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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 의원(이명박계) 최고위원회의에서 결정난 것도 아닌데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있나?

유승민 의원(박근혜계) 그렇지는 않아도 공심위에서 그런 원칙을 정했다는 거 아닌가?

 

30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 앞 로비에서 마주친 한나라당의 두 의원은 당내 공천 갈등을 놓고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한나라당의 다른 의원들도 심각한 표정으로 회의장 앞 로비에서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눴다. 자당 안상수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지만, 이들의 관심은 온통 공천 갈등에 쏠려있었다.

 

부패전력자의 공천 기회를 차단한 당규 3조 2항을 엄격히 적용하기로 했다는 공심위의 발표가 나오자 공천 탈락 위기에 몰린 박근혜계의 '좌장' 김무성 최고위원이 탈당까지 시사하며 강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이명박계가 김무성 제거해 계파 와해시키려 해"

 

정종복 의원(공심위 간사)의 브리핑이 처음 전해진 29일 저녁에만 해도 이번 사건을 정 의원의 실수가 빚어낸 해프닝으로 치부하는 시각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정 의원이 "안강민 공심위원장이 '당헌당규대로 하기로 했다고 발표하라'고 해서 그대로 했다. 나는 전혀 잘못된 게 없다"고 반발하고 강재섭 대표가 양 계파의 '신의'를 거론하며 당무를 중단하는 등 사건은 심상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방호 사무총장의 보고는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됐다.

 

그는 이날 오전 강 대표가 불참한 최고위원·중진연석간담회에서 "안강민 공심위원장과 나를 제외한 9명 중 6명이 원칙대로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만장일치는 아니지만) 다수의견으로 의결됐다"고 보고했다. 이 총장의 얘기대로라면, 친박 2명과 중립 1명을 제외한 6명(친이 3, 중립 3)이 부패전력자의 공천 불허에 찬성한 셈이다.

 

"당규로 피선거권을 박탈하는 것은 위헌이다"(김학원 최고위원), "분열로 가서는 안 되고 봉합이 필요하다"(김형오 인수위 부위원장)며 공심위 결정을 번복하려는 의견들이 터져 나왔지만, 김무성 최고위원은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상태였다.

 

김 최고위원은 "당의 평화를 위해 노력했는데 이런 결과가 나오니 사람 사는 세상이 이렇게 되면 안 된다고 본다"며 "정치를 시작한 후 한 번도 당적을 바꾼 적이 없는데, 당에서 쫓아내니 이제 당적을 버릴 수밖에 없지 않냐"는 요지의 신상 발언을 한 뒤 회의장을 빠져나왔다.

 

박근혜계에서는 '김무성 사태'에 대해 "이명박계가 김 최고위원을 제거함으로써 계파를 와해시키려고 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원칙을 지키는 정치인'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쌓아온 박 전 대표에게 이번 사건이 적잖은 딜레마를 안겨준 것은 분명하다. 박 전 대표가 김 최고위원을 두둔할 경우 "부패에 연루된 측근을 감싸려고 한다"는 비난 여론에 봉착하게 되고, 이와 반대로 박 전 대표가 김 최고위원 문제를 수수방관한다면 '박근혜 = 최측근도 챙기지 못하는 냉정한 보스'로 매도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현철 대신 김기춘 손 들어 박근혜계 달래기? 

 

김 최고위원과 함께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차남 현철씨의 공천 길이 함께 막힌 것도 정치공학상 흥미롭게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나라당 내에는 "대선에서 이명박 당선인의 손을 들어준 YS에 최소 2~3인의 공천 몫이 돌아가지 않겠냐"는 소문이 파다하다. 현철씨는 23일 경남 거제 출마 기자회견에서 "고비 때마다 아버지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이명박 당선인은 없었을 것"이라며 '보은 공천'에 대한 기대감을 노골적으로 표시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여의도 정치를 확 바꾸겠다"고 공언해온 이 당선인에게 구시대 정치인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YS와의 관계 정립은 큰 숙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부패연루자 공천 불허' 당규를 이용하면 이 당선인이 YS의 요구를 거절할 명분이 생기게 된다. 이 당선인 측이 현철씨를 낙마시킨 뒤 3선의 김기춘 의원(박근혜계)을 다시 공천해 박근혜계를 달래려고 한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당내 사정을 잘 아는 한 당직자는 "이 당선인 측에서는 자파 의원 몇 명이 다치더라도 원칙을 밀고나가야 총선에서도 '과거로 돌아간다'는 얘기가 안 나올 것으로 보는 것 같다. 그러니 김무성 뿐만 아니라 YS 차남 현철씨도 차갑게 대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물론, 이명박계가 공천 기준과 관련해 단일한 입장을 정해 조직적으로 움직인다고 볼 만한 근거는 없다.

 

그러나 박희태·이상득 의원으로 대표되는 원로그룹이 "당의 화합을 위해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정치적 대타협을 주장하는 데 반해 이재오 의원을 앞세운 초·재선 그룹과 당 외곽의 뉴라이트계 인사들이 정면돌파 쪽에 힘을 싣고있는 분위기다.

 

이방호 사무총장이 정책위의장 시절부터 이재오 의원(당시 원내대표)과 호흡을 맞춘 점을 들어 이재오 측의 강경론이 이명박-박근혜의 갈등을 첨예화시켰다는 추측도 나온다.

 

이명박계 내부에서 강경론이 힘을 얻자 양대 계파의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할 강재섭 대표의 처지가 난처해졌다. 공천 불이익을 우려해 분당까지 검토했던 박근혜계 의원들을 향해 "믿고 맡겨달라"며 다독거려왔던 사람이 강 대표였기 때문이다.

 

강 대표는 '분당' 위기로 갈 수 있는 상황에서 대표직 사퇴 가능성까지 흘리며 배수진을 쳤다. 이명박계의 양보를 요구하는 제스처가 분명하지만, 그의 승부수가 통할지는 미지수다.

 

작년 4월 재보선 참패 이후 당 쇄신안에 문제의 당규를 집어넣었던 강 대표가 지금에 와서 당규를 원칙대로 적용한 공심위 결정에 반발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라는 비판이 이명박계로부터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 출마를 준비하는 이명박계의 초선의원은 "당 대표가 작년에 쇄신안 만들어놓고 이제 와서 자기 말을 뒤집어서야 되겠냐?"며 "당규를 과거로 되돌리고 계파 나눠먹기에 안주해서는 한나라당의 미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중립 성향의 원희룡 의원은 "원칙적으로야 당규를 그대로 적용하는 게 맞다. 맘대로 바꾸면 안 된다"는 입장이고,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서울 도봉갑 출마)도 "대외 명분보다 대내 화합을 중시하는 쪽으로 무게중심을 두면 총선에서 상당한 역풍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선거법 위반' 범이명박계 포함 주장도

 

그러나 박근혜계가 치열한 당내 투쟁을 선택할 경우 당 내분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박 전 대표는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고 입맛에 맞게 (당규를) 해석하려는 것은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근혜계 내부에서는 "선거법을 위반하거나 파렴치한 행위를 한 사람에 대해서도 엄격한 공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김무성 최고위원이 희생될 경우 이명박계에 대한 확전도 불사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만약 선거법 위반자까지 공천불가자의 범주에 포함시킬 경우 서울시 정무부시장 시절 지역주민들에게 음식물을 제공한 정두언 의원을 비롯해 김광원·권오을·김재경·심재철·정의화·홍문표·홍준표 등 벌금형을 받은 범이명박계 의원들 상당수가 초토화될 판이다.

 

다수파인 이명박계가 당내 투쟁에서 박근혜계를 제압한다고 해도 '내전의 대가'는 적지않다고 할 수 있다. 범이명박계의 전재희 최고위원이 "정치력을 발휘해야 하는 것 아니냐? 형식적 당규에 얽매이는 것은 맞지 않다"며 당규 개정을 통한 대타협을 강조한 것도 이같은 우려를 깔고 있다.

 

양 계파의 공천 갈등이 사생결단으로 비화되면 모두가 공멸한다는 위기감이 한나라당을 엄습하고 있다.


태그:#18대 총선, #김무성, #이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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