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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가을 난 치과를 찾았다. 몸이 피곤했는지 계속해서 잇몸이 욱신거렸기 때문이다. 첫날, 의사는 20년 전 치료한 네 개의 어금니 중 두 개만 다시 하고 나머지는 괜찮다며 우선 치석제거를 권했다. 4일 후에 다시 와서 치료하자며. 나는 뛸 듯이 기뻤다. 가장 어려운 때 이까지 고장이 나 여간 신경 쓰인 게 아니었는데 정말 다행이라며.

 

치석 제거를 하고 나오자 간호사가 치료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이를 치료하는데 쓰이는 재료와 가격을 제시해 주면서. 건강보험이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비교해 주고 건강보험이 안 되는 것을 시술할 경우 어금니 마모된 것도 같이 해 주겠다고 했다. 건강보험이 되는 것은 아말감이라는 건데, 수은이 문제 된다고 알고 있어 과감하게(?) 건강보험이 안 되는 걸로 결정했다. 치료비는 18만원.

 

아무튼 치과 괴담이라고 해야 하나. 치과에 대한 흉흉한 소문은 참으로 많았다. 살릴 수 있는 이인데도 무조건 뽑고 해 넣어야 한다며 의료수가를 올린다는 둥, 치료하지 않아도 될 것을 치료하고 치료비를 터무니없이 많이 받는다는 둥, 치료받기가 불편하고 겁이 나서 여자 환자들은 산부인과보다 가기 싫어하는 곳이라는 둥. 그래서 나도 고심 끝에 꽤 양심적이라는 치과를 소개받았다.

 

쉽게 생각하고 이 때우기로 결심


그런데 그다음 치료 때 나는 중대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어려서부터 쪽 고르던 이가 나이를 먹으면서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한 것. 그것도 거울을 보면 바로 맞닥뜨리는 위의 대문니였다. 나도 어쩔 수 없이 토착신앙 바탕에서 살아온바, 일이 잘 안 될 때는 이리로 복이 새나 하는 생뚱맞은 기우를 종종 해봤었다.

 

그럼 하는 김에 이 사이를 메워 볼까? 치석제거를 해서 아랫니도 훵하니 뚫렸는데 그것도 좀 손 보고. 내가 이렇게까지 결심을 하게 된 데에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한 마디가 중요한 작용을 했다. 아버지는 이 치료를 받으시면서 '이 사이가 벌어져 음식이 자꾸 끼고 불편하다고 그것 좀 어떻게 안 되겠느냐' 고 했더니 돈도 안 받고 간단하게 해주더라, 하셨던 것.

 

나는 굳게 결심을 하고 치료대에 앉았다.


"저 대문니가 벌어졌는데 그것 좀 해 주세요. 그리고 지난번 치석 제거를 했더니 아랫니도 움푹 패였거든요. 거기도 좀 메워주시고요."


"이거 안 해도 의학적으로는 아무 관계가 없는 건데."


의사는 두 번을 그렇게 말하고 바로 치료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건 간단한 치료가 아니었다. 기계를 대고 가는 것도 같고 불빛을 대고 비춰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간단하다고 했으니까, 먼저 말한 고장 난 이를 치료하는 거려니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이 사이를 메꾸기 위해서 이 양쪽을 갈고 그 안을 메운 것이었다. 결국, 치료한다던 이는 다음으로 미루어졌고 이 사이를 메우는 것만으로 나는 치료대에서 일어나야 했다. 그리고 진료실에서 나와 간호사와 대면, 이 사이를 메우는 데 드는 비용을 물었다. 하나 하는데 두 개 값을 내야 한단다. 양쪽 이를 갈고 해야 하기 때문이라는데, 이 하나 치료비는 10만원. 두 개를 메웠으니 네 개의 치료비로 40만원을 내야 한단다.

 

나는 그 말에 깜짝 놀랐지만, 내가 해 달라고 했으니 항의조차 못하고 간신히 합의만 하고 물러섰다. 돈은 다음에 가져 오겠다며. 꼭 사기당한 느낌이었다. 적어도 환자에게 비용은 말해줬어야 하지 않나, 속으로만 자문자답하면서. 그런데 물러서서 보니 간호사실 바로 위 벽에 치과 치료비 종목이 붙어 있었다. 무슨 음식점 메뉴판처럼. 그걸 눈여겨보고 진료실로 들어갈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하지만 소용 없는 일, 치료비 합해서 50만원에 합의를 했고 이는 메웠으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올바른 상담 방해하는 치료실 진료


그런데 원망스럽게도 자꾸 진료실 풍경이 눈앞에 나타났다. 치과는 진료실이 곧 치료실이다. 다른 과목처럼 진료실에 의사선생님 책상이 있고 그 옆에 동그란 의자가 있어서 환자와 의사가 마주 앉게 되는 게 아니고 환자는 비스듬히 눕고 의사는 환자 말 한마디에 바로 치료에 들어갈 자세로 환자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런 자세로 올바른 상담이 이루어질까?

 

게다가 이가 아주 불편했다. 입맛도 없고 뭔가 와서 덧붙은 느낌으로 혀가 자꾸 새로 메운 이 사이를 더듬게 되었다. 후회막급이었다. 정말 돈은 돈대로 들고 이는 불편한데 언제까지 이런 상태일지 알 수는 없고. 하는 수 없이 그다음 치료 하러 가서 의사에게 물었다.

"부작용은 전혀 없는 건가요? 이가 아주 불편한데."


"그건 부작용이 아니라 이 사이로 드나들던 공기나 침이 예전처럼 원활하게 드나들 수 없게 되자. 그렇게 느끼는 겁니다. 그러니까 적응 할 시간이 필요한 거지요."

 

그렇게 말하는 데야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설령 그렇더라도 그런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는 말은 미리 해줬어야 하지 않나? 치료를 받고 나오자 어떻게 들었는지 간호사가 보충 설명을 해 주었다. 자기도 잇새가 많이 떠서 몇 개를 메웠는데 하고 나서 많이 불편해 무척 후회했다고. 그런데 두 달 정도 지나자 괜찮아졌다고. 나는 도대체 누구에게 진료를 받으러 온 건지 많이 헷갈렸다. 그렇다면 간호사와 상담을 하고 들어갔어야 실수가 없었는데 생각했고.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비싼 등록금 지불하고 불편한 거 참아가며 치과에 대해 겨우 알았구나 생각했는데, 그때 메운 이 사이가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다. 적응할만 한 기간인 두 달이 막 지나고 나더니. 이 밑 부분부터 조금씩 다시 틈이 벌어지고 있었다.

 

치과의사 친구에게 상담을 하다

 

사실 내겐 치과 의사 친구가 있다. 여행에서 만난 친군데 이 친구는 좋게 만나 웬수지고 싶지 않다고 아는 사람 치료를 거부한다. 거기다 동네도 좀 멀고 워낙 바빠서 전화 통화 하기도 힘든데 1년에 한 번 정도는 만난다.


결국 친구에게 부담 주고 싶지 않아 내가 알아서 치료를 한 건데 여러 가지로 고생이 많았다. 그리고 최근 그 친구를 만났다. 같이 여행했던 친구들과 모임을 하면서. 그 친구는 치과 의사지만 가급적 치과 이야기는 피하고 싶어 한다. 나는 한참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드디어 이 치료 받은 이야기를 꺼냈다.

 

친구가 반기지는 않지만 올곧은 친구니까 제대로 설명해 주리라 기대하고 말을 했다. 앞으로 이가 더 벌어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 확실하게 알고 싶어서. 내가 잘 모르고 해 달라고는 했지만 의사는 부작용이나 비용에 대해 전혀 말해주지도 않고 바로 치료에 들어갔다는 것과 치료실에서 하는 진료에 대한 문제점도 털어놓았다. 친구는 치료실 진료 문제나 의사의 잘못된 진료 방법을 수긍하면서 자신이 환자를 설득하는 방법을 말해 주었다.

 

"난 자세히 설명하는데, 비용하고 혹시 있을지 모르는 부작용까지도. 그래도 해 달라고 떼를 쓰면 거울을 보여 주면서 이렇게 말해. 당신이 보기에 이상한 거지, 남들은 잘 알지도 못한다. 그리고 입을 자신이 벌렸을 때와 자연스럽게 입이 열렸을 때를 보여주면서 설득하지."

 

난 그동안의 고민도 물어보았다. 그렇게 마음고생하고, 비싼 돈 들여가며 해 넣었는데 이게 아무래도 얼마 안 가 떨어져 나갈 것 같다. 이거 떨어져 나가면 다시 해야 하는 건지 고민이다. 어떻게 하면 영구적으로 붙어 있게 할 수 있냐, 물었다. 친구는 이의 속성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우리 치아는 나이를 먹으면서 달라지게 돼 있어. 젊어서 잘 버티던 것들이 나이 먹으면서 힘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야. 더구나 윗니는 벌어지고 아랫니는 모이는 속성이 있어서 어려서 아무리 고르고 예뻤던 이라도 결국 아랫니는 서로 모이면서 울퉁불퉁해지고 윗니는 사이가 벌어져서 틈을 만들게 되는 거야. 그러니까 다시 틈을 메워도 결과는 마찬가지로 또 벌어져. 영구적이라는 건 없어."

 

설명을 듣고 나자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했다. 친구는 자신도 같은 일을 하지만 치과 의사들이 환자를 대하는 태도는 못마땅한 것 같다. 자신이 그렇게 설명해서 못하게 한 환자는 꼭 다시 찾아온다는 말도 하고. 

 

또 우리는 땅값이 비싼 지역에 좋은 의사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진료비도 비싼 거라고 생각하는데 꼭 그런 건 아니란다. 그 쪽은 부유층이 살기 때문에 인테리어도 고급으로 하고 집값이 비싼 만큼 세가 비싸니까 진료비도 당연히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어차피 환자가 내는 돈으로 운영하니까. 결국 양질의 진료란 가격이나 지역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거다.

 

나는 잘 몰라서 사서 고생을 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부자들이야 별거 아닌 돈이고 잘못 되면 또 하면 된다고 할 테지만 우리 서민들이야 한 달 생활비에 준하는 돈이니, 안 써도 되는 돈을 썼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쓰리다. 정말 제대로 된 의사라면 환자가 잘못 알고 있다 해도 바르게 설명해 줄 의무가 있는 것 아닐까.

 

물론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힘도 들고 시간도 많이 들뿐 아니라, 병원을 차리는데도 만만치 않은 돈이 든다는 것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호화 인테리어를 해서 손님을 끌기보단 소박한 병원일지라도 환자가 신뢰할 수 있는 병원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보았다. 그게 곧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는 일이며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도 도움이 될 테니까.

덧붙이는 글 | 모든 치과가 다 그런 건 물론 아닙니다. 제 친구 같은 치과 의사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점을 알고 비교해 보고 가면 좋은 의사선생님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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