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몇 주 동안 합창곡을 연습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름답게 들렸습니다. 그러나 까다로운 부분이 한 군데 있어서 우리는 그 부분을 도저히 매끄럽게 넘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 정도면 훌륭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합창 지휘자도 동의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도 역시 같은 부분을 반복해서 연습하는데 지쳐 있었던 것입니다. 마침내 그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 곡을 연습하는데 열심을 다했습니다. 여러분도 지쳐있고 저도 지쳤습니다. 우리는 시간에 쫓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99%의 사람들은 우리가 정확하게 부르는지 아닌지 구별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악보를 치우기 시작하자 그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그러나 구별할 줄 아는 1%의 사람들을 위해 우리는 정확하게 노래 부를 것입니다." 우리는 신음 소리를 내면서 구겨진 악보를 다시 열었습니다.
연이은 펑크, 그리고 만난 줄고장의 견인차량. 나로서는 영문을 모르는 PGR에 체포된 사람들. 하루가 참 길었구나 싶은 생각이 한숨으로 대신해 나온다. PGR 대원이 잡아준 트럭을 타고 산 루이스 외곽에 위치한 자동차 정비소에서 내렸다. 자동차 정비소지만 자전거 수리도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미 새벽 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정비소에서 야간 근무를 서고 있는 호세(Jose)가 선한 얼굴로 맞아주었다. 그에게 난관을 보여줬더니 그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하지만 그의 손은 튜브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어렵겠지만 포기한다는 뜻은 아니란 걸 말해주는 것이다!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하는 데까지 해 볼게요."
선하디 선한 그의 눈빛에 담겨진 결의에 마음이 놓이면서도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궁금해 그의 곁에 있기로 했다. 그는 자동차 타이어 수리에 쓰는 각종 공구를 총 동원해 자전거 타이어를 손보기 시작했다.
그의 손놀림은 매우 섬세했다. 하지만 그 섬세함마저도 커버하기 곤란한 펑크 부분은 고난이도 그 자체였다. 이리저리 각도와 길이를 재보고 이래저래 눈대중과 손에 익은 감각으로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갔다. 역시나 어려웠던지 그 역시 실수를 거듭했다. 그러기를 30분여. 만만찮은 작업을 끝내고 호세가 마침내 공기 주입 부분의 펑크를 때우는데 성공했다.
"대단해!"라고 엄지 손가락을 그에게 치켜들자 그가 머리를 긁적이며 수줍어했다. '자동차 정비소라고 우습게 볼 게 아니구나.'
이제 안심이 된 채로 탄력적인 타이어를 만들기 위해 에어펌프기로 공기를 주입하는데…. 삐~익 파열음 소리가 나더니 터진 틈 사이로 공기가 속절없이 새어 나왔다. 기대가 컸던 만큼 망연자실할 수밖에. 적지 않은 공을 들였는데 그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것이 오히려 내가 더 아쉬웠다. 그때 호세는 지금까지 작업한 것을 다 뒤집어엎고 수리한 것을 다 떼낸 다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다.
튜브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점점 더 장인의 기운이 느껴지는 깊고 청명한 시선으로 변해 있었다. 주변은 오로지 변두리에 홀로 외로이 남은 정비소의 불빛만 빛나고 있을 뿐이다. 난 나트륨 불빛 아래에서 그의 일하는 모습을 보며 점점 그의 남다른 장인정신에 매료되고 있었다. 실패에 대해 전혀 불평하지 않고 문제점을 파악하고 고치려는 모습에 마음이 찡해진 것이다. 쉽게 지치고 쉽게 포기하는 나에겐 없는 모습이다. 작은 체구의 그가 크게 보이는 이유다.
드디어 만 한 시간만에 타이어 수리를 다 마쳤다. 이번엔 자동차에 쓰이는 전기 공구들까지 동원해가며 처음 것보다 훨씬 더 강도 높게 튜브의 펑크난 부분을 싸맸다. 바람을 살짝 넣고 귀를 대보니 잠잠하다. 여전히 신중한 그의 얼굴과는 대비적으로 난 마음으로 조심스레 성공의 싹을 틔웠다. 그리고 타이어를 자전거에 부착. 하지만 부착하는 동시에 또 바람이 새어 나왔다.
'이럴 수가…' 마치 끝내 환자를 살려내지 못한 드라마 속 의사처럼 입술을 깨물고는 잠시 동안 굳은 채로 서 있었다.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었다. 확실히 다른 부분도 아니고 공기 주입 부분은 전문가여도 버거워 보이는 게 확실하다. 그도 허탈했는지 웃으면서도 오히려 미안해 했다.
'아니 이런 당신이 왜 미안해 하는 거야?'
나는 진심으로 마음으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비록 타이어 수리는 실패했지만 그가 보여준 성실성에 깊이 탄복했기 때문이다.
"미안해요. 이건 나로서도 어쩔 수 없네요. 수리비는 받지 않겠습니다."
'후후, 웃기셔.'
능력 위주의 사회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능력 이외에 그 사람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도 얼마든지 함의되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어쩌면 애써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건지도.
호세는 수리 능력에서 최선을 다했음에도 실패했다. 하지만 난 그의 곁에서 그의 눈빛을 보았다. 그리고 문제해결을 위한 그의 손놀림과 발의 동선을 주시했다. 비록 결과는 실패였지만 난 결국 그의 성실성과 따뜻한 인간미가 그를 세상에서 승리케 하는 원동력이 될 거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수리비가 아녜요. 이건 내 마음입니다. 받아줘요."
그에게 5달러를 내밀었다. 멕시코 임금을 생각할 때 결코 싼 대가가 아니다. 하지만 난 이런 감동받기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는 손사래를 치며 거부했지만 한국사람 특징이 뭔가? 기어이 손에 쥐어주는 정. 난 그의 결과가 아닌 과정을 보고 기꺼이 대가를 지불했다. 대신 그가 부담되는 마음을 가지지 않게 그가 일하는 사무실에서 콜라 한 캔을 꺼내들었다.
"이 걸로도 충분합니다. 고마워요, 호세."
불빛 아래 비치는 호세의 웃는 모습이 너무 건강해 보여 좋다. 얼굴은 30대 같아 보이지만 분명 수리를 업으로 하는 청년일 것이다. 야밤에 힘들게 고생하는 것도 안쓰러운데. 일단 수리비부터 챙기고 보거나 과도한 수리비를 책정하는 것에 익숙한 우리 사회에서 보기 힘든 모습이라 가슴이 뭉클해졌다.
펑크 수리는 포기했고, 이미 새벽 2시가 넘었으므로 나는 극단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정비소에서 관리하는 RV 폐차에서 자기로 한 것이다. 호세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나마 쓸만해 보이는 RV로 들어갔다. 퀘퀘한 곰팡이 냄새가 진동하지만 최소한 밤이슬은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호세가 짐 나르는 걸 도와주었다. 양치질만 하고 옷도 그대로 입은 채 그냥 침대에 누웠다. 얼마나 비위생적인지 11월인데도 불구하고 모기들이 혈식(血食)하기 위해 바쁘게 날개를 비벼댄다. 게다가 찍찍대는 쥐소리까지. 내일 아침 독감에 걸린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장소다. 폐차에서 하룻밤. 단잠은 아니더라도 새우잠이라도 감사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파스칼의 팡세 #130에는 이런 얘기가 나온다. '만일 어떤 사람들이 자기의 노고에 대해 불평한다면, 어떤 일도 시키지 말고 내버려두면 된다.' 불평과 불만은 자신의 주도권을 이기적으로 가져갈 때 정의와 상충되는 갈등 현상이다. 하기 싫은 것을 성실함으로 하고 싶은 것을 당당함으로, 나를 위한 것을 겸손함으로 상대를 위한 것을 치열함으로.
호세의 작은 몸짓은 내 몸의 게으른 동토를 녹게 하는 한 마리 나비의 날갯짓이었다. 마치 펄럭펄럭 봄이 오는 소리를 전해주는 날갯짓에 새싹이 돋고, 꽃이 피며, 잠에서 깨어나는 울음소리가 들리듯이 말이다. 나의 날갯짓은 무엇을 위해야 하는 걸까. 혹시 나방의 날개가 되어 무모한 고집만 앞세우다 불빛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은 아닌가. 또 귀한 한 스승을 만났다는 만족감에 모기의 왱왱거리는 소리마저 어쩐지 익숙한 자장가 같다.
다음 날 아침. 통통 부은 얼굴로 차에서 내려와 보니 호세는 이미 퇴근하고 없었다. 하지만 그의 자리엔 여전히 지난 밤의 온기가 남아 있는 듯했다. '젊음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진리, 그것은 바로 최선이야'. 그가 머물던 자리에서 작은 속삭임이 귓전을 때리는 듯하다.
덧붙이는 글 | 강도 사건으로 카메라를 잃어버려 미국 여행 사진으로 등록시켰습니다.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는 http://www.vision-trip.net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