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07년 7월 29일 일요일, 날씨 완전 맑음, 순례 37일째.
팔라스 데 레이에서 리바디소 데 바이소까지, 26km.
오전 7시 50분 출발, 오후 4시 50분 도착.


비노와 세르베자, 보드카가 합세해 머리를 '뎅뎅' 울린다. 부스스 깬 시간은 오전 7시쯤, 습한 더위에 숨이 막혔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니 다들 짐을 싸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더라? 분명 엄청나게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모두가 꿈 속의 일인 양 아른거린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멍한 채로 침대에 우두커니 앉아 정신을 추슬렀다. 짐을 챙겨 계단을 내려와 “언니, 오늘은 저 호르케 네랑 걸을게요”하고 뭐에 끌리듯 숙소를 나왔다.

고요한 아침, 팔라스 데 레이의 거리에는 드문드문 가방을 맨 순례자들이 보일 뿐이었다. 그 가운데 익숙한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먼저 출발한 걸까? 부지런히 따라가면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과 한 개를 '앙' 물고 걸음을 재촉했다. 어제 점심을 먹었던 식당을 휙 지나가는 사이 누군가 나를 부르는 기척에 뒤를 돌아보았다. 세바스였다. "우리 여기서 아침 먹고 있어. 조금만 기다려주면 되는데 시간 괜찮니?", 그래서 "안 그래도 너희 간 줄 알았어. 여기서 기다릴게"하고 대꾸했다.

잔뜩 구름, 그리고 곧 맑음.
▲ 리바디소 가는 길 잔뜩 구름, 그리고 곧 맑음.
ⓒ JH

관련사진보기



얼마 되지 않아 그들과 함께 걷기 시작했다. 팔라스 데 레이의 좁은 골목을 따라 마을을 빠져나와 숲길에 닿았다. 곧게 뻗은 나무가 울창했다. 처음 맡아보는 상쾌한 향기가 마음을 가볍게 해 주었다. "어떤 나무인지 알아?" 하기에 "처음 보는 것 같아. 냄새도 참 좋다", 그랬더니 '유칼립투스'라고 한다. "아, 호주의 코알라들이 먹는 잎사귀가 이거구나", 하고 무심결에 길을 걷는데 무언가를 한참 바라보고 있다. "여기 이 나무 잘 봐", 고개를 돌려보니 커다란 나무 한 그루였다. 속이 텅 빈 채 껍데기만 남아 있었다.

"나무를 타고 자라나는 줄기들 보이지? 저것들이 나무를 천천히 감싸고 자라나면서 영양분을 빼앗아 가는 거야. 그것이 아주 오랜 시간 지속되면, 여기 보이는 것처럼 큰 나무의 속은 텅 비고 둘러싼 줄기만 무성하게 남는 거지."
"기생식물이구나?"
"그래, 기생하는 거야. 멕시코에서도 많이 봤지만 이렇게 큰 나무가 속이 텅 빈 것은 처음 봤어."

그는 말을 멈추고 가만 나무를 들여다본다. '뭔지 모르지만 좋은 향기네' 하는 표정이었다. 내 눈에는 들어오지도 않는 것들을 발견하는 그의 시야가 새로웠다. 자연에 대한 눈썰미가 좋았다. 편하고 세련된 것을 좋아할 것 같은 예상과는 달랐다. "너는 어떻게 그런 걸 다 알아?" 했더니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내가 멕시코에서 1년 간 지내다 온 것 이야기했지? 그 때 한 일 중에 하나가 멕시코의 국립공원 같은 산에서 관광객들을 위한 체험스포츠 강사였어. 15m, 20m가 넘는 오래된 나무에 로프를 매달아서 꼭대기에서 바닥까지 '쉭' 하고 한 번에 내려오는 거야. '캐노피'라고 하는데, 계속 산에서 일을 하는 거라서 자연스럽게 나무며 풀 같은 것을 볼 줄 알게 되었어."

"위험할 것 같지만 왠지 너한테 딱 어울리는데? 처음 네 뒷모습을 봤을 때 운동선수 같은 체격이었거든."

"그래?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엔 더 마른 체형이었는데, 캐노피 강사를 하면서 근육도 많이 생기고 단단해졌어. 강사가 되기 위해서 훈련을 받았거든. 누가 제일 먼저 나무를 오르는 지 기록대결을 했는데, 이렇게 맨 손으로 나무껍질을 붙들고 20m 가까운 나무 위를 원숭이처럼 기어오르는 거야. 누가 1등이었는지 알아? 바로 나였어!

쉬는 날도 없이 그렇게 한 달을 정말 고된 훈련을 받았어. 물론 일을 할 때도 계속 몸을 움직이고 관광객들을 내 손으로 붙잡고 같이 로프를 타니까 말이야. 일이 끝나고 나자 이렇게 단단한 팔을 갖게 되었어. 만져볼래?"

우리는 유칼립투스 숲길을 따라 걸으며 끝없이 이야기했다. 그에게 있어 멕시코와 중남미는 마치 마음의 중심과 같았다. 멕시코의 국기에 얽힌 건국설화, 그리고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 수많은 여행지와 경이로운 자연, 화산이 부글부글 끓고 고대 유적이 찬란한 그곳에서 그는 삶을 배웠다고 했다. 그리고 사랑을 배웠다고 했다.

"스물세 살 때, 정말 아름다운 여자 친구를 만났어.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졌지만 이 사람은 진짜라고 생각했어. 확신이 있었지. 그런데 그녀에게 차이고 말았어. 새로운 사람이 생겼다는 거야. 정말 힘들었어.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어. 정말 바보 같은 짓 많이 했었지. 그 때 처음으로 여행을 시작했어. 4일 간의 포르투갈 여행은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어. 지금까지의 모든 여행은 바로 그 때 시작된 거야."

'에게, 겨우 여자한테 차여서 죽고 싶었다고?', 그러나 그 '에게'하는 경험마저도 내게는 없었다. 타인을 만나는 것, 그를 알아가는 것, 허물마저 감싸는 것, 온전하게 그를 믿는 것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1년간의 여행지를 멕시코로 정할 생각을 했을까, 궁금했다.

"간단해. 학교에서 아무도 가고 싶어 하지를 않더라고. '멕시코라고? 거긴 거리에서 깡패들이 총을 들고 다닌다면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무법천지라면서?', 다들 무서워하며 지원하지 않았어. 그렇지만 나는 그 점이 더 마음에 들었어.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곳, 지금까지 예측할 수 있고 상상할 수 있는 바깥의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니까 말이야.

처음 멕시코에 혼자 떨어져서 우여곡절 끝에 교환학교에 도착한 후 오피스에서 만났던 애가 바로 지금 내 여자 친구야. 그 애도 오스트리아에서 혼자 교환학생으로 와서 그땐 그저 '안녕' 하고 인사하는 정도로 말았지. 첫인상은 아주 새침하고 또 조심성이 많은 애였어. 그땐 그냥 그렇구나 하고 말았지. 그리고 나는 곧 멕시코인 여자 친구를 만나게 되었고.

그녀를 만나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어. 그녀가 있었기 때문에 1년 동안의 삶의 시작을 뿌리내릴 수 있었던 것 같아. 내가 그동안 몰랐던 세계를 보여주었어. 이를테면 이런 거야. 눈을 뜨고 있었지만 볼 수 없었던 세상을 '팟!' 하고 띄워준 거지. 헤어졌지만, 지금도 우린 정말 친한 친구 사이야. 최근에도 멕시코에서 스페인 우리 집에 놀러 왔었어. 정말 신나게 놀았지.

돌아보면 여행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어. 알지 못하는 세계와의 만남이 그랬고, 그 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그랬지. 그리고 그 친구들과의 인연은 단순히 여행지에서 스쳐가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어. 내 입장에서는 지구 반대편에 사는 호주 친구까지 우리 집에 와서 묵어가기도 했으니까."

"너희 집은 마치 전 세계의 순례자 숙소 같아."

"정말이야. 난 지금은 부모님하고 따로 나와서 지내고 있거든. 우리 집에서 고개를 내밀면 부모님 집이 보일 만큼 가깝긴 해. 굉장히 낡고 오래된 집이야. 우리 할머니가 아버지를 키우셨던 곳이니까. 지금은 내가 빌려 살고 있어. 방이 세 개가 있는데, 하나는 내가 쓰고 있고 하나는 콜롬비아에서 온 친구에게 세를 주었어. 나머지 하나는 나를 찾아오는 친구들을 위한 방이지. 너도 혹시 순례가 끝나고 시간이 괜찮으면 발렌시아로 와. 언제든 환영할게."

하루하루 줄어만 가는 순례길, 아쉽기만 한 비석들
▲ 앞으로 50km 하루하루 줄어만 가는 순례길, 아쉽기만 한 비석들
ⓒ JH

관련사진보기

레온에서 만난 미도리씨를 통해 발렌시아를 처음 들었다. 그 때는 그 곳이 어디 붙어 있는 곳인 줄도 몰랐다. "발렌시아는 어떤 곳이야?" 하고 물었더니 정보가 한 아름 쏟아진다.

"스페인엔 큰 도시가 많아.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알고 있지? 그 다음으로 큰 도시가 바로 발렌시아야. 지중해에 맞붙어 있는 해안도시고, 바르셀로나에서 가까운 편이야. '빠에야'라고 해서, 유명한 음식이 시작된 곳이기도 해. 바닷가가 정말 아름다워. 우리 집에서도 아주 가까운데 걸어서 10분 정도면 지중해를 볼 수 있어.

그리고 도시를 관통하는 큰 강이 있었는데 자주 범람해서 항상 골치였거든. 그래서 아예 원래 있던 강을 막고 물줄기를 새로 냈지. 지금은 바로 그 강과 주변을 아름답게 만들어서 유럽에서 가장 긴 공원으로 만들었어. 그리고 그 근처로 과학예술도시라는 이름의 아주 큰 건물이 새로 들어섰어. 이렇게 돔 형태로 만들어져서 굉장히 신기해. 해 줄 얘기야 많지만 이야기로는 잘 감이 안 오지? 나중에 인터넷으로 한 번 찾아보고 마음에 들면 연락해.

그건 그렇고, 한국에 대해서 얘기해 줘. 너희는 북쪽과 남쪽으로 나뉘어져 있지? 뉴스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아. 어떻게 그렇게 된 거야?"

뜬금없는 질문에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나 더듬어본다. '열강의 제국주의시기에 일본으로부터 식민시기를 겪고 냉전시기 가운데 북한은 소련이, 남한은 미국이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고 가볍게 묘사하고 말았다. '네가 사는 곳은 어떤 곳이야?', '너희 가족은? 부모님은 무슨 일을 해? 형제들은? 공부는? 좋아하는 것은 뭐야?’ 끝없는 질문을 던지고 조용히 내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을 들어주는 모습이 밉지가 않다. 알고 싶었다. 어떻게 그렇게 상대방에게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지.

"글쎄, 이렇게 비교해 보자. 처음 너를 만났을 때 나는 백지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거야. 우선 네 첫 인상으로부터 간단한 스케치를 할 수 있겠지. 길을 걷고 있는 아시아에서 온 젊은 여자,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그림이 허전하잖아. 그래서 나는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너에 대한 좀 더 상세한 묘사들을 할 수 있게 돼. 네게 여동생이 있고 지난봄에 세례를 받았다는 이야기들이 내가 가진 너에 대한 그림을 더 정교하고 아름답게 만들게 되는 거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사람들과의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매 순간 작품을 만들어내는 그의 마음가짐이 새로웠다. 이야기를 멈추고 조용히 발걸음을 이어가며 그의 이야기를 곱씹어본다. 나는 타인을 하나하나 아는 것이 버거워 항상 얼버무리고 짐작으로 넘기고 말았는데.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역시 '금세 자기 페이스로 사람을 휘말려들게 하는 사람, 함께 있으면 피곤해질 것 같은 사람'이라고 서둘러 러프를 뜨고 그것을 한구석에 처박아두고 말았다. 마치 나의 그에 대한 서툰 묘사를 들킨 것처럼 뜨끔했다.

바닥을 드러낼 줄 모르는 이야기 끝에 한 시 쯤 '메리데(Melide)'에 닿았다. 어제 니콜라스와 하이카의 목적지이자 오늘 우리의 중간 휴식지점이다. 마을 입구의 작은 성당에서는 검은 수단을 입은 사제가 길 앞에 나와 "들어왔다 가렴" 하며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때마침 주일이다. 좁은 문으로 줄줄이 들어가 사제의 스페인어 설명을 호르케의 영어 통역으로 전해 들었다. 작지만 다양한 의미로 가득 찬 곳이었다.

"여기 이 십자가가 이 성당의 아주 특이한 점 중 하나야. 한 손을 십자가에서 내리고 있는 모습이 보이지? 여기엔 몇 가지 뜻이 있대. 하나는 죄를 지은 인간에게 내미는 손, 그리고 또 하나는 이 땅의 모든 것들을 구원하기 위해 내민 손이래."

한 손을 내린 이색 십자가상
▲ 메리데에서 한 손을 내린 이색 십자가상
ⓒ JH

관련사진보기


십자가에서 떨어뜨린 채 내미신 피투성이의 오른손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을 서 있었다. 곧 호르케와 산티, 세바스를 따라 성당 뒤편의 봉사자에게 여권도장을 받고 약간의 봉헌을 했다. 더 이상 그와 함께 걸을 수가 없었다. 나를 환하게 꿰뚫는 것만 같은 그와 여정을 이어간다는 것이 두려웠다. 나의 정리되지 못한, 두서없는, 어리기만 한, 불안하기만 한…, 어설픈 모습까지 그의 그림에 더하고 싶지 않았다. 복잡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건넸다.

"나 잠깐만 생각할 시간을 줘. 오늘 이 곳에서 머물 수도 있을 것 같아. 먼저 가."

그는 지금까지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던 내가 갑작스럽게 태도를 바꾸는 것에 갸우뚱하다 곧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 이건 네 길이니까, 우리를 따라 올 필요는 없어. 그렇지만 난 너와 계속 같이 걷고 싶어. 여기서 생각하는 동안 우린 저 앞의 바에서 쉬고 있을게. 언제든지 마음이 바뀌면 찾아와. 기다릴게."

의자에 앉아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기도를 한다. '하느님, 무엇이 맞는 것인지 그른 것인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어요. 내 길을 가겠다는 명목으로 어쩌면 그 애가 내민 손을 뿌리치려는 것은 아닐까요. 당신께서 내미신 손을 잡지 못하고 여전히 이렇게 길 위를 맴도는 것처럼….' 무심코 내려다 본 가방에는 길 위에서 그가 꺾어 꽂아 준 보랏빛 꽃이 물기를 머금은 채였다.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꼭 안아주었던 온기가 채 가시기 전에, 짐을 둘러매고 길을 나섰다. 그리고 성당 맞은편의 허름한 바를 향했다. 긴 테이블을 두고 많은 이들과 어울려 신나게 식사를 하고 있던 그들이 보였다. 차가운 비노 블랑코(화이트 와인)와 또르띠야 한 조각을 받아들고서도 한참을 뜸을 들이다 "같이 걷기로 했어"라고 말했다. 한바탕 작은 소란을 부린 것 같아서 미안했다. 잘했다며 비좁은 옆자리에 같이 앉자고 틈을 만들어주는 그가 고마웠다.

시내는 때마침 일요일마다 서는 장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노점에 내어놓은 옷가지며 스페인 음악CD들, 신선한 채소와 음식, 그리고 양 손을 무겁게 하고 이리저리 오고가는 사람들을 헤치고 다녔다. 정신이 쏙 빠졌다. 우리도 그 속에 끼어 과일 몇 개를 집어 들었다. 노란 화살표를 찾지 못해 몇 번을 길을 묻고 곧 마을을 빠져나왔다.

온 몸에 퍼지던 생의 감각을 안겨준 냇가
▲ 리바디소 데 바이소 온 몸에 퍼지던 생의 감각을 안겨준 냇가
ⓒ JH

관련사진보기



얼마 되지 않아 길가의 우물가가 눈에 띄었다. 목욕탕 같은 네모난 돌우물로 졸졸졸 물이 흘러들어와 그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재빠른 순례자 한 명은 그 안에 비닐로 싼 과일이며 물을 담은 페트병을 띄워놓고 몸을 식히고 있었다. 호르케 네는 물 만난 고기들처럼 우물가로 뛰어가 머리를 전부 담그고 팔이며 몸에 물을 묻혔다. "너도 해 봐. 이렇게 하면 차가운 물이 열기를 빼앗아 가서 견디기 더 쉬워", 곧 목욕이라도 할 것처럼 물가로 달려드는 그들을 바라보며 "난 그냥 보는 것으로도 충분히 시원해"라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물을 튕기고 손가락을 살짝 넣어보는 것으로 탐색전을 벌이는 동안 그는 또 다른 순례자들과 말을 트고 있었다. 포르투갈에서 온 순례자는 유명한 성지인 파티마 근처에 살고 있다고 했다. 아주 오랜 시간 그들이 스페인어 혹은 포르투갈 어로 대화하는 동안 나는 뒤늦게 얼굴을 우물에 폭 담그고는 '푸하!' 하고 고개를 흔들어 물기를 털어냈다. "어때, 나쁘지 않지?" 말을 건네는 그를 바라보며 그저 웃고 말았다.

과연 젖은 머리끝이 눈 깜짝할 새에 마를 정도로 오후의 태양은 사나웠다. 몸을 다 담그고 오지 못한 것을 뒤늦게 아쉬워하며 길을 걸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유칼립투스 숲길 사이로 드문드문 산티아고까지의 거리를 알려주는 비석이 나타났다. 걸어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그 숫자가 괜히 매정하기만 했다. 그리고 이제 50킬로미터도 채 남지 않은 목적지까지의 나날들이 아쉽고 또 아쉬웠다. 나의 순례는 이제 시작된 것만 같은데….

이야기를 나눌 힘도 없이 그저 조용히 걷기만 했던 마지막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지나, '리바디소 데 바이소(Ribadiso de Baixo)'에 도착한 것은 다섯 시가 다 되어서였다. 작은 개울을 끼고 자리한 숙소는 순례자들 사이에서 ‘꼭 가 봐야 하는 숙소’ 리스트에 올라 있는 것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그림 같았다. 일찌감치 도착한 이들은 개울가에서 몸을 식히거나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멀리 반가운 얼굴이 보인다. 윤소 언니와 은아 언니였다. 우리에게 양손을 내저으며 내비치는 표정이 심상치가 않았다.

"만석이래, 만석. 침대 없다는 걸."

언니들은 짐을 둘러매고 돌아 걸어오고 있었다. 갑자기 오늘 하루 그들과 걸으며 너무 여유를 부린 것일까, 역시 부지런히 걷는 것이 맞는 것이었을까, 온갖 의구심이 머리를 어지럽힌다.

"걱정 마. 어제 기억하지? 우리가 가서 빈 침대 있나 확인해 보고 제일 먼저 너희들에게 줄게. 우리는 밖에서 자도 괜찮으니까."

그러나 단 한 곳의 빈자리도 없었다. 앞서 온 많은 수의 순례자들이 숙소 식당에 짐을 괴어놓고 바닥에 빼곡하게 매트리스를 깔아놓은 것이 보였다. "우리가 괜찮으면 여기서 자도 괜찮대", 식당 구석 마지막 남은 자리에 짐을 풀고 돌바닥 위의 침낭에 누워보았다. 싸늘한 냉기가 스며들었다. 아무리 봐도 하룻밤을 지내는 것은 무리 같았다. 적어도 이슬을 피할 수는 있겠지. 생각을 접고 식당을 나왔다. 개울가에 몸을 담그고 싶었다. 조신하게 지나쳤던 작은 우물가에서의 한을 풀고 싶었다.

옷을 입은 채로 물가에 들어가 다리부터 천천히 적셔보았다. 정말 차가웠다. 바위에 앉아 발을 담그고 책을 읽다 곧 언니들과 물장난을 하게 되었다. 물을 튀기고 빠뜨리기를 반복하다 윤소 언니가 조금 깊은 곳을 향해 물살을 가르며 유려하게 앞으로 나갔다. "많이 안 깊어. 괜찮아"하며 우리를 향해 손짓하는데 아무리 봐도 불안하기만 하다. 언니는 곧 배영 하듯 몸을 물 위에 띄우고 가만 멈추었다. 마치 물 위를 사뿐히 떠가는 나뭇잎사귀처럼 그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추위에 '오돌오돌' 떨며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용기를 내어 냇가의 한가운데로 향했다.

사지의 힘을 빼고 물 위에 몸을 맡기자 자연스럽게 몸이 떠올랐다. 아주 차갑지만 포근한 감각이 온 몸을 휘감았다. 귓가에 들리는 재잘대는 물의 흐름, 감은 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은빛 햇살, 숨을 깊게 들이쉬자 청량한 기운이 온 몸에 퍼지며 한층 높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반짝 뜬 눈에는 구름 한 점 없는 시퍼런 하늘, 그리고 초록빛의 잎사귀들이 바람에 살랑거리며 춤추고 있었다. 나와 물의 경계를 알 수 없는 순간의 일치감이 손끝까지 가득했다. 곧 균형을 잃고 다리를 허우적거리다 밑바닥에 깔린 통나무에 휘청거리며 개울을 기어 올라왔다. 그러나 그 물가에서 만났던 찰나의 희열은 지금까지도 내 안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오돌오돌' 떨며 뜨거운 물에 몸을 씻고 빨래를 널었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마을의 단 하나뿐인 식당에 쳐들어가 거나한 메뉴를 즐겼다. 밤에는 엊그제 만난 폴란드 순례자인 아가타와 애덤으로부터 두 장의 매트리스를 빌려 침낭 아래에 깔 수 있었다. 그리고 제법 동화 같은 잠자리가 만들어져 있었다. 순례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돌바닥에서 잠드는 밤이다.

돌바닥 위에 곱게 편 순례자들의 간이침상
▲ 오늘의 보금자리 돌바닥 위에 곱게 편 순례자들의 간이침상
ⓒ JH

관련사진보기


체리마을에서의 첫 만남 이후 열심히 도망치기만 했던 그와의 거리가 하루하루 가까워지는 것처럼, 몸을 누이면 한 치의 틈도 없이 호르케의 매트리스와 닿아 있다. '과연 잘 수 있을까', 괜한 걱정이 가득했다. 고개를 가로젓고 그가 자리에 돌아오기 전에 침낭에 몸을 파묻었다. 그리고 곧 잠들었다 옆자리의 미동에 잠을 설치기를 반복했다. 침낭을 이불처럼 두르고 방 밖으로 나왔다.

처마 밑의 벤치에 우두커니 앉았다. 시커먼 밤하늘에 걸린 달은 금빛 만월이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어이가 없었다. 차라리 여기서 자는 게 낫겠다며 몸을 뉘이고 눈을 꼭 감았다. 금세 뼛속까지 한기가 스며들어왔다. 안될 말이었다. 후다닥 슬리퍼를 끌고 방으로 돌아왔다. 자리에 앉아 빈 옆자리를 손으로 매만져보았다. 미지근한 온기가 전해왔다. 그리고…, 멀리서 느껴지는 기척에 숨듯 자리에 누웠다. 끼이익 하고 문이 열리고 자리에 눕는 움직임이 등 뒤로 느껴졌다.

'자야지, 내일도 걸어야지, 지금 무슨 영화를 찍니, 소설을 쓰니, 이런 웃기지도 않는 소녀 감성은 어디서 튀어나오는 거야?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대체 누구야? 잠이 안 와, 어쩌지, 이제 이틀 후면 순례도 끝나는데 별별 일이 다 생기네.'

난생 처음, 생의 감각을 느끼는 것이 낯설기만 해 밤하늘에 온갖 생각을 흩뿌린다. 곧 지레 지쳤는지 깊은 잠에 빠졌다. 그리고 푹 잤다.


태그:#산티아고가는길, #도보여행, #스페인, #성지순례, #카미노데산티아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