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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증평 오일장은 현대식으로 단장되어 있다. 길이로 길게 이어진 시장은 지붕이 있어 비가 와도 눈이 와도 걱정이 없다. 그러나 현대식이라고 마트나 슈퍼마켓처럼 단조롭기만 한 건 아니다. 거기에는 몇 십 년 된 방앗간도 있고, 목공소도 있다.

 

또 하나 그곳에는 전통 대장간이 있다. 길게 이어진 시장이 끝나는 지점, 오른쪽 골목으로 다섯 발자국만 걸으면 왼쪽 작은 골목에 대장간을 알리는 표시가 화살표와 함께 나타난다. '대장간, 칼갈음' 나무에 쓴 글씨가 제법 또렷하여 범상치 않음이 느껴진다. 별거 아닐 것 같은 대장간을 이렇게나 확실하게 광고하다니?

 

그러나 대장간에 들어서면 생각은 180도 달라진다. 문을 열자마자 반대편 벽에 빼곡히 걸려 있는 삼국시대 칠지도를 비롯한 무기류들.

 

요즘 시대 전혀 돈 될 것 같지 않은 삼국시대 무기류를 재연한 사람은 대장간 주인 최용진님. 그는 삼국시대 무기류, 전통도구 등을 재연할 수 있는 장인으로 전국 최초 대장간 분야 기능전승자이며, 무쇠를 진흙보다 쉽게 다루는 쇠의 달인이다.

 

그뿐 아니다. 연장 및 각종 도구 200여 점과 창, 칼, 장검, 단검 등 무기류. 낫, 호미 등 농기구류와 각종 생활도구 및 건축도구, 석공도구 등 쇠로 된 모든 것들을 만들어 전시하고 있어 평상시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잦다.

 

특히 전통 5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수십 년 단골손님들의 집합소가 된단다.

 

 

내가 찾은 16일도 마침 증평 장날, 어김없이 엇비슷한 어른들이 최용진님의 일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최용진님은 내가 이것저것 묻자 제대로 포즈를 잡아 주면서, 요즘은 실내에 장식품으로 내놓을 소품을 만든다며 보여 주었다.

 

소품은 보통 대장간에서 만드는 가위, 칼, 등을 삼태기나 키에 꽂아 장식해 놓은 것. 거실이나 현관에 걸어 놓아 농사를 모르는 아이들에게 보여 주면 좋을 듯했다.

 

증평군이 속한 충청북도는 예로부터 철의 고장이었다고 한다. 증평군과 인접한 진천이 백제 때부터 철 생산지로 유명하였으며 고려 우왕 3년(1377),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을 간행하기 위해 만든 세계최초 금속 활자본이 제작된 곳도 증평군 옆의 청주라고 한다.

 

이처럼 증평군은 예로부터 인근지역에 발달한 철기문화권에 속한 지역으로 5세기 후반부터 6세기 중반까지 백제, 고구려, 신라 등 삼국의 세력이 교차하는 전략적 접경지였다고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증평에서 무기를 재연하는 것도 지역적인 특성과 무관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이런 역사적 사실이 있어 여태껏 대장간이 현존하고 있는 것일까? 시골에서 태어난 나도 대장간이라면 기껏 근육질의 남자가 쇠 먼지를 뒤집어쓰고 망치질하는 것과 뜨거운 불 앞에서 풀무질하는 걸 본 게 다였다. 더구나 그곳은 남자들의 영역이었다. 결코 만만치 않은 모습들이 떠올라 그동안 궁금했던 점들을 물어보았다.

 

"대장간 하시면서 하기 싫은 적은 없으셨나요? 너무 힘들거나 해서요."
"물론 그런 적도 조금 있긴 했지만 난 이 일이 쉬웠어요."
"쉬웠다구요?"
"잘 살다가 집안이 망해서 국민학교 졸업하구 중학교에도 갈 수가 없었거든여. 그러니 뭐 안 해 본 일 없이 다 해 봤는데, 이 일이 제일 쉬웠어요. 그래서 40년 넘게 이 일을 했지요."

 

지금이야 소품 정도나 만들고 그나마 잘 알려져 그렇다지만 이 일이 제일 쉬웠다고 하는 그의 말에 막노동꾼에서 명문대를 간 어떤 젊은이의 말이 떠올랐다.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는.

 

공부든 일이든 자기가 하는 것이 제일 쉽다는 것은 즉, 자기가 하고 있는 것에 통달했다는 뜻이다. 바로 신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다.

 

"요즘은 말예요. 대장간이 다 문을 닫았어요. 그래서 난 더 바쁘지요. 대장간이 없다 보니까, 전화로 주문을 하고 택배로 보내주거든요."

 

그의 말처럼 6평 남짓한 공간은 그가 만든 공구들로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였다. 표창장도 있었고, 대장간을 지키는 멍멍이도 주인 노릇을 단단히 하고 있었다. 멍멍이는 나를 보고 자꾸 험악한 표정을 짓기에 모델 사진 하나 찍어 줄까, 하면서 카메라를 들이대니 수줍었는지 꽁무니를 빼면서 바닥에 진열돼 있던 농기구 속으로 슬그머니 들어가 버린다.

 

옛날로 따지면 힘든 일, 또 대우받지 못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최용진님은 꿋꿋하게 지켜왔다. 그의 표정이나 행동에는 자신만만한 기상이 엿보였다. 이름이 났어도 보통은 사진 찍히기 싫어해 굳은 표정을 보이기 일쑤인데 그는 아니었다.

 

대장간을 나오면서도 마음이 아주 가벼웠다. 기술을 예술로 승화시킨 아주 멋진 프로구나, 라는 생각에 눈앞이 환하게 밝아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어두운 실내를 약간 뒤뚱거리며 걷던 그를 떠올리자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신 헤파이스토스가 생각났다.

 

헤파이스토스는 절름발이로 그의 외모 때문에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았지만 대장장이로 키워졌고, 대장간을 신들의 궁전으로 만들어 온갖 장신구나 무기를 만들었던 불의 신이다. 사회적 편견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일에 자긍심을 갖고 일하는 사람이야말로 살아있는 신이 아닌가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덧붙이는 글 | 최용진씨는 당당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제게 명함을 주면서 전화번호(증평 대장간, 011-278-4501)를 꼭 실어 달라고 부탁까지 했습니다. 

증평 오일장은 1일과 6일에 열립니다.


태그:#증평 대장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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