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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 기자회견이 있기 얼마 전, 찜질방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훈아가 일본에서 000 잘렸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일까요?”
“그거 아마 진짜 사실일 겁니다. 연예계에 정통한 친구에게서 들은 말인데 옛 연인을 일본으로 불러내 사랑을 나눈 후 그 여자가 후환이 두려워 잘랐다더군요.”


이게 무슨 소린가. 귀가 번쩍 뜨였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나훈아라면 소위 중년여성들의 우상이라는 인기가수가 아니던가.

 

모 여행사의 패키지여행에 따라 나섰다가 덕유산 근처의 찜질방에 들렀을 때였다. 평소 찜질방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지만 추운 날씨에 몸도 녹일 겸 따라 들어간 숯가마 찜질방은 내부 풍경이 가히 엽기적이었다.

 


출입구가 2중 담요 문으로 되어 있는 찜질방 내부는 둥그런 모습이었다. 뜨거운 열기가 가득한 찜질방은 중년의 남녀들이 빈틈없이 빙 둘러앉아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 헐렁한 찜질방용 옷을 걸친 사람들의 표정과 모습이 정말 가관이었다. 물론 나도 그들 중의 한 사람이 되어 있었지만.

 

“그래서 어떻게 되었답니까?”
맞은편에 앉아서 흥미롭게 듣고 있던 중년 여성이 다음 말을 재촉했다.
“일본에서는 봉합 수술이 불가능하여 미국으로 날아갔다는데 그 이후는 소식을 못 들었네요.”
처음부터 나훈아 괴담을 흥미진진하게 늘어놓고 있던 체격이 아주 좋아 보이는 중년 남성이 말을 받았다.

 

“나훈아 죽었다는 소문도 있던데요?”
이번에는 입구 쪽에 앉아 있던 남성이었다. 방안의 시선이 모두 그쪽으로 쏠렸다.

“죽어요? 어떻게요?”
다음 말이 금방 이어지지 않자 누군가가 재촉하는 말이었다.

“일본 야쿠자들에게 당했다던가? 그렇지요, 아마...”


그때 대부분 중년 이상의 나이를 먹은 사람들이 모여 앉아 괴기스러운 모습으로 나누는 대화가 바로 소위 ‘나훈아 괴담’ 이었다. 추운 날씨 때문이었는지 이날의 이 찜질방이 근거 없는 루머의 온상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나훈아씨에 대한 이 터무니 없는 그런 루머들은 어디서 만들어졌을까? 소위 나훈아 괴담은 작년 3월 세종문화회관 공연이 취소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더구나 어버이날과 추석, 설 등 명절에 효도상품으로 인기를 끌었을 ‘나훈아 디너쇼’ 가 열리지 않으면서 의혹은 더욱 증폭되었다.

 

일부 젊은 여배우들의 이름까지 거명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커졌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나훈아 특검’이라도 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이런 루머들은 인터넷뿐만 아니라 일부 신문에서조차 “요즘 이런 소문이 떠돌고 있다‘라는 내용으로 기사화 되었다. 그러자 인터넷과 소문을 보고 들으며 긴가민가했던 사람들이 이건 어쩌면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25일 나훈아씨가 기자회견에서 “여러분의 펜이 사람을 죽입니다” “한 줄도 쓰지 않았다면 방관하신 겁니다”고 기자와 언론을 강하게 비판하며 강조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카더라’ 기사를 쓰거나 그런 루머로 세상이 온통 떠들썩할 때 심층 취재하여 사실을 밝히지 않은 언론을 향한 불만을 터뜨린 셈이다.

 

그러나 기자회견을 보며 어떤 사람은 “그런 루머가 나돌기 시작했을 때 장본인이 진실을 확실히 밝혔으면 일이 이렇게 커지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하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적절히 대처하지 않은 나훈아씨의 책임을 거론한 것이다.

 

나훈아씨의 기자회견이 있기 며칠 전 루머에 시달리던 어느 여배우의 해명이 먼저 있었지만 괴담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어?” 하고 애써 외면하려 했던 대중들의 심리가 참으로 아리송했다. 중년여성들의 우상이라는 장본인의 섹시코드가 개연성으로 작용하여 대중심리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의 어두운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우리 사회의 문화수준이 연예인들의 가십에 너무 몰두해 있다는 척박한 문화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일부 연예인들의 시시콜콜한 사생활은 물론 하찮은 사건들까지 대중들에게 너무 큰 공통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것은 결코 건강한 사회현상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을 보면 그런 일 아니면 뭐 재미있는 일이 있어야지?”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근래 정치판을 봐도 그렇고, 경제나 사회를 봐도 그렇고, 어디 마음 붙일 곳이 있느냐는 것이다.

 

대중들이 어딘가 마음을 붙이고 열광할 수 있는 꺼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우연히 불거져 나온 한 유명연예인의 ‘괴담’으로 확대 재생산된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고 보면 소위 터무니없는 헛소문 ‘나훈아 괴담’으로 마음을 다치고 홍역을 치른 연예인들은 우리나라의 사회현상이 빚은 억울한 희생양인지도 모른다.


태그:#이승철, #나훈아 괴담, #숯가마찜질방, #루머,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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