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과 추위로 집안에서만 맴돌다 올 겨울은 몹시 춥고 눈도 많이 내렸다. 겨울은 겨울다워야 한다. 내가 이 안흥 산골마을에 내려온 뒤 가장 겨울다운 겨울이었다. 1월 중순 전후로 보름 동안은 줄곧 영하 10도 이하를 밑돌았고, 눈도 한 자 이상 내렸다. 추위에다 눈으로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집안에서만 맴돌았다. 지난해 봄에 산책로를 개발하고는 거의 매일 한 바퀴 돌아야겠다고 다짐했지만 매일은커녕 일주일에 한번이나 돌았을까.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날마다 오후 3시면 정확하게 산책을 해서 마을사람들이 시간을 알았다는데, 그런 좋은 습관은 여간 부지런하지 않으면 안 될 성 싶다. 날마다 창을 통하거나 마당에서 체조하며 언저리 산에 쌓인 눈을 즐겼다. 함박눈이 쏟아질 때의 비경은 온몸에 전율을 느낄 정도로 아름다웠다. 날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산촌생활은 즐겁다. 사실 이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면 이 산마을에서 살 수가 없다. 내가 사는 영서지방보다 태백산맥 너머인 영동지방과 대관령 일대가 눈이 더 많이 내린다. 올해도 영동지방은 적설량이 서너 자는 된다는 보도를 보고 눈 구경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가, 그 지역주민들이 볼 때는 남은 눈 때문에 고생이 이만저만 아닌데, 멀리서 차를 타고와 팔자 좋게 눈 구경을 즐기는 게 얼마나 얄밉겠는가. 마침 어제는 날씨도 풀리고, 눈이 내린 지 일주일 정도 지났으니, 이제는 눈도 어느 정도 치웠을 것 같아 눈 구경을 나섰다. 요즘 아내가 나들이 중이라 카사(고양이)에게 저물녘까지 혼자 잘 지내라고 당부하고는 면사무소 앞으로 가 9시 30분에 출발하는 면민 편의용 공용버스를 탔다. 마음속으로는 눈 덮인 설악산을 목표로 떠났지만, 교통이 엄청 불편한 이가 어디 내 입맛대로 갈 수 있겠는가. 최종 행선지는 오늘 운수에 맡기고 9시 40분, 소사2리 정류장에 내려 횡성휴게소로 갔다.
큰 나무는 깊은 산속에서만 자란다 주차장에 이르자 동서울 발 속초 행 시외버스가 막 도착하여 손님을 내리고 있었다. 몇 손님이 내린 뒤 기사에게 물치까지 편승을 부탁하자 좋다고 하였다. 내가 차 삯으로 일 만원을 드리겠다고 하자 기사는 많다고 하였다. 그래서 팔천 원 드리겠다고 하자 그 정도면 됐다고 하였다. 10여 분 쉬는 시간이라 나도 휴게소로 가 커피 한 잔을 마신 뒤 버스에 올랐다. 우등 형 버스로 손님은 채 열 명도 안 되었다. 일인용 앞자리에 앉아 영동고속도로 언저리의 눈경치를 눈이 시리도록 원 없이 바라보았다. 가지에 눈송이가 잔뜩 얹혀 있는 쭉쭉 뻗은 소나무가 일품이었다. 기둥이나 들보 감이 될 큰 나무는 역시 깊은 산속에서만 자랐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도시로, 외국으로 몰려만 간다. 이런 걸 가르쳐야 하고 모범을 보여야 할 나라 지도자들이 위장 전입이네 조기 유학이네 설치며 탈법 편법교육에 더 앞장 서고 있다. 나라의 장래가 걱정이 된다. 예로부터 ‘교육백년지계(敎育百年之計)’라 하여, 사람 교육은 그 효과가 최소한 한 세대가 지나야 드러나는데 이런 추세로 나가면 당분간 나라에 큰 인물을 기대하기 어려울 듯하다. 나라의 기둥은커녕 서가래도 안 될 뒤틀어진 인물이 들보로 쓰이고 있는 현실에 아이를 기르는 부모도 그렇고, 어린이조차도 굳이 정직하고 성실하게 자랄 필요성을 느끼겠는가. 동해안을 거슬러 올라가며 차창으로 왼쪽의 눈 덮인 산을, 오른쪽의 쪽빛 바다를 번갈아 둘러보는 새, 기사는 설악동 어귀 물치에 내려주었다. 11시 20분, 버스에서 내려 바다를 바라본 뒤 정류장에서 설악동 행 시내버스를 기다렸다. 버스 정류장 바로 뒤에서 택시기사는 내가 택시 출입문을 열기를 고대하였지만 난 못 본 척 했다. 10여 분 기다리자 설악동 버스가 왔다. 버스가 설악동으로 접어들자 설악의 장엄한 설경이 한 눈에 펼쳐졌다. 나에게 설악은 내 고향 금오산 다음으로 자주 오른 친숙한 산이다. 학생들과 수학여행으로 자주 찾았고, 해마다 여름방학 때는 가족과 들렸던 곳이기에 설악동 일대 지형이 익었다. 하지만 봄 여름 가을의 설악 경치는 익지만 눈 덮인 설악은 한 번도 찾은 적이 없었기에, 이번 설악산 눈길 여행은 새로운 경이감을 불러일으켰다.
케이블카를 타다 이번 산행 길에 파카를 입고 등산화는 신었지만, 눈길에 아이젠도 스틱도 없기에 소공원 일대와 권금성 산장, 신흥사 탐승 정도로 계획한 뒤 먼저 케이블카를 탔다. 케이블카를 타려면 성수기에는 두세 시간씩 기다려야 했지만 평일인지라 곧장 탈 수 있었다. 1981년 아들이 세 살 때 이 케이블카를 타고난 뒤 다시 한 번 더 타자고 떼를 써서 매우 곤혹을 치른 적이 있었는데 이제 그 시절을 돌이켜 보니까 그 시절이 그리운, “품안의 자식”이란 어른들 말씀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케이블카가 공중으로 오르자 울산바위가 눈앞에 펼쳐지고, 눈 덮인 신흥사 일대가 굽어보였다. 더 높이 오를수록 설악의 장엄한 멧부리들이 눈에 덮인 채 불끈 불끈 솟아 있었다. ‘설악(雪嶽)’이란 눈 ‘설(雪)’ 자에 큰 산 ‘악(嶽)’ 자로, “눈이 쌓인 큰 산”이란 뜻이 아닌가. 인제와 양양, 속초, 고성에 걸쳐 있는 높이 1,708미터의 설악산은 우리나라의 척추를 이루는 백두대간의 중심에 있는 명산이다. …… <동국여지승람>은 “한가위에 덮이기 시작한 눈이 하지에 이르러 녹는다 하여 설악이라 한다”하였고, <증보문헌비고>는 “산마루에 오래도록 눈이 덮이고 암석이 눈같이 희다고 설악이라 이름 짓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설산 또는 설봉산, 설화산이라고도 하며 겨울뿐만 아니라 사계절이 모두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인다. - <답사여행의 길잡이 3> 247쪽
산의 이름 유래나 옛 문헌에 따르면 설악산은 눈과 떠날 수 없다. 그래서 눈 덮인 한 겨울 설악산 모습이 가장 절경인가 보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도 설악산에 관한 기록이 보인다. 산과 바다 사이에 기이하고 훌륭한 경치가 많다. 골짜기가 그윽하고 깊숙하며 물과 돌이 맑고 조촐하다. …… 이 산에는 돌산 돌샘이 많고, 우뚝하게 뛰어나며 깊숙하게 싸늘하다. 겹쳐진 멧부리와 높은 숲이 하늘과 해를 가렸다. 케이블카로 권금성에 이르자 알맞게 사람들이 붐볐다. 눈길을 따라 등성이에 오르자 사방의 설악 멧부리들이 인사를 청했다. 나는 정중하게 답례를 하고는 카메라 셔터를 연거푸 눌렀다. 케이블카를 탈 때부터 눈길을 끌었던 젊은 부부의 서로 사랑하는 모습이 마치 영화 <러브스토리>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여 앵글을 잡으면서 셔터를 눌러도 좋으냐고 물었더니 아주 반색을 했다.
산에서 만난 아름다운 사람 지아비는 아내가 다음 달에 출산할 예정인데 뱃속 아기에게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불어넣어주고자 앞산만한 배를 안고서 이곳까지 왔다고 하였다. 그 말이 너무 아름다워 내 명함을 주면서 초상권을 침해해도 좋으냐고 물었더니, 깜짝 놀라며 좋다고 포즈를 취해 주었다. 나는 그들 세 식구의 건강과 특히 태아가 설악의 호연지기를 받아 장차 이 나라의 큰 인물이 되기를 빌면서 셔터를 눌렀다. 눈 덮인 설산의 산봉우리들을 마구 카메라에 담는데, 두 마리 토끼를 거느린 한 쌍의 토끼 부부가 포즈를 취하고선 “저희들도요”를 외쳤다. 두 마리 새끼 토끼가 너무 귀여워 감탄하자, “손자 손녀 없으세요?”하고 물었다. 아직 없다고 하였더니 갸웃 거렸다. “요즘 젊은이들은 늦어요.” 내가 할 답을 그들이 하면서 느긋하게 기다리라고 한다.
다시 케이블카 승차장으로 내려와 동해 바다와 속초항 등 사방을 조망하면서 원 없이 셔터를 눌렀다. 막 도착한 케이블카에 오르자 곧 천천히 하강했다. “설악산 구경도 식후경”인지라 밥집에 들어서자 남정네가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맞으며 난로 옆자리로 안내했다. 산채 비빔밥을 주문하자, 곧 아낙이 내어오는데 이들은 부부로 보였다. 남정은 선착객 두 아이들에게는 목도리를 하나씩 주더니, 나에게도 방한용 털모자를 선물했다. 비빔밥 한 그릇에 얼마나 남는다고 이걸 그냥 주느냐고 묻자, 그는 “세상사란 베풀면 반드시 돌아옵니다”라고 대꾸했다. 산에서 살면 장사꾼도 스님이 되는가? 아무튼 세속에 닳지 않은 밥집 주인을 만나 오늘 일진이 계속 좋음을 느끼게 했다.
산뜻한 하루 밥집을 나온 뒤, 신흥사 경내를 둘러보았다. 대웅전이고 범종루, 해우소 등이 온통 눈을 이불처럼 덮고 있었다. 경내를 벗어나자 계조암 울산바위로 오르는 길이 나타났다. 1980년 그해 여름 학생들과 계조암을 올랐을 때,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한 여학생이 비를 쫄딱 맞고는 오한에 쓰러졌다. 그 학생이 내 반은 아니었지만 옆반 담임 혼자서는 어림없을 것 같아 둘이서 교대로 업고 소공원까지 내려왔다. 다행히 학생은 하룻밤 자고 난 뒤 원기를 회복하여 무사히 수학여행을 마칠 수 있었지만 나는 학교로 돌아온 뒤 일주일 동안 다리 근육통으로 몹시 앓았다. 지난 연말 걔네 동기 모임에 갔더니 그새 45세로 장년들이었다. 미처 안부를 묻지 못하였다. 비선대 가는 길목에 할머니들이 눈에 파묻힌 채 깨엿을 팔고 있었다. 깨엿을 들고 나에게 팔을 뻗는데 거절할 수 없어 하나를 사 입에 물었다. 언저리 눈 경치가 못내 좋아 마냥 더 오르고 싶었지만 돌아갈 차 걱정에, 집에서 나를 몹시 기다릴 카사가 가물거려 뒤돌아섰다. 거기서부터 차를 다섯 번 갈아탄 끝에 불 꺼진 내 집에 돌아왔다. 내 글방 모서리에서 카사란 놈이 잘 다녀오셨느냐고 '야옹' 반갑게 인사를 했다. “카사야 잘 있었니? 맘마 먹으러 가자”라고 하자, 얼른 그놈이 나보다 앞서 제 집으로 달려갔다. 그놈에게 밥을 주고 나도 밥을 챙겨먹자 무리한 산행이었는지 눈이 저절로 감겨 온종일 부지런히 눈경치를 담은 디카의 칩도 살펴보지 못하였다. 눈 덮인 설악산을 마음껏 즐긴 산뜻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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