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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날이 시작됐다. 15일 낮 12시30분, 잠실종합운동장 제1수영장 2층 로비. 아슬아슬하게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집에선 1시간 전에 나왔지만, 이것저것 챙길 게 많다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번외편을 기대하시라). 일단, 본론으로 들어가자.


그렇게, 간단히, 난 반장이 됐다

 

출석을 부르려면 10분 정도 남았기에, 바닥에 앉았다. 멍하게 앉아 딴생각을 하는 찰나, 근처에서 들리는 대화 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반장, 안 왔어? 여자 반장, 전화 한 번 해봐. 전화 번호 있지?" 5분 여 뒤. "반장, 안 온다네요." 여자 반장이 말했다.


"이런, 그럼 반장 다시 뽑아야겠네. 명단 이리 좀 가져와 봐." 연배가 있어 보이는 한 강사, 서류철을 휙휙 뒤적이더니, 이내 입을 뗐다. 이곳 '반장 선출 시스템'(이것도 번외편을 기대하시라)을 어느 정도 알기에 사실 좀 신경이 쓰였다. '설마, 내가 뽑히지 않을까' 예측은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졌다. "이기자!(원래는 이름을 불렀다)"


강사는 너무나도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내 이름을 불렀다. "네"라고 답하며 손을 들자, 한 마디 더 곁든다. "그냥, 네가 반장해라." 그렇게, 간단히, 난 반장이 됐다. "반장, 좋은 게 아니냐"고 묻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학창 시절 '반장'이란 이름만으로 껌뻑 죽었던, 그 반장이 아니다. 반장이 주로 하는 일을 살펴보면 대강 이렇다.


일단 수강생들이 모이면 줄을 맞춘다. 주로 5~6열 종(縱)대, '오'와 '열'을 맞춰 자리에 앉힌다. 그리고 숫자를 센다. "하나, 둘, 셋, 넷,…(하략)." 다음으로 중요한 것, 돈 걷는 일이다. 입장료 6천원씩을 걷어 한데 모아 카운터에 한꺼번에 접수한다. 수영장 안에서도 반장이 하는 일은 비슷하다. 줄을 세우고, 숫자를 센다. 그것도 수업 시간 내내, 움직일 때마다 말이다. 반장에겐 철저하게 봉사하는 마음을 갖는 게 필수다. 문제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한 번 뽑히면 빼도 박도 못한다는 데 있다.


어쨌든, 오늘은 남자 반장으로서 수업을 시작했다. 이틀째 훈련이라 그런지, 의외로 훈련 진행 속도는 빨랐다. '체조반장'의 구령에 맞춰 간단히 몸을 푼 뒤, 곧바로 5m 풀로 입수. 앞서 영법에 대한 간단한 설명도 곁들여진다.

 

자, 지금부터는 몸 푸는 시간이다. 이쯤 되면, 슬슬 감이 오는 사람이 있을 거다. 수영을 배우는 사람이 몸 푸는 가장 좋은 운동은? 수영이다. 영법은 '자유형', '배영', '평영' 그리고 전날 배운 '횡영'이다. 횡영은 500m, 나머지 세 영법은 300m 씩이다. 합하면 모두 1400m다.


잘 감이 안 온다. 25m 풀로 다시 계산해보자. 한 번 갔다왔다하면 50m, 그럼 1400을 50으로 나누면 '28'이 나온다. 총 28번. 그냥 스물여덟 번만 왔다 갔다 하면 된다. "훗~"


 

모자를 받자, 가슴이 찡해졌다

 

몸을 푼 뒤, 풀장 근처에 다시 네모난 각을 잡고 앉았다. 몇 분 뒤, 강사 2~3명이 박스를 들고 왔다. "자~ 이거 하나씩 받으세요. 다음부터는 이걸 쓰고 하세요." 눈치 빠른 사람은, 느낌이 왔을 테다. 수영모자다. 그것도 적십자 마크인 빨간색 십자가와 검은색 글씨로 'KOREAN RED CROSS'라 적힌. 모자를 받자, 가슴이 찡해졌다. 왠지 뿌듯하다. 이제야 감이 온다. '그렇게 그리던 수상인명구조원 수업을 듣고 있구나.'
 

하지만, 아직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 모자에 새겨진 글씨에는 아직 '라이프가드(life guard)'가 없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어지는 강의. 오늘도 새로운 영법을 배웠다. 이름하야 '역가위차기'. 쉽게 말해, '횡영'의 반대라 생각하면 된다. 두 영법의 가장 큰 차이는 발의 위치다. '횡영'은 옆으로 누웠을 때 위에 있는 발이 앞으로 나가는 데 반해, '역가위차기'는 반대쪽 발이 앞을 향한다.

 

한쪽 팔은 귀 옆에 붙여 곧게 펴고, 반대쪽은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게 한다. 하늘을 향한 손, 이 손으로 물에 빠진 사람을 붙잡는다. 구체적인 설명은 여기까지만. 영법 간 미묘한 차이는 직접 배우길.


'그냥 발만 바꾸면 되겠지' 가볍게 넘겼다. 물 밖에서 발차기 연습을 한 뒤, 실전 연습을 위해 물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 몸이 따로 논다. 분명 머리는 제대로 명령을 내리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물이 잡히는 느낌이 전혀 없다. 앞으로도 잘 나가지 않았다. 잠깐 긴장을 풀면 평영 발차기로 변신해버렸다. 대여섯 바퀴 돌아봐도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 이내 절망감이 몰려든다. '나, 잘 할 수 있을까.'


헥헥대며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수강생을 보며 강사는 말했다. "처음 하는데 잘할 수 있나요. 못하는 게 당연하죠." 옆에 있던 연차 높은 강사가 거든다. "미취~인 듯이 도는 거야. 그러다보면 늘어."


사람 마음, 참 단순하다. 그 말 한 마디에, 기운이 불끈 샘솟는다. '나만 못하는 게 아니구나'라며 자기 최면을 걸기 시작한다. 그리곤 돈다. 그것도, '미췬듯이'.


속속 다른 구조 영법들과 첫 만남을 가졌다. '기본배영', '트러젠', '헤드업 자유형' 등. 놀라운 것은 '기본배영'이었다. 이름만 듣기엔, 흔히 보던 배영과 같아 보이는데 실제는 사뭇 다르다. 아니 많이 다르다.

 

'기본배영'은 우선 배를 하늘을 향하게 누워 벽을 차고 앞으로 나간다. 여기까지는 배영과 같다. 그리곤 숨을 크게 들이마셔 몸을 부풀리며, 겨드랑이를 딱 붙인 채 손을 배에서 가슴 쪽으로 쓸어 올린다. 명치 약간 위쪽까지 올라오면 양쪽으로 편다. 물론, 물 저항이 없게 손은 날 방향으로. 다음, 숨을 내쉬며, 양 손으로 물을 밀어내며 엉덩이에 바짝 붙이면 된다. 이때 다리는 평영킥. 무릎이 물 밖으로 나오지 않게 주의.


설명은 다소 복잡해보이지만, 직접 보면 굉장히 쉽다. 손을 휘휘 저으며 물에 둥둥 떠가는 영법이다.


다음으로 '트러젠'. 체육센터에서도 몇 번 해봤기에, 낯설지는 않았다. 팔은 자유형, 발은 자유형킥, 평형킥 두 종류가 있다. '아~ 그거'하는 사람들, 많을 것이다. 이 영법은 익수자(溺水者)를 바라보며, 빠르게 접근하는데 유리하다. 단점은 '졸' 힘들다는 것. 보기엔 시쳇말로 간지 좀 나지만, 체력 소모가 많다. 정성껏(?) 25m만 가도 허벅지가 욱신거린다. 금세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정말 조심스럽게 물에 들어간다

 

수업은 곧바로 입수법으로 이어졌다. 입수(入水), 말 그대로 '물에 들어가는 방법'이다. 무려 5가지나 됐다. '다리벌려들어가기', '다리모아들어가기', '다리모아굽혀들어가기', '머리먼저들어가기', '조심들어가기'. 이 가운데 가장 꽂히는 입수법은 단연 '조심들어가기'다.

 

정말 조심스럽게 물에 들어간다. 한발씩 조심스레, 몸을 담글 때도 혹시나 물이 튀지 않을까 걱정하듯 살며시. 이건 직접 보는 편이 낫다. 이해가 확실히 빠르다. 이유는 이렇다. 구조자가 입수할 때 생긴 물결 때문에 익수자가 다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깊은 뜻이 담겼다 하지만, 사실 조금 우스꽝스럽다. 이론 설명과 강사 시범 뒤, 종류별로 4~5차례 실전 훈련을 치렀다.


여기서 끝날 '라이프가드'가 아니다. 이제는 '수면다이빙'법이다. 이전은 물 밖에서 안으로 뛰어드는 다이빙이라면, 이번엔 물 안에서 익수자를 향해 뛰어드는 방법이다. '빠른수면다이빙', '수직다이빙', '다리먼저다이빙' 등 세 종류가 있다.

 

쉬운 이해를 위해 관련 그림을 찾아봤지만, 마땅한 게 없다. 관련 동영상은 몇 개 찾을 수 있으니, 궁금한 사람은 직접 '검색'하길. 친절한 네이버(naver)양, 다음(daum)군 등은 알고 있다. 직접 자격증에 도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어느새 오후 5시 30분. "자~ 모두들 입수!" 입영 시간이다. 수업이 끝나기 전, 항상 입영을 한다. 그냥 하기도 힘든데, 어제보다 강도가 더 세졌다. 이날 배운 구조 영법도 살짝 맛보기(?)로 연습했다. 심지어 어깨동무를 하기도 하고 입영으로 버티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 필사적으로 변한다. 모두들 죽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몸부림친다. 아비규환 속, 허벅지와 종아리는 처절한 발길질에 차여 멍이 든다.

 


그리고 기다리던 마지막 조회시간. 개인당 두 권씩 책을 나눠줬다. 대한적십자사에서 만든 '수상인명구조'와' 안전수영'이란 책이다. '참고하라고 준 걸까'했더니, 웬걸. 숙제다. "하루에 3장씩, 모두 6바닥, A4 크기 노트에 앞뒤로 빼곡히 채워서 내일까지 가져와라." 강사는 "숙제 안 해오면 실기 아무리 잘 해도 떨어져"라면서 "숙제 해온 것도 채점을 하는데, 어느 정도 점수를 받지 못하면 떨어진다"라고 했다.

 

숙제도 숙제지만, 책에 있는 내용은 앞으로 치를 필기시험을 위한 대비라 소홀히 할 수 없다. 지금 시각, 새벽 2시33분. 숙제는? 아직, 손도 안 댔다. 이래서 연재는 할 수 있을까. 앞으로가 걱정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블로그(goster.egloo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수상인명구조원, #라이프가드, #대한적십자사, #도전 이기자, #역가위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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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는 내가 밉습니다. 화가 나도 속으로만 삭여야 하는 내가 너무나 바보 같습니다. 돈이, 백이, 직장이 뭔데, 사람을 이리 비참하게 만드는 지 정말 화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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