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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회에 이어)

 

처음에는 어머니가 한 번 일을 시작하시면 그 자리에서 꼭 같은 자세로 하루 종일 앉아 계시기에 젊은 시절의 근기가 사라지지 않았구나 싶어서 놀라웠다. 젊은 시절의 어머니는 거의 초인적인 괴력을 발휘했었다. 며칠 동안 단 한숨도 주무시지 않고 일을 하셨고, 비료포대를 네 포나 머리에 이고 일어서지를 못해 장정들이 일으켜주면 그걸 이고 재를 넘어 밭에 내시곤 했다.

 

혼자서는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가 없어서 양 손으로 짐을 치켜들고 바들바들 떨다가 밭 바닥에 처박아 버려 비료포대가 터지는 모습을 보기도 했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젊은 시절의 근기가 살아나신 것이 아니라 한 번 시작되면 혼자 힘으로는 흘러가는 몸과 마음의 방향을 틀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되면서 얼마나 어머님께 죄스러웠는지 모른다.

 

스스로 몸도 마음도 조절할 수 없게 되어버리신 어머니를 두고 내 편한 대로 때로는 정상인으로 대하고 때로는 환자로 대하고 했으니 나를 책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님의 몸과 마음을 쓰다듬고 방향을 틀게 하는 나만의 세 가지 요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이랬다.

 

 

마당에서 풀을 뽑던 어느 날 옷에 흙이 덕지덕지 묻기 시작했다. 웬일인가 하고 살펴봤더니 앉은 채로 오줌을 누신 것이다. 화장실까지 갈 수도 없으려니와 마당에서 옷을 벗을 수도 없었고 그런 일로 자식을 부르기에도 마땅치가 않았던 것이다.

 

꿈자리에서 봤던 과거 기억의 한 자락은 꿈이 깨서도 현실과 뒤섞여 그걸 근거로 한 번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대책이 없었다. 이번 도끼질도 그랬다. 조금 하시다 그만 쉬셨어야지 그 많은 나뭇가지를 다 찍어서 자르시느라 며칠을 앓아누우시니 내 짐이 몇 배나 더 커졌다.

 

빨랫감도 평소보다 많아졌고 어머님 떵떵거리는 큰소리는 시도 때도 없었다. 스스로 조절이 안 되는 몸과 마음의 방향을 틀게 하는 것이 중요한 일로 떠올랐다. 앞마당  풀을 다 뽑고 집 뒤안과 장독대 풀도 뽑겠다고 다음날 새벽부터 방을 나가시는 어머니를 말리다 못하고 아시는 분께 전화를 드렸더니 그럴 때는 ‘단호하게 대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단호하게’ 대하는 방법을 몰랐다. 무엇이 단호한 것인지, 그 분이 구체적으로 뭘 일러 주고자 그런 말을 썼는지 생각 할수록 혼란스러웠다. 어머니 하라는 대로 집 뒤안으로 어머니를 모셨는데 장갑을 드려도 안 끼겠다고 하고 중간에 쉬었다 하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대신 종일 군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집구석을 이 모양으로 해 놓고 밥을 어찌 처 먹윽꼬. 빈집도 이렇지는 않을끼다.”

 

돌멩이가 하나라도 눈에 띄면 어머니 군담은 새로운 소재를 만나 득의만면하셨다.

 

“걸려 자빠지면 저만 다치지. 오며가며 눈꾸녕에 이게 보이지도 안을까? 눈을 감고 다녀도 이 보다는 나을끼다.”

 

어머니 눈에 혹시 나뭇조각 하나라도 띄면 부엌에 갖다 두지 않고 비 맞혀 썪힌다고 할 것 같고 못 하나라도 땅 바닥에 떨어져 있으면 “쇠가 썪냐?”고 호통을 칠거 같아 부랴부랴 어머니 앞길을 쓸고 있는데 어머니가 노려보면서 소리를 질렀다.

 

“먼지 나는 고마. 내 가는 쪽마다 인자서 비짜루 질 한닥꼬 저 난리야 난리는!”

 

견디다 못한 나는 감정이 폭발했다. 눈에 안 띄어야지 내가 도망가는 수밖에 더 있나 싶어서 장독대 만드는 곳으로 피신을 와서 장독대 만들 곳에 돌을 치우고 차근차근 담부터 쌓기 시작했다. 거기까지 어머니가 쫒아 오셨다. (38회에 계속)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국농어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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