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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삼국지 1-10권
 황석영 삼국지 1-10권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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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헌아! 아니 막둥아!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구나. 왠지 너만 보면 마음이 아프다. 아직 글도 잘 모르고, 수학 계산하는 방법도 잘 모르고. 다른 동무들보다 키도 작아 학교에 들어가서 동무들과 잘 어울려 놀 수 있을지 아빠는 걱정이 많다.

하지만 우리 막둥이는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선교원 다닐 때보다는 더 많은 동무들을 만나게 되고, 전혀 다른 세상이 네 앞에 펼쳐질 것이다.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상은 두려움이지만 또 다른 도전이다. 사람을 새로운 도전을 통하여 배우고, 자란다. 어려운 도전이지만 막둥이는 분명 이기고 나갈 것이다.

체헌아! 새로운 세상이란 선생님, 학교, 동무들만이 아니라 책을 통해서도 만날 수 있다. 책은 사람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고, 사회와 공동체를 알게 하는 중요한 배움터다. 책은 어떤 것보다 중요한 가르침을 준다.

체헌이에게 아빠가 읽는 책 중에 <삼국지>라는 책이 있어 소개한다. 아직 너는 읽을 수 없는 책이지만 언젠가는 읽어야 할 좋은 책이다. <삼국지>는 1800년 전 중국에서 일어났던 역사 이야기이므로 체헌이의 시간 개념으로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이라 할까? 하여튼 오래된 역사 이야기다.

약 1800년 전 중국은 한나라였다. 나라 이름은 새로운 왕조가 탄생하면 바뀐다. 우리나라에 고구려․백제․신라․고려․조선이 있었듯이 말이다. 옛날에는 황제가 나라를 다스렸다. 요즘은 대통령은 국민들이 선거로 뽑지, 얼마 전 이명박씨가 우리나라 대통령으로 뽑혔다. 지금은 노무현 대통령이지만 한 달 후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될 것이다.

하지만 한나라는 선거가 아니라 조금 어려운 말로 하면 '세습'으로 황제가 되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황제 자리를 물려주었다. 황제는 '천자'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늘이 세우신 분이므로 모든 백성들은 충성을 다했다. 지금 대통령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강력한 힘을 가졌던 황제지만 시간이 흐르면 황제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이 황제가 되는 꿈을 꾸었다. <삼국지>는 바로 새로운 황제가 되기 위한 사람들이 싸웠던 역사 이야기다.

황제가 되기 위하여 꿈을 꾸었던 사람들이 조조․손권․유비였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황제가 되기를 원했지만 삼국지에 나오는 유명한 사람들은 바로 이 세 사람이다. 한나라 황제는 권위와 힘이 없어서. 황제가 임명한 제후와 장수가 있었지만 그들은 황제에게 충성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스스로 황제가 되고자 했었다.

조조는 위나라를 세우고 중원을 통일하고자 했다. 특히 조조는, 허수아비에 불과했지만 한나라 황제를 모시고 있었기 때문에 중원 통일 이루는데 가장 앞서 나간 사람이었다. 특히 많은 장수와 군인, 지식과 학식과 지혜가 깊은 책사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조조는 뛰어난 머리와 유복한 환경, 문학성을 가진 인물이었다. 사람들은 조조를 속임수를 많이 쓰는 간사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조조만큼 인간미 넘치는 사람도 없다. 조조가 조금 더 신중하고, 다른 사람들을 안아 줄 수 있었다면 역사는 조조 편이 되었을 것인데 그는 역사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유비는 한나라 황족으로 한나라를 다시 회복시킨다는 명분에서 어느 누구보다 앞서 나갔다. 특히 그는 의형제를 맺은 관우 장비라는 출중한 장군, 인류 역사에 가장 위대한 책사였던 제갈량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다. 명분과 능력을 다 갖춘 유비는 촉나라를 세웠다. 후세 사람들은 유비를 가장 존경한다.

나중에 말하겠지만 황족이라는 명분은 유교주의와 맥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황족 출신이지만 황제가 될 수 있는 능력, 곧 제황학이라는 능력은 조조에 미치지 못했다. 황제는 명분도 중요하지만 결국 개인적인 자질과 능력, 황제가 될 그릇이 반드시 필요하지. 가장 중요한 장수와 참모를 가졌던 그였지만 이런 한계가 유비에게 있었다. 그는 중원을 통일하지 못했다.

손권은 오나라를 세웠다. 손권은 조조처럼 황제를 모신 것도 아니고, 유비처럼 황족 출신도 아니었다. 처음부터 강력한 중앙집권을 이룩한 것이 아니라 지방 호족들의 연합체를 형성하여 이룬 나라였다. 처음에는 그는 조조와 유비처럼 중원을 통일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조조, 유비, 손권 어느 누구도 삼국을 통일하지 못했다. 위나라 3대 황제 조방(曹芳)과 4대 황제 조모(曹芼)를 폐위시킨 사마의의 아들인 사마염이 천하를 통일했다. 나라를 세워 천하를 통일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다 사리지고 결국 사마염이 통일을 이룬 것을 보면 역사는 참 재미있지. 

아빠가 체헌이에게 <삼국지>를 소개하는 이유는 중원 통일을 이룬 사람이 누구인지를 말하기 위함이 아니다. <삼국지>가 담고 있는 어떤 사상을 말하고 함이다. <삼국지>를 읽어가면서 아빠가 깨달은바 중 하나는 사람들 중심에는 자신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나라를 세우고, 일으키면서 항상 하는 말은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함"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세계 중심을 자신이라는 사실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했다. <삼국지>가 바로 이것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삼국지>에는 중요한 사상이 하나 더 있는데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주의’다. 앞에서 아빠가 조조와 유비를 말하면서 '황제'를 모시고, '황족'이라는 명분을 가진 사람들이라 말했지. 속으로는 자신의 나라를 만들기 위하여 노력했지만 겉으로는 한나라를 다시 세우려고 했다.

이것은 단순히 한나라만이 아니라 중국은 세계 중심이라는 '중화주의'가 내포되어 있다. 특히 <삼국지>에서 유비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한나라 황족과 그가 중국 민족이 '한족'이기 때문이다.

<삼국지>는 무너져가는 세상 중심의 나라 한나라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을 유비로 삼았으므로, 유비는 형제애와 인간애와 충성을 견지한 인물로 그렸다. 중국인들이 지금도 유비와 함께 했던 장비 관우 제갈량을 존경하는 이유는 그들이 중화주의를 이룩하고자 했던 인물들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빠가 보기에 유비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신이 황제로 등극하는 것이었다. <삼국지>는 중국이 세계 중심이라는 '중화주의' 자신이 중국의 중심이라는 '자기중심주의'가 공존하는 작품이다.

아빠는 체헌이에게 중화주의와 자기중심주의가 과연 너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말하고 싶어 이렇게 글을 쓴다.

<삼국지>에 내재되어 있는 중화주의는 그들만이 세계의 주인이며, 중심이기 때문에 다른 민족과 나라는 이방인, 오랑캐라는 생각을 하지. 그 중 한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중화주의는 중국 인민들 속에 내재되어 내려 왔기 때문에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사상이다.

이런 중화주의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요즘 미국이 자신들을 세계 중심이라는 생각을 가진 것과 비슷하다. 지구를 지킬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미국편에 서면 '선'. 미국 편이 아니면 '악'으로 말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무겁고 어떤 때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아빠가 읽은 <삼국지>도 이런 생각을 하게 하였다.

'여포'라는 훌륭한 장군이 있다. 여포는 용맹하고 대단한 장군이었지만 사람들은 그를 간사한 방법으로 죽였다. 아빠가 매우 분노했다. 왜 훌륭하고 용맹한 장군을 죽였을까? '여포’는 중국사람, 즉 ‘한족’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포는 정말 능력과 지혜가 있는 뛰어난 장수였다. 이유, 곽기, 맹획 이런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여포와 비슷한 경우로 한족이 아니기 때문에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떠나갔다.

여포는 지금도 훌륭한 장군으로 존경받고 있지 못하다. 참 답답한 일이다. 한족이 아니면 ‘오랑캐’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무시하고, 사람의 존엄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가장 완악한 모습이지.

계속 미국을 예로 들지만 18-19세기 미국이 흑인을 노예로 삼아, 백인들보다 못한 3등의 인간으로 취급했다. 자기들이 기르는 애완용 개보다 못했지. 요즘도 백인들은 다른 인종을 차별하는 의식이 뿌리 깊게 남아 있다. 이런 문제는 인간의 존엄성을 해하는 일이기 때문에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

중화주의가 지배하는 중국은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나라다. 중국이 경제적으로 부강해지면서 옛날 자신들이 누렸던 영광을 되찾고자 한다. 되찾는 방법이 역사를 통해서 찾았다. 요즘은 뜸하지만 '동북공정'을 통하여 우리 고대 역사-고구려, 발해-를 중국역사에 편입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동북공정'은 중국 중심의 세계 지배 전략의 기초 작업이기에 위험한 생각이다. 너무 비약이라고 할 수 있지만 동북공정 같은 역사 왜곡은 중화주의에 바탕하고 있기 때문에 <삼국지>같은 경우도 이와 맥을 통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태어나서 <삼국지>를 세 번은 읽어야 한다고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여기에 호응하면서 <삼국지>를 많이 읽고 있다.

하지만 <삼국지>는 중화주의가 녹아 있는 책이다. 우리는 이것을 분명 알아야 한다. <삼국지>를 읽어야 하지만 그 사상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스스로 중화주의에 서서히 빠져 들어갈 수 있다. <삼국지>를 읽지 않으면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도 있기에 읽어야 할 책이지만 우리는 그 뿌리가 무엇인지 잘 알고 읽어야 한다.

체헌아! ‘황제’는 무엇일까? 왜 조조와 유비, 손권은 그토록 황제가 되기 위하여 노력했을까? 황제가 되기 위하여 수많은 백성들은 피를 흘렸고, 그들의 생명은 보잘 것 없었다. 황제가 되려고 했던 그들은 백성의 생명을 황제가 되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름 없이 스러져 간 수많은 백성들 우리는 그들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삼국지>를 읽다보면 한 번 전투에 몇십명이 아니라 몇천명, 몇만명이 죽어가는 모습은 쉽게, 짧게, 어떤 때는 언급도 하지 않지만 훌륭한 장수들의 죽음 앞에서는 통곡했다. 가슴 아파했다. 훌륭한 장수와 이름 없는 민중의 죽음은 같을 수 없을까? 같은 사람이라도 다르게 취급받는 것 같다. <삼국지>뿐만 아니라 많은 역사 이야기를 담은 책들이 달리 취급한다.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럴지라도 사람 생명이 존엄하다면 장수와 일개의 병사의 차이가 엄청나게 나는 것은 아빠가 인정할 수 없다. 이름 없는 인민의 죽음은 조조와 유비와 손권, 장비, 관우, 제갈량의 죽음에 비하면 황제를 꿈꾸는 일들을 위한 사사로운 죽음이다.

아빠는 체헌에게 말하고 싶다. 모든 사람의 생명은 존귀하며 그 가치는 같다고. 같다는 생각이 없으면 자기 이익을 위하여, 자기보다 조금 못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게 된다. 너는 그 길을 가면 안 된다. 그렇게 가면 결국 자기의 생명까지 빼앗는 사람이 된다. 사람들은 이것을 인정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못한다. 지구상에 일어나는 모든 비극이 여기에서 시작된다.

자신이 존귀하다면 다른 이의 생명도 존귀함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아빠는 체헌이가 자신을 존귀하게 여기는 사람일뿐만 아니라 다른 이도 존귀하며, 사랑하는 대상임을 알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한다.

<삼국지>에는 또한 '죽임'이라는 잔치가 벌어진다. 많은 전쟁, 권모와 술수를 통하여 적을 죽이는 장면들이 예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살림’의 잔치는 <삼국지>에서 정말 찾아 볼 수 없다.

참 이상하다. 죽임의 잔치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니, 바로 '대의'다. 한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 자기가 황제가 되는 일이 대의다. 원래 대의란 큰 의라는 말이다. 자기의 이익이 아니라 나라와 공동체를 위한 거룩한 마음이라고 할까?

그런데 그 거룩한 뜻을 이루면서 왜 많은 사람들을 죽여야 할까? 그들은 말한다. 그 죽음도 대의를 위한 죽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그들이 죽임의 잔치를 하면서 하는 말이 ‘대의’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이야. 

이런 대의 사상은 오늘도 마찬가지다. 나라를 위하여 희생하라, 나라를 위하여 손해 보라고 말한다. 몇 년 전에 김선일이라는 사람이 이라크에서 죽임을 당했지만 우리나라가 해준 일은 없었다. 대의를 위하여 우리나라에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나라에 군대를 파견한다. 정말 답답한 일이다. 체헌이가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생각하고, 대처할까? 아빠에게 묻고 싶다고 아빠는 네가 스스로 깨달았으면 좋겠다. 생명을 존중하라는 말을 아빠는 하고 싶다.

중화주의, 대의, 자기중심주의가 지배하는 <삼국지>는 한 번은 읽어야 한다. 좋은 책이다. 읽을만한 책이다. 언젠가 네가 <삼국지>를 읽게 된다면 오늘 아빠가 너에게 쓴 글을 가슴에 묻고 읽으라. 그래 정말 생명을 사랑하고, 모든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는 네가 되기를 바란다. <삼국지>가 담은 중화주의, 대의, 자기중심주의를 정확하게 안다면 역설을 통하여 바른 깨우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 아빠가

덧붙이는 글 | 나관중 원저/황석영 편역/왕훙시 그림 | 창비 | 2003년 06월



황석영.이충호 만화 삼국지 세트 - 전15권 - 완결

황석영 지음, 이충호 그림, 김태관 각색, 문학동네(2018)


태그:#삼국지,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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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태어날 때 당신은 울었고, 세상은 기뻐했다. 당신이 죽을 때 세상은 울고 당신은 기쁘게 눈감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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