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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와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30일 서울 삼청동 인수위원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영어 공교육 완성 프로젝트 실천 방안'의 공청회가 편파적인 밀실 공청회로 국민 여론 호도한다며 인수위원회를 규탄하고 있다.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와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30일 서울 삼청동 인수위원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영어 공교육 완성 프로젝트 실천 방안'의 공청회가 편파적인 밀실 공청회로 국민 여론 호도한다며 인수위원회를 규탄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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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오전 10시 대통령직인수위가 대회의실에서 '영어 공교육 완성 실천방안' 공청회를 개최하고 있던 시각, 인수위 정문 앞에서는 또 다른 '공청회'가 열리고 있었다. 인수위의 공청회에 초청받지 못한 '불청객'들이다.

인수위는 장소의 협소함을 들어 이날 공청회에 임의로 선정한 토론자 10명과 방청객 20명 외에는 출입을 불허했다. 

"편파적인 밀실 공청회로 국민 여론 호도하는 인수위를 규탄한다"고 적힌 현수막이 펼쳐지면서 시민단체들의 규탄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문화연대, 민주언론시민연합,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참여연대, 한국YMCA전국연맹, 흥사단교육운동본부 등이 동참했다.

시민단체의 규탄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인수위 정문 한켠에서 서성이는 20~30대의 젊은이들 모습이 눈에 띄었다. 영어교육 자격증이 있지만 아직 정식 교사가 되지 못한, 영어교사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이다.

어림잡아 20명은 됐다. 그러나 이들은 대열을 갖추지 않았다. 현수막이나 피켓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안타까운 표정으로 시민단체의 규탄대회를 지켜볼 뿐, 구호조차 외치지 못했다. 학교와 도서관에 있어야 할 이들이 인수위까지 몰려나온 이유가 뭘까?

"6개월 수료증 받고 영어교사라니? 4~7년 공부한 우린 뭔가?"

이날 인수위가 공청회에서 발표한 '영어 공교육 개편 로드맵' 때문이다. 인수위는 오는 2013년까지 영어 과목을 영어로 수업하기 위해 영어전용(TEE·Teaching English in English)교사 2만3000명을 신규로 채용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1조 7천억원의 국고도 지원된다.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와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30일 서울 삼청동 인수위원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영어 공교육 완성 프로젝트 실천 방안'의 공청회가 편파적인 밀실 공청회로 국민 여론 호도한다며 피켓을 들고 있다.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와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30일 서울 삼청동 인수위원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영어 공교육 완성 프로젝트 실천 방안'의 공청회가 편파적인 밀실 공청회로 국민 여론 호도한다며 피켓을 들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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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교사가 되는 길도 넓어졌다. 테솔(TESOL) 등 국내외 영어교육과정 이수자, 영어권 국가 석사학위 이상 취득자, 교사자격증 소지자, 전문직 등으로 확대되고, 심층 구술면접을 통해 선발된다. 또 영어에 능통한 대학생과 주부, 지역주민, 해외교포 등에게 일정한 제도적 인센티브를 주고 '영어전용 보조교사'로 적극 활용한다.

영어교사 임용 수험생들을 거리로 내몬 것은 바로 이러한 '영어교사 자격 완화' 정책 때문이다. "여기에 온 이유가 뭐냐?"는 질문을 받은 이주현씨는 기다렸다는 듯 속사포처럼 자신의 생각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인수위가 교사 자격증이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교사 자격을 주겠다는 것인데, 테솔은 3개월에서 6개월만 교육을 받으면… 돈만 있으면 누구나 딸 수 있는 자격증이다. 적체돼 있는 교사 준비생들이 7천명에서 1만명이다. 모두 4년에서 7년 가까이 공부를 했다. 이런 학생들은 제쳐두고 검증되지 않은 테솔 수료자를 우선적으로 구술면접만을 보고 뽑겠다니…. 너무 억울하다."

이주현씨는 또 "영어에 능통한 주부에게 영어 보조교사 자격을 주겠다는 것인데, 미혼은 왜 안 되냐"며 "이 역시 특정 집단을 염두에 둔 조치 아니냐"고 의아해했다.

이어 이씨는 "임용고시를 거친 교사들 월급이 190만원 정도로 알고 있는데, 테솔 수료자를 채용할 경우 260여만원을 주고, 교통비에 수당까지 지급한다고 한다"며 "자기 딸자식 유학갔다와서 할 일 없이 놀고 있으니, 영어전문교사나 하라고 하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역시 영어교사 임용을 준비하고 있는 김권남(35)씨는 "영어만 잘한다고 6개월 과정의 테솔 수료자에게 교사 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예를 들어 개인택시 자격을 취득하는데도 12년이 걸리는데, 단지 운전만 잘한다고 택시운전 자격증을 줄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서지현(27)씨는 "임용고시는 3차 시험까지 보는데, 2차 시험은 영어에세이를 써야 하고, 3차에서는 심층면접과 함께 영어수업을 시현해야 한다"며 "쓰기, 말하기 능력이 없으면 아예 시험을 통과할 수 없는데도 인수위가 임용고시 수험생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화가 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연정(31)씨도 "사범대 영어교육과나 교육대학원에 가는 사람들은 공교육을 목표로 하고 있는 반면 테솔은 사교육 시장을 노린 것이다, 출발점이 다르다"며 "공교육을 강화한다면서 사교육을 위해 키워진 사람들을 데려다 쓰겠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테솔? 인수위원장이 숙대 총장 아니라도 허용했을까?"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와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30일 서울 삼청동 인수위원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영어 공교육 완성 프로젝트 실천 방안'의 공청회가 편파적인 밀실 공청회로 국민 여론 호도한다며 인수위원회를 규탄하고 있다.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와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30일 서울 삼청동 인수위원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영어 공교육 완성 프로젝트 실천 방안'의 공청회가 편파적인 밀실 공청회로 국민 여론 호도한다며 인수위원회를 규탄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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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주현씨는 이경숙 인수위원장이 숙명여대 총장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씨는 "테솔 수료자에게 교사 자격을 준다고 하는 것은 이경숙 위원장이 총장으로 있는 숙대에서 테솔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냐"며 "테솔을 강조하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테솔(TESOL.Teaching english speaker of other language)은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효과적인 영어교수방법을 연구·개발하고 이 과정을 통해 영어전문교사를 양성하는 과정이다.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영어권 국가를 중심으로 개설돼 있고, 국내에는 1997년 숙명여대에서 처음 개설해, 현재는 10여개 대학에서 강좌가 진행 중이다.

1994년 숙명여대 총장에 취임한 이경숙 위원장은 영어교육에 각별한 관심을 두고, 졸업생을 대상으로 한 자체 영어 말하기·쓰기 시험을 만드는 등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다. 특히 숙명여대가 테솔을 도입한 해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 교육을 도입, 사교육 시장이 빠르게 성장했고, 테솔 자격증은 학원 강사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이와 관련 정치권에서도 이경숙 위원장이 영어교사 자격증을 강조하는 것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 이 위원장이 총장으로 재직중인 숙명여대가 운영하고 있는 영어교사양성프로그램과 관계가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전교조 위원장 출신인 장혜옥 민노당 '이명박정부대항서민지킴이' 본부장은 29일 "영어교사 양성은 기존의 사대와 교대 등 영어교사 양성프로그램을 강화하면 될 문제인데, 인수위는 영어전문교사 자격증제(PEE)를 말하고 있다"며 "숙명여대를 비롯한 이미 테솔을 운영하는 10여개 사립대학들의 이익과 연계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증폭된다"고 지적했다.

김권남씨도 "인수위 위원장이 숙대 총장이 아니라면 이런 사태가 발생했겠느냐"며 "결국 자기 학교를 홍보하기 위해 교사 자격 부여라는 무리수를 두는 것 아니냐"고 성토했다.

이날 시민단체의 규탄대회가 끝난 뒤에도 이들 '예비 영어교사'들은 발길을 돌리지 못한 채 한참동안 그 자리를 맴돌았다. 이들의 목적은 규탄대회가 아니라 인수위 공청회에 참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앞에는 방패를 들고 단단한 저지선을 만든 수십명의 경찰이 버티고 있었다. 이들은 멀찌감치 보이는 인수위 건물만 응시하다 이내 뿔뿔이 흩어졌다. 인수위 건물에는 '국민을 섬기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펼쳐져 있다.

시민단체 "반대 토론자 없는 편파·밀실 공청회"
인수위 "만나려고 했는데, 조기해산하는 바람에..."

30일 서울 삼청동 인수위 대회의실에서 열린 `영어공교육 완성을 위한 실천방안' 공청회에 참가하려는 방청객들이 경찰들에 의해 출입 통제를 받고 있다.
 30일 서울 삼청동 인수위 대회의실에서 열린 `영어공교육 완성을 위한 실천방안' 공청회에 참가하려는 방청객들이 경찰들에 의해 출입 통제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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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시민단체들은 규탄 기자회견에서 "이번 공청회는 영어교육 확대 정책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의견을 제기한 학부모단체와 교육관련 단체들은 철저하게 배제하고 찬성하는 단체나 인사들로 토론자를 선정하는 등 편파적으로 진행됐다"며 "이렇게 하고도 국민들에게 의견을 수렴했다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이들은 또 "지금이 어느 시절인데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군사 정권시절의 언론 조작, 국민 여론조작 작전을 방불케 하는 작전을 벌인단 말이냐"며 "대규모 공청회를 해도 국민적 우려와 불안을 해소할 수 있을까 말까하는 상황에서 공청회 장소를 50여명이 겨우 들어갈 만한 대회의실에 잡아놓고 장소가 좁아서 안된다는 변명을 하다니, 옹색하기 그지 없다"고 지적하고, 공청회를 다시 열 것을 촉구했다.

한편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은 이날 오후 공청회 관련 기자 브리핑에서 "반대단체 대표들과 만나서 의견을 듣겠다는 것이 이경숙 위원장의 뜻"이라며 "인수위 앞에서 집회를 했던 반대단체들과는 공청회 직후라도 만날 계획이었지만, 단체가 조기해산하는 바람에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를 들은 기자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나왔고, 이 대변인 스스로도 계면쩍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기자가 "반대 단체도 만나겠다는 뜻이었다면 애초 공청회 때 초청을 하지 않은 이유가 뭐냐"고 묻자, 이동관 대변인은 "오늘 공청회 취지는 영어 공교육 강화를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가 방점"이라며 "찬반 논쟁은 계획되어 있지 않았다, 반대 의견은 차츰 수렴해서 참조하겠다"고 해명했다.


태그:#영어 공화국, #대통령직 인수위, #이경숙 위원장, #테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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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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