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국민의 정부 이래로 지난 10년 동안 견지해왔던 대북정책인 햇볕정책마저 더 이상 장담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정부구조개혁안에 따르면 새 정부는 통일부를 폐지하고 그 역할을 외교통상부에 통합할 예정이다. 그러나 외교통상부가 그 역할을 대행한다는 것은 그 논리에서부터 헌법과 어긋난다. 현재 대한민국 헌법은 우리 영토를 한반도 전역으로 규정하면서 북한지역의 영토는 괴뢰집단이 무단으로 점령 중인 상태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즉, 북한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부의 업무를 외교통상부를 위시한 타 부처가 분담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이런 논리적 모순은 차치하더라도 통일부의 폐지는 새 정부가 통일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의심케 만드는 대목이다. 그러나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새 정부가 가진 통일에 대한 철학이다. “한미관계가 돈독해지는 것이 북한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신년 기자회견 자리에서 이명박 당선인이 던진 말이다. 이 말 한마디에 새 정부의 대북 철학이 모두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당선인의 저 말은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한다.’는 6·15 남북공동선언의 1항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언사다. 그의 발언을 해석하자면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치기보다는 미국과의 공조를 통해 북한을 더욱 옥죄겠다는 것이다. 그의 이런 통일 철학에 따라 소위 ‘헬싱키 프로세스’라고 하는 북한 붕괴 시나리오까지 나왔다. 서유럽 국가들이 안보와 경제 지원 등 모든 현안에 인권 문제를 결부해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를 무너뜨린 과정을 일컫는 정책인 헬싱키 프로세스를 지난 4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한반도에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다시 말하자면, 결국 북한을 붕괴시켜 흡수통일 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대북정책의 근간이 되어왔던 이른바 햇볕정책은 주지하듯이 흡수통일을 지양하고 평화통일 방안을 모색하는 통일정책이었다. 겨울 나그네의 옷을 벗게 만드는 것은 강한바람과 같은 강경책이 아닌 따뜻한 햇볕과 같은 유화정책이라는 김대중 대통령의 위 정책은 실제로 남과 북 사이에 팽배했던 긴장을 완화시켰을 뿐 아니라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설립 등 북한의 많은 변화 역시 이끌어냈다. 이러한 변화의 바탕은 6·15남북공동선언을 기초로 한 신뢰관계에 있었다. 자국을 붕괴시키겠다는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상대를 믿고 무장해제 할 만큼 멍청한 국가는 없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당선인의 상호주의 원칙이 비관적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그의 대표적인 대북정책인 ‘비핵개방 3000’은 북한의 핵 폐기를 전제로 한 대북지원이다. 물론, 북한 핵 폐기는 이빠른 시일 내에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북한 핵 폐기도, 대북지원도 서로에 대한 신뢰가 밑바탕에 깔려 있지 않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서로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남북관계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만약 새 정부가 들어서고 현재 그들이 주장하는 바대로 상호주의 원칙을 고집한다면, 결국 남북관계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한 채 오히려 지금껏 벗겨놓았던 북한의 옷마저 다시 입게 만들 것이다. 우리 민족이 남과 북으로 갈라진 것은 우리 민중의 의지가 아니었다. 외세에 의해 분단되었고 우리는 그동안 그 애통한 현실을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극복하고자 노력해왔다. 그러나 새 정부는 이런 통일의 흐름을 깨려고 하고 있다.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쟁으로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명을 앗아가고 있는 인권 유린 국가인 미국과의 공조를 통해 북한을 인권문제로 옥죌 것을 천명하고 있다. 더불어 북한과의 대화 통로였던 통일부는 폐지하겠다고 하면서 주변국들과의 관계 정립을 통해 북한과의 관계를 모색하겠다고 한다. 중국의 동북공정 등 주변국들은 한반도 통일 가능성에 대비해 벌써부터 자국의 지분 챙기기에 나선 형편이다. 새 정부는 우리의 통일을 반길 우방, 주변국은 없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통일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그것은 미국과의 관계를 중요시 여길 것이 아니라 북한과의 신뢰관계를 돈독히 하여 6·15남북공동선언에 명시한 바대로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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