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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전 부엌을 가진 타샤 튜더 빨간 케이프는 부엌에서 일하는 중에도 동심을 잃지 않는 동화책 삽화가의 마음을 엿보게 한다.
▲ 200년 전 부엌을 가진 타샤 튜더 빨간 케이프는 부엌에서 일하는 중에도 동심을 잃지 않는 동화책 삽화가의 마음을 엿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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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나는 행복하다"고 소리내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 짧은 한 마디 말을 하는데 세상의 평가나 남들의 기준은 필요치 않지만, 자기에게 던지는 더 엄격한 질문과 잣대가 이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자신이 쓴 에세이 제목을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라고 정한 타샤 튜더의 삶은 그녀가 자랑하는 30만 평이나 되는 정원의 크기나 유명세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에서 얻은 만족감 때문에 비로소 행복한 삶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타샤의 치마가 자주색 화기가 되었다.   낡고 빛바랜 자주빛 옷과 꽃이 어우러져 그대로 하나의 그림을 완성한다.
▲ 타샤의 치마가 자주색 화기가 되었다. 낡고 빛바랜 자주빛 옷과 꽃이 어우러져 그대로 하나의 그림을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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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삶의 방식을 선택하고, 그 선택 안에서 만족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행여 그 과정이 고통스럽거나 불편해 보인다 하더라도 부럽기만 하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것은 오로지 하루 24시간 뿐이다. 하루의 시간을 어디서, 누구와, 어떤 일을 하며 어떤 마음으로 보냈는가에 따라 삶의 질은 달라지고, 행복과 불행은 결정된다.

타샤 튜더의 오늘은 또 어떤 하루였을까, 티 타임은 어땠을까, 그녀는 무슨 꽃 스케치에 어떤 색을 덧입혔을까, 지난 크리스마스엔 어떤 장식으로 손녀를 행복하게 했을까, 오븐에는 무슨 파이가 익고 있을까, 너른 정원의 겨울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책을 덮으면 아흔이 넘은 할머니의 하루 일상이 궁금해지고, 가본 적 없지만 익숙한 정원의 풍경이 떠오른다.

타샤 튜더의 책들은 미국 버몬트에서 200년 전 스타일로 자급자족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는 동화작가이자 정원사인 한 사람의 생활 이야기를 담았다. 정원, 식탁, 집, 크리스마스 등 그녀가 아끼고 가꾸는 생활 조각들을 퀼트처럼 하나씩 하나씩 꿰맨 흔적들이다.

나는 거친 손과 발을 좋아한다. 뉴트로지나 핸드 크림을 한 통 다 털어 발라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노인의 거친 손에 직접 키운 꽃 몇 송이가 들려 있는 사진들로 타샤 튜더는 나를 팬으로 만들었다.

예쁘장한 얼굴에 흙으로 단련된 거친 손을 가진 도예가들의 손만큼 매력적인 손은 없다고 생각해 온 내게, 타샤 튜더의 굳은 살이 박힌 두 손은 단번에 그녀에 관한 책들을 읽게 했다.

손이 거칠어 아름다운 정원사  앞치마를 두르고 맨발로 정원을 걷는 타샤 튜더. 정원 어딘가에서 꺾어온 꽃들이 거친 손 안에 담겨 있다. 흙일로 거칠어진 손이 그녀를 둘러싼 다른 모든 것들을 더욱 아름답고 돋보이게 한다.
▲ 손이 거칠어 아름다운 정원사 앞치마를 두르고 맨발로 정원을 걷는 타샤 튜더. 정원 어딘가에서 꺾어온 꽃들이 거친 손 안에 담겨 있다. 흙일로 거칠어진 손이 그녀를 둘러싼 다른 모든 것들을 더욱 아름답고 돋보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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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을 베틀에 넣어 천을 만들고, 손바느질로 옷을 지어 입고, 남북전쟁 시절에 입었던 골동품 드레스들을 수집하고, 염소 젖을 짜내 만든 버터와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먹는 사람.

아이들에게 인형극을 보여주기 위해 마리오네뜨 인형과 인형용 가구들을 만들고, 시냇물을 따라 흘러내려오는 촛불로 생일 잔치를 열어주는 어머니 타샤 튜더는 이제 막 엄마의 길에 접어든 나에게 손품을 들여 아이에게 작은 선물을 하고 싶게 자극한다.

남편과 이혼한 뒤 생활비를 벌기 위해 100여 권의 동화책에 삽화를 그린 화가 타샤는 그림의 소재가 되는 꽃과 나무, 배경이 되는 자연을 누리며 동화처럼 살기 위해 남들은 은퇴를 이야기 할 56세에 버몬트의 버려진 땅을 30만 평이나 사고, 손으로 정원을 일궈낸 개척자 중에서도 으뜸 개척자이다.

<타샤의 정원>은 형형색색의 꽃이 피고 지는 타샤 정원의 한 해 풍경을 이야기와 사진으로 전한다. 구근과 씨앗을 사기 위해 계속 그림을 그려 팔았다는 타샤는 더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꽃의 색을 어떻게 배치하면 좋을 지 오래 고민한다.

'정원에 관한 한 겸손할 생각이 없다'는 타샤는 파스텔 색조의 옅은 구근 식물을 좋아한다. 그런 그녀에게 흔한 자홍색의 진달래류는 '흉측한 색깔'이다. 강렬한 색상을 멀리하는 타샤는 진달래를 파낸 자리에 잉글리시 블루벨을 심고, 틈틈이 노란장대를 심어 색의 조화를 실험한다.

정성을 먹고, 예술을 마시는 타샤의 식탁 방금 따 낸 블루베리로 파이를 만들면 어떤 맛일까. 아니 오븐에 혹사 시킬 것도 없이 흐르는 물에 바로 헹궈 입안에 그대로 한 알 넣으면 어떤 맛이 퍼질까 궁금해지는 블루베리.
▲ 정성을 먹고, 예술을 마시는 타샤의 식탁 방금 따 낸 블루베리로 파이를 만들면 어떤 맛일까. 아니 오븐에 혹사 시킬 것도 없이 흐르는 물에 바로 헹궈 입안에 그대로 한 알 넣으면 어떤 맛이 퍼질까 궁금해지는 블루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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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이 지나치면 집착이 되지만, 타샤 정원에서의 파스텔 집착을 흉 볼 생각은 없다. 자연이 피운 야생초의 매력을 찬미하는 자연주의자들로부터 '그저 색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뿌리채 식물을 뽑아버리는 독선적인 할머니의 고상한 취미'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지만, 누구나 자신이 가진 잣대를 자기 정원이나 삶 안에 적용시키기 마련이다.

타샤 튜더의 엄격함과 잔인해 보일 정도로 쳐내는 성격이 있었기에 황무지를 오늘날의 타샤 정원이 되게 했을 것이다. 게다가 정원이라는 것은 어차피 가지치기로부터 시작하는 '작업'이자, 인공적인 산물이기 마련 아닌가.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상상했던 이미지들을 땅에서 실현해 내는 멋진 할머니의 노력을 큰 소리로 칭찬하고 싶다.    

타샤의 책 가운데 사고 싶지만 구입을 계속 미루게 되는 책은 <타샤의 식탁>이다.

정원에서 얻은 재료로 장작 스토브에 음식을 만들어내는 타샤의 레시피를 따라 할 수 없어서 꼭 갖고 싶은 요리책은 아니다. 자꾸 보면 괜히 먹고만 싶어질텐데, 공연히 채울 수도 없는 식탐만 키울 책이기 때문이다.

서점에서 붙박이로 서서 후루룩 다 읽어버린 이 책에는 타샤가 고풍스러운 주방에서 어떤 재료와 순서로 음식을 만드는지 친절하게 설명돼 있다. 오븐 요리를 즐겨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비슷한 재료를 구해 타샤의 맛을 흉내내봐도 즐거울 것 같다.

돋보기가 돕는 바느질  이렇게 늙고 싶다는 것은 어쩌면 허황된 욕심일런지 모르지만, 옷을 꿰메고 오븐으로 음식을 만들고, 몇 가지 꽃을 가꾸는 정도는 내 현실에서도 가능한 일이다. 다만 세탁소에 맡기고, 외식을 하고, 화원에서 돈 주고 사오는 오래된 습관을 버리면 말이다.
▲ 돋보기가 돕는 바느질 이렇게 늙고 싶다는 것은 어쩌면 허황된 욕심일런지 모르지만, 옷을 꿰메고 오븐으로 음식을 만들고, 몇 가지 꽃을 가꾸는 정도는 내 현실에서도 가능한 일이다. 다만 세탁소에 맡기고, 외식을 하고, 화원에서 돈 주고 사오는 오래된 습관을 버리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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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세팅에도 꽃과 열매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그녀의 음식은 한 식품회사 광고 문구를 떠올리게 한다. '자연에 정성만 더하는' 타샤 튜더의 음식은 정성을 먹고 예술을 마시는 기분이 들 것 같다.

직접 키우는 염소의 젖으로 만드는 치즈나 버터는 어떤 맛일지, 한 알 한 알 손으로 딴 블루베리와 산딸기로 만든 쨈은 또 어떨지 타샤가 손님들에게 내놓는 음식들은 경험한 적 없는 맛들을 상상하게 만든다.

의·식·주로 이루어진 생활환경에서 '식'은 한가운데 글자로 자리잡고 있다. 어쩌면 우리 생활의 진짜 중심은 매일 먹고 마시는 음식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어디서 누가 어떻게 만든 것인지도 모르는 음식을 아무런 의심없이 먹고 사는 도시인들에게 웰빙이나 로하스 차원의 이야기를 떠나서 "오늘 당신의 식탁은 안전했나요? 지금 먹고 있는 음식은 괜찮은가요?"하고 타샤의 식탁은 묻는 것 같다.

국내 한 여행사에서는 2008년 6월 타샤 튜더의 정원을 찾아가는 여행객을 모집하고 있다. 오는 3월 31일까지 신청할 수 있는데, 5월 말에 출발하는 1차 여행에 이어 6월에 2, 3차에 걸쳐 단체여행을 진행한다.

버몬트의 타샤 정원과 뉴욕 등을 방문하는 5박 7일 간의 일정은 비용이 270여 만원이라 결코 만만치 않지만, 종이로만 만나던 '비밀의 정원'에서 고운 흙길을 밟고, 탐스럽게 군락을 이룬 수선화며 튤립, 작약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여행이다.

 자기 입으로 '행복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는 이가 진정 행복한 사람일 터. 그녀가 쓴 에세이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는 한 줄짜리 제목만으로도 부러운 책이다.
 자기 입으로 '행복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는 이가 진정 행복한 사람일 터. 그녀가 쓴 에세이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는 한 줄짜리 제목만으로도 부러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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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운이 좋으면 고령의 타샤 튜더가 건네는 환영 인사를 받으며 그녀가 40여 년 동안 손으로 지은 정원을 볼 수 있는 기회다. (당일 타샤의 건강이 허락치 않으면 대신 그녀의 가족들이 여행객들을 맞이할 예정이라고 한다.)

한글로 번역된 책에 저 거칠고 듬직한, 그래서 아름다운 손으로 'Be Happy'라고 써달라고 하고 싶어지는 토요일 아침이다.

오늘 나는 삐뚤빼뚤 못그리는 그림이지만 내 딸아이를 위해 쓰는 스케치 북 육아일기에 튤립도 그리고 아이비 잎사귀도 그려 넣을 생각이다. 그리고 지난해 봄, 시어머니와 함께 캐고 데쳐 냉동에 얼려둔 취나물을 들기름에 볶아 밥상에 올릴 것이다.

일주일 내내 인스턴트와 화학조미료에 찌든 내 가족의 점심을 차리고, 그들의 주말을 담백하게 해주고 싶다. 내게 30만 평의 땅이 줘도 그녀처럼 부지런히 살 자신은 없지만, 서른 평이 채 안 되는 공간 만큼은 점점 더 내 손맛이 들어간 소품들로 채우고 싶다.

딸아이 이름을 '최정원'이라고 지으면서 내 아이의 마음 밭에 새와 나무, 사람과 햇빛이 오래 머물며 쉴 수 있기를 바랐다. 내게는 흙으로 된 정원은 없지만, 살과 피가 자라는 정원이가 있다. 40년 후 어느 토요일 낮에 다시 타샤의 책을 읽으며, 그 아이와 더불어 "우리는 행복하다"고 한목소리로 말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 책장을 덮는다. 


타샤의 정원 (리커버)

타샤 튜더.토바 마틴 지음, 공경희 옮김, 리처드 W. 브라운 사진, 윌북(2017)


#타샤 튜더 #넥스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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