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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설명을 일본 학생들에게도 그대로 해주시나요?"
"80% 이상은 그대로 해줍니다."
"일본 자객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했다는 것도요?"
"예."
"그러면 반응들이 어떤가요?"
"눈물 흘리면서 미안하다고 하는 일본 학생들도 있고, 믿지 못하겠다는 일본 학생들도 있고, 그런데 통역하시는 분 얘기를 들어보니 대부분 별로 관심 없어 한다네요. 자기네 역사도 관심 없어 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궁금했다. 뭐가 궁금했냐고? 그 대답은 조금만 있다 하자. 가끔씩 포털 사이트 사진 게시판에 일본 여고생들이 정말 아주 짧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치마, 그것도 교복 치마를 입은 사진이 종종 올라오곤 한다. 사실 난 아직 어린 여고생들이 짧은 교복 치마를 입었다는 사실보다 그것이 경복궁이나 덕수궁 등에서 찍었다는 설명에 더 놀라곤 했다.

 

그저 성인 사이트 광고를 하고 싶었던 누군가가 올려놓은 것이려니 하고 생각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성적으로 개방된 일본이라지만 어린 학생들에게 그렇게 짧은 치마를 입게 할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 두 눈으로 경복궁 안에서 이 추운 겨울에 허벅지가 다 드러나는 짧은 치마를 입은 일본 여고생들을 보았다. 신기한 마음에 사진을 찍을까 하다가 예의에 어긋나는 것 같아 그만두었다.

 

명성황후 시해에 무관심한 일본 여고생

 

건청궁 안 명성황후 시해 장소 학자마다 시해 장소에 관한 의견은 갈린다고 한다.
건청궁 안 명성황후 시해 장소학자마다 시해 장소에 관한 의견은 갈린다고 한다. ⓒ 양중모

 

게다가 경복궁에서 새로 연 건청궁 설명회를 들으러 가야 했기에 그럴 시간도 없었다. 바로 이 건청궁에 대한 설명을 들으러 가기 직전에 만난 일본 여고생들, 영화나 드라마로 찍었다면 정말 묘한 장면이 되었을 것이다.

 

왜냐고? '건청궁', 이 이름을 들어보았는가? 이 이름은 들어보지 못했어도 '명성황후 시해'라는 말은 정말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 곳이 바로 소설은 물론이고, 영화 드라마 등에서 자주 등장한 장소인 일본 자객들이 명성황후을 시해한 바로 그 곳이다.

 

우리 민족에게 너무도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그런 현장으로 오기 직전, 그 곳에서 불과 2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우리 민족에게 그런 아픔을 주었던 이들의 후손이 웃으며 경복궁 내 다른 곳을 구경하는 곳을 봤다고 생각해봐라. 애국심에 불타는 사람이 아니어도 무어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심정을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아냐고? 내가 그랬으니까.

 

그래서 건청궁에 대해 설명을 해준 역사 해설가에게 끈덕지게 '일본 학생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냐?'고 물어보았던 것이다. 당했던 쪽의 후손은 찜찜하고 씁쓸하고 아픈데, 가했던 쪽의 후손은 과연 어떨지 정말 많이 궁금했다. 미안하다고 생각하는 이도,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지만 대부분 '무관심'이라는 역사 해설가 설명을 들었다. '무관심'이라는 말에 이상하게도 화가 나지는 않았다. 예상했던 답변이었기 때문이었을까?

 

한국 관광 첫 출발점- 경복궁

 

그렇지만 머릿속은 점점 복잡해져갔다. 경복궁, 뜬금없이 이 곳을 찾아간 이유는 중국 친구들을 위해서였다. 중국 친구들이 '북경에 가면 자금성, 만리장성, 이화원 봐'라며 수많은 관광 명소를 얘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나 역시 중국 친구들이 우리나라에 오면 그럴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잠시 시간이 나 한국에 들를 여유가 생긴다면 중국 친구들 뿐 아니라 다른 나라 친구들 누가 놀러와도 후회 없는 여행이 될 수 있도록 한국을 보여줄 수 있는 글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다부진 각오를 하고 처음 찾아간 곳이 바로 경복궁이었다. 한국 사람인 나로서는 다소 상투적인 느낌이 들긴 했지만 외국인 입장에서 볼 때는 첫 출발지로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건청궁에 대한 설명과 건청궁 오기 전 잠시 보았던 짧은 교복 치마를 입은 일본 여고생들 모습이 스쳐 지나가면서 정말 그럴까라는 회의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일본 뿐 아니라 중국과도 고구려 문제, 병자호란 등 그리 유쾌하지 않은 역사가 꽤 많이 있다. 어쩌면 외국인 친구들을 위해 시작한 여행이 뜻하지 않은 곳에서 암초를 만날 수도 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된 셈이다.

 

근정전 작지만 강인했던 우리 민족을 느끼게 해준다.
근정전작지만 강인했던 우리 민족을 느끼게 해준다. ⓒ 양중모

 

그 때문에 건청궁 관람을 마치고 경복궁 관람을 하면서 내내 고민을 했지만 외국인 친구들을 위한 첫 관광지로는 역시 경복궁을 택하고자 마음먹었다. 경복궁은 글로 보자면 우리나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긴 문장이 아닌 단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처음 경복궁에 입장권을 내고 들어서면 눈앞에 떡 하니 버티고 서 있는 근정전을 볼 수 있다. 작고 약한 나라라는 이미지와 달리 근정전 중심부에 왕이 앉아 있고 그 아래로 신하들이 자리한 모습이 느껴지면서 나라는 작아도 500년을 버텨온 강인한 국가의 모습이 느껴지는 듯 하다.

 

그것만으로도 경복궁이 서울 여행의 첫 출발점이 되기에는 부족함이 없지 않을까. 고민 끝에 서울 여행의 첫 출발지로 경복궁을 잡을 수 있게 해 준 근정전을 제외한 다른 공간들은 직접 방문할 이들을 위해 여백으로 남겨두고자 한다.

 

-2편에 계속-

덧붙이는 글 | 관람시간, 정기 휴관일, 특별 관람료 등 종종 변동 사항이 있으니 가시기 전에 꼭 홈페이지에서 확인하고 가시기 바랍니다. 입장료 및 가시는 방법도 안내 받으실 수 있습니다.
경복궁( http://www.royalpalace.go.kr/ )


#경복궁#전철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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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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