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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소모하는 것, 나는 내 몸과 마음과 모든 것을 죽는 날까지 그림을 위해 다 써버려야겠다. 남는 시간은 술로 휴식하면서."

수탉 / 1990 / 캔버스에 유화 / 41.0x32.0cm 동물이 등장하는 그림은 아이들에게 언제나 인기 만발이지요
수탉 / 1990 / 캔버스에 유화 / 41.0x32.0cm동물이 등장하는 그림은 아이들에게 언제나 인기 만발이지요 ⓒ 장욱진 미술문화재단
화가 장욱진이 남긴 말입니다.

6·25전쟁 때, 가족은 먼저 피난시키고 나중에 피난을 가려다가 남아 있을 때, 그림 부역에 불려가 김일성 주석을 그리는 작업에 동원되고, 피난을 가서는 종군화가로 그림을 그려야 했던 뒤로 그는 폭음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견디기 힘든 상황들을 술로 풀고 싶었을까요? 그림 그리는 시간 외에 남는 시간은 술로 휴식하고 싶다고 말했을 정도로 술을 즐겼지만, 그림을 그리는 순간만큼은 절대로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합니다. 

20세기 중후반, 시절이 괴롭고 어려웠어도 미술계에는 굵직한 작품 세계를 완성해 낸 대가들이 많았습니다.

손가락 하나보다 크고 작은 사람들이 모여 추는 군무에서 작가의 힘이 느껴지는 이응노. 검푸른 천만 개의 점들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김환기. 1만원짜리 지폐에 세종대왕 얼굴을 그린 바보산수의 김기창을 비롯해 제게는 세상의 평가보다 제 딸아이 쿠하의 웃음소리로 먼저 기억되는 장욱진까지. 손가락 열 개로는 모자를 만큼 참 많은 작가들이 좋은 작품을 많이 보여줬습니다. 

아기부처 / 1980 / 동판+세리그래프 / 25. 0x18.3cm 어른들 눈에는 낙서같은 그림인데도, 쿠하는 너무 좋아하는 그림입니다.
아기부처 / 1980 / 동판+세리그래프 / 25. 0x18.3cm어른들 눈에는 낙서같은 그림인데도, 쿠하는 너무 좋아하는 그림입니다. ⓒ 장욱진 미술문화재단
그 중에서도 장욱진은 이제 24개월이 된 딸아이 쿠하가 6개월 된 아기였을 때, 처음으로 소리내어 웃은 작가라 괜히 더 정이 갑니다. 작품이 좋아서 작가가 좋아지는 게 다반사이지만, 이런 사소한 이유로도 한 작가를 유난히 더 좋아하게 될 수 있다는 게 조금 쑥스럽지만, 사실입니다.

아기가 태어난 지 딱 백일 됐을 때, 소아과나 보건소 예방접종 목적으로 외출하지 않고 순수하게 바깥바람을 쐬기 위해 나섰던 첫 나들이 목적지는 광주시립미술관이었습니다.

시댁이 있던 광주에서 쿠하를 낳고 8개월까지 머물렀는데, 첫손주의 백일을 축하하러 친정부모님도 먼 길을 마다않고 달려 오셨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시립미술관에 가서 전시회를 봤는데, 그날 광주시립박물관에는 '한국의 야생화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백일 된 아기가 뭘 알겠느냐며 친정어머니가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것을 만류했지만, 그 첫 번째 관람을 시작으로 쿠하와 저는 미술관 나들이를 시작했습니다.

쿠하가 6개월이 됐을 때는, 온 가족이 함께 '리움'을 찾았습니다. 동서양의 유명 작품들이 건물 3곳에 나뉘어 전시되고 있는 리움은 삼성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 관장이 운영하는 곳이지요. 요즘 삼성 비자금 의혹 사건과 관련해 미술품 경매에서 고가의 작품을 반입한 경로가 문제가 됐지요. 어쨌든 삼성은 수십 년 간 우리나라의 국보급 문화재와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모아왔고, 그 가운데 일부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나무 / 1986 / 캔버스에 유화 /33.5x24.4cm  색감이 분명하면서도 뿌연 유화 그림을 직접 보여주면 더 좋을 텐데요...
나무 / 1986 / 캔버스에 유화 /33.5x24.4cm 색감이 분명하면서도 뿌연 유화 그림을 직접 보여주면 더 좋을 텐데요... ⓒ 장욱진 미술문화재단
리움은 전시된 작품들도 대단하지만, 건축물만으로도 세인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합니다. 프랑스의 장 누벨, 스위스의 마리오 보타, 네덜란드의 렘 쿨하스까지. 유명 건축가를 셋이나 한자 리에 불러 각각의 건물을 짓게 해 바깥에서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운 곳이었습니다.

우리나라 국보급 전시물들을 지나, 한국 거장들의 작품이 있는 근현대실에 갔을 때. 박수근의 어두운 그림 앞에서 아이는 고개를 돌렸습니다. 날카로운 금속 조각 앞에서는 아예 울음을 터뜨렸고, 무서웠는지 제 가슴에 파고들었습니다. 그러더니 박수근 작품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걸려 있던 장욱진의 그림을 보면서 웃기 시작했습니다.

장욱진 그림 앞에서는 까르르 소리를 내면서 웃기도 해서 근처에 서 있던 전시 안내를 하던 분이 말을 걸어왔습니다. 이렇게 어린 아기가 그림마다 다른 반응을 보이는 걸 처음 알았다면서, 장욱진 그림을 아기들이 좋아하는 줄 몰랐다더군요.

물론 저도 그날 처음 알았습니다. 그 전까지 두어 군데 전시회에 데리고 가도 별 반응이 없었는데, 장욱진의 그림을 본 이후로는 미술관에 가면 확실히 반응을 보이는 그림과 싫은 내색을 하는 그림이 있었습니다.

와유 / 1978 / 한지에 마커 / 30x20 늘어져 있기 좋아하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그림입니다.
와유 / 1978 / 한지에 마커 / 30x20늘어져 있기 좋아하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그림입니다. ⓒ 장욱진 미술문화재단
장욱진은 서울대 미대 교수직을 사임하고 덕소(지금은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선 신도시지만, 예전엔 전기도 수도도 들어오지 않은 오지였다고 하네요)와 명륜동 한옥, 수안보의 농가, 신갈의 한옥 등에 옮겨 살며 그림에 몰두했는데요, 신기하게도 집을 옮길 때마다 작품 경향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사는 곳 환경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쿠하가 좋아하는 그림들은 신갈 시절의 가장 최근 작품들과 가족과 아이들이 나오는 그림입니다. 장욱진 그림에 아이들이 자주 등장하게 된 데는 조금 슬픈 일화가 전해집니다. 그가 50살이 다 되어 얻은 막내아들이 정신지체아였는데, 15세 무렵 결핵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고, 그 이후로 아이들 그림을 자주 그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아이 생각이 간절해서 더 그랬겠지요.

동경 유학파 모던 보이였던 장욱진은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수묵화, 도예, 판화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합니다. 게다가 한국적이고 도교, 불교적인 소재들을 많이 그려서 자기만의 스타일을 완성한 대가이지요. 겨울이라 아이를 데리고 먼 길 가기 어려운 요즘은 인터넷으로 그림을 보여주곤 합니다. 인터넷 사이트 장욱진 미술문화재단(www.ucchinchang.org) 에 가시면 더 많은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쿠하가 소리내 웃은, 리움에 전시된 작품은 구할 수가 없어 장욱진 미술문화재단에 공개된 다른 작품들로 대체 했습니다.


#장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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