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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째다. 모든 게 서서히 적응돼 간다. 훈련기를 쓰는 시간도 1시간 정도 짧아졌다. 첫날엔 새벽 4시가 다 돼서야 잘 수 있었지만, 이젠 새벽 1시 정도면 충분하다. 다음날 아침에도, 오전 8시쯤이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사람이란 동물, 참 적응이 빠르다.

이젠 웬만한 것은 잘 놀라지도 않는다. 공포의 5m 풀은 숫제 놀이터 같다. 발이 안 닿는 게 두려웠지만, 이젠 안 닿는 게 더 좋다. 깊어서 입영하기에도 더 편하다. 잠수하는 기분도 더 쏠쏠하다. 보통 수영장 깊이는 1.2m, 그나마 깊은 곳은 1.6m 정도인데, 이 곳은 그 세 배가 넘으니 오죽하겠는가.

함께 하는 1기 동기들도 얼굴이 익숙해졌다. 서로 벗고 만난 데다가, 한데 어울려 땀까지 흘려선지, 더 빨리 친해진 듯하다. 특히 반장이라 먼저 알아보고 말을 건네는 경우가 많아 더 친해지기 편했다. 그러고 보면, 반장도 썩 나쁘진 않은 것 같다.

5m 풀? 이 정도야 놀이터지

자, 이제 본론으로 돌아가자. 18일 오후 1시, 오늘도 변함없이 워밍업으로 첫 테이프를 끊었다. 자유형·배영 등 기본 수영은 50m 만 돌고, 기본배영·횡영·역가위차기 등 구조영법은 100~150m씩 돌았다. 인명구조원 교육인 까닭에, 구조 영법 연습 비중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워밍업이 끝나자,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말과는 다르게, 자못 '빡시다'. 하지만, 적응이 됐는지 그렇게 피곤하진 않았다.

여기서 하나 '팁'. 일명, '워밍업'을 편하게 하는 방법이다.

'워밍업'은 말 그대로 몸을 푸는 영법이다. 때문에 빠르게 움직일 필요가 없다. 자기 영법이 제대로 나오는지를 보고, 올바르게 맞추는 게 목표다. 문제는 선두그룹. 보통 한 줄당 보통 7~8명이 서게 되는데, 앞에 선 한 명이 속도를 내면, 뒤에선 따를 수밖에 없다. 왜? 건너편에 있는 선생님이 자꾸 '쫀다(압박한다)'. "도착하면 바로 출바~알! 어이 거기! 출발!!" 바로 이렇게.

일단 도착하면 빼도박도 못하고 되돌아가야 한다. 만약 선두가 속도를 조절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보다 편하게 워밍업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너무 천천히 하면, 금세 뽀록난다. 강사가 눈치챈다. 모든 건 적당히. 이것 역시 선두의 몫이 크다. 결국, 편하게 돌고 싶다면 이렇게 하라.

우선, 자기 줄에서 가장 수영을 잘 하는 사람을 찾을 것. 다음, 융통성이 있는지 테스트할 것. 너무 어린 아해(아이)들은 곧이곧대로 하려는 습성이 있다. 너무 정직하다. 조심할 것. 요건 양념인데, 중간에 상대적으로 체력이 약한 여자 동기를 배치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약간이나마 쉴 수 있다.

워밍업 잘하려면? 여자 동기를 공략하라

다시 수업 얘기로 돌아가자. 오늘은 전날에 빠뜨린 '장비구조'다. 캐리비안베이 같은 물놀이 공원에 가면 안전요원들이 저마다 들고 있는 빨갛고 긴 막대기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촌 동생 표현에 따르면, "빨간 핫바 같다"고 했다. 아무튼, 그것을 이용한 구조 방법이다. 정식 이름은 '레스큐 튜브'(rescue tube·이하 핫바)다.

빨간 핫바, 생긴 게 흐물흐물한 게 별 힘이 없어 보이지만, 위력이 대단했다. 강사 설명에 따르면, 핫바 한 줄이면 수영을 전혀 못하는 사람(성인 기준) 최대 3명, 수영을 조금 하는 사람 10명까지 물에 띄울 수 있다. 놀라웠다. 신기해 직접 만져봤는데, 그다지 신통치 않아 보였다.

간단히 강사의 설명을 들은 뒤, 실습 시간이 왔다. 이번에 연습할 구조법은 '뻗어돕기'. 익수자가 정신이 있을 때 핫바를 건네 붙잡게 하는 방법이다. "삐~익" 하는 호루라기 소리가 나자, "전방에 익수자 발견"을 외친 뒤 물에 뛰 들었다. 핫바를 맨 끈은 한쪽 어깨에 걸어 멨다. 익수자 가까이 다가가 핫바를 건네 위에 올라타게 했다. 그런데, 직접 타보니 이거 장난이 아니다.

상당히 몸집이 컸는데도, 올라타자마자 물 위로 쑥 올라왔다. 가슴부터 발끝까지 길게 올라탔어도 아무 문제가 안 됐다. 다른 수영 튜브보다 부력(浮力)이 좋다는 말, 뻥이 아니었다.

익수자를 밖으로 끌어낸 뒤, 반대로 역할을 바꿨다. 같은 방식으로 핫바가 건네지자, 곧바로 올라탔다. 순간 몸이 물 위로 쑥 솟았다. 끌려가는 동안은 마치 바나나보트를 탄 기분이 들었다. 구조자는 역가위차기로 끌고가는데, 다리 재간이 좋으면 속도가 빨라 더 재미있다. 믿지 못하겠다면, 직접 타봐라. 정말이다.

다음은 의식이 없을 때 구조하는 방법. '감아묶기'와 '뒤집기'가 있다. 방법은 맨손구조(전편 참조)와 비슷하다. 차이점은 핫바를 이용해 익수자를 더 쉽게 물에 뜨게 하는 것뿐이다.

이쯤에서 수영 상식 하나. 핫바를 들고 물에 뛰어드는 방법은 크게 3가지가 있다. '다리벌려들어가기', '머리먼저들어가기', '다리모아굽혀들어가기'가 그것이다. 이때 앞의 두 방법은 핫바를 한 손에 들고 있다가 대각선 앞쪽으로 던지면서 물에 뛰어든다. 마지막은 핫바를 길게 뉘어 양 겨드랑이에 끼워 단단히 고정한 뒤, 빠지지 않게 팔로 감싸 안은 채로 입수하면 된다.

훈남 강사의 칭찬은 구조원도 힘나게 한다

장비구조를 배운 뒤, 강사와 함께 그동안 배운 구조영법을 하나씩 연습했다. 시계 바늘은 어느새 오후 4시 30분을 가리켰다. "화장실 가고 싶은 사람은 5분 안에 다녀옵니다. 5분 휴식!"

말이 끝나자마자 화장실을 가는 척 하며 샤워실로 뛰어갔다. 잠실은 샤워실 바로 옆에 화장실이 있다. 잠시나마 뜨거운 물로 언 몸을 녹였다. 며칠 전,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라고 그러더니, 칼바람이 수영장 안까지 파고들고 있다.

잠시 뒤, 다시 각을 잡고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앞에 방금 전까지 없던 바벨들이 놓여 있었다. 모두 5㎏짜리다. 젊은 강사 한 명이 다가오더니, 천천히 입을 뗐다. "이번엔 바벨을 이용한 훈련을 합니다. 바벨을 한쪽 겨드랑이에 끼고, 역가위차기로 25m를 가는 겁니다. 중간에 떨어뜨리면…"

그 뒤로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냥 역가위차기도 힘든데, 저걸 옆에 끼고? 그것도 25m 씩이나?' 순간 머리가 핑 돌았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옆에 있던 동기들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뛰어! 빨리 안 뛰어!"

자신 없어 약간 뒤쪽에 줄을 섰다. 한 발치 물러서 선두 그룹을 지켜봤다. 흐- 괜히 선두가 아니었다. 바벨을 겨드랑이에 끼더니, 그냥 휙 출발했다. 별 힘든 기색도 없어 보였다. 팔 몇 번 휘휘 저은 것 같더니, 금세 반대쪽에 도착했다. '큭-' 헛웃음이 절로 났다. 어느덧, 내 차례. 바닥에 떨어뜨릴새라, 겨드랑이에 꽉 끼었다.

미끄러질 것을 대비, 한쪽 손으로 꼭 부여잡았다. 자, 이제 출발! 벽을 차고 힘차게 앞으로 나갔다. 순조로웠다. 의외로 앞으로 잘 나갔고, 무게감도 생각보다는 없었다. 한 절반 쯤 갔을 때, 본 실력이 드러났다. 발에 힘이 풀리더니, 물이 밀려들어왔다. 눈이며, 코며, 귀며. '뭐야, 이거 어렵잖아.' 옆에 도우미로 따라붙은 훈남 강사가 힘을 돋웠다. "잘하고 있어요. 조금만 더 가면 돼요. 힘내요."

칭찬 한 마디가, 초인적인 힘을 내게 했다. 참 단순하게도 "잘한다"는 말에, 뿌리를 알 수 없는 힘이 절로 났다. 분명 몇 초 전까지는 없던 힘이다. 그렇게, 난 가까스로 반대편에 도착했다.

조금만 더, 난 할 수 있다

바벨 훈련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입영' 훈련이 시작됐다. 당시 시간은 오후 5시쯤. 끝나려면 아직 1시간이나 남았다. 그렇다. 오늘은 입영만 정확히 1시간이었다. 입영은 이날도 새롭게 진화했다. 이른바 '인간 뜀틀'. 입영으로 한 줄로 길게 늘여 세운 뒤, 제일 앞에 있는 사람이 뒤로 돌아 다음 사람의 어깨를 짚고 줄줄이 뛰어 넘는 것이다.

물에 가라앉아도 상관없어 비교적 힘은 안 들지만, 계속해서 넘다 보면 어지럽다. 아래도 마찬가지. 앞 사람이 어깨를 짚고 넘어갈 때마다 물 속으로 가라앉아야 하는데, 속도가 빨라 숨고르기가 만만찮다. 정말, 입영의 끝은 과연 어디인가. 그저 놀라울 뿐이다.

앞으로 남은 훈련은 이틀. 다음엔 마장동에 있는 대한적십자사 서울특별시지사에서 교육을 받는다. 조금만 더 버티자. "아자~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블로그(goster.egloo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수상인명구조원, #대한적십자사, #라이프가드, #도전 이기자, #입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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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는 내가 밉습니다. 화가 나도 속으로만 삭여야 하는 내가 너무나 바보 같습니다. 돈이, 백이, 직장이 뭔데, 사람을 이리 비참하게 만드는 지 정말 화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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