 다른 하나에 종속되어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인재와 과학은 대등하지도 않고 하나가 다른 하나에 종속되지도 않는다. 결과적으로 '인재들만 하는 과학' 또는 '인재들의 과학'이란 뜻으로 오해되기가 십상이다.

 

사실 과학이라는 말도 애초 영어 '사이언스(Science)'를 잘못 번역한 것이다. 사이언스는 과학을 뜻한다기보다는 학문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인재과학부와 같은 이상한 명칭보다는 ‘교육학문부’ 정도의 포괄적이면서도 행위의 의미가 명확히 환기되는 명칭이 더 적합하다고 본다.

 

다음으로 지식경제부란 또 무엇인가? 명칭만으로는 도무지 이곳이 뭐 하는 데인지를 가늠할 수가 없다. 인수위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은 에너지 정책, 정보기술정책, 그리고 산업기술 정책 등을 관장한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지식(knowledge)이란 ‘어떤 대상에 대한 인식이나 이해’를 뜻하는 추상적인 말이다. 따라서 정부부서가 관장하는 업무 분야와는 전혀 상관없다. 또한 단어 자체가 업무 행위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인재를 한다’고 말하지 못하듯이 ‘지식을 한다’는 말도 성립될 수 없다. 요컨대 ‘지식’에는 업무 분야나 업무의 성격을 표시하는 기능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또한 경제라는 단어는 너무 포괄적이다. 따라서 이 부서의 에너지 정책, 정보기술, 산업기술 등의 관장 업무를 표시하는 기능을 전혀 행사하지 못한다. 또한 ‘경제’는 앞의 ‘지식’과 대등하거나 하나가 다른 하나에 종속적으로 합성될 수도 없는 말이다. 결과적으로 ‘지식적인 경제’ 또는 ‘지식 분야의 경제’라고 오해될 수밖에 없는 부적절한 명칭이다. 정확하게 ‘산업기술부’ 정도로 명칭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한다.

 

그 밖에 문제 되는 것으로 국토해양부가 있다. 이는 건설부와 해양부를 통합한 명칭이다. 그런데 국토라고 하면 영토, 영해, 영공 등이 모두 포함된다. 그러니 ‘국토’ 뒤에 따로 ‘해양’을 추가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아마 국토라고 하면 토지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지어지지 않았나 싶다. ‘국토관리부’ 정도의 이름이 어떨까 한다.

 

외교통일부라는 명칭에도 심각한 허점이 있다. 서로 이질적인 외교와 통일을 한데 묶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외교로 통일을 지향하고 통일을 외교처럼 한다? 둘 다 망치기에 십상인 통속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실용' 표방 정부, 명칭부터 매우 비실용적

 

한국 사회가 그동안 경제는 많이 발전했는지는 몰라도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나 삶의 존엄성은 오히려 퇴보했다는 느낌도 든다. 인재과학이니 지식경제니 하여 그것이 마치 현대적이고 수준 있는 것처럼 여기는 생각부터가 치졸한 것이다. 이런 명칭들은 겉만 번드르르한 미사여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외부, 내무, 재무, 법무, 국방… 등의 건국 초기 부서 명칭이 단연 정직하고 수준 있는 것이었다. 일단 말도 간단할 뿐 아니라, 간단한 단어 하나로 그곳이 무슨 일을 하는 부서인지를 금세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말이란 음절수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그 범위는 더 줄어드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실용'을 표방한다는 정부에서, 명칭부터 매우 비실용적이어서 유감이다. 이렇게 되는 이유가 어디 있을까? 혹여 교육을 경제에 함몰시키고 통일을 외교 수준으로 전락시키려는 반동성을 은폐하기 위한 언어의 성찬인 듯하기도 해 두려워지기도 한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러그 <정화된 밤>에 게시한 글입니다.


태그:#조직개편, #부서명칭, #인수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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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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