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1987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와서 유학을 마치고 연구원을 거쳐 현재 미국의 한 사범대학에서 부교수로서 특수교육을 가르치고 있다.
필자가 전공하는 영역이 특수 교육 가운데서도 학습이 부진한 학습 장애, 행동이 많이 어긋나 주목을 받는 행동장애 등의 영역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학생들에게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등을 가르치는 방법을 많이 다루고 있다. 지난 학기에는 현직 교사인 대학원 학생들에게 말하기, 읽기, 쓰기, 어휘력 향상 등을 가르쳤다. 그러므로 필자가 한국의 영어 교육에 대하여 이 글을 쓰는 것은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요즈음 한국의 차기 대통령 인수위에서 영어 교육의 방향을 바꾼다고 한다. 세세한 대책은 아직 발표되지 않은 듯하지만 한 교육학자의 관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인수위는 한국의 학생들을 미국이나 다른 나라로 나가게 하여 소위 "기러기 아빠"가 생기는 것을 막겠다고 하였다. 생각 자체는 좋다. 한국의 아동들을 외국으로 보내면 외자 유출이 되어 국가적으로 손실이 될 수 있지만, 대신 외국의 교사들을 국내로 들여오면 그들은 그 돈을 대부분 국내에서 쓸 것이기 때문에 경제적인 관점에서 학생을 외국에 보내는 것보다 교사를 외국에서 들여오는 것이 좋다고 본다.
그런데 인수위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한국의 영어 교사들을 소위 "몰입 교육"을 시켜서 유능한 구술 언어를 사용하도록 훈련하겠다고 한다. 이것도 그 근본 취지는 좋다. 그러나 이것은 몇 가지 이유로 극히 회의적이다.
한국에서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다니다가 미국에 온 학생들도 언어와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엄청나게 고생하는데, 성인이 된 교사들을 어떤 방법으로 "몰입"을 시켜 영어를 교실 언어로 사용하도록 훈련한다는 말인지 알지 못하겠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필자 자신을 예로 들자.
필자는 지난 12년 동안 미국의 대학에서 영어로 대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정말 피나는 노력을 했다. 그래서 지금은 교실 영어가 그리 불편하지 않지만 되돌아 보면 정말 고난스런 세월이었다.
필자는 한국의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였으므로 영어로 된 시나 소설 등을 많이 읽고 미국에 왔다. 그러나 듣기, 말하기와 같은 이른바 실용 영어 (functional English)는 자라나면서 사용했던 언어가 아니어서 매우 힘든 것이었다. 혹시 필자의 배우자가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이었다면 좀 쉬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필자는 단지 영어를 쓰는 사람을 만날 때만 영어를 사용하고 가정에서는 한국어를 사용하여 영어 사용이 항시적이지 못했다. 그런데다가 만나는 영어 사용자들이 다 필자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아니고 평시대로 말하는 사람들이어서, 나는 내 영어를 교정하는 것을 우연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짧게 말하자면 근 10년의 교수 생활 후에 교실 영어가 좀 편해졌다.
영어 교육에 대한 개념 없는 인수위수년 전에 어떤 분이 "영어의 바다에 빠뜨려라"고 하는 책을 썼다고 한다. 학습 지도법 가운데 이 방법은 "헤엄 치든지 빠져 죽어라" (sink or swim)고 하는 방법으로 소위 "몰입"이라는 방법과 궤를 같이 한다. 말하자면 헤엄을 못 치는 사람더러 "헤엄을 배우려면 헤엄 치면서 배워야 한다"고 하면서 그 사람을 물에 던져 버리는 방법과 같은 것이다. 헤엄의 기본이 갖추어진 사람에게 그렇게 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을 그렇게 하면 살아 남는 사람은 극소수가 된다. 이 방법은 연구의 바탕이 전혀 없으며 성공의 확률이 지극히 낮은 이론일 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영어 교사를 '몰입' 시키며, 몇 년을 '몰입' 시켜 교실 언어로 사용하게 할지 궁금하다.
한국의 인수위는 우랄 알타이어인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이 인도 유러피언 언어인 영어를 배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에 대한 개념이 없는 듯하다. 우선 이 두 언어 사이에는 음성학적으로 유사점이 아주 적어서 두 언어 사이에 정확히 같은 음소는 3-4개에 불과하다. 나머지 음소는 모두 서로 다르다.
예를 들면 한국어의 'ㄷ'과 영어의 'd'는 같은 소리가 아니다. 즉 한국어의 'ㄷ' 소리로 영어의 'd'를 발음하면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은 아주 빈번히 이해에 혼란을 갖게 된다. 어법도 한국어와 영어는 전혀 다르다. 그런데 이런 장벽을 넘지 못하고 영어를 교실 언어로 사용하겠다면, 이는 소위 '콩글리쉬'를 학생들에게 연습시키는 결과가 된다.
결론적으로 인수위가 내 놓은 교사 교육은 성공의 확률이 아주 적다. 만일 국가적으로 영어를 사용해야만 국제 경쟁력에서 이길 수 있다면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한 가지 방법은 한때 필자의 제자였던 캐임브리쥐 대학의 장하준 교수가 말했듯이 선택된 소수의 학생들을 집중적으로 훈련시켜 통역이나 번역사로 쓰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전문적인 통역, 번역사라는 취업의 기회를 늘리는 방법도 되며, 다른 학생들에게는 영어에 쓰는 열정을 가지고 과학, 공학, 인문학 등 다른 분야에 전념하게 하여 국가 발전에 기여하게 할 수가 있다.
또 한 가지 방법은 국가적으로 영어를 공용어로 공표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모국어인 한국어의 사용이 희생된다는 크나큰 손실이 오게 된다. 그러나 지금처럼 "영어 전쟁" 상황에서 사느니 오히려 그 점이 낫지 않을까 한다.
필자는 미국의 대학에서 싱가포르 출신의 어느 교수와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의 유려한 영어에 대해 감탄하면서 필자가 어떻게 젊은 사람이 그리도 영어를 잘 하느냐고 하니 그 사람은 "싱가포르에서는 저희가 어릴 때부터 영어가 공용어였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전 국민에게 영어를 충분할 정도로 말하고 듣게 하려면 이 방법 말고는 아마 없을 것이다. 전 국민이 영어를 노련하게 말할 필요가 없다면 장하준 교수가 제시한 방법이 최상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