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연구소는 아닌데요." 인터뷰를 진행한 <환경과 생명>의 장성익 편집주간 겸 사무처장의 말이다. <환경과 생명>은 같은 이름의 계간지와 환경관련 단행본 출판이 주된 활동이며, 엄격히 말하면 연구소가 아니다. 하지만 환경단체 중 꾸준하게 전문성이 담긴 학문적 결과물을 내놓고 있으며, 논쟁과 토론을 주저하지 않으니 연구소의 개념에도 크게 부족하지 않아 보인다.
<환경과 생명>은 큰 방향에서 기존의 진보적 문제의식에 생태적 관점을 더해 지속가능한 진보, '녹색진보'를 만들어가고자 한다. 경제성장과 물질적 풍요에 대한 근본적인 관점의 전환이 없는 한 기존의 진보도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환경문제는 사회구조의 변화와 함께 사람들의 의식 변화가 함께 이루어져야 완성될 수 있는 분야이기에 현재 만연해 있는 경제중심, 물질중심의 가치관 전환을 장기적 목표로 세우고 있다. 특히 경제와 행복에 대한 기존의 허구적인 관념을 깨고, 대중들이 '진짜 경제'와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관건이라고 한다.
<환경과 생명>이 발간한 단행본으로는 <신개발주의를 멈춰라>(조명래 외), <꿈꾸는 지렁이들>(꿈꾸는 지렁이들의 모임), <대한민국을 멈춰라>(장성익), <개발정치와 진보>(조명래) 등이 있다.
진보의 진보, 생태적 고민이 결합된 ’녹색진보’
- '환경과 생명'이 지향하는 바에 대해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지금의 환경위기, 생태위기가 인류와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기존의 산업화, 근대화, 성장, 발전, 개발의 개념에서 추진되어온 흐름이 이제 많은 폐해를 낳고 있는 상황이죠. 우리는 이런 상황에 경종을 울리고 지속가능한 새로운 대안사회, 녹색생태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생태적 전환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 모색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는 기존 진보, 쉽게 말해 좌파적인 진보의 문제의식을 지켜가면서 생태적 고민을 결합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를 ‘녹색진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 주로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시나요? "‘환경과 생명’이라는 계간지 발행이 가장 중요한 활동입니다. 그 외에 단행본이나 보고서, 자료집 등을 출판해서 관련기관과 단체 등에 보내서 여론화하는 작업을 합니다. 포럼이나 토론회도 간헐적으로 진행하고요."
- 현재 상근자는 몇 명입니까? "상근하는 사람은 5명 정도입니다. 그 외에 정책위원, 연구위원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활동하시는 분들이 100여 명 정도 됩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계간지 <환경과 생명>에 글을 써주신 분들이 300~400명 정도 되지요. 우리사회에서 환경문제와 관련해서 나름대로 수준 높은 연구를 진행하고 글을 발표하신 분들은 여기 거의 망라되어 있는 셈이죠. 우리 잡지가 1994년에 창간되어 올해로 14년째를 맞이하다 보니 그 과정에서 많은 인맥이 모일 수 있었습니다."
- 회원체계는 어떻게 되나요? "잡지 정기구독자 회원이 있고요, 매달 5000원 이상씩 후원하는 일반회원과 1년에 100만원 이상 후원하는 평생회원이 있습니다. 회원들의 후원과 잡지나 단행본 판매 수익금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 환경문제를 다루는 많은 단체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환경과 생명>만이 가지는 특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환경단체 중에서도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등이 메이저 단체죠. 이런 곳은 대중운동 단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회원을 조직하고 사안이 발생했을 때 시위나 퍼포먼스, 이벤트 등을 벌이기도 하죠.
반면에 우리는 전문가 중심의 연구를 중시합니다. 전문성이 담긴 연구 결과를 주로 출판의 형태로 내놓고 이를 통해 새로운 담론 형성과 사회적 공론화, 궁극적으로는 정부 정책의 변화까지도 꾀하는 것입니다. 환경단체 중에서 우리의 역할은 이론적 작업을 정리하고 새로운 의제를 제시하는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론 작업 중시, 논쟁과 토론을 통한 공론화- 구체적인 사례를 몇 가지 들어주신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먼저 지금 우리사회의 성격이나 특성을 규정할 때 ‘신개발주의’라는 용어를 많이 씁니다.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하고, 이런 문제의식과 개념을 소개한 것이 우리 단체였습니다. 또 황우석 사태 때, 그가 사기꾼이라는 것이 탄로나기 훨씬 전부터 우리가 앞장서서 문제제기를 했습니다. 황우석 자체에 대해서, 생명공학과 현대 과학기술의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서 지적했습니다.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기하고, 방송에도 많이 출연했죠. 그 때 공론화가 많이 되었습니다.
그 외에는 환경운동 내부에 대한 비판론과 자성론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90년대 사회주의권이 무너지면서 생겨나기 시작한 시민운동은 2000년의 총선시민연대를 정점으로 해서 조금씩 위축되었습니다. 환경운동도 마찬가지로 위기를 겪고 있었죠. 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변화와 반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했습니다. 특히 제가 썼던 글에 나왔던 ‘환경귀족’이라는 말이 여론을 많이 탔죠."
- 주로 논쟁을 많이 몰고 다니셨군요? "그렇죠.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그에 대해 우리의 입장을 밝히고, 토론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활동을 했습니다."
- 서두에 ‘녹색진보’를 이야기하시면서 생태적 관점이 결합된 진보를 지향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기존 진보 진영에서 생태적 관점이 결여된 부분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워낙 전반적인 문제라서 하나를 꼬집어 말하기가 참 어렵네요. 기존 진보의 제일 핵심적인 문제는 생산력주의, 즉 성장 그 자체를 부정하거나 비판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기존 진보는 양극화나 빈부격차 등 성장에 따른 폐해를 주로 지적합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들만 해결된다면 경제 성장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경제성장 자체가 문제를 갖고 있다고 봅니다. 생산력을 높이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는 것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이 지속가능성을 갖지 못한다고 봅니다."
기업가 대통령, 실력 있는 보수, 조중동이 합세하면 진보진영 어려울 수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는 앞으로 5년 동안 환경운동은 어떻게 되리라 전망하십니까? "지금 한반도 대운하를 건설하겠다고 자꾸 들이대는 것만 봐도 정책적인 면에서는 환경분야에 많은 무리가 따를 것이라 예상됩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개별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이명박 당선인 개인과 그 정권의 기본철학이 경쟁, 효율, 속도, 시장, 개발이라는데 있습니다. 개발독재, 개발만능주의, 시장만능주의로 흐를 것이 뻔하기 때문이죠. 그렇게 되면 환경운동은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죠.
‘실용정부’라고 이름을 붙인다는 이야기가 있다가 말았는데, 실용 자체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한 국가를 실용의 관점에서만 운영한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장기적 안목이 필요한 것은 소홀해질 수 있습니다. 환경적 가치, 인문학적 가치, 문화적 가치 등이 그런 것이죠. 이는 근본적으로는 사회 전체의 황폐화, 사막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인간관계부터 시작해서 사회 전체가 실용이라는 이름으로 재편되는 것이니까요."
- 지난 대선에서 국민들이 이명박 정권을 뽑아주었지만, 막상 겪어보면 국민들도 그 실체를 알게 되어 오히려 진보진영에 유리한 국면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물론 그런 전망이 맞을 수도 있죠. 하지만 객관적인 위기가 아무리 깊어진들 주체의 준비정도와 역량이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기회를 잡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진보진영은 경각심과 긴장감을 비상히 높여야 합니다.
제가 볼 때는 그런 예상과 정반대로 흘러갈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명박 당선인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사람들의 우려와 비판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는 세련되고 참신하게 포장한 보수의 모습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지금도 ‘혁신 기업가’의 이미지라는 말이 종종 나오지 않습니까? 거기에 보수진영에도 실력 제대로 갖추고, 공부 제대로 한 인재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이명박 정권 하에서 그럴듯하게 국정을 운영해가고 ‘조중동’이 합세해서 거들어주면 보수의 헤게모니가 더 강해질 수도 있습니다.
객관적 사회모순이 깊어짐과 동시에 이런 현실이 닥칠 수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아주 골치아픈 상황이 되는 거죠. 그래서 지금은 진보진영이 내공을 쌓고 내실을 잘 다지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우리사회에 내면화된 경제 중심 가치관의 전환이 관건- 올해의 계획이나 화두는 무엇입니까? "일단 이명박 정권 하에서 국토환경과 자연환경의 파괴를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 어떻게해야 힘있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인가가 환경운동 전체의 큰 화두가 되겠죠.
더 중요한 것은 이명박 후보의 당선이 보여주는 대중들의 의식, 시대의 흐름입니다. 물론 노무현 정권에 대한 배신감과 절망으로 이명박 후보를 찍은 사람들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경제 중심의 가치관’이 내면화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돈 많이 벌고, 출세하고, 성공하면 된다는 생각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상황을 깨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 대안으로 ‘경제’라는 개념이 담고 있는 허구성을 폭로해야 한다고 봅니다. 주류 경제학에 따르면 GNP가 얼마 올라가고, 1인당 국민소득이 몇만 달러가 되면 우리나라가 발전했다고 봅니다. 하지만 GNP라는 개념이 얼마나 허구적입니까? 태안 앞바다에 기름이 유출되고, 교통사고가 많아지고, 전쟁이 일어나면 GNP는 올라갑니다. 절대 GNP와 같은 수치가 우리 경제의 발전을 말해주지 않습니다.
이것이 개인적 차원으로는 ‘행복’이라는 개념의 재정의가 되겠죠. 무엇이 진정한 ‘행복’인가? 경쟁, 효율, 속도 등으로만 재단되는 물질적인 풍요로움만이 행복이 아니라는 사회적 의식을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장기적인 과제이지만, 이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나갈 생각입니다."
- 마지막으로 우리가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일단은 환경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그냥 세상 흘러가는 대로 산다면 더 이상 생존이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지구온난화와 자원고갈의 문제가 심각하게 다가오는 상황에서 환경문제는 더 이상 멀리 있지 않습니다.
또 하나는 지금의 이런 삶이 과연 인간다운 삶인가를 한번 돌아보시라는 것입니다.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 이윤을 위해 모든 것이 굴러가고 경제성장이 중심이 되는 사회가 인간의 품위, 삶의 품격을 얼마나 훼손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무엇이 인간답게 사는 길이며, 무엇이 진정한 행복인지를 찾아가는 길이 바로 환경문제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대안정책 웹사이트 이스트플랫폼(www.epl.or.kr)에 게재되었습니다. 이수연 기자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연구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