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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 짓는 잔일을 마감하고 고로쇠 물을 받기 위한 준비 작업을 위해 지리산 농장으로 간다. 집사람과 운전을 교대하기 위해 덕유산 휴게소에 들렸다. 관광버스에서 쏟아져 나오는 관광객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문득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 중 가장 큰 축복은 선택의 자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각자 자기가 원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유의 의미가 새롭다. 많은 사람들이 여가를 이용하여 여행한다. 나는 주말을 이용하여 퇴직 후 생활을 준비하는 일을 한다. 10년 후 시랑헌(侍郞軒, 지리산 농장의 이름) 모습을 상상하며 덤프트럭에 올라 핸들을 잡는다.

남원의 목재상에서 창고 마무리를 위한 목재, 공구상점에서 난로를 옮길 수레와 전동대패 날, 굴착기 부품상점에서 고장 난 부품을 구입하고 산동 철물점에 들러 고로쇠 물을 받기 위한 부품들을 챙기고 나니 점심시간이다. 가시나무와 한약재를 넣어 돼지머리를 삶는다는 국밥집에서 점심을 먹고 시랑헌에 들어선다.

해결 해야 할 많은 일들이 널려져 있다. 열쇠가 안에 있는 체 문이 닫힌 굴착기, 배수로가 없어 넘쳐난 물이 빗어놓은 빙판과 진흙탕 길, 건축 중인 창고, 쌓다가 중단한 석축, 어질러진 건축 쓰레기 들이 줄지어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눈에 띄는 것 마다 돈이요 시간이다. 밖에서 일하기엔 너무 추운 날씨이다. 집사람에게 오두막으로 들어가 쉬라고 하고 시랑헌 뒤로 돌아와 창고 문을 열고 필요한 공구를 꺼낸다.

일이 하기 싫을 때는 가장 흥미로운 일부터 시작하는 것도 요령이다. 새로 사온 화목난로를 설치하고 엔진톱을 이용하여 나무를 자르고 큰 도끼로 장작을 팬다. 장작이 어느 정도 쌓이자 난로 안에 쌓아놓고 가스토치를 이용하여 불을 붙였다. 무쇠가 달아오르면서 내뿜는 열기가 기분 좋게 느껴진다.

고로쇠물을 나눠 마실 때 추울까봐 미리 사 놓은 장작나무 난로
▲ 화목난로 고로쇠물을 나눠 마실 때 추울까봐 미리 사 놓은 장작나무 난로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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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고구마를 들고 집사람이 난로 곁으로 오면서 “여보! 난로가 맘에 들어?” 하면서 다가온다.

난로 상단에 설치된 구이통에 고구마를 넣고 둘이서 타오르는 난로 곁에 앉았다. 나무 타는 냄새와 함께 열기가 손을 통해 얼굴까지 전해온다.

서울에 살면서 정월이 되면 얘들을 행복하게 해준다는 명분을 앞세워 온 가족이 정월이면 불 깡통을 만들고 방패연을 만들어 광명천변으로 달려갔다.

불을 지피면서 옷까지 태워버린 기억과 눈에 잘 보이지도 않게 높이 날린 방패연의 실이 끊어져 속상했던 일, 애들과 배드민턴을 치면서 바비큐를 한다고 모닥불을 피웠던 추억들이 파로라마처럼 펼쳐지며 뇌리를 스쳐간다.

이럴 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팔월 한가위만 하여라!” 하는 모양이다.

고구마 타는 냄새에 놀라 나와 집사람은 다시 현실의 세계로 돌아온다. 고구마들이 이미 숯이 된 지 오래다. 집사람은 “역시 자연은 상상의 세계에서나 좋은 것이냐” 하면서 탄 고구마들을 버린다.

이제 몸이 녹았으면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굴착기 문을 해결하고 물이 넘쳐 빙판이 된 길을 보수하는 일을 해야 한다. 굴착기 문은 열쇠로 해결되지 않아 육각렌치를 이용하여 문을 뜯어내고 시동을 걸었다. 빙판이 된 윗부분을 파고 배수로를 만드니 어느덧 새로운 물줄기가 생겨 졸졸 흐르는 도랑을 이룬다. 다시 흐르는 물줄기를 바라보니 흐뭇한 생각에 웃음이 나온다. 천생 나는 산속에 살 운명인가보다.

집사람은 열쇠를 고치기 위해 굴착기문을 차에 싣고 남원으로 가고 나는 고로쇠 물을 받기 위해 도구들을 들고 고로쇠나무 숲으로 들어선다. 편백나무 숲 속에서 봄을 기다리는 춘란들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띤다. 고로쇠 물을 찾아가는 설레는 마음이다.

식수 후 20년이 지났지만 제대로 관리가 되지않아 
성장이 더디고 위로 윗자란 고로쇠나무
▲ 고로쇠 나무 숲 식수 후 20년이 지났지만 제대로 관리가 되지않아 성장이 더디고 위로 윗자란 고로쇠나무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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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월 동안 잘 알지도 먹어보지도 못했지만 고로쇠나무 수액은 소화불량, 당뇨병, 신경통, 위장병, 관절염, 각기에 좋은 생명수이란다. 어느 약용식물을 소개하는 책자에서는 고로쇠 수액을 인류의 최후 음용수로 지목하고 있었다. 지하수 오염을 의식한 과장된 표현으로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살아있는 나무를 통한 필터링 과정을 거친 각종 미네랄 성분이 함유된 완벽한 음용수라는 확신이 든다.

나는 평생 인위적으로 혈당을 조절해야 하고 신장의 기능저하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이다. 작년에는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지 못해 채취시기를 그냥 지나쳤지만 올해는 고로쇠나무를 이해하도록 노력하고 약수채취 기술도 배울 것이다. 퇴직 후 귀거래사를 읊을 요량으로 구입한 산의 나무 중 1/3 정도가 고로쇠나무이니 나와 깊은 인연이 있는 것 같다. 새삼스럽게 소중해진다.

고로쇠나무는 지리산 골짜기마다 널리 분포되어 있으며 밤사이에 흡수했던 물을 낮에 날이 풀리면서 흘려내는 것을 뽑아낸 것이 고로쇠 약수이다. 봄만 되면 어김없이 수액이 나오는 데 우수, 곡우를 전후해 날씨가 맑고 바람이 불지 않을 때 많은 수액이 나온다. 비가 오고 눈이 오거나 강풍이 불며 날씨가 좋지 않으면 수액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밤 기온은 영하 3~4도, 낮 기온은 영상 10도로 일교차가 15도 정도 되는 절기에 고로쇠 약수가 가장 많이 나온단다.

나와 집사람은 심봉사 같이 들뜬 마음에 여러 사람들에게 고로쇠 물을 선물하겠다고 약속했다. 고로쇠나무들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고로쇠 약수를 보관할 김치 냉장고부터 사다가 시랑헌 좁은 방안에 넣어놓았다. 또 둘러앉아 고로쇠 물을 마실 때 추울까 봐 대형 화목난로를 구입하였다. 이제 고로쇠나무에서 약수가 쏟아질 차례이다.

내일 아침이면 3대째 지리산에서 고로쇠 약수를 생업으로 받아온 마산면 무수리 이장 장진옥씨가 고로쇠 채취방법의 진수를 전수하기 위해 시랑헌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다.

를 위한 비닐펄프와 호스를 연결하였지만 고로쇠 약수는 한방울도 모여지지 않았다. 거기엔 보통사람들이 간과하기 쉬운 비밀적인 진수가 숨겨져 있었다.
▲ 고로쇠 약수 채취 를 위한 비닐펄프와 호스를 연결하였지만 고로쇠 약수는 한방울도 모여지지 않았다. 거기엔 보통사람들이 간과하기 쉬운 비밀적인 진수가 숨겨져 있었다.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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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장 이장과 같이 고로쇠나무 숲으로 올라가도 되련만 내가 시공한 것을 전문가에게 평가받고 싶다는 생각과 우선 한 컵이라도 내가 채취한 약수를 집사람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에 드릴과 고무호스, 그리고 펄프 등 동내 철물점에서 구입한 부품을 챙겨 고로쇠나무 숲으로 올라갔다.

나의 시공은 평가용이라 많은 나무에 시공해서는 안 된다. 다섯 그루만 인터넷에서 습득한 방법으로 설치하고 콧노래를 부르며 내려오니 집사람의 트럭이 남원에서 돌아와 시랑헌으로 오르고 있다.

드릴로 고로쇠나무에 구멍을 뚫을 때는 고로쇠 물 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됐구나! 싶어 비닐콜크로 막고 호스를 연결하였다. 다섯 그루를 연결했으니 한 컵 정도는 집사람과 시음할 수 있으려니 예상했으나 시랑헌 마당까지 연결한 호수에는 고로쇠 물이 한 방울도 비치지 않는다.

도중 연결 부위가 빠졌나? 밤중에 다시 산으로 올라갈 수도 없다.

말투가 험하기로 소문난 장 이장 입이 두렵다. 집사람에 미안하고 자신에게도 쑥스럽다. 그러나 거기에는 미처 생각지도 못한 비밀이 숨어 있었다. 나와 집사람은 고개를 몇 번 갸웃거리다가 포도주 한잔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하편으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고로쇠 물을 채취하는 3대째 내려오는 비법을 공개합니다.



태그:#고뢰쇠, #고로쇠약수, #고로쇠물 채취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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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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