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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을 하루만에 다 알려 하면 욕심이다. 아니 만용에 가깝다. 금정산은 다양한 표정을 감추고 있고 그 품새가 넓어서 몇 번은 와야 겨우 알 수 있을까. 금정산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얼굴(표정)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보통 금정산 하면 범어사나 금정구 남산동, 구서동, 장전동, 금강공원, 식물원 등 지하철 1호선에서 가까운 들머리를 찾아 주능선으로 오른다. 하지만 부산 지하철 2호선을 이용해 북구 덕천, 만덕, 수정, 화명, 율리 등지에서 오르면 지금까지 봐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금정산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부산과 김해를 긋는 낙동강의 도도한 물결과 김해평야와 김해 백두산, 동신어산, 신어산, 오봉산 등의 파노라마 능선도 감상할 수 있다. 그뿐인가. 금정산은 어느 곳에서 시작해 올라와도 산은 길을 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길에서 길을 내어주고 길이 길을 인도하는 것 같다.

어디서 금정산으로 향하든 그 다양한 표정을 읽으며 산에 오를 수 있다. 단지 조금 멀거나 가깝거나 할 뿐, 그리고 어디서부터 들머리를 찾아 오르는가에 따라 그 산의 다른 얼굴들을 맞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된다. 산은 길을 품고 길을 내고 길에서 길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초에는 양산 장군봉에서 금정산 고당봉까지 등반했고, 11월 말에는 범어사에서 의상봉, 원효봉, 4망루, 미륵사, 고당봉으로 이어지는 금정산의 표정을 감상했다면 이번에는 지하철 2호선을 이용해 화명동에서 가까운 들머리를 찾아 금정산 상계봉, 파리봉, 남문 등지로 등반하기로 했다.

지하철에 탄 시간은 오전 10시 42분. 차창 밖 왼쪽으로 오봉산, 오른쪽으로 금정산이 손에 잡힐 듯 지척에 있다. 부산 화명동에서 내려 2번 출구로 나왔다. 그린힐 아파트 101동 경비실 옆에 등산 입구가 나왔다. 11시15분이다.

한참 동안 가파른 산길을 올라간다. 산행하는 사람들이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남편과 나, 우리 두 사람만 계속되는 가파른 산행로를 따라 걷고 있다. 인적 없는 산을 오르다 보니 이 산이 금정산이 맞긴 맞는 것일까 의문이 든다.

▶ 화명동~상계봉

산을 오르다 보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도 싫지만 사람이 너무 없어도 적적하다. 아니 괜스레 겁이 나기도 한다. 멧돼지라도 출몰하지 않을까 겁이 나기도 한다. 지난 가을엔, 시골에 계신 부모님이 가꾸는 밭에는 멧돼지가 몇 번을 나타나 고구마 밭을 쑥대밭으로 만들기도 했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아 숲은 더 울창해져 날짐승들이 많아진 까닭이다. 산이면 산, 식당이면 식당, 거리면 거리, 어디든 가는 곳마다 카메라를 들이대는 나를 보고 남편은 우스갯소리로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당신은 멧돼지가 나타나도 카메라를 들이대겠지? 나랑 멧돼지가 한바탕 대결하는 모습조차도 카메라를 들이대면서 여보, 천천히 슬로비디오로 해~! 슬로우~ 슬로우~하면서 디카를 들고 사진 찍느라 바쁠 거야 아마, 당신 말대로 슬로비디오로 찍기 위해 천천히 움직이겠지. 하하”

얼마쯤 갔을까. 가파른 산길이 끝나고 넓은 길이 나왔다. 12시다. 이 길은 유림아파트에서 올라오는 길이라 표시가 되어 있다. 넓은 산책로에 이르자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이 보여 반갑다. 왼쪽 길은 어디로 이어지는 것일까.

가지 않은 길은 언제나 궁금증과 아쉬움을 남긴다. 우리는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난 호젓한 길을 따라 걷는다. 나무 아래 깔린 낙엽들은 바람 없이 고요하게 누워 있다. 적당히 넓은 길에 서 있는 나무들은 서로에게 말을 걸고 있다.

나무는   
- 류시화

나무는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그러나 굳이 바람이 불지 않아도
그 가지와 뿌리는 은밀히 만나고
눈을 감지 않아도
그 머리는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있다

나무는 서로의 앞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그러나 굳이 누가 와서 흔들지 않아도
그 그리움은 저의 잎을 흔들고
몸이 아프지 않아도
그 생각은 서로에게 향해 있다

나무는
저 혼자 서 있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세상의 모든 새들이 날아와 나무에 앉을 때
그 빛과
그 어둠으로
저 혼자 깊어지기 위해 나무는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오늘은 쨍하고 햇볕이 나지 않고 계속 흐리다. 나는 하늘을 향해 몇 번이고 말을 건다. ‘구름은 물러가고 햇볕은 나오너라. 고운 해야 나오너라’ 몇 번이고 말을 걸어도 햇볕은 내내 구름 뒤에 숨어 있다. 얄밉다 얄미워. 이런 날, 햇볕의 고마움을 다시 느껴보라고 그 얼굴을 숨기고 있을까. 얼마쯤 가다보니 전망대가 나왔다. 잘 만들어 놓은 전망대 주변에서 사람들이 앉아 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전망대 바로 아래는 덕천역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전망대를 지나 얼마쯤 걸어 가다 보니 체육시설이 되어 있는 쉼터가 나온다. 여기서 산 외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하이킹 코스로 석불사 가는 길로 이어진다. 우리는 곧장 상계봉 가는 길로 등산로를 따라 걷는다. 높은 나무와 나무 사이를 오가는 청솔 세 마리가 얼마나 민첩하게 나뭇가지와 나뭇가지 사이로 넘나드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높은 나뭇가지에서 또 다른 나뭇가지로 옮겨 다니고 있었다.

우리는 화명동, 덕천동, 만덕동 등지를 옆에 끼고 혹은 뒤로 하고 계속 올라가고 있다. 상계봉(높이642m)가는 등산로는 급경사다. 1시 10분, 만덕동 상학초등학교 갈림길이 나왔다. 등산을 하다 보면 꼭 라디오를 크게 틀고 다니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이야기 벗이 없어서일까. 조용한 등산로를 따라 걷고 있는 사람과 숲의 조화를 깨뜨리고 만다. 라디오뉴스를 크게 틀고 뒤에서 오던 사람이 우리를 앞질러 간다.

상계봉 가는 길엔 그 주변 일대가 기암괴석들과 높은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상 주변을 비롯해 곳곳마다 바위산들이 솟아 있다. 상계봉 정상 도착, 1시 50분이다. 흐린 하늘에 햇살이 구름 커튼을 걷고 잠시 그 얼굴 비치다 다시 구름 뒤에 숨는다. 눈발이 보일 듯 말 듯 흩날린다. 상계봉 정상 주변 곳곳마다 높이 솟아 있는 기암괴석들과 거대한 암봉에는 사람들이 여기 저기 앉아 있다.

▶ 제1망루~파리봉

상계봉 정상에서 남문 쪽으로 바로 가려다가 이 근처에 있는 파리봉까지 갔다가 다시 남문으로 향하기로 했다. 근처에 있는 봉우리를 두고 그냥 가려고 하면 내내 궁금증으로 남을 것이기에. 파리봉 가는 길에 제1망루를 만났다. 2시 10분.

파리봉과 상계봉 일대는 전부 기암괴석들과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어 역동적이고 남성적이다. 2시 35분 파리봉(615m)에 도착했다. 파리봉이 어딘지 궁금했는데, 이제 알고 보니 금정산 가나안 수양관에서 올라오는 산 그 끝에 있는 봉우리이다.

금정산 가나안수양관에는 자주 올랐던 곳으로, 가나안 수양관 뒤쪽으로 난 산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다 보면 넓고 큰 기도바위들이 있어 언제나 바위 위에 앉아 거기서 크게 찬송도 부르고 기도하곤 했던 곳이다. 금정산 가나안 수양관까지는 자주 올라왔었지만 파리봉까지는 올라가 보지 않아서 몰랐던 것 같다. ‘파리’란 '불교의 칠보 중의 하나로써 수정을 뜻한다'고 정상 표시석에 친절하게 기록해 놓았다.

파리봉 정상 전망데크에서 내려다 보면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길이 있다. 파리봉에 도착해 전망데크에 서는 순간, 전망데크 바로 아래에서 올라온 사람이 있어 어디서 올라왔는지 물었다. 화명동 정수장에서 이곳 파리봉까지 곧장 올라오는 길은 1시간가량 소요되는 짧은 동선이라 가깝다고 했다. 우리는 멀고 긴 길을 돌아온 셈이다.

파리봉 정상에서 곧장 내려가는 길엔 높은 바위를 로프를 타고 내려가야 한다. 계속 기암괴석들과 암봉을 거쳐 온 우리는 또 다시 큰 바위가 버티고 있는 것을 보자 아찔했다. 안전로프만 바위에 있을 뿐 돌아서 가는 길은 보이지 않는다. 파리봉 아래로 내려가면 금정산 가나안 수양관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올 터이다.

파리봉 정상 주변에서도 역시 주변경관을 조망하거나 점심 도시락을 먹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우리도 자리를 잡고 앉아 늦은 점심을 먹었다. 아주 가끔 구름을 뚫고 내비치는 햇살이 역시나 반갑다.

▶ 남문~금강공원


우리는 이제 원래의 계획대로 파리봉에서 제1망루를 지나 남문으로 향할 계획으로 왔던 길을 다시 돌아 걷는다. 제1망루로 가는 길에 금샘 2개를 발견했다. 제1망루에 다시 도착했을 땐 3시 20분, 파리봉에서 여기까지 약15분 소요되었다. 남문으로 간다.

남문 가는 능선 길은 오른쪽은 기암괴석, 왼쪽은 넉넉하고 아늑한 풍경이다. 헬기장을 지나 망미봉(605m)도착, 3시 50분이다. 나뭇가지에 정상 팻말만 붙어 있다. 남문에 도착(4시 5분), 동문 가는 길을 버리고 케이블카 탑승장 쪽으로 향한다. 연인으로 보이는 젊은 외국인 두 사람이 지나간다.

금정산성 2망루(4시 15분)를 거쳐 온천동 금강공원 내에 들어섰다. 주막들이 여러 개 있고 사람들이 하산하고 있는 모습들이 보인다. 저 사람들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케이블카 탑승장(4시 50분)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금강공원으로 내려간다.

이미 해는 지고 많이 걸은 탓도 있지만 케이블카를 타는 재미는 물론, 소개도 하고 싶어서 유료인 케이블카에 올라탔다. 걸어서 내려가면 적어도 30분에서 4∼50분 걸리지만 케이블카를 타고 가면 약 10분 정도밖에 소요되지 않는다.

케이블카 가득 사람들이 타서 만원을 이루었다. 오늘따라 산에서 외국인들을 여러 명 만났다. 케이블카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면서 주변 경관을 동영상 촬영을 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그리고 우리 발치 아래 있는 숲, 케이블카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담았다. 그런데 어쩐 일이람, 저장이 되지 않았다.

처음 시작할 때 눌렀던 전원버튼을 촬영이 끝나고 다시 눌러야 하는데 놓쳤던 것이다. 아깝다. 걸어내려 올 수 있는 길을 3500원씩이나 지불하고 탔던 케이블카이건만. 어쩔 수 없다. 케이블카를 타본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금강공원에 도착. 이곳은 민속촌, 어린이공원, 휴가촌, 골퍼클럽 등을 갖춘 관광단지다. 놀이공원 목마는 저희들끼리 돌아가고 있다. 바이킹을 타면서 질러대는 괴성을 뒤로 하고 금강공원 정문을 나왔다. 온천3동에서 온천장역으로, 온천장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연산동까지, 연산동에서 3호선을 타고 덕천동까지, 덕천동에서 2호선 양산행을 탔다. 출발부터 돌아가기까지 멀리 돌아온 것 같다. 호포역에서부터는 전철에 조용한 음악이 흘러 나왔다.

차창 밖엔 어둠이 만져질 듯하다. 차창 밖 바깥 풍경 속에서 사람 사는 불빛이 반짝이고 있다. 모든 사물을 감싸안은 어둠, 그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불빛들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양산역에서 내렸다. 제법 긴 여정이었음에도 피곤한 줄 모르고 또 하루가 진다.

덧붙이는 글 | * 우리가 걸었던 산행 발자국 : 지하철2호선타고 화명동2번 출구- 그린힐 아파트-산책로(유림아파트에서 올라오는 길)-전망대-체육공원- 상학초등학교 갈림길-상계봉-제1망루-파리봉-제1망루-헬기장-망미봉-남문-제2망루-케이블카탑승장-온천동 금강공원

* 새로 발견한 길 : 화명동 화명정수장-파리봉-상계봉-남문 방향



태그:#상계봉, #파리봉, #금강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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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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