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가 수요자 입장에서 기능을 정비, 억울하고 힘든 일은 한 곳에서 원-스톱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국민권익보호창구를 일원화 한다는 목적으로 국가청렴위원회(이하 청렴위), 국민고충처리위원회(이하 고충위), 행정심판위원회(이하 행심위)를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국익위)로 통폐합한다고 한다.
사실 인수위는 처음 출발할 때부터 청렴위가 없어질 것이라는 얘기를 꾸준히 흘려보냈었다. 하지만 청렴위는 당초 경제적으로는 선진국 문턱에 진입했다고는 하나 전 세계적으로 '부패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대한민국을 투명하고 깨끗한 국가로 만들기 위해 모든 시민사회와 정부의 의지가 합쳐져 만든 기관이다.
하지만 조사권이 없는 점, 검찰출신 책임자들과 행정부 파견공무원들로만 구성된 점 등이 청렴위의 한계로 지적되어 왔다. 이에 전문가들과 반부패운동을 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은 ▲조사권부여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의 설치 ▲내부고발자보호제도의 확충 등 끊임없이 제도보완을 요구해왔다.
상황이 이러한데 인수위는 오히려 후퇴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권층에 대한 삼성의 전방위 로비와 비자금을 수사하는 특별검사, 대통령당선자의 주가조작여부를 조사해야하는 BBK 특별검사와 동시에 출발하는 이명박 정부는 태생적으로 반부패의지를 더 높였어야 했다. 그러나 그 기대를 어김없이 저버리고 말았다.
청렴위와 고충위 통합, 반부패의지 '실종' 인수위의 말대로 억울하고 힘든 일은 한 곳에서 원-스톱 서비스를 받도록 국민권익보호창구를 일원화할 수 있다면 쌍수를 들고 반길 일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고충위는 스웨덴에서 시작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조직으로 수많은 법규정의 기계적 집행과 경직된 행정의 관행, 재량권, 관료적 지배 등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옴부즈맨이 국민의 입장을 대변해왔다.
우리나라에서도 10년 전인 문민정부 때 국민들과의 갈등을 줄이고, 행정집행의 효율화는 물론 인간적 행정을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발족했다. 2005년 고충위 확대개편 때 소속을 어디로 할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많았는데, '대부분의 선진국처럼 국회소속으로 하거나 대통령소속으로 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압도적이어서 대통령소속 위원회로 발족 되었다.
행심위는 하급관청의 위법·부당한 행정을 상급기관이 시정하도록 함으로써 행정의 통일성과 적정성을 유지하도록 하는 행정내부의 자기통제장치다. 이를 국민의 '권리구제제도'라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기능이다.
상급관청에 의해 하급관청을 통제하는 것이 행정심판의 주된 목적이다. 따라서 그 소속도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아니라 행정책임자인 국무총리로 되어 있다. 행심위에서 당사자인 행정청은 승소율을 높이기 위해 국민의 입장을 고려하기 보다는 행정과 법규논리를 고수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한 집에 변호사, 검사, 판사가 함께 산다?행심위와 달리 청렴위는 옴부즈맨이나 행정심판과는 전혀 다른 일종의 '감찰기구'에 해당된다. 청렴위는 공무원의 부패행위를 신고 받아 비리공직자를 감찰하고 감사나 수사를 의뢰하는 기능을 한다. 이점에서 청렴위는 해당 행정기관 혹은 공직자와 제3자적인 입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관계에 있게 된다.
이처럼 같은 행정기구라도 법률가들에 빗대어본다면 변호사와 같은 기능과 하는 '고충위'와 검사와 같은 역할을 하는 '청렴위', 판사와 같은 기능을 하는 '행심위'가 같은 집에서 살면서 끊임없이 티격태격 싸우고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한 지붕 세 가족'일 때는 달리 볼 일이다.
아울러 고충위와 청렴위는 대통령 소속이다. 영국에서는 국가단위 옴부즈맨은 물론이고, 지방옴부즈맨도 여왕이 임명하고 있다. 의원내각제 국가가 대부분인 유럽의 옴부즈맨 선출과정은 수상을 선출하는 절차와 같다. 이들 옴부즈맨의 최고 권한은 권고이고, 대안적분쟁해결(ADR)을 추진하는 옴부즈맨에게 '권력'이 아니라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비교적 독립적 지위를 부여한다.
2005년, 국무총리 소속이던 고충위를 대통령 소속으로 바꾼 이유도 이런 국제적인 흐름에 맞추기 위해 노력한 결과다. 따라서 국제표준(Global Standard)을 강조하는 이명박 정부에서 이런 국제적인 흐름에 반하는 조치를 취한다면 앞뒤가 안 맞는 일이 될 것이다.
또 유럽연합(EU)의 가입조건 중 하나가 옴부즈맨의 설치·운영인 것을 보면, 옴부즈맨은 매우 중요한 기능이다. 따라서 "대통령 소속의 위원회가 지나치게 많다"는 등의 논의에 휩쓸려 가볍게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또 인수위 안에 따르면, 권익위는 국무총리 소속이면서 입법부, 사법부, 헌법재판소, 선거관리위원회와 감사원 등 행정 각 부에 속하지 아니하는 국가기관의 부패관련 행위를 규제하고 개선권고를 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는 삼권분립의 원칙을 무시하는 처사다.
만들어진 기본취지에 근거 국민 입장에서 재검토 돼야공직자 비리조사에도 관여하게 될 '국민권익위원회'가 일반국민을 위하여 옴부즈맨으로서 행정기관과 해당 공무원에게 접근하게 되면 어떤 경우가 발생하게 될까?
민원인들은 그동안 본인이 억울하다고 생각되는 문제를 모든 민원을 받는 각종 기관에 제보하고, 알리는 경향을 보여왔다(통합민원서비스가 안 되어 있어서가 아니라 어디라도 힘센(?) 곳에 하소연하고 싶은 심정에서다). 그래서 행정심판 및 행정소송은 물론 청와대, 고충위, 인권위 등 온갖 기관에 호소하곤 했다.
행정심판 결정에 불복해서 고충위 문을 두드린 민원인들에게, 고충위의 권고·조정·합의 내용이 다를 것을 기대하는 민원인에게 어떤 기준과 잣대를 들이댈 것인가? 이미 고충위는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이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결국 위원회내의 통일성을 기하기 위해(정확히는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위원회 내에서 권위 있는(소위 높은 사람이) 사람이 내리는 결론에 다시 따를 수밖에 없는 불가피성이 존재할 수도 있지 않은가?
청렴위와 고충위의 업무성격을 보면 더 심각하다. 도무지 업무효율과 시너지가 생기지 않을 것 같다. 앞서 얘기한 대로 청렴위는 공직자 비리를 찾는 감찰기관이자 준사정기관의 성격이 커서 비리제보자 혹은 민원인의 신원과 정보공개내용을 철저히 보호해야 하는 업무상 책무를 가지고 있고, 고충위는 민원인과 담당공무원 혹은 해당 행정기관의 충분한 정보공개와 협조를 얻어야 하는 업무체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두 기관이 합쳐진다면 '국민권익위원회'의 민원조사관이 해당공무원과 해당행정기관에 접근할 경우 제대로 협조를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공무원의 입장에서 보면 더욱 더 심각하다. 그동안 고충처리업무의 가장 큰 문제는 해당 공무원이 민원인과 원만한 조정·합의를 하고 싶더라도 인사상의 불이익을 우려해서 행정심판 혹은 행정소송까지 가도록 내버려두는 관행이었다.
또 공무원들은 정확한 정보를 고충위 조사관에게 원활하게 제공해야 한다. 그런데 한 위원회 안에 함께 있을 경우 공무원은 본인의 잘못된 행정행위를 인정하지 않거나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려고 할 수도 있다. 또 기존 고충위 조사관이 접근하면 내부정보가 기존 청렴위 조사관에게 넘어가지 않는다고 누가 확신하겠는가? 그런 면에서 준사법적 행정기구와 옴부즈맨적 행정기구는 마땅히 분리되어야 한다고 본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인수위와 정치권은 정부의 위원회의 숫자를 줄이는데 급급하여 졸속으로 통합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 인사청문회라는 절차를 거쳐야하는 정부조직들과 다른 정부위원회 등은 본래 만들어졌던 기본취지와 철학에 근거해 국민의 입장에서 재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