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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받은 엽서 사진
▲ 엽서 앞면 어머니가 받은 엽서 사진
ⓒ 정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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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다니는 야학에 다녀왔다. 학생들과 교사들이 모여 작은 공연을 준비했다고 해서 토요일 늦은 저녁 그곳을 찾았다. 누가 교사인지 학생인지 구별하기가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여느 학교라면 연세 지긋한 분이 교사일 확률이 높을 테지만, 이곳에선 어려보일수록 교사일 확률이 높다.

교사와 학생의 수가 비슷해 보인다. 과목마다 선생님이 달라서이기도 하지만 학생 수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렇다. 예전에 비해 학생 수가 참 많이 줄었다 한다. 잘은 모르겠지만 검정고시 학원이 늘어나서 그런 게 아닐까 혼자 생각을 해보았다. 졸업생과 이곳을 거쳐 간 교사들도 참석했고, 내빈들도 많아 나는 누가 누구인지 분간이 되질 않았으나 분위기만큼은 화기애애해서 참 좋았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었다. 학생의 시가 낭송되고 교사들이 속한 학교의 국악동아리에서 찬조출연을 했다. 해금과 대금 연주는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주었고, 아직 이십대 초반 대학생의 얼굴은 풋풋함, 순수함 그 자체였다. 해금 연주를 직접 들어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언제인가 후배 하나가 해금 연주를 듣고 반했다는 말을 내게 들려준 적이 있었는데 나도 오늘 그 친구처럼 해금 연주에 반해 버렸다. 대금도 마찬가지, 서양음악만을 좇을 게 아니라 우리 음악에도 관심을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시나브로 몰려들었다.

포크댄스를 마친 어머니는 내 옆자리에 앉아 다음 공연을 하는 교사와 학생들의 소개를 해주었다.

“사회를 보는 사람이 교무부장 선생이다. 수화 공연 때 맨 앞줄에 서 있는 여고생처럼 보이는 수학선생은 정말 똑 소리 나게 수학을 잘 가르친데이. 수수하게 화장도 안하고, 아르바이트 해서는 엄마 다 갖다 주는 효녀다.

치대 다니는 선생은 다부지고 귀공자 스타일이제. 스케일링이고 뭐고 무료로 치료해준다 카는데 시간이 없어 몬간다. (어머니는 낮에 일하고 밤에는 공부를 하러 다니신다.) … 교무부장 선생이 태권무 할 때 다리가 참 잘 올라가제. 교무부장 선생은 사람이 참 좋데이. 수학을 가르치는데 내가 모르는 문제를 백번 물어봐도 싫은 내색 한 분(번) 안하고 잘 가르쳐 준데이. 그래서 너무 미안하고 고맙드라.”

선생님이 어머니께 준 편지글
▲ 엽서 뒷면 선생님이 어머니께 준 편지글
ⓒ 정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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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많이 웃은 저녁이었다. 수화 공연이 끝나고 짧은 꽁트가 있었는데 코미디 프로를 흉내 낸 것이었다. '따시따시'를 연발하며 시작한 꽁트는 너무 웃어서 눈물이 날 만큼 재미있었다. 약간의 실수가 오히려 더 배꼽을 잡게 만들었고, 공연을 준비한 정성이 말할 수 없이 갸륵했다. 마지막으로 교사와 학생이 하나가 되어 합창을 하는데 마음이 찡했다.

무언가를 배우기에 늦어도 너무 늦은 나이일 수 있는 어른들이 참 대단해 보였고, 자기 공부하기에도 바쁠 학생들이 귀중한 시간을 내어 부모님뻘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정성이 너무 대단해 보였다.

어머니가 이곳에서 공부를 하고 좋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구나. 어머니로 인해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공연을 보게 되어 마음이 얼마나 좋았던지. 세상에는 아직 좋은 사람들이 더 많은 거라 자위하게 된 밤이었다. 모르긴 해도 이곳을 거쳐간 교사들은 참 훌륭한 선생님으로 거듭날 것이다. 선생님이 아닌 직업을 갖더라도 모두 훌륭한 사회인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봉사라는 것이 어디 마음처럼 쉬운 일인가. 학생 신분에 맞게 정성을 다해 봉사를 하는 그들을 천사라고 부르고 싶다. 또한 편히 쉬실 나이에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일 밤 야학의 문을 두드리는 어른들에게도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다.


태그:#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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