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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예슬이가 용돈을 더 달라고 합니다. 정해진 용돈을 벌써 써버렸다고 하면서. 어디에 썼냐고 물어보면 늘 똑같은 답입니다. “까먹었다”고 한 마디로 정리합니다. 뭘 사먹었냐고 물어보면 또 “불량식품을 사먹었다”고 합니다. 학교 앞에서 파는 값싼 군것질거리를 그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불량식품’이란 말에 두 말 없이 용돈을 더 줍니다. 필요하면 더 줄 테니 너무 값싼 것은 사먹지 말라는 말도 덧붙입니다. 그러면 아이는 덥석 돈을 받으며 고맙다고 인사를 합니다.


불량식품. 참 정겨운 단어입니다. 돈이 궁했던 시절, 아니 용돈이 없던 시절에 불량식품은 언제나 군침을 돌게 했습니다. 불량식품을 사먹는 대신 집에서 할 수 있는 게 ‘띠기(뽑기)’ 였습니다. 설탕 과자에다 별이나 모자 모양의 틀을 '꾸-욱' 찍은 다음 그 틀을 부러뜨리지 않고 모양대로 떼어 내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집에서 띠기를 했다가 까맣게 태운 국자 때문에 엄마한테 혼났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당시는 설탕도 명절 선물로 들어올 정도로 귀했습니다. 설탕을 함부로 쓰고 게다가 국자까지 태웠으니 혼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했었습니다.


어릴 적 추억은 아마도 불량식품이 있었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유치하지만 색깔만은 예쁜, 그래서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그 불량식품 말입니다.

 

 

불량식품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꼽히는 띠기를 하러 담양에 있는 송학민속체험박물관엘 또 갔습니다. 슬비와 예슬이는 박물관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띠기 하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슬비가 먼저 국자를 하나 들고 설탕을 두 숟가락 넣고 나무젓가락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연탄불에 올려놓고 젓기를 되풀이했습니다. 예슬이도 금세 따라서 설탕이 들어 있는 국자를 들고 언니가 앉아 있던 통나무 의자에 엉덩이를 들이밀었습니다.


잠시 후 국자 안에 있던 설탕이 녹기 시작했습니다. 하얗던 설탕이 금세 갈색 액체로 변했습니다.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옆에 놓여 있던 소다를 나무젓가락에 살짝 묻혀 넣고 다시 저었습니다. 순간 갈색 액체는 부글부글 끓어올랐습니다.


슬비가 잽싸게 자세를 돌려 옆에 있던 쟁반에 부었습니다. 쟁반에는 설탕이 뿌려져 있어 달라붙지 않았습니다. 그 위에 설탕을 조금 더 뿌리고 말 모양의 금형을 놓고 둥근 모양의 틀로 눌렀습니다. 예슬이는 별 모양을 찍었습니다. “성공!” 둘의 목소리가 하나 되어 터져 나왔습니다. 말 모양과 별 모양을 예쁘게 떼어낸 것입니다.

 

 

슬비와 예슬이의 손놀림은 띠기를 거듭할수록 민첩해졌습니다. 설탕을 녹이는 시간도 훨씬 빨라졌습니다. 한편으로는 으스대기도 합니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라는 게 여기서도 통용되는 말이었습니다. 예슬이가 소다를 너무 많이 넣은 모양입니다. 예슬이가 만든 띠기의 맛이 너무 씁쓰름했습니다. 오징어 모양이 깨지기도 했습니다.


둘의 띠기 체험은 시간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열 번도 더 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몰려들어 띠기 체험장이 번잡하다 싶으면 잠시 자리를 벗어나 붕어빵 만들기를 했습니다. 띠기를 하고 붕어빵 만들기를 하고, 또 띠기 하고 붕어빵 만들고. 양쪽이 다 복잡하면 매점에서 쫀드기 같은 추억의 불량식품을 사다가 구워먹고….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불량식품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불량식품을 좋아하는 게 아이들의 ‘사명’인가 봅니다. 어릴 적 제가 그랬던 것처럼, 슬비와 예슬이도 띠기를 하고 쫀드기를 먹으면서 동심이 토실토실 여물고 소중한 추억도 차곡차곡 쌓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훗날 띠기를 하고, 붕어빵을 만들고, 쫀드기를 사먹던 그 때를 떠올리며 얼굴에 잔잔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그래서 더 행복한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저도 불량식품을 먹던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하면 입가에 웃음이 감도니까요.

 

오감으로 체험하는 송학민속체험박물관


추월산 자락, 전라남도 담양군 금성면에 자리하고 있는 송학민속체험박물관은 기존 박물관이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단박에 깨버립니다. 우리 조상들의 생활 모습과 유물을 한꺼번에 보는 것은 물론 모든 전시품을 손으로 만져 보고 두드려 보며 오감으로 느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윷놀이·널뛰기·투호 등 전통의 체험거리도 널려 있습니다. 굴렁쇠를 굴리며 박물관을 한 바퀴 도는 것도 재밌습니다.

 

전시품도 모두 손으로 만져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박물관과 달리 유리관이 따로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선조들이 입었던 옷을 입고 대감모와 삿갓도 써볼 수 있습니다. 목판 인쇄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재현된 1950∼1960년대 초등학교 교실에선 당시 교과서를 뒤적이며 지금의 책과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풍금 연주도 묘미를 더해줍니다.

 

짚신을 만들 때 썼던 신꼴과 다식판·대나무자·반닫이 등 전통 민속품도 널려 있습니다. 모두 우리 조상들의 삶과 지혜가 묻어나는 것들입니다.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만져 보는 아이들을 지켜보던 부모들도 가난하고 불편했던 그 때 그 시절을 떠올리며 그리움으로 채색됩니다.

 


태그:#띠기, #송학민속체험박물관, #슬비, #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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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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