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앞바다 기름유출사고가 난 것은 지난해 12월 7일. 지금까지 수십만 명의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일정부분 복구되었지만 기름유출사고로 생계가 막막해진 태안군과 인근 주민들의 고통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정부의 생계대책에 항의하면서 3명의 소중한 인명을 잃고 난 뒤에야 정부와 충남도는 부랴부랴 긴급지원을 서두르고 있다. 특히 비난여론이 급등하자 충남도는 21일, 정부 지원금 300억원과 성금 180억원, 충남도 예비비 등 100억원 등 모두 580억여원을 태안군 등 6개 지자체에 배분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책임을 중앙정부로 떠넘기는 구태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 긴급지원금과 관련해 언론도 정부와 충남도, 그리고 삼성중공업 등을 난타하고 있지만 이는 무책임한 양비론에 불과할 뿐이다. 문제의 본질을 비껴가고 결국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양비론을 언론이 내놓고 있는 것이다. 죽어간 태안주민사건에 대해 언론 역시 비난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다. 시시비비를 가려보자. 이번 기름유출사고가 나자마자 중앙정부는 태안 인근지역을 재해지역으로 선포하고 긴급지원금 300억원을 충남도에 내려 보냈다. 그리고 전국에서 국민성금이 답지했고 이 돈도 충남도가 보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긴급지원금을 그야말로 긴급하게 지출했어야 할 주체는 다름아닌 충남도다. 충남도는 해양수산부에서 300억원을 더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푼돈이 될 수밖에 없는 긴급지원금을 지출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이는 변명과 핑계에 불과하다. 긴급지원금은 그야말로 주민생계를 위해 긴급하게 지출해야 할 돈이지 그 돈을 목돈을 만들어서 줄 만큼 한가하게 지출해도 좋을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오늘 방출된 지원금도 각 군별로, 또 면별로 어떤 기준을 세워 지원해야할지 몰라 심사위원들 마음대로 지원한다고 한다. 이로 인해 주민들 사이에 지원금을 놓고 분열적 투쟁양상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하는데 비상시를 대비해 주민생계지원에 대한 기준도 없는 지자체가 자치능력을 가지고 있긴 한 것인지 한심스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생계지원금이라면 피해규모와 관계없이 최소한의 생계를 할 수 있는 수준의 지원이지 피해주민 모두가 피해보상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성격이라거나 규모가 아니지 않은가. 그런 기준조차 없이 국민세금을 그간 공직자들이 축내고 있었다니 할 말을 잃을 지경이다. 결국 이번 주민 긴급지원금지출과 관련해 3명의 주민이 피의 절규를 한 끝에 부랴부랴 지원금이 방출되었으니 충남도의 안이한 행정태도는 비난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 특히 한나라당 소속 이완구 충남도지사의 경우, 이미 받은 정부예산을 지출함으로써 당장 주민생계를 보호하는 일은 아랑곳 않고 중앙정부와 지원예산액 줄다리기나 하고 있고, 문제가 되자 모든 책임을 정부 탓으로 돌리는 구태를 보여 주었다. 해마다 닥쳐오는 각종 재해 앞에 이렇게 되풀이되는 관료주의적 엉터리 대책을 보면, 이 나라가 정말 선진화를 떠들어도 좋은 나라인지 알 수가 없다. 문제는 책임을 묻는 우리사회구조의 허술함이다. 특정인과 집단에게 본질적 책임을 묻는 것 대신 모두를 싸잡아 비난하고 넘어가는 양비론이 되풀이되는 인재를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태안앞바다 기름유출사고의 진위는 검찰과 법원이 가려낼 문제라 하더라도 당장 시급한 주민생계를 나몰라라 방치한 충남도 이완구 도지사의 구태의연한 태도가 주민 3명의 자살과 인과관계에 있다는 점을 어느 누구도 특정해 지적하지 않고 있다. 때마침 사고가 난지 50여일 만에 삼성중공업이 사과문을 발표한다고 한다. 그러나 삼성도 삼성이지만 그간 긴급지원금을 충남도에 꽁꽁 묶어둠으로써 3명의 주민자살에 일정한 책임이 있는 충남도와 이완구 지사의 책임 역시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 그리고 이완구 지사가 소속한 한나라당도 책임정치 운운을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정부로 쏟아지는 비난여론 뒤에 숨어 아무책임질 일이 없다는 행태를 버리고 당당하게 사죄함으로써 책임정치를 구현해야 한다. 문제원인에 대한 본질적 접근보다 늘 눈치보기식 정략으로 일관한 정치세력들의 문제가 이번에는 한나라당과 이완구 충남도지사를 통해 드러났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밝혀야 우리가 선진화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국민이 현명하면 정치인과 행정관료들을 종으로 부려 먹을 수 있지만 국민이 아둔하면 오히려 그들의 종이 된다는 민주정치의 원리를 다시한번 생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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