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처한 상황에서 손 내민 학교 선생님 우리는 다시 나인을 출발, 아나락(Anarak)이라는 작은 마을의 시골학교 교실에서 하룻밤 신세를 졌다. 책상도 의자도 없는 회색 콘크리트 바닥의 초라한 교실. 칠판 위로는, 이란 이슬람 혁명의 지도자 호메이니와 그의 사후 계승자로, 지금껏 이란의 최고 지도자로 군림해 오고 있는 하메네이와, 개혁파 대통령 하타미의 사진이 걸려있다. (참고로 이 때가 2004년 4월이었다.)
해가 질 무렵 도착한 작은 마을 아나락, 우리는 다시 하룻밤을 묵어갈 모스크를 찾아야 했다. 사실 모스크를 찾는 일은 그리 힘들지 않았으나 우리의 짐들을 선뜻 풀 마음이 나지 않을 만큼 그들이 내어주는 공간은 허름했다. 무엇보다 안전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에 선뜻 짐을 풀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해는 지는데 우리를 구경하겠다는 사람들은 점점 더 모여들고, 정말 처지가 난처한 상황에서 한 분의 학교 선생님이 나타나 따뜻한 손길을 내밀었다.
끝없이 이어진 오르막 같지 않은 오르막 여담인데, 지금 이 교실에 걸려 있는 사진들 속 최고 종교 지도자들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고 나면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이란의 최고 권력은 종교의 최고지도자에게 부여된다. 최고 지도자는 장관들이나 군 인사는 물론, 심지어 대통령까지 인준, 해임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고, 임기는 종신직으로 사망 또는 직무가 불가능 할 때까지 제한이 없다. 또 엄격한 종교 국가이다 보니 이슬람법에 위배되는 법률은 제정할 수도 없고, 모든 자유는 이슬람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 한에서만 인정이 된다고 한다. 얼마 후 어디에서 가지고 온 것인지, 아까 우리를 이곳으로 데리고 왔던 선생님이 들고 온 커다란 페르시안 카펫 두 장이 교실 바닥에 깔리자, 초라했던 교실은 순식간에 근사한 숙소로 탈바꿈했다. 일단 잠잘 준비를 마친 후엔 이곳 학교 직원의 오토바이를 빌려 타고 마을을 누비며 저녁 찬거리를 사와서 수제비와 계란찜을 해먹었다. 그리고 그 넓은 교실을 마치 우리 방처럼 편히 사용했다. 그런데 밤이 되자, 그 선생님은 어머니와 동생들, 아내와 아이들까지 대동하고 다시 나타났다. 아마 식구들에게 우리를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식구들과 한명 한명 인사를 나누었던 그 짧은 시간, 호기심 반 어색함 반이 섞인, 하지만 기분 좋은 분위기가 흘렀다. 그리고 선생님은 다음 날 우리가 도착하게 될 약 90km 가량 떨어진 마을에 있는 학교에 미리 전화를 해 놓겠다는 약속까지 해주셨다. 다음날 아침 6시, 아이들이 학교에 오기 전 우리는 교실을 떠나야 했기에, 이른 시각 선생님의 배웅을 받으며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든 아나락을 떠났다. 이른 아침시간 마을이 끝나는 곳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한참을 따라 나오셨던 그 털복숭이 선생님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란을 자전거로 여행하면서부터, 영아는 이곳 이란에서 살고 싶다는 얘기를 자주 하곤 한다. 이 광활하고 멋진 풍경에 마음을 빼앗긴 것 같다. 이후 우리는 오래된 노래 '바람아 멈추어다오'를 연신 흥얼거리며 달리고 또 달렸다. 이렇듯 아침에 한번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는 하루 종일 흥얼거리게 된다. 오늘 우리가 도착해야할 지점인 추파난(Chupanan)까지는 약 90킬로미터다. 처음부터 오르막에 걸렸는지 거리가 도통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사실, 산이 아니라 고원이기 때문에 오르막 같지 않은 오르막이 끝없이 이어졌다.
늘 제자리인 것 같지만 돌아보면 훌쩍 앞에 와있는 게 인생
이러한 광활한 지역에서는 사방의 70km 정도까지가 시야에 들어오기 때문에, 앞을 보고 달리면 가도 가도 제자리인 듯한 느낌이 든다. 아침에 시작할 때 보았던 저만큼의 거리를 하루 종일 달려도 도달하지 못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분명 눈에 보이는 곳인데 이렇게 멀단 말인가? 이렇게 자전거를 타는 것 자체가 힘들어 지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여러 상념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사람 사는 것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까?" 늘 사는 것이 똑같고, 늘 제자리인 것만 같고,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어쩔 땐 오히려 퇴보하는 느낌도 들지만, 실상은 지금처럼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고개를 들어 달려온 길을 돌아보면 어느새 훌쩍 앞으로 나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머리를 땅에 처박고 아무 생각 없이 페달을 밟았다. 멈추지만 않으면 된다. 어찌 되었건 멈추지만 않으면 자전거는 앞으로 나간다. 나가지 않는다고 조바심 낼 필요도 없고, 많이 나아갔다고 자만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때로는 쉬어 가고 때로는 끌고 가고, 빠르든 느리든 멈추지만 않으면 자전거는 간다. "인생에 비유하면 페달을 멈추는 건 죽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가는 것이 나의 몫이고, 그 순간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만 다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지나온 길! 잘 살았다, 못 살았다"의 판단 결과는 사람들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죽는 순간 내가 내리는 것이라는 기준만 있으면 된다. 이런 저런 상념 속에서 페달만 밟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주위의 아름다운 경치가 육체의 고통을 잊게 해 준다는 것이다. 갑자기 앞서 가던 영아가 뒤돌아보면서 말을 건넨다. "이곳의 기후나 지형을 봤을 때,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은 신을 믿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아." 이러한 자연의 광대함 앞에서 두려움을 떨쳐버리기 위해선, 신의 존재를 생각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 사람들은 의지의 대상이 필요했을 것이다.
글쎄, 한 놈의 트럭 기사 녀석이… 영아가 말한다. 점점 더 이란이 좋아 진다고. 처음엔 나갈 때마다 머리에 스카프를 뒤집어 써야 하고, 무엇 하나 하려고 해도 너무 조심스러워서 정나미가 뚝뚝 떨어졌는데 지금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이 나라가 너무너무 좋아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점점 이란이란 나라에, 페르시아의 문화에 빠져 들고 있다. 알면 알수록, 경험하면 경험할수록 새로운 이란의 진면목을 보게 되는 것 같다. 그냥 일반적으로 바깥 세상에 알려진, 이란의 편협한 정보만을 놓고 이란을 판단해서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이슬람 원리 주의의 나라, 미국에 의해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테러 국가로만 지목되어 알려진 나라 이란. 과연 그럴까? 우리는 입을 모았다.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말이다. 40km 넘어서고 나서부터, 우리는 엄청난 바람을 만났다. 다행히 맞바람은 아니지만, 동에서 불어오며 우리의 자전거 우측을 맞받아치는 바람 때문에, 내리막길에서도 속도가 나질 않았다. 자전거가 휘청휘청할 만큼 심한 바람이다. 자전거에 돛을 단다면 아마 날아가 버릴 것이다. 귓전을 때리는 바람의 윙윙거림 외에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 엄청난 바람 속을 뚫고 50km를 달려야 했다. 사실 말이 자전거를 탄다는 거지, 거의 걷는 것과 똑같은 속도로 이동을 했다. 이 구간을 지나면서 녹음기에 목소리를 녹음했지만, 바람소리 때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천둥 번개조차 한 번도 무섭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건만, 이놈의 바람은 가히 공포의 대상이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특히나, 이런 바람을 막아줄 게 아무것도 없는 허허 벌판, 사막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나마 모래폭풍이 아닌 게 천만 다행이다. 아직도 50km를 더 주행해야 하는데, 이 엄청난 바람이 불어대는 광활한 지대는 어디가 끝인지 모를 정도로 끝없이 뻗어있다. 그런 바람이 끝날 무렵, 웃을 수 없는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다. 한 놈의 트럭 기사 녀석이 영아와 나와의 간격을 이용해, 영아에게 몹쓸 짓을 하고 달아난 것이다. 1초 정도쯤, 심각한 건 아니었다. 워낙 차량의 왕래가 드문 곳이기에 저기 저 앞쪽으로 트럭 한 대가 멈춰 설 때 이미 느낌이 좀 이상하긴 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건데 나 또한 뜨거운 햇빛을 가리느라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 우린 둘 다 여자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먼저 그 트럭을 지나칠 무렵엔 밖에 나와 있던 트럭 기사와 직접 눈이 맞았고, 그는 차량을 정비하는 척 했기에 난 그저 그 트럭이 고장 난 것으로만 생각하고 지나쳤다. 심지어 서로 인사까지 건넸다. 내 뒤에 오던 영아와의 간격은 약 30미터 정도였다. 내가 먼저 그곳을 지나친 잠시 후 꺄악 하는 영아의 비명소리가 황량한 공기를 가로질렀다. 나는 반사적으로 자전거를 팽개치고 스프링이 튀어 나가듯 녀석을 향해 돌진했다. 순간, 적잖게 떨어진 거리였지만 허둥대며 차로 돌아가는 녀석의 뒷모습이 보였다. 차에 시동조차 꺼놓지 않았는지 트럭은 순식간에 출발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달려오는 나를 정면에서 깔아뭉개려는 듯 덤프트럭 핸들을 확 꺾어 내 쪽으로 돌진해 오는 바람에 하마터면 맘모스 같은 트럭에 깔릴 뻔 했다. 그러는 와중에 조수석을 살펴보니 다른 여자가 타고 있는 게 아닌가? 그걸 지켜보고 있었다니. 우리는 둘 다 할 말을 잃었다. 얼마 전 만난 여자 여행자를 통해 거리에서 몸을 더듬는 치한의 옆에 그의 와이프도 버젓이 있었다는 피해 당사자의 얘기를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아무리 문화가 다르다고는 하지만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이 모든 것이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들이라 길옆에 있던 '짱돌'을 주워들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한 게 너무 후회가 된다. 유리를 깨버리고 달려오는 차를 세웠어야 했는데…. 총이 있었더라면 돌진해 오는 녀석을 그대로 쏴 버리는 거였는데…. 똥 밟은 셈 치고 잊어버리려고 했지만 은근히 약이 오르고 자꾸 화가 난다. 다시 만나게 되면 죽을 줄 알라! 영아는 국이의 싸움 실력을, 한번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면서 아쉬워했다.
영아가 말했다. "이란 사람이 아닐지도 몰라. 워낙 아프칸이나 파키스탄 등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이란에 많이 들어와 있으니까." 이란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기대를 깨트리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여하튼 다음부턴 더 조심해야 할 것이다.
저 멀리 카비르 사막이 보인다. 저 모래바람 속을 과연 자전거로 가로지를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엄청난 바람 한가운데로, 저 뿌옇게 보이는 사막 안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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