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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8일 저녁 7시쯤 나는 강화도로 들어가는 초지대교를 건너 오마이스쿨로 향해야 했는데, 그 시간에 내가 사는 강원도 화천에서 손님맞이를 하고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시민기자 기초 교육 18~20일까지)을 신청해 놓고, 소풍 가는 어린애처럼 하루하루 손꼽아 이날을 기다려왔는데 예고 없는 손님들의 방문으로 그만 교육을 취소하고 다음으로 미루게 되었다.
 
화천 산천어축제가 절정이다 보니 지인들도 산천어축제에 관심이 집중된 걸 알 수 있다. 산천어축제도 참여해 보고 내 집도 방문할 겸 서울에서 두 가족이 놀러 왔다. 강화로 향해야 할 나의 준비물 가방은 장롱 속으로 몸을 숨겨야 했다. 할 수 없이 오마이스쿨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죄송하다는 인사와 함께 다음을 약속했다.
 
나는 강화가 고향이고 지금도 부모님이 강화에 사신다. 마침 20일엔 친정어머님 생신이셔서 시민기자 기초교육을 받고 친정집으로가 부모님과 형제들 만날 생각에 부풀어 있었는데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다음 기회에 꼭 가겠노라고 약속을 했지만 마음은 온통 오마이스쿨에 가 있었다.
 
'에구, 속상해라… 하필이면 이런 날 오시면 나는 어떡하라구'하면서 속마음은 편치가 않았다. 하지만 산골집을 찾아오신 분들에게 속마음을 드러내진 않았다.
 
'기회는 분명히 또 있을 거야, 오늘은 우리 집을 찾아오신 분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거야'라고 자신을 추스르고 손님 치를 준비했다. 다행히 손님들은 18일 저녁만 우리 집에서 주무시고 다음 날 서울에서 오는 일행들과 합류할 것이라고 하셨다.
 
'오호, 애재라' 마침 20일 친정어머님 생신에는 갈 수 있게 되었다는 안도감이 생기면서 모처럼 찾아오신 손님들에겐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18일 저녁 손님들과 산골의 적막을 깨며 오순도순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19일 아침 손님들은 산천어축제장으로 향하고 남편과 나는 강화를 향해 차를 몰았다.
 
교육은 취소했지만 어느새 나의 발걸음은 친정집보다 우선으로 오마이스쿨을 향하고 있었다. 교문을 들어서기 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학교'와 '신성초등학교' 현판이 마치 다정한 친구가 나란히 서서 손님을 반겨 주는 것 같아 여간 기분이 좋은 게 아니었다.
 
학교마당에 들어서니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와 비슷한 분위기가 밀려와 모교를 찾아온 듯했다. 내가 학교마당을 서성이며 교육을 못 받는 서운함을 달래고 있는데, 아마도 교육생들처럼 보이는 분들이 휴식시간인 듯 삼삼오오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나, 오늘 교육 신청해 놓은 사람 맞아?"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조용한 학교마당을 한참 동안 서성거렸다.
 
인연이랄까? 나의 고향에 오마이스쿨이 개교된 것이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리모델링 해놓은 학교 앞의 세종대왕상과 이순신 장군상이 어린이들의 존경의 대상이 되어 꿈을 키우게 하는 상징으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음이 확연히 드러나 있었다. 이제 시민기자들 평생교육의 장으로 새롭게 거듭나는 학교의 동상들은 여전히 나라 사랑과 배움의 끈을 놓지 말고 지혜로운 삶을 살라고 무언의 암시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주먹구구식으로 기사를 쓸 게 아니라 교육을 제대로 받아, 기사 한 가지를 올리더라도 정확한 사실과 나의 사는이야기를 올려보고 싶다는 희망으로 교육에 임하려고 했지만 무산이 되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억지가 따르면 부작용이 따르게 마련이니 다음 기회에 꼭 받아 보자고 다짐을 하고 친정집으로 발길을 향했다. 넙성리는 고향집과 30분 거리에 있지만 왕래를 하지 않았던 동네라 친정집으로 가는 길을 동네 분들에게 물어보았다.
 
고향땅을 밟으면 마치 센서등이 작동하듯 사투리가 나온다. 오두리 종점에서 마실가시는 아주머니에게 달려가 "아주머니, 하점면으로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니꺄?"라고 여쭈었더니 그 아주머님이 방향은 안 가르쳐 주시고 "여기 사람 같은데 하점면 가는 길도 모르니꺄?"라고 오히려 되물으신다.
 
나는 웃으며 "저는 여기 살지는 않지만 고향이 강화예요"라고 했더니, 아주머니도 웃으시면서 "말투가 강화 사람 같다"며 길을 가르쳐 주셨다.
 
다음에 교육을 받으러 갈 때 길을 찾는 수고를 덜기도 할 겸, 오마이스쿨 답사하는 마음으로 찾았던 나는, 사람은 항상 배움을 향해 문호를 개방해야 하고 구체적인 꿈을 세워 실천하는 게 나이를 잊고 젊게 살아갈 수 있는 비결임을 깨닫고 돌아오게 되었다.
 
친정집으로 향하는 해안가에는 철새들의 무리가 차를 세워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우리의 향연을 구경하라고 하는 듯이 멋진 장관을 연출해 내고 있었다.

태그:#오마이스쿨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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