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 실기 시험을 끝내고 첫 회식을 했다. 8일 동안 함께 고생한 동지들이 모인 자리는 꽤 유쾌했다. 이날 마신 술도 유난히 흡수가 빨랐다. 평소보다 적게 마셨는데도, 금방 취기가 올랐다. 사실 언제 눈을 감았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난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쏟아지는 잠을 참기가 쉽지 않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도전 9일째. 지금 뭐하는 거냐고? 변명이다. 8일째 이야기를 쉴 수밖에 없었던. 사실 이 날은 테스트가 전부라, 이야깃거리가 없기도 했다. 그래서! 테스트 얘기를 짧게 한 뒤, 곧바로 9일째 이야기로 넘어간다. 불만 있어도 어쩔 수 없다. 이미 하루가 지난 터라, 그때 감흥이 사라진 지 오래다. '날'(生) 체험기를 기본으로 하는데, 유통기한 지난 글을 쓸 수는 없다. 지난 21일 치른 테스트는 평소와 다름없었다. 아니, 어쩌면 더 쉬웠다. 테스트는 이렇게 진행됐다. 우선 영법(泳法) 테스트. 자유형, 평영, 횡영, 기본배영, 트러젠을 50m씩 하면 된다. 강사가 주의 깊게 보는 부분은 정확한 자세다. 무리해서 속도를 내려고 하지 말고, 시선처리, 발차기 자세 등에 신경 써야 한다.
기본배영과 횡영을 할 때 시선은 항상 출발점을 바라보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트러젠은 어깨를 확실하게 들어, 손이 물을 끄는 것을 막아야 한다. 어차피 수상인명구조에 도전하는 이들은 웬만큼 수영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때문에 작지만 쉽게 놓칠 수 있는 부분, 강사는 이런 부분을 점검한다. 쉽다고 슬렁슬렁하지 말고, 혹시나 놓치는 부분이 없는지 살피자. 물 속으로 가다 숨이 막힐 땐, 물을 조금씩 마셔라 다음은 5kg 바벨 나르기, 잠영을 잇따라 테스트했다. 바벨은 무엇보다 버티는 게 가장 중요하다. 모양은 좀 떨어지더라도, 25m 건너편까지 끌고 가면 우선 합격이다. 중간에 물을 잔뜩 먹어도 상관없다. 평소에 잘 안 되는 사람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전엔 계속되는 훈련 때문에 몸이 좀 지친 상태에서 했지만, 이번엔 힘이 충분할 때 하기 때문에 할 만하다. 실제로 연습 때 성공하지 못했던 이들 다수가 바벨 나르기를 무사히 해냈다. 할 수 있다. 지레 겁먹고 먼저 포기할 필요는 없다.
잠영도 마찬가지. 끝까지 가면 된다. 여기서 하나 팁. 물 속으로 가다가 숨이 막힐 땐, 물을 조금씩 마셔라. 이거, 생각보다 쏠쏠하다.
한번 '이'라고 말해보자. 그러면 자연스레 이빨이 드러나는데, 이빨을 문 상태에서 "씁~씁~"하며 물을 조금씩 삼키면 꽤나 도움이 된다. 적어도 5~7m는 충분히 더 간다. 마시면 마실수록 더 참을 수 있다. 어차피 한 번이니, 더럽다 생각 말고 팍팍 마셔라. 이어 구조법을 했다. 맨손구조는 '수하(水下)접근'과 '뒤집기', 장비구조는 '뻗어돕기', '뒤집기'를 봤다. 구조법도 틀리기 쉬운 부분만 주의(7편 참조)하면 크게 문제는 없다. 게다가 익수자로 나선 강사도 연습 때와는 달리 꽤나 온순하다. 정신만 바짝 차리고 있으면 누구든지 통과할 수 있다. 테스트는 오전 10시30분쯤부터 시작, 오후 4시30분쯤 끝났다. 중간 중간 휴식시간도 있다. 겨울에 도전하는 이들은 시간 날 때마다 샤워실에서 몸을 녹이는 게 좋다. 그래도 테스트인지라, 약간 떨리는 게 없지 않다. 전혀 안 떨렸다면 거짓말이다. 이때 따뜻한 물로 몸을 녹여주면, 긴장감을 푸는 데 도움이 된다.
결과는? 모른다. 나도 모른다. 강사도 모른다. 알고 있더라도 공식적으로는 모르는 상태다. 한 소식통에 따르면, 결과는 최종 시험을 치르는 26일(토요일)쯤 알 수 있을 것 같다. 한 강사에게 물어봤지만, "전체 집계를 내려면 시간이 다소 걸린다"고 말했다. 궁금하지만, 어쩔 수 없다. 마냥 기다리는 수밖에. 수영장 실기는 이날로 끝났다. 다음은 응급처치법이다.
주야장천 이어진 이론 수업... 눈꺼풀은 천근만근
22일 오전 9시, 서대문 적십자 병원 별관 2층 강당. 수업 시작 전, 책 한 권(응급처치법 II)과 응급구조키트(First Aid Kit)를 개인당 1개씩 나눠줬다. 이틀 동안 배울 응급처치법과 관련된 것들이다. 전날 마신 술이 덜 깼는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속도 더부룩한 것이,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교육도 마찬가지. 이전 교육은 실기 위주였다면, 이젠 이론이 주(主)다. 특히 시간이, 교육 시간이 엄청 길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려 8시간이다. 점심시간(1시간)을 빼도, 7시간이다. 쉬는 시간도 그리 많지 않다. 주야장천 강의실에서 수업이 이어진다. 강의 시작 전 강사가 스치듯 했던 말이 있다. "누군가는 그러더라. 수영장 훈련보다 이 수업이 더 힘들다고." 정말, 그랬다. 몸을 혹사시키다가, 마냥 의자에 앉다보니 쏟아지는 잠을 주체할 수 없다. 눈꺼풀이 천근만근이다. 하지만, 몰래 잘 수도 없다. 걸리면 혼나서가 아니다. 옆에 앉은 짝이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이론 수업이지만, 전반적인 시스템은 팀제다. '오'와 '열'을 맞춰 한 데 움직였던 수영장과 같다. 다만, 팀 구성원이 줄었을 뿐이다. 여기선 2명이 한 팀이다. 한 사람이 잘못했더라도, 모든 책임은 함께 나눈다.
이날 수업에서도 2명이 졸다가 걸렸다. 물론, 책임 추궁은 짝의 몫이 됐다. 자는 짝을 깨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콧구멍에 화이트보드용 마커팬 뚜껑을 꽂고 몇 분을 서 있어야 했다. 장난스러워 보이지만, 이것도 훈련의 일종이라고 강사는 말했다. 효과는 의외로 좋았다. 한 번 당하고 났더니, 미안했는지 더욱 수업에 집중하는 것 같았다. 수영장이 그리워질 줄은... '아~ 수영하고 싶다' 실습 내용도 의외로 '빡쎘다'. 이날 오후에는 구조호흡(rescue breathing), 심폐소생술(CPR)을 배웠다. 대상은 실습용 인형인 '애니'(Anne)다. 쉽게 말해, 머리와 가슴만 있는 마네킹이다. '애니'는 한 아버지가 물에 빠진 딸이 제대로 응급처치를 받지 못하고 숨진 것을 가슴 아파하다가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얼굴도 여자 형상이다. 하지만 가슴이 의외로 단단하다. 웬만큼 힘을 줘서는 잘 들어가지도 않는다.
심폐소생술은 30번씩(걸리는 시간 18초) 총 5번을 반복 하는데, 이렇게 한번 하고 나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구조호흡은 입을 크게 벌려 애니 입술을 덮은 다음, 4초 간격을 두고 총 24번 숨을 불어 넣는다. 마지막엔 경동맥을 짚어, 맥박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낸다. 이 과정이 끝나면, 머리가 띵하다. 술에 취한 듯 몽롱해진다. 풍선 열댓 개 불고 난 뒤 느낌과 똑같다. 다른 사람 구하려다가, 잘못하면 내가 먼저 죽게 생겼다.
겉으로 수업은 마냥 평화로워만 보인다. 하지만 이런 단조로움이 주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의외로 심하다. 커다란 시계가 강의실 뒤편에 있는데,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밀려온다. 시간이 꽤 지난 듯했는데, 시계를 보면 고작 10분 정도만 지나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게다가 뻥 뚫린 곳에 있다가 좁은 강의실에 하루 종일 있으려니 좀이 쑤셨다. 동기 상당수는 "차라리 수영장에서 훈련받는 게 낫다"고 하소연했다. 그렇게 지겨워했던 수영장이 이토록 빨리 그리워질 줄 정말 몰랐다. '아~ 수영하고 싶다.' 내일은 오전에 영아(嬰兒) 구조호흡과 심폐소생술, 부목, 매듭 등을 배운 뒤, 필기시험을 볼 예정이다. 처음에 나눠준 책 2권(수상인명구조, 안전수영)과 응급처치법, 3권에서 모두 100문제가 출제된다고 강사는 밝혔다. 커트라인은 70점, 넘지 못하면 떨어진다. 숙제도, 실기 테스트도 끝나 이제 겨우 숨을 돌리나 싶었더니, 더 큰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 벌써 밤 11시가 넘었는데, 공부는 언제 하나. 얄궂은 눈꺼풀은 눈치도 없이 자꾸만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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